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1445년03월01일 이탈리아 피렌체 출생 - 1510년05월17일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활동

추가정보

보티첼리가 처음에는 필리포 리피에게 그림을 배운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어 베로키오와 폴라이월로로부터 사실주의를 배웠다. 초기에는 《포르테차》 《유딧과 홀로페르네스》(1470, 우피치미술관 소장)와 《성(聖)세바스찬》(1474, 베를린국립미술관 소장) 등에서 자연연구에 대한 소박한 정열을 보이는데, 그 미묘한 곡선과 감상적인 시정(詩情)에 일찍부터 독자적인 성격이 나타나 있다. 그 후 메디치가(家)를 중심으로 한 인문주의 학자·시인들의 고전(古典) 부흥의 분위기와 신(新)플라톤주의의 정신에 접하고, 특히 안젤로 폴리치아노의 시에 고취되어 그린 《프리마베라(봄)》(1477∼1478, 우피치미술관 소장)는 시적(詩的) 정신과 자연연구의 아름다운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1478년 메디치가에 대한 파치 음모사건의 범죄자가 처형되는 벽화제작을 위촉받아 그린 것은 카스타뇨의 알비치 음모자 처형도의 영향을 받은 듯 하지만, 그 때의 벽화는 훼손되어 그 진부는 알 수 없다. 1480년 온니산티성당에 그린 《성(聖)아우구스티누스》의 벽화를 보면, 카스타뇨의 엄격한 리얼리즘의 영향도 살펴볼 수 있다.. 그러나 카스타뇨의 영향도 일시적인 것으로 1481년에는 산마르티노성당에 감미로운 《수태고지(受胎告知)》를 그리고, 감상적인 《마니피카토의 성모》(우피치미술관 소장)와 《책의 성모》(밀라노의 포르디 페초리미술관 소장)도 이 무렵의 작품이다.
또 1481년부터 1482년까지는 기를란다요, 페루지노 등과 함께 교황 시크스투스 4세의 부름으로, 보티첼리가 총감독이 되어 바티칸궁전 시스티나예배당의 측벽(側壁) 장식을 맡았다. 1482년 피렌체로 돌아온 그는 로마에서의 일로 자신을 얻어, 그 후 약 10년 동안은 점차 사실(寫實)을 무시하고, 독자적인 화경(畵境)을 열었기 때문에 이 시기를 보티첼리의 원숙기로 볼 수 있다. 이 무렵의 작품으로는 《성모자(聖母子)와 두 성(聖)요한》(1485, 베를린 국립미술관 소장) 《비너스와 마르스》(런던 내셔널갤러리 소장) 《토르나브오니 렌미가(家)의 별장에서 나온 벽화》(루브르미술관 소장)를 비롯하여 《비너스의 탄생》 《메라그라나의 성모》(1487) 《산바르나바의 성모》(우피치미술관 소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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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Birth of Venus

    tempera on canvas, 172.5x278.9cm, 1486, 우피치미술관(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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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 (프리마베라)

    패널에 템페라, 203x314cm, 1478, 우피치미술관(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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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비한 탄생, 그리스도의 탄생

    패널에 템페라, 75x108.5cm, 1500-1501, 런던 내셔널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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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성모 (아기 예수를 가르치는 성모 마리아)

    목판에 템페라, 39.5x58cm, 1479, 폴디 페촐리 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