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섭 카쉬(Yousuf Karsh)

1908년12월23일 터키 마르딘 출생 - 2002년07월13일

경력

1926년 나카쉬의 스튜디오에서 사진 공부 시작
1928년 보스턴의 유명 사진작가 존 가로의 스튜디오에서 사진 공부 시작
1932년 캐나다의 오타와로 이주,개인 스튜디오 오픈
1935년 베스버러 경과 그의 부인의 초상 사진 촬영(최초의 정부 관료 사진으로 신문게재)
1936년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와 캐나다 수상 맥켄지 수상 촬영
1941년 윈스턴 처칠 촬영
1943년 런던에서 조지 버나드 쇼, 캔터베리 추기경 등 약 42명의 유명인사 초상사진 촬영
1946년 <LIFE>지 헐리우드 스타 사진 촬영
1950년 Atlas Steel Company에 초빙되어 철강작업 촬영
1952년 Maclean’s Magazine의 요청으로 캐나다 16개 도시 사회상 촬영
1961년 솔란지 카쉬 상 제정
1962년 존 F. 케네디의 사진이 그의 암살을 기념한 <LIFE>지의 표지가 됨
1963년 서구 사진작가로서 최초로 Nikita Khruhchev의 초상 사진 촬영
1967년 오하이오 대학교에서 객원교수로 사진술 강의
1972년 보스턴의 에멀슨 대학(Emerson College)에서 객원교수로 2년간 사진술 강의

<사진집>
1946년 운명의 얼굴들
1959년 위대한 인물사진
1962년 위대함을 찾아서
1967년 카쉬 사진작품집
1971년 우리시대의 얼굴
1976년 카쉬 초상사진
1978년 카쉬의 캐나다인

수상경력

1967년 오더 오브(캐나다)

개인전

2009, 100주년 기념 전시회, 한가람미술관, 서울
2008, 100주년 기념 전시회, 보스턴미술관, 보스턴(미국)
2007, 100주년 기념 전시회, 나고야국립미술관, 나고야(일본)
1971, 사진전, International Center of Photography, 뉴욕(미국)
1967, 사진전, 보스턴미술관, 보스턴(미국)

작품소장

Faces of Destiny(1946), This is the Mass(1958),This is Rome(1959),Portraits of Greatness(1959),This is the Holy Land(1960),In Search of Greatness(1962),Karsh and Fisher see Canada(1964),with John Fisher(1964),Karsh Portfolio(1967),Portraits by Karsh(1968),Faces of our time(1969),Karsh Portraits(1976)

추가정보

20세기 영웅들의 사진을 카메라에 담았던 캐나다 사진작가, 유섭 카쉬(Yousuf Karsh, 1908~2002)는 전세계 사진가로부터 ‘인물사진의 교과서’로 평가 받고 있는 사진계의 거장이다. 셔터를 누르는 찰나의 순간만으로도 20세기 정치인, 영화 배우, 예술가, 문학가의 내면을 있는 그대로 담은 사진을 완성하여 ‘영혼을 찍는 사진 작가’로 불렸으며, 스튜디오 조명과 자연광을 조화시켜 인물을 부각시키는 그의 독창적인 조명 기술은 현대 사진조명 업계에 큰 업적으로 손꼽히고 있다. 2002년 7월, 향년 93세로 눈을 감을 때까지 5만 여장의 인물사진을 찍었던 카쉬는 전세계를 무대로 수많은 인사들을 그의 카메라 앞에 당당히 세운 위대한 사진작가다.

유섭 카쉬는 흑해 연안, 터키령(領)의 아르메니아(Armenia) 공화국 말딘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는 터키인으로부터의 박해와 수많은 대량학살을 목격했다. 전쟁터 속에서 은닉처로 숨어 들어가 숨죽이는 고요함을 경험했고, 죽어가는 아이의 모습을 직접 보기도 했으며, 17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사막을 가로질러 캐나다로 도망가기도 했다.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슬프고도 참단한 어린 시절을 통해 자연스럽게 길러진 사물에 대한 시각은 인물의 눈을 통해 영혼과 마음을 바라보는 천부적인 자질이 되었으며, 훗날 그가 인물 사진 작가로 활약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되었다.

터키인들의 박해를 피해 시리아로 잠시 옮겼던 카쉬는 모든 것을 잃고, 먹고 살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던 상황에서도 아들을 끔찍하게 아낀 아버지의 도움으로 캐나다에서 사진관을 경영하는 외숙부에게 가게 된다. 의학도가 되고자 했던 꿈을 포기하고 1926년부터 외숙부 조지 나카쉬(George Nakash)의 사진관에서 사진을 공부하기 시작한 카쉬는 아이들이 뛰어 놀고 있는 풍경을 찍어 반 친구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했다. 1927년 친구가 카쉬 몰래 대회에 출품한 그의 사진은 1등으로 채택되어 당시 50달러의 거금을 상금으로 수여 받게 된다. 이러한 카쉬의 성장을 지켜보던 외숙부는 보스턴에서 인물사진 스튜디오를 경영하는 존 가로(John Garo)에게 카쉬를 보낸다.

존 가로는 카쉬와 같은 아르메니아인으로 카쉬에게 잊지 못할 스승이자 친구가 된다. 카쉬는 존 가로로부터 조명과 디자인, 구성에 대해 체계적으로 배웠으며, 램브란트(Rambrandt) 벨라스케스(Velázquez)와 같은 위대한 화가들의 작품을 공부할 수 있도록 도움을 받았다. 특히 화가들이 인물화를 그릴 때 사용한 빛의 각도, 빛의 밝기 및 대비를 그림집을 보아 가며 익혔고, 실제로 인물을 보는 법, 다양하게 조명을 사용하는 법 및 백금 인화법, 알부민 인화법, 고무 인화법 등 다양한 인화법에 이르기까지 상세히 공부했다. 조명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었던 당시, 해가 저물면 가로의 스튜디오는 예술가들의 살롱(Salon)이 되었다. 카쉬는 이 시간을 통해 1920년대 음악, 문학, 연극과 오페라에서 세계적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들과 만날 기회를 가질 수 있었고, 세상에 발자취를 남기는 위대한 영웅들을 카메라에 담는 사진가가 되기로 마음 먹는다.

카쉬는 존 가로의 스튜디오에서 3년 동안 일한 후, 1931년 캐나다의 오타와로 이주하여 개인 스튜디오를 차린다. <Saturday Night>라는 정기간행물의 편집장인 B.K.샌드웰(Sandwell)을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 카쉬는 정치적 논평과 함께 처음으로 그의 사진을 잡지에 싣게 된다. 다정다감하지만 정치지향적이었던 샌드웰은 카쉬에게 정치 및 정치인의 속성과 태도, 목표와 이상향이 무엇인지 알려 준 인물이었다. 이 후, 아마추어 극단의 연극인들을 찍으며 인물 사진에 대한 공부를 계속해 나가던 카쉬는 소극장 주연 배우 중 한 명이던 던캐넌경의 도움으로 당시 총독이었던 그의 아버지 베스버러경(Lord Bessborough)과 그의 아내인 우아한 프랑스 귀족 부인의 사진을 찍게 되었다. 이 사진은 Illustrated London News>, <Tatler>, <Sketch> 등 잡지뿐 아니라, 캐나다 전역의 수많은 신문에 실리며, 그의 명성의 시작을 알렸다.

카쉬는 1936년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이 캐나다 수상인 맥켄지 킹(Mackenzie King)과 협상을 위해 캐나다 퀘백을 방문했을 때, 캐나다 수상 및 정부 요원들의 사진을 담당하는 포토그래퍼로 특별 초빙된다. 포토저널리즘의 관점에서 정치인을 찍었던 그의 사진이 처음으로 TV 뉴스에 등장한 순간이었다. 이 때부터 맥켄지 수상은 그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으며, 1941년 12월 캐나다 오타와에서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것도 맥켄지 경의 도움 덕분이었다. 윈스턴 처칠의 고집스럽지만 다부진 사진은 <LIFE>지의 표지를 장식하게 됨으로써, 카쉬는 전세계적으로 일약 유명세를 치르게 된다. 윈스턴 처칠의 사진을 계기로, 1943년에는 전시(戰時) 중인 영국 런던에 초대되어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조지 6세(George Ⅵ), 영국 왕실 가족 등 42명의 초상을 찍었다. 1945년에는 <LIFE>지의 위촉으로 세계 명사들의 초상사진을 찍기도 했다.

영국에서 다시 오타와로 돌아온 카쉬는 그 동안 만났던 사람들의 인물사진을 정리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는 작고할 때까지 세계를 다니며 계급, 직업, 종교를 불문하고 다양한 인물의 사진을 찍었는데 이 과정에서 스튜디오의 인공 조명에서 탈피한 자유를 느낀다. 사진에서 가장 중요한 조명은 태양, 즉 자연광이며, 가장 중요한 광선은 태양과 같은 방향임을 깨닫고 1960년대부터 시간에 따라 백라이트, 벨라스케스, 램브란트식 조명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기 시작한다. 1960년 제클린 케네디(Jacqueline Kennedy) 여사를 램브란트 조명법으로 찍었으며, 1979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hn Paul Ⅱ)를 벨라스케스 조명법으로 찍었다.
1992년 6월, 카쉬는 오타와의 샤또 로리에(Chateau Laurier) 호텔의 스튜디오를 접고 더 이상 상업적 작업을 하지 않기로 결심한 후, 여러 작품활동을 통해 수많은 세계명사들의 모습을 남겼다. 작품에 대한 열정이 누구보다 뜨거웠던 카쉬는 2002년 작고할 때까지 1만 5천 여명을 카메라에 담았고, 15만장에 달하는 필름을 인화했다.

카쉬의 사진은 곧 역사 그 자체이다.
카쉬가 수많은 인물 사진만을 남긴 것은 아니다. 1950년대 산업혁명 시기의 캐나다 경제성장의 모습을 포토저널리스트의 관점에서 카메라에 담기도 했으며, 1962년 결혼한 두 번째 부인의 영향으로 근위축증 어린이 협회를 위한 국가 포스터의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의 필름, 슬라이드, 인화를 포함한 모든 자료는 그와 함께 작업한 지인들의 도움으로 연대별로 정리되어 1987년 캐나다 국립 문서국에 보관되었다.
사진에 처음으로 눈 뜨게 해준 외숙부 나카쉬, 조명법을 비롯하여 다양한 사진 기술을 전수해 준 그의 스승 존 가로, 인물을 통찰하는 능력을 알려준 샌드웰 편집장, 든든한 후원자 멕켄지 경은 카쉬로 하여금 역사적으로 길이 남을 사진을 완성하게 한 사람들이다.

카쉬는 위대한 인물들의 내면을 고스란히 작품에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촬영 전에는 인물에 대해 충분히 연구하고 파악했으며, 촬영을 진행하면서는 파악한 정보를 바탕으로 최대한 편안하고 친근하게 다가가려고 했다. 이는 무의식에 깃들어 있는 인물 고유의 습관이나 특징이 잘 드러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카쉬의 남다른 철학과 뛰어난 연출력은 그의 작품 속에서 인물들이 살아 숨쉬도록 만들었다. 카쉬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알버트 아인슈타인, 오드리 햅번, 어니스트 헤밍웨이, 윈스턴 처칠 등 위대한 인물들의 내면이나 쉽게 볼 수 없던 이면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이 카쉬의 작품이 더욱 가치 있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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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사진의 거장, 카쉬(KARSH)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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