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명(Chun Sung-Myung)

1971 울산광역시 출생

서울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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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말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계절적 변화 이외에 인간적인 어떤 변화도 궁색한 시골마을 끝자락
10년 전 어느 밤 사내는 이곳으로 왔다.

아무도 그가 누구인지를 몰랐고 노인들이 대부분인 이웃은
세상천지에 사정없는 사람이 있겠냐며
지나는 바람처럼 그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사내는 이곳에서 한동안 아무것도 그 존재를
눈치 채지 못할 만큼 조용히 지냈다.
하지만 그의 존재가 드러난 것은 그가 출처를 알 수 없는
무엇인가를 수집하는 과정에서였다.

그것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정확히 어떤 것인지도 모르지만
점차 양이 늘어나면서 사내의 집 마당에는 하나의 덩어리가 생겨났고
몇 달이 지나면 그것은 이어져 성곽처럼 변해간다.
사내는 일정한 높이와 폭을 유지하며 그것들을 연결해 갔고
나중엔 정말 반듯하게 각이 세워졌다.

차 한 대가 지날 수 있는 작은 길을 따라
나는 포클레인이 퍼내는 흙먼지 속을 지나고 있다.
언제까지 지속될 것만 같던 이 마을의 거대한 한적함이란
신문에 인쇄된 신도시 발표라는 그 작은 검정 잉크 몇 줄에
어이없이 무너져 간다.

사내의 등 뒤로 아직 무계획한 덩어리들이 올무를 감싸 안고
먼지 속에 보였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처음 그가 어디서 왔는지 몰랐던 것처럼
지금 그가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한다.
그리고 나의 관심은 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오랜 시간 지독히 모아온 그 의문의 덩어리에 있다.

이상한 것은 그가 몇 년 동안 그것들을 수집하는 것은 봤지만
그것을 들춰내거나 사용하는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2011년 8월 천성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