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Park Jong-Ho)

서울에서 활동

작가 프로필 이미지

소개말

첫 아이가 태어난 후 생계를 위해 작업을 놓고 직장을 갖게 되었다. 그토록 불편해 했던 관리자들의 체제에 종속되면서 상당한 보상을 얻을 수 있었지만, 끊임없이 소모되고 반복되는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일상으로 인해 나는 자신이 인간으로서 존엄하다는 생각을 잃어갔다. 아니 버리고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무엇이 득인지 실인지 판단하기 위해 삶의 가치를 판가름하던 기준들을 하나 둘씩 묻어 두어야만 했다. 사회의 말단인 내게 문제가 생겼지만 견고해진 상부 구조들로 인해 원인을 찾을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이란 힘겨워하는 자신을 문제 삼는 것 밖에 없었고 그러다 보니 스스로를 사랑하려면 지독한 노력이 필요하게 되었다. 일을 그만두고 평택의 한 돼지 농장을 물어물어 찾아 갔다. 그리고 그저 수동적인 그것들 속에서 현실의 나를 보았다. 나는 추구해온 인간을 버리고 생존경쟁의 논리에 수동적으로 길들여져야만 했던 것이다. 친우들에게 이야기하니 사람인생 다 똑같지 않나 한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는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고, 나는 되고자 했던 인간의 이야기를 그들에게 할 수 없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이 시대의 현실은 부정적인 것(긍정하기 싫음)과 가까우며, 절대적인 것(거부할 수 없음)과도 가까운 것이다. 현실에서의 불행과 현실이 지닌 반항할 수 없는 절대성으로 인해 무기력한 존재로 전락해 가지만, 짐승도 아니고 자신이 알아왔던 존엄한 인간도 아닌 나는 자신이 속한 무리 안에서 고개를 들고-숙이기를 계속하며, 자신에 대한 경멸을 초라한 나르시시즘으로 대체하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철학을 잃어버린 자들의 시대다. 내 그림에서 돼지는 자신의 상징체이자 콤플렉스의 총체이며, 자신도 모르게 울타리에 갇혀버린 대중을 상징한다. 본래 영리하고 깨끗한 종의 특성을 지닌 그것은 사회의 체제에 의해 사육의 대상으로 몰락해버린 생(生) 자체가 서글픈 존재다. 무리 속에서 홀로 눈을 뜨고 있는 돼지는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외부의 본질을 자각하고 그것을 직시함으로써 개인의 무력감과 상실감, 더 나아가서는 자기 경멸과 내적 저항의식을 표출한다. 이것은 작가 자신의 자화상이며, 스스로에 대한 철저한 경멸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지탱해주는 슬픈 나르시시즘에 대한 이야기이다.
작가노트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