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 율(Finn Juhl)

1912년01월30일 덴마크 프레데릭스베르 출생 - 1989년05월17일

덴마크에서 활동

학력

왕립 미술 아카데미 건축학부 전공 학사

경력

1965년 미국 시카고예술대학교 객원교수
1945년~1955년 덴마크디자인학교 교사

수상경력

1947년 빙&그뢴달 (Bing and Grøndahl’s) 상점 인테리어로 에케르스베르그(Eckersberg)상 수상

추가정보

핀 율은 1937년 건축학부에 입학해 공부를 시작했지만 가구 디자인으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핀 율은 스스로 공부하여 가구 디자인 전통을 벗어나 새로운 조형의 의자를 선보였습니다.

그가 처음 디자인한 가구는 자신의 아파트를 위한 작업이었습니다. 핀 율은 자신의 가구들로 집안 내부를 채웠습니다. 핀 율은 항상 그의 방에 있던 가구들을 표현의 일환으로 여겼으며, 그의 집은 아이디어의 원천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수공예품과 자유로운 예술은 집안의 완성도를 높여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인테리어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사회 주택 건설에 관한 대회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핀 율은 건축가가 인테리어의 가능성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하였으며 그의 이런 생각을 모아 실용성의 중요성을 학술지와 주간지에도 게재, 출판했습니다.

1950년대는 핀 율에게 있어서는 가장 바쁜 시기였습니다. 1951년 핀 율은 미국무대로 진출합니다. 당시 UN본부에서는 안정보장이사회, 신탁통치위원회, 경제협력위원회의 인테리어를 해냈고 38살의 나이로 핀 율이 덴마크 대표로 선출되었습니다. 회의실 공개와 더불어 핀 율의 이름은 순식간에 국제적으로 알려졌고 1956년에는 SAS에서 그에게 유럽과 아시아 지역에 있는 자신들의 터미널 인테리어를 책임져달라고 요청해 왔습니다. 그는 시카고에서 열린 굿 디자인 전시에 참여해 전시와 연관하여 의자, 테이블, 스토리지 유닛, 사이드 보드와 책상 등을 포함한 24개의 가구들을 디자인했고 이때 처음으로 현대 대량 생산과 결합을 시도했습니다. 1950년대의 밀라노 트리엔날레에서 핀 율은 5개의 금메달을 수상하고, 국제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제네러 일렉트렉사를 위해 냉장고도 디자인했고, 네덜란드의 베이커컴퍼니에게 유리제품, 세라믹, 가구들을 디자인해 주기도 했으며, 뉴욕 UN본부 신탁통치위원회의 인테리어 디자인도 했습니다.

1960년, 워싱턴의 덴마크 대사관은 핀 율이 인테리어를 담당하여 거의 그의 가구로 채워졌습니다. 핀 율은 60여 회의 해외 전시를 디자인했고, 1982년 70회 생일을 맞아 덴마크 아트 앤 디자인 미술관에서 회고전을 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