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군홍(Lim Gunhong)

1912년 출생

서울에서 활동

학력

경화양화연구소

추가정보

임군홍은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치과에서 기공사로 근무. 경화양화연구소 등에서 미술을 배우고 《조선미술전람회》, 《서화협회전람회》에 입선했다. 1936년 녹과회를 결성하면서 화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1939년 일본인 은행장의 후원을 받아 만주에서 《임군홍. 김혜일 2인 양화전》을 성공리에 개최했다. 이후 한커우에 정착하여 광고사를 운영하는 한편, 한커우와 베이징을 오가며 풍경화를 그렸다. 같은 시기 한국 화단에서 보기 드문 맑고 강렬한 색채로 중국의 이국적인 풍경을 표현했다. 해방 후 귀국하여 서울에서 광고사를 운영하며 그림을 그렸으나 ‘운수부 월력사건’(※)으로 1950년 한국전쟁 직후 행방불명됐다가 월북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에서 조선미술가동맹 개성시 지부장을 맡았고 조선화가로 전향했다.

※ 운수부 월력사건: 임군홍은 동료화가 엄도만과 함께 1948년 철도국의 달력제작을 의뢰받고 최승희(46년 월북)를 모델로 한 달력을 제작함. 그러나 모델이 북로당 간부 최승희이며 최승희가 쓴 갓은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적색, 갓끈은 소련 16연방을 의미하는 16개의 구슬. 갓 측면에는 조선을 더하여 소련 17연방을 의미하는 17개의 구슬, 최승희의 부채에는 삼팔선을 상징하는 선, 하단에는 소련 국기의 망치와 낫과 유사한 모양 등이 있다는 이유로 검거되어 약 4개월 간 옥살이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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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

    1950, 캔버스에 유채, 94×126cm, 유족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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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려

    1940년대, 종이에 유채, 60×44.5cm, 유족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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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미술가의 재발견1: 절필시대

    국립현대미술관

    2019.05.30 ~ 2019.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