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혜(Park Jihye)

1983년10월13일 출생

서울에서 활동

작가 프로필 이미지

소개말

어릴 때부터 사진에 있는 사람들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사진에 등장하는 인물은 주변 인물들이었기 때문에 본인은 사진을 보면서도 그것에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고 실제 인물들의 특유의 표정과 특징 등을 연상하며 그리는 연습을 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들은 본인이 현재 사진을 참고하는 사실적인 그림을 그리는 데에 많은 훈련이 되었으며, '본다'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본인은 평소 '본다'는 것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한다. 본다는 것은 단지 생리학적인 측면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몸담고 있는 시대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진이 인간의 의식 속에 자리 잡게 된 현 시대를 살아가는 본인의 시각방식 역시 사진과 닮아있다. 하지만 '닮아있다'는 말이 '같지 않다'는 의미 역시 포함한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사진을 보면서도 사진과는 다른 실제의 공간과 깊이를 연상할 수 있다고 본다. 이것이 본인이 경험한 시선을 세밀하게 표현하기 위해 사진을 이용하더라도 그것과 똑같이 그리지 않고 단지 참고자료로 이용할 수 있는 이유이다.

본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시선은 어느 특정한 대상으로의 일방적인 시선이 아니라, 서로 주고받는 것으로서의 시선이다. 어떤 것을 본다는 것은 동시에 같은 공간 안에 존재하는 사물들과 그들 중 하나인 내가 얽혀있으면서 서로 보고 보이는 관계에 포함된다는 사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본인은 시선, 가면, 몸짓 연작을 연구하고 있으며, 이들은 모두 ‘봄(vision)’의 현상을 바탕에 두고 있다.

시선(Regard) 연작에 나타난 모티브(motive)들은 본인의 시각을 매혹시켰던 것들이다. 본인은 때때로 본인의 시선을 잡아끌며 그들을 쳐다보게 만들었던 것들을 그린다. 작품에 나타나는 것들은 주로 여성 인체의 어떠한 부분들인데, 이들은 본인에게 마치 자신을 보라고 격렬하게 움직이는 듯하며, 본인으로 하여금 그것을 그리고 싶게끔 하는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이것이 앞서 ‘모티브’라는 단어를 사용한 이유이다. 여기에서 그려진 모티브는 본인에게 보여지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본인의 시선을 잡아끄는 능동적인 주체로 작용한다.

가면(Mask) 연작은 본다는 것이 보여진다는 사실 또한 포함한다는 개념에서 시작한다. 가면은 그것을 쓴 주체를 바라보는 타자를 근본적으로 가정하고, 가면을 쓰는 주체는 타자의 가면 앞에서 또한 타자가 되기 때문이다. 가면은 보는 자와 보여지는 것, 주체와 타자가 서로 얽혀있는 공간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가면은 본인이 나타내고자 하는 시선의 문제를 표현하는 매개체로 존재한다.

몸짓(Gesture) 연작은 회화에서 표현할 수 있는 움직임에 대한 본인의 연구 과정 중 하나이다. 청소년기 때부터 접했던 드가의 작품들은 운동성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계기가 되었다. 드가는 사진을 이용하면서도 자신의 회화에서 운동감을 표현한 작가이기 때문이다. 몸짓 연작에서는 어떠한 방향으로도 진행될 수 있는 운동의 정점을 표현한다. 운동의 ‘순간’만을 기록하는 사진과는 달리 회화는 화가가 그림을 그릴 때 발생하는 지속적인 개입과 시간성을 통해 운동성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표현은, 사진을 참고로 하는 작업과정을 가지지만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본인과 그림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과 지속적인 몸짓을 통해 가능하다고 본다.

'봄'이라는 것이 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을 모두 내포한다고 할 때, 그려진 그림 또한 보여지는 것 뿐 아니라 보는 주체로서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본인은 전시를 통해 이러한 시선의 문제를 관람자와 나누고 싶다. 여기에는 어떠한 부분에서 관람하는 이의 개별적인 시선이 작용하는가에 대한 선택의 여지가 남겨져 있다. 본인이 시선의 표현을 통해 나타내고자 하는 것은 비어있는 어떤 시선의 부분에 관람자의 욕구가 작용하게 함으로써 관람자로 하여금 끊임없이 오가며 뒤섞이는 시선에 동참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이다.

-박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