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남 개인전: 나는 소나무가 아닙니다

2013.10.16 ▶ 2013.11.24

갤러리 학고재

서울 종로구 소격동 70 갤러리 학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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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남

    그린 룸 Mixed Media, Variable Size,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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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남

    화이트 룸 - 어머니의 뜰 Mixed Media, Variable Size,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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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남

    너와 25. 우연이 아닙니다 필연입니다 Mixed media, 101.5x53.5cm,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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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남

    너와 18. 눈 뜨고 꿈꾸다 Mixed media, 92.5x62.5cm,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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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남

    너와 39. 헐! Mixed media, 100.7x58.5cm, 2013

  • Press Release

    나는 소나무가 아닙니다: 윤석남의 자연에 대한 제의(祭儀)적 몸짓
    김이순(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교수)

    '소나무'라는 이름은 인간이 소나무에게 부여한 것일 뿐, 정작 소나무는 자신의 이름이 '소나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할 것이다. 인간이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자의로 '소나무'라고 명명한 사실에 대해, 소나무는 '나는 소나무가 아닙니다'라고 항변할지도 모른다. 인간은 무엇인가 미지의 것이 나타나면 즉각적으로 이름을 붙인다. 명명에 의해 사물은 실체화되고, 사물의 변화무쌍한 생(生)은 단일하게 고정된다. '소나무'도 인간의 언어로 마음대로 붙인 이름에 불과할 뿐, '소나무'라는 단어가 소나무의 본질을 말해주지 않는다. 우리는 소나무를 칭송하고 좋아하지만 진작 소나무와의 소통은 불가능하다. 소나무의 고유한 언어나 가치와는 상관없이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 인간중심적으로 소나무를 분류하고 명명하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인간은 소나무의 주인인양 소나무를 사유화하고 생명까지 앗아가곤 한다.

    앞서 「1,025: 사람과 사람 없이」(2008)의 유기견 작업에서도 잘 드러났듯이 윤석남은 인간중심적인 사고와 행동에 대한 비판적 작업을 해왔다. 이번 전시도 이와 동일한 맥락에서, 인간은 자연을 정복하면서 문명을 발달시켰다고 자부하지만 이는 지극히 인간중심적이고 이기적 사고일 뿐이며, 인간은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윤석남의 이번 개인전은 세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그린 룸」이라는 타이틀의 설치작품으로, 제목이 암시하듯 자연을 주제로 한다. 「그린 룸」은 이미 발표한 「핑크 룸」, 「블루 룸」, 「화이트 룸」의 연작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렇듯 작품의 제목에 색 이름을 넣는 것은 그만큼 색이 지닌 상징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린 룸」은 자연의 색인 녹색으로 방 전체가 꾸며져 있다. 녹색 계열의 한지로 나비 같은 곤충이나 꽃과 나무 등의 식물, 학이나 부엉이 같은 새, 물결 등 다양한 자연의 형상을 도형화하여 오려낸 후 벽에 붙인 작업이다. 윤석남이 한지 오리기 작업을 시작한 것은 바리데기 신화를 다룬 「블루 룸」(2010)에서부터였다. 무당들이 굿을 준비할 때 만들고 굿이 끝나면 불태우는 종이 꽃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한지 오리기 작업은 이후 경기도미술관에서 열린 「화이트 룸」(2011)으로 이어졌고, 이번 전시에서도 중요한 조형언어로 사용되고 있다.

    「그린 룸」에서는 다양한 녹색조의 도형들로 벽을 채우는 데서 그치지 않고 바닥에도 녹색 빛깔의 유리구슬을 깔아 놓아 숲이라는 장소성을 암시한다. 간간히 핑크 빛의 유기체적 형상들이 놓여 있는데, 이는 인간의 내면에 도사린 욕망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끝이 뾰족하게 표현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 핑크 빛 형상들은 매혹적이고 아름답지만, 꼭 그만큼 위험하고 불온하다.

    방 한 가운데에는 긴 녹색 테이블이 의자와 함께 놓여 있다. 이 거대한 테이블은 지난 여름 무더위 속에서 작가가 손수 색칠, 바니쉬 작업, 그리고 사포 질을 20여 차례 반복해서 제작한 것으로, 표면이 유리처럼 맑고 아름답다. 테이블과 의자 모두 녹색으로 뒤덮여 있고 연꽃이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연꽃은 윤석남이 즐겨 사용하는 모티프로, 불교적인 소재이기도 하지만 민화에서도 길상적 소재로 자주 등장한다. 윤석남이 연꽃을 자주 표현하는 이유는 우선 연꽃의 조형미 때문인데, 테이블에 그려진 연꽃은 윤석남의 조형감각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이와 동시에 윤석남은 나희덕 시인의 「사라진 손바닥」이라는 시를 음미한다. 차를 마시는 장소인 테이블 위에 그려진 연꽃은 화해와 생명 부활의 염원을 담고 있다.

    녹색 빛으로 꾸며진 「그린 룸」이 자연과 생태에 대한 주제를 담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이를 소위 생태여성주의(Eco-Feminism) 같은 시류에 편승한 것으로도 볼 수도 있겠지만, 윤석남이라는 작가가 원래 시류에 연연하는 작가가 아닐뿐더러 이번 개인전의 주제 역시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작가는 최근에 작업실을 새로 마련하면서 자연친화적인 장소에 건물을 지었다. 산다는 것이 죄라고 했던가. 인간은 살아가면서 불가피하게 동물과 식물은 물론 여타 미물들의 생명을 앗아간다. 윤석남도 작업실을 지으면서 원래의 자연을 훼손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자연에 대해 보다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작업실을 지으면서 훼손시켜야 했던 자연에 대해 깊이 성찰한 결과가 바로 「그린 룸」인 것이다. 따라서 「그린 룸」은 작가의 자기 치유적 작업이자 자연에 대한 제의적 행위로서 우리에게 자연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킨다.

    이전의 유기견 작업과도 이와 동일한 맥락에 있다. 「1,025: 사람과 사람 없이」에서 유기견을 통해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과 무책임한 행위를 들추어냈는데, 여기서 그는 단순한 세태 고발을 넘어 유기견들에게 날개를 달아주고 연꽃 등으로 장식함으로써 그들의 영혼을 달래고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하기를 기원했다. 마찬가지로 「그린 룸」에서도 인간중심적인 이기심으로 자연이 훼손되고 있음을 환기시킴은 물론, 여기서 더 나아가 훼손된 자연의 회복을 기원하는 제의적 의미를 담았다. 유기견 작업에서의 시선을 전체 자연으로 확장시켰다고 하겠다.

    이번 전시에는 「그린 룸」 이외에도 「화이트 룸 - 어머니의 뜰」이 포함되어 있다. 제목 그대로, 이 작품은 작가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다. 첫 개인전을 어머니 이야기로 시작한 이래로 윤석남은 오랫동안 어머니와 관계된 작업을 했는데, 잠시 접어두었던 어머니의 이야기가 이번 작업에서 또다시 작품으로 형상화되었다. 「화이트 룸 - 어머니의 뜰」은 흰색 한지로 어머니의 모습을 도형화한 오리기 작업으로, 2011년 경기도미술관에서 있었던 「화이트 룸 - 어머니의 뜰」의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흰색은 죽음에 대한 작가의 해석을 보여준다. 흔히 죽음을 검은색으로 표현하는데, 윤석남은 인간이 죽은 이후에는 아무 것도 없이 빛으로만 남게 된다는 믿음 하에 빛을 흰색으로 표현한 것이다. 어머니의 모습을 다양하게 형상화한 인체 이미지들 사이사이로 꽃의 이미지가 끼어 있는데, 그 결과 「화이트 룸 - 어머니의 뜰」은 어머니의 고통과 슬픔을 위로하는 공간이 되었다.

    윤석남의 작품에는 꽃이 자주 등장한다. 연꽃처럼 상징성을 띤 경우도 있지만, 그가 표현하는 여인들의 옷 자체에도 이름 모를 잔잔한 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때로는 물감으로 때로는 섬세하게 반짝거리는 자개로 표현되는 꽃무늬는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망의 표현이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이러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망조차도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억제하며 살아야 했던 게 현실이다. 따라서 「화이트 룸 - 어머니의 뜰」에 등장하는 흰색 꽃들은 죽은 자의 영혼에 바쳐진 애도의 꽃이자, 자식들을 키우느라 자신을 아름답게 꾸미지 못했던 어머니에 대한 만가(輓歌)이다.

    이번 전시 작품에서 또 하나의 흥미로운 작업은 너와집에 사용되었던 널판에 그려진 50점의 인물상들이다. 윤석남은 나무작업을 지속적으로 해왔고, 폐목을 사용한 작업을 발표한 적이 있는 터라 너와 인물상들이 그렇게 새로운 작업방식은 아니다. 그러나 너와 인물상 한 점 한 점을 조용히 들여다보면, 너와의 고유한 생김새와 어우러진 인물들의 모습에 새삼 감탄하지 않은 수 없다.

    요즘 너와집에 사용되는 나무 판을 구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50년쯤 되는 소나무를 켜서 만든 널판들을 지붕 삼아 집을 짓는 사람도 없을 뿐만 아니라, 너와집 지붕에 얹어져 5년쯤 비바람을 견뎌낸 널판들은 지붕에서 내려지는 즉시 폐기처분 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생명을 다해 지붕에서 내려진 너와들이 윤석남의 손에 들어간 건 운명적이랄 밖에 없다. 처음에 붉은 소나무였을 너와들은 비바람 속에서 잿빛으로 변했고, 부드러운 속살은 패인 채 거친 옹이와 나이테의 윤곽만이 남은 너와 조각에서는 처연한 모습마저 느껴진다. 화목으로 쓰였을 낡은 너와들이 윤석남을 만나 새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너와에 인물을 그려 넣기 전에 작가는 너와에 붙어 있던 흙먼지를 털고 닦아내는 지난한 작업을 하면서 너와들과의 대화를 시도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작가는 너와들이 이미 각각 자신들의 고유한 형상을 지니고 있었다고 말한다. 작가는 단지 너와 조각에 잠재된 형상들을 끄집어냈을 뿐이다. 오래 전, 알타미라 동굴 벽에 그림을 그리던 사람들의 심정이 그랬을까. 너와의 불규칙한 표면의 요철은 어느새 작가가 상상하고 바라는 이미지로 화하기 시작한다. 이 지점에서 작가의 작업은 사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제의적 양상을 띠기 시작한다. 윤석남이 폐목에 그린 인물상을 본 누군가가 우글쭈글하던 피부가 다시 생명을 얻은 듯하다고 표현했듯이. 빛 바래고 쇠잔한 너와들은 작가의 손 작업을 거치면서 생기 넘치는 숨결을 부여 받게 되었다. 인물들은 검은색 아크릴 물감으로 그려졌지만 아크릴 물감의 인조적인 느낌 대신 먹으로 그린 듯한 정감을 자아낸다. 이는 물론 작가의 유려한 붓 놀림(그는 항상 모필만을 사용한다)의 결과이지만, 오래된 너와가 주는 독특한 질감 덕분이기도 하다.

    너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주로 여성이고 남성은 단 한 명뿐이다. 이 여성의 공간에 초대받은 남성 주인공은 바로 '책 읽어주는 남자'다. 운명적으로 사랑한 한 문맹인 여성을 위해서 책을 읽어주었던 남자. 사회적인 제도나 법보다도 사랑하는 여인의 자존심을 살려주었던 남자. 그 남자는 많은 여성들 사이에서 여전히 책을 읽어주고 있다.

    윤석남의 작품을 감상하기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 문학과 영화를 넘나들면서 우리의 일상사를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작업함으로써 관객과의 소통을 꾀하기 때문이다. 그는 데뷔 시절부터 일관되게 스토리텔링 형식을 유지하고 있다. 그가 작가로 데뷔한 1980년대 초반 우리나라 화단은 단색조의 추상미술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가 당시 주류 미술 경향이었던 추상적 조형언어를 선택하지 않았던 것은 작가 자신이 선택한 조형언어에 대한 신뢰였다. 그는 자신의 작업에 대한 질문과 고민을 놓지 않았으며, 그의 시선은 타인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향했다. 자신이 진정으로 고심한 끝에 선택한 주제를 자신만의 조형언어로 펼쳐놨으며, 이를 통해 관람자와 직접적으로 소통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작가의 나이가 70대 후반에 접어들면 작가 스스로 자신의 화업을 정리하고자 하며, 미술사가들은 이러한 작업에 동참하여 작가를 미술사적 흐름 안에 위치시키려는 작업을 한다. 그러나 윤석남은 이러한 작업을 준비하고 있지도 않을뿐더러, 사실 그를 특정한 미술사조 안에 위치시키기도 어렵다. 그는 개인전을 열 때마다 주제와 표현 재료는 물론 조형언어를 자유롭게 바꾸면서 여전히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윤석남은 과거의 대가가 아니라 여전히 뜨거운 현장 속의 아티스트다. 윤석남의 다음 이야기는 예측하기 어렵다. 그래서 그가 개인전을 열 때마다 우리는 또 어떠한 장에서 얼마나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인지 기대와 호기심을 갖게 되다. 이번 전시 역시 그의 한판 굿을 보는 장이 될 것이다. 물론 단순히 바라만 보는 장이 아니라 참여와 소통의 장이 될 것이다.

    전시제목윤석남 개인전: 나는 소나무가 아닙니다

    전시기간2013.10.16(수) - 2013.11.24(일)

    참여작가 윤석남

    관람시간10:00am~18:00pm

    휴관일월요일

    장르미디어와 공연예술

    장소갤러리 학고재 Gallery Hakgojae (서울 종로구 소격동 70 갤러리 학고재)

    연락처02-720-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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