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덕

2017.12.29 ▶ 2018.01.31

트렁크갤러리

서울 종로구 북촌로5길 66 (소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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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ㅣ 2017년 12월 29일 금요일 05:00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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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인철

    거미여인 oil on canvas, 150x130, 2017

  • Press Release

    폐허, 죽음, 먼지, 재, 그을음, 연기

    나는 박인철을 보면서, 그의 그림을 보면서 모든 세속적인 잡사와 의무, 권리로 부터 완벽하게 단절된 채 자신이 진정으로 열망하는 자유로운 삶의 방식을 선택하며 그림을 그려나가는 예술가의 한 전형을 설핏 엿본다. 그것이 과연 자유로움인지 혹은 불가피한 것인지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는 현재 전적으로 자유로운 존재로서 생활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특별한 의미를 지닌 목적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의 무늬에 따라 진행되는 자연스러운 제작 행위에서 맡아지는 것은 떠돎과 방황, 그러나 아름답고 부드러운 자유인의 땀 냄새다. 그것은 모종의 노마디즘적인 작가상을 떠올려준다. 그는 오랜 이국생활을 접고 경기도 양평의 산골로 스며들 듯이 들어왔다. 그곳 작업실 내부 풍경은 내가 그동안 지켜본 그 어떤 작업실, 작가의 생활공간의 모든 이미지를 강력하게 압도한다. 나는 그곳이야말로 그대로 전시실에 다름 아니라고 본다. 그는 구태여 전시장에서 작품을 전시할 이유가 없이 그곳 그대로를 작품으로, 전시로 제시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온갖 오브제, 재료들과 쓰레기들이 뒤죽박죽 뒤섞여 있는 참혹하고 끔찍한 공간은 그야말로 기묘한 기운으로 가득 차 있다. 그동안 그가 그리고 만들어놓았던 모든 것들이 마구 방치되어 있고 제작행위가 고스란히 응고되어버린 형국이자 작업의 현실 그 자체를 고스란히 냉동해 놓은 기이한 창고이자 박물관, 혹은 거대한 쓰레기장이기도 하다.

    그는 오랫동안 첨단의 물질만능과 고도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변방과 모서리에 악착같이 자기를 밀어 에지(Edge)에 세우면서 살아가는, 그의 말에 의하면“죽을려고 빽을 쓰는 자”로서 살아오고자 했다. 그것이 치기인지 근성인지 오기인지 알 수는 없다. 하여간 그는 그렇게 자신이 생겨먹은 대로, 마음먹은 대로 여기까지 밀고 온 힘이 분명 있다. 나는 그 힘을 중시하는 편이다.

    그는 영혼이 움직이는 대로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를 지니면서 세속적인 정치와 욕망이 들끓는 삶과 화단에서, 그 제도가 무의식적으로 억압하고 강요하는 이데올로기를 밀어내면서, 균열을 내면서 그 틈에서 전복적 상상력을 가장 적극적으로 보여주는 예술가로서 살고자 했다. 그러니까 길들여지지 않으려는 도저한 아웃사이더 정신과 용기를 지니고 그림을 그려나간다는 사실이 거의 기적 같은 이 시대에 나는 박인철의 폐허와 죽음, 소멸과 유한한 생명력이 말라죽어 있는 화면에서 그 정신을 만났다.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아직도 그는 그런 정신과 생생한 용기로 양평의 산골에서 버티고 있어 보인다. 작업보다도 그렇게 살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그런 기념비를 세우고 자존하고 있다.

    우리 화단, 우리 사회는 제도와 안정의 그물에서 벗어난 창조적인 유목민에게, 그리고 기성의 논리에 대한 전복적 상상력을 실천해 보이는 비판적 지식인에게, 주류 미학을 거슬러 신선한 미학적 영토를 외롭게 개간하는 소신 있는 예술가, 화가에게 커다란 상처와 지울 수 없는 좌절감, 결락감 만을 집요하게 심어주는 편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 시대에 진정으로 필요한 자는 바로 그 탈주와 유목적인 정신, 모서리에서 긴장을 견디며 살아가는 그런 정신의 소유자가 아닌가 생각 한다. 그런 면에서 박인철의 존재감은 우리 화단에서 무척 이례적인 편이다. 그는 분명 여타의 많은 작가들과는 다른 그 아웃사이더 정신, 체질, 호흡을 보여주는 작가다.

    오래 전부터 보았던 박인철의 작업은 묘하게 마음과 영혼을 흔들어주는 듯한 그림이었다. 평면과 입체 작업 모두가 그런 편이다. 타고 그을리고 부서지고 깨진 것들이 한 순간 얼어붙듯 응고된 화면에는 정열과 엄청난 혼돈, 폐허와 죽음, 먼지와 재, 그을음과 연기, 시들고 말라죽어가는 꽃들과 나뭇가지, 날카롭게 깨진 병 조각들이 호소를 하고 있다. 온갖 오브제와 물감의 질료들, 사물들이 뒤범벅되어 혼재된 상황은 개별성의 존재를 무화시키고 형태를 파괴하고 통일성과 조화를 의도적으로 폐기하는 폭력적인, 카오스적인 장이다. 그것들이 내지르는 소리들은 무엇보다도 자유로움에 대한 갈망의 음성과 유사했다. 모종의 코드화에 길들여지지 않으려는 자, 자신의 영혼이 이끄는 대로 살겠다는 자의 절규나 몸부림 같은 것은 재료들, 물질들의 음성이자 작가의 것이기도 하다. 그의 작업은 그런 면에서 현대인의 상실된 삶을 폐쇄된 공간속에서 극적으로 연출해 보여주면서 관자의 영혼과 정신을 강력하게 흔들어보고 싶다는 몸짓과도 같다. 너무 드라마틱하게 연출되고 있다는 혐의가 있지만 말이다.

    “자유를 위해 방황을 자처한 항해자”(작가 노트)이고자 한 그는 길을 떠나고 그 길에서 만나고 체득한 경험을 길 위에서 말한다. 그의 작업은 그래서 부단한 탈주나 방랑, 떠돎의 소산이다. 인생은 다리와 같아서 지혜로운 자는 지나가고 어리석은 자는 그 길 위에 집을 짓는다는 성경의 에피그램(epigram)이 연상된다. 우리시대 한 젊은 시인은 또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길 위에서 태어나 길 위에서 자라고 길 위에서 죽는다. 하므로 희망이나 사랑을 안주시킬 집을 짓지 않는다. 다만 주어진 길을 최선을 다해 걸어갈 뿐이다.”

    그의 작품은 부유하는 여행자가 겪은 그간의 고독한 시간들, 경험들의 집적이고 응고 같다. 그 시간성은 도약과 몰락, 영화와 퇴폐, 절정과 끝이라는 인류 역사/문명과 연루된 감정과 맞닿아 있다. 사실 그는 오랫동안 인류의 과거 유적과 폐허를 즐겨 여행하곤 했다. 또한 주어진 유한한 삶을 최선을 다해 진정 자유롭게 살다가 말라죽어간 자들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하는 듯한 제스처가 묻어있다. 검붉게 말라죽은 장미나 까맣게 타버린 빈병, 뼈와 썩어가는 사과 등이 그래서 등장하는 것 같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자연/생명의 생성과 소멸 또한 연상시킨다. 그 죽음의 과정을 아름답고 극적으로, 더없이 음울하고 충격적으로 보여준다. 그런데 그것들은 작가 자신의 실존적 상황 아래 체득된 마음과 감정에서 나온 것 같다. 자기의 삶의 체험에서 나온 이 자연스러운 형상화, 연출이 담긴, 자기만의 독특한 에너지가 충만하게 담겨진 화면/물질 앞에서 필자는 오래 머문다. 영감과 열정에 사로잡힌 자의 이 연금술적인 연출에 따라 다양한 재료들이 새로운 이미지로 나앉아 있다. 주위에 흔하게 떠도는 너절한 재료들을 불러 모아 자연스럽게 매만져놓거나 작가가 직접 반죽해서 사용한 물감의 독특한 색채들이 어우러져 있는 화면에는 순박하고 자연스럽고 생생한 재료의 맛이 느껴진다. 야생적이고 자연적인 것에 대한 작가의 취향이나 감성도 엿보인다. 미색, 검은색, 붉은색으로 한정되어 있는 색채에서 풍겨 나오는 감정 역시 병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색채 들이다.이 작가만의 분위기를 아주 메마르게 구사해내는 색채와 물질들은 안에서 우러나오는 깊이와 연결되어 있다. 재료 자체에 충분한 자발성을 주어 작가의 손에 의해 풀려나오는 모든 것들이 짓고 있는 표정에는 갈라지고 뻑뻑하고 흘러넘치다 말라버린, 깨지고 얼떨결에 붙어버린 흔적들이 가득하다. 또한 그가 즐겨 사용하는 병과 사과, 장미와 나뭇가지, 오래된 사물들은 일종의 이 작가에게 있어 삶의 상징들인 셈이다. 그 상징들은 그와 함께 오랜 시간을 함께 해왔고 그와 같이 호흡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는 결코 완성되지 않을, 완성될 수 없는,채워지지 않는 작업을 하고 있다. 어떤 제의적 아우라를 극적으로 연출하거나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것이 소멸하는 모습을 박제화해서 보여주는 작업은 거의 흔적처럼 보인다.‘흔적을 남길 줄 아는 유일한 동물이 바로 인간’이다. 그의 작업실 자체가 온통 흔적으로 가득차 있다. 작업도 마찬가지다. 한편으로는 낭만적이고 아웃사이더적인 제스처가 관념의 형식화로 유형화될 아쉬움도 있어 보인다. 그러나 그의 그림은 분명 모종의 정신적인 에너지가 꽉 차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상식적이라고 강요되는 삶의 틀이 깨진 지점에 그가 서있기에 가능한 것들이지 않나 하는 생각도 가져본다. 나는 다시 그의 작업을, 작업실 풍경을 떠올려 본다. 너무 인상적이고 충격적이어서 말문이 막히던 순간을... 그러면서 그 작업실/작품 안에 자리하고 있는 한 예술가의 삶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왜 우리는 오늘날 한 작가의 작품 앞에 설까? 한 예술가의 삶을 볼까? 오늘날도 하나의 작품이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가치 있는 예술은, 유행의 물결이 지난 후에도 혹은 더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예술은 본질상 앞서 언급한 그런 ‘탈주적’인 것이지 않을까? 내 머리 속으로 그런 작가들의 이름이 호명된다. 기존의 지배적인 것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양식과 세계를 창조, 생성함으로서만 자신이 존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예술의 존재근거는 탈주이고 비판적인 상상력이고 용기이고 아웃사이더이다. 그것은 실용과 자본, 생산과 합리화와는 다른 무모하고 지극히 개인적이고 독자적인 것이다. 우리의 갇힌 사고의 경계 한 구석을 끊임없이 확장시키는 예술가를 통해, 그 창조적인 삶과 작품을 통해서 우리는 불가능한 탈주와 수행을 감행하는 모험을, 그 향유의 기쁨을 선사받는다. 박인철은 그런 충격과 기쁨을 안겨준 작가의 한 사람이다.

    박영택 (경기대교수, 미술평론가)

    전시제목변덕

    전시기간2017.12.29(금) - 2018.01.31(수)

    참여작가 박인철

    초대일시2017년 12월 29일 금요일 05:00pm

    관람시간11:00am - 06:00pm

    휴관일없음

    장르회화

    관람료무료

    장소트렁크갤러리 trunkgallery (서울 종로구 북촌로5길 66 (소격동) )

    연락처02-3210-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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