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류밍 개인전 《행위의 축적》

2018.08.17 ▶ 2018.09.16

갤러리 학고재

서울 종로구 삼청로 48-4 (소격동, 학고재)

Homepage Map

페이스북 트위터 링크 아이콘
  • 작품 썸네일

    마류밍

    No. 1 2016, Oil on canvas, 140x100cm

  • 작품 썸네일

    마류밍

    No. 2 2015~2016, Oil on canvas, 200x150cm

  • 작품 썸네일

    마류밍

    No. 1 2015~2016, Oil on canvas, 200x250cm

  • 작품 썸네일

    마류밍

    No. 12 2014~2015, Oil on canvas, 200x150cm

  • 작품 썸네일

    마류밍

    No. 11 2015, Oil on canvas, 250x200cm

  • 작품 썸네일

    마류밍

    No. 1 2015~2017, Oil on canvas, 200x150cm

  • 작품 썸네일

    마류밍

    No. 13 2015, Oil on cavnas, 200x150cm

  • 작품 썸네일

    마류밍

    No. 11 2015~2017, Oil on cavnas, 200x150cm

  • 작품 썸네일

    마류밍

    No. 9 2015~2017, Oil on canvas, 200x150cm

  • 작품 썸네일

    마류밍

    No. 3 2016, Oil on cavnas, 100x80cm

  • 작품 썸네일

    마류밍

    No. 15 2016, Oil on cavnas, 100x80cm

  • 작품 썸네일

    마류밍

    No. 1 2014~2015, Mixed media, 150x100cm

  • 작품 썸네일

    마류밍

    No. 2 2014~2015, Mixed media, 150x100cm

  • 작품 썸네일

    마류밍

    No. 3 2014~2015, Mixed media, 150x100cm

  • 작품 썸네일

    마류밍

    No. 4 2014~2015, Mixed media, 150x100cm

  • 작품 썸네일

    마류밍

    No. 5 2014~2015, Mixed media, 150x100cm

  • 작품 썸네일

    마류밍

    No. 6 2014~2015, Mixed media, 150x100cm

  • 작품 썸네일

    마류밍

    No. 8 2014~2015, Mixed media, 150x100cm

  • 작품 썸네일

    마류밍

    No. 12 2014~2015, Mixed media, 150x100cm

  • Press Release

    전시주제

    시대를 이겨낸 저항의 몸짓 – 마류밍의 작가 정신을 되새기는 전시

    마류밍이 첫 번째 퍼포먼스를 선보인 것은 1989년, 중국 우한의 후베이미술학원에서 열린 《상황의 연작들》이라는 제목의 단체전에서였다. 당시 유화과 학부 재학생이었던 마류밍은 일생 최초의 퍼포먼스 〈States No. 1〉(1989)을 발표한다. 행위를 통해 억압적인 사회에 대한 저항 의식을 나타내기 위해서였다. 중국의 1989년도는 아픈 역사를 간직한 해다. 톈안먼(天安門〮천안문) 사태로 인해 민주화의 꿈이 좌절되었고, 냉전의 종식을 앞둔 사회는 혼란스러웠다. 시대의 정치적, 문화적 상황은 작가들의 작품세계에 자연스레 영향을 끼쳤다. 지난해에는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이 《1989년 이후의 예술과 중국》(2017)을 주제로 한 기획전을 선보이기도 했다. 1989년도라는 시대적 상황을 기점으로 중국 현대미술의 변화 양상을 살펴본 전시다. 마류밍을 비롯해 국제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아이웨이웨이, 쩡판즈, 장환, 딩이 등 중국 동시대 미술가들이 대거 참여하여 큰 화제가 되었다.

    역사적으로 암울하고 부조리한 시대에는 언제나 자성을 촉구하는 저항의 목소리가 있다. 특히 예술가에게 있어 관성에 대한 저항 의식과 진취적 사고는 시대를 이끄는 사명이다. 마류밍이 베이징 이스트 빌리지(北京东村〮북경동촌)에서 여장을 한 나체의 모습으로 ‘펀〮마류밍’ 퍼포먼스를 펼치던 당시, 중국 사회는 보수적이고 엄격했을 뿐만 아니라 행위예술이라는 장르 자체에 문외한이었다. 신체의 해방과 표현의 자유를 외친 마류밍의 작품 활동이 체포와 구금이라는 극단적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숱한 고난과 역경에도 불구하고, 마류밍은 시대를 이겨냈다. 그리고 세계 무대로 나아갔다. 1993년부터 10여년 간 미국, 유럽, 아시아 전역을 순회하며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펀·마류밍 만리장성을 걷다〉(1998), 〈리옹에서 펀·마류밍〉(2001), 〈몬트리올에서 펀·마류밍〉(2001) 등의 연작으로 동시대 미술사에 자신의 이름을 확고히 새겼다. 학고재는 한 시대에 큰 흔적을 남긴 작가 마류밍의 작품세계를 되새기고 최근의 행보를 살펴보고자 이 전시를 기획했다. 지나간 격정의 세월에 대한 추억과 애상이 녹아든 캔버스 화면 아래, 변함없이 강인한 마류밍의 작가 정신을 재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삶, 역사, 행위의 퇴적물이 쌓여 이룬 화면 – 다시, 회화로
    최근 마류밍은 지난 퍼포먼스의 이미지들을 화폭에 불러오는 일을 통해 과거의 신념을 굳건히 하고 있다. 2004년 이후 젊고 아름다운 마류밍의 분신 ‘펀·마류밍’은 영원한 안녕을 고했지만, 그가 우리 시대에 남긴 정신과 흔적들이 다시 캔버스 위에 퇴적물처럼 쌓이고 있다. 마류밍의 시각적 표현들은 스스로의 삶의 경험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줄곧 삶 속에서 체득한 방식을 통해 자신만의 철학과 예술을 표현해 왔기 때문이다. 마류밍은 과거의 파편을 화면에 축적하고 최근의 기억을 재현하기 위하여 그가 창안한 독특한 기법의 회화 예술을 선보이고 있다. 본래 회화를 전공한 작가답게 유려한 표현력을 바탕으로 단편화된 서사와 기억의 파편들을 누화법, 균열 화법으로 화폭에 옮긴다.
    마류밍의 회화는 작가 자신의 인생과 철학, 진실한 표현이 축적된 화면이다. 개인의 시각적 경험과 미술사적 지식, 과거의 퍼포먼스로부터 불러낸 표상을 한 데 뒤섞어 화폭 위에 풀어놓는 행위다. 마류밍이 그리는 것은 특정한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수많은 경험과 생각들의 중첩이다. 그는 구상과 추상, 표현의 재현을 넘나들며 지나간 시간과 신체의 자취를 재차 탐구한다. 마치 회화를 통해 자신이 살아온 삶을 반추하는 듯하다.


    전시서문
    삶, 그 자체로서의 의미
    - 마류밍의 회화에 대하여


    지 샤오펑 (후베이미술관 관장)

    마류밍에 대한 논의는 필연적으로 그의 작품 <펀〮마류밍>과 연결된다. <펀〮마류밍>은 동시대 미술사에서 중요한 상징적 작품 중 하나다. 이 시대에 뚜렷한 정신적 자취를 새기며 30여 년 동안 일련의 시각적 서사를 이어오고 있다. 마류밍의 시각적 표현의 근간이 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1993년에 시작된 <펀〮마류밍>은 국제적인 전시에 꾸준히 소개되어 왔으며 동시대 미술계의 전설이 되었다. 마류밍은 관객이 작품을 통해 시각적 흥미를 느끼도록 끊임없이 유도하는 한 편 그들을 작가 자신의 내면세계 깊숙한 곳으로 안내한다. <펀〮마류밍>은 오늘날의 사회와 예술가의 삶에 대한 마류밍의 열정적인 사고와 진실한 표현이 축적된 작품이다.

    마류밍의 시각적 표현들은 의미상의 혼용과 다의성, 언어학적 풍성함과 다양성으로 가득하다. 퍼포먼스, 사진, 설치, 조각, 평면 작업 등 다양한 매체를 선택하여 표현하는 점에서 부지런히 사고하고, 표현에 뛰어나며, 다양한 방식의 표현을 시도하는 작가의 면모가 드러난다. 마류밍이 자신의 예술에서 추구하는 엄격한 요건과 정밀한 계획들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마류밍은 끊임없이 새롭고 다양한 표현 방식을 구사하기 위해서 힘쓰고 있다. 그럼에도, 이 시대에 무한한 추억과 깊은 사유, 그리고 논란을 남긴 작품 <펀〮마류밍>만은 영원히 변함없는 모습으로 남을 것이다. <펀〮마류밍>의 변치 않는 매력이 마류밍으로 하여금 동시대 미술사에 고찰의 깊은 흔적을 남길 수 있게 했다. 마류밍은 삶의 의미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마류밍의 시각적 표현들은 스스로의 삶의 경험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마류밍은 자신의 삶 속에서 체득한 방식을 통해 자신만의 인생 철학과 예술적 견해를 표현한다.

    마류밍의 시각적 서사 논리와 표현들을 살펴보면, 관객이 작품에 내포된 참뜻을 통찰할 수 있도록 돕는 네 가지 주제를 어렵지 않게 꼽아볼 수 있다. 첫째, ‘후베이를 떠나다,’ 둘째, ‘정치적 기호와 전략으로서의 몸,’ 셋째, ‘다양한 시각적 표현 방향,’ 넷째, ‘다시, 정통 회화로’다.

    1. 후베이를 떠나다
    후베이를 떠난 것은 마류밍의 예술가로서의 경력과 전업 작가를 향해 가는 행보에 매우 중대하고 결단력 있는 발돋움이었다.
    마류밍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1981년에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 것이다. 1991년에 후베이미술학원을 졸업한 마류밍은 1993년부터 본격적으로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그는 처음부터 전업 작가의 길을 택했다. 이는 매우 훌륭한 시작점이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전업 작가에게는 정체성의 자유와 정신적 독립이 동시에 요구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요건이 작가들을 더욱 순수하게 하고, 의무감을 바탕으로 한 용기와 강인함으로 투철한 정신을 가지게끔 한다. 마류밍이 강한 ‘보헤미안 스타일’의 정신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대학 졸업 후, 작가에게 놓여진 역사적 배경은 그가 후베이를 떠나 예술 표현에 있어 정신적인 자유와 망명을 추구할 수 있게끔 용기를 불어넣었다. 마류밍의 독립적인 생존 방식과 생활 환경 또한 그가 자신에게 어울리는 표현 방식을 찾을 수 있도록 이끌었다. 당시의 우한은 시대적으로 암울하고 무력했다. 80년대 중반 뉴웨이브 시대의 활기차고 충동적인 분위기와는 매우 거리가 멀었다. 미술계의 엘리트들은 하나둘씩 우한을 떠나기 시작했다. 그 당시 탕샤오헤(唐小禾)가 마류밍을 격려하며, “베이징은 소용돌이다. 소용돌이의 중심으로 가라”고 말했다. 1990년 초반부터 급작스레 널리 쓰이기 시작한 ‘베이징 표류자’라는 말은 마류밍처럼 베이징이라는 낯선 도시에 정착해 살던 이방인들을 가장 잘 표현한 단어다. 마류밍이 ‘베이징 표류자’들의 주요 일원이 된 것은 뜻밖의 일이었다. 마류밍은 외지인으로서의 문화적 정체성을 지니고 중심지인 베이징에서 자신만의 예술을 실현하려 했다. 불안정한 생계와 도시 외곽에서의 생활, 체제 순응을 거부하고 자유를 추구하는 태도로부터 비롯된 표류하는 듯한 삶과 그 속에서의 경험, 사회로부터의 정신적 망명과 이탈은 작가의 표현 방식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외지인의 심경과 삶을 진실되게 표현하는 일이었다. “1992년부터 1994년까지 베이징에 있는 이른바 ‘이스트 빌리지’는 외지에서 온 작가들의 터전이 되었다. 그들은 함께 모여 살고 작업도 같이 하면서 중국 실험미술이 나아갈 새로운 방향을 탐색했다. 이스트 빌리지 출신의 작가들을 위안밍위안(圆明园)이나 송좡(宋庄) 출신 작가들과 구별 짓는 주요한 차이점은 이들이 동료 작가들 및 주변 환경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했다는 데에 있다. 당시 이스트 빌리지는 지저분한 쓰레기와 산업 폐기물이 가득한 곳이었다. 작가들은 이스트 빌리지로 이주하는 것을 자기배제의 행위로 여겼다. 빈곤한 처지에 있던 그들은 ‘지옥 같은’ 이스트 빌리지와 ‘낙원 같은’ 베이징 시내의 대비에 매력을 느꼈다. 그들은 이러한 대비에 감명받았다. 이 시기의 작가들의 작업은 대부분 강하게 억제된 열망을 표출하고 있다.” (우홍, 작품과 전시, 중국 동시대 미술에 대한 우홍의 견해, 링난 미술 출판사, 초판, 2005년 12월, pp. 84-85) ‘베이징 이스트 빌리지’의 주요 일원으로서 마류밍이 품은 삶의 딜레마와 작업적 상황은 우홍의 글에서도 명백히 나타난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마류밍이 얻은 명성으로부터 알 수 있듯, ‘베이징 이스트 빌리지’와 작가 ‘마류밍’은 동시대 미술사에 중대한 한 획을 남겼다. 마류밍은 임시 수용소에 머무르고 고향인 황스(黃石)로 추방당하는 등의 고난을 겪었음에도 불과 한 달 만에 망설임 없이 베이징으로 돌아왔다. “나는 진정으로 미술이 내 몸을 흐르는 피와 같은 것이라고 느끼며 자랐다. 다른 것은 할 수 없었다. 늘 그렇게 생각했다.” (마류밍, 후난 미술 출판사, 제 1쇄, 초판, 2012년 3월, p. 3)

    2. 정치적 기호와 전략으로서의 몸
    관객은 <펀〮마류밍>을 통해 마류밍이 시각적, 행위적 표현 뒤에 숨겨놓은 정체성, 성별, 그리고 인간의 절대적 미에 대한 막연하고 예측할 수 없는 모순과 갈등을 확실히 엿볼 수 있다. 이는 작가가 사회에서 소외된 외지인으로서 마음에 새긴 진실된 경험이다. 마류밍과 같은 사람들이 가진 것이라고는 젊음과 육체뿐이었으며, 후자는 자연스레 빈곤과 연결되는 면이 있다. 마류밍이 자신의 신체를 표현의 소재로 택하여 사용한 것은 하나의 전략이었으며 정치적 의도였다. 표류하는 삶에서 얻은 경험은 중국 동시대 미술의 특수한 집단을 대변하는 특징이며, 주류 문화와 체제에 대한 거부와 저항 정신을 반영한다. <펀〮마류밍>을 하나의 기호로서 바라보면 그 중요성은 단지 예술에만 그치지 않는다. <펀〮마류밍>에는 자유로운 정신과 인간 본성 및 생각의 해방에 대한 메시지가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물론 체제와 권력에 대한 도피의 의미 또한 내포한다. 마류밍은 반복적으로 “<펀〮마류밍>은 내 삶이 아니라 온전히 예술을 위해 만들었다. 이것은 실존하지 않는 환상을 보여주는 소설과 같이 창작된 작품이다.” (마류밍, 후난 미술 출판사, 제 1쇄, 초판, 2012년 3월, p. 7)라고 강조해왔지만 그가 만들어낸 이 환상적 이미지는 동시대 미술의 국제적인 표상이 되었다. 마류밍은 자신이 받아온 교육과 기존에 가지고 있던 관념들을 철저하게 잊고 자기 신체의 형질을 하나의 예술 언어로써 <펀〮마류밍>의 퍼포먼스에 적용시킨다. 마류밍은 작품에 매우 능숙하게 국제적 수준의 퀄리티를 부여하며, 스스로의 생존 경험과 시각적, 정신적 미학을 투영한다. 외지인으로서의 문화적 정체성에서부터 부랑자로서의 생존 경험에 이르기까지, 그는 비판적 시선의 가능성을 열어둔 채 진정 자신만의 예술의 길을 걸어왔다. 마류밍의 작품들은 마치 작가 자신처럼 감정적이고, 정의롭고, 자유분방하며, 열정과 상상력이 가득하다. 부랑자로서의 생활 경험, 동시대의 시각적 경험, 그리고 사회의 벼랑 끝에 몰린 마류밍의 처지는 그가 삶의 본질과 자신의 신체를 돌아보도록 만들었다. 삶의 본능을 표출함으로써 마류밍은 사회 체제와 법의 규율, 구속으로부터 거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동시에, 그는 조용하고 은근하게 저항해왔다. 스스로의 우울감과 압박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생명의 본능적 충동과 갈망은 마류밍이 끊임없이 관객에게 시각적 경이로움과 기대감을 선사하게끔 돕는 요소다.
    이는 <펀〮마류밍>이 우리에게 매우 인상적인 이유 중 하나다. 마류밍이 만들어 낸 이 존재하지 않는 환상은 수많은 생각과 애상으로 가득한 이미지를 우리 시대에 남겨주었다.

    3. 다양한 시각적 표현의 길
    <펀〮마류밍>은 마류밍에게 명성과 아우라를 안겨준 한 편 그의 시각적 표현을 제한하기도 한다. 마류밍이 서양화를 전공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는 퍼포먼스 작업을 계속하면서도 결코 회화 작업을 중단하지 않았다. 마류밍의 조각 및 설치 작업은 그가 열정과 재능을 바탕으로 다양한 예술 표현 방식을 넘나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삶의 경험에 대한 심도 있는 표현에 있어, 그는 다양한 시대적, 사회적 이슈에 따른 시각적 전략을 끊임없이 조율한다. 그에게 있어 이스트 빌리지에서의 일 년은 감정이 급격하게 들끓었던 해였다. 마류밍이 회화 작업에서 만들어낸 이미지인 <아이> 연작(어른의 머리와 아이의 몸이 붙어있는 작품)은 <펀〮마류밍>과 호응한다. 마류밍이 느꼈던 첫아이에 대한 무지함과 행복감 및 생명의 초기 상태와 본성은 <아이> 연작에 시각적으로 깊은 생명의 자취를 남겼을 뿐만 아니라, 가장 깊은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기쁨과 놀라움으로 나타난다. 변형된 아이의 초상은 한줄기 빛과 같았다. 아이의 감은 눈을 닮기도 했다.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은 여인의 흉터였다. 개복 부위는 낯선 행복감과 삶의 가장 중대한 경험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삶의 창이었다. 이러한 <아이> 연작에는 제목조차 필요하지 않았다. 단순히 (140x100.5cm, 캔버스에 유채, 1993)이나 (250x209cm, 캔버스에 유채, 2005-2006)로 이름 붙였다. 간결하고 단순하며, 행복함으로 가득한 연작이다. 마류밍은 차마 놓지 못한 생명의 자취를 되돌아보고 신체를 탐구하는 행위를 형상화한 ‘누화법(漏画法)’이라는 새로운 화법을 시도했다. 누화법은 생명의 영원함을 보여주는 한 편 삶의 흐름과 인생의 덧없음을 나타낸다. <아이> 연작 중 몇몇 작품은 아이의 몸에 마류밍의 머리가 붙은 형태를 하고 있다. 생명의 모순적인 부조화와 뒤섞인 신체가 <펀〮마류밍>의 아련한 애상의 기억을 담담히 보여준다. 마류밍이 언급했듯 <펀〮마류밍>은 그의 예술적 표현의 영혼과 같다. 그러나 마류밍은 동시에 이것을 버리고 떨쳐내려 노력했다. 작가는 수많은 국제적 무대에서의 퍼포먼스를 스스로 촬영하거나 만리장성을 걷는 등 다양한 시각적 표현의 길을 걸어왔다. <펀〮마류밍>으로부터 다시 <펀〮마류밍>에 이르기까지 마류밍은 스스로에게 친숙한 시각적 묘사 방식을 초월하고 타개하고 있다. 다양한 매체와 표현 언어를 구사함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근본적인 주제는 항상 같은 길을 걷고 있다. <펀〮마류밍>의 단편화된 기억들은 마류밍의 평면작업에 지속적으로 이식된다.
    신체의 활용부터 성별의 혼합, 그리고 다시 영상, 조각, 평면 작업에 이르기까지, 마류밍은 2차원과 3차원, 평면과 입체, 신체적 행위와 영상 이미지 등 다양한 표현에의 시도를 거듭해왔다.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는 마류밍의 진취적인 모습을 시사하는 부분이다. 틀에 박히지 않은 태도로 늘 창의적인 시각과 자기 초월을 추구하는 성숙한 작가로서의 면모다. 짙은 보헤미안 스타일로 무장한 마류밍의 영혼과 신체의 일탈에서 그의 독창성과 자유에 대한 추구, 길들여지지 않은 열정과 자유로운 생활 방식을 지닌 정신적 매력이 엿보인다. 우리는 마류밍의 다양한 시각 표현을 통해 작가 내면의 형언할 수 없는 생명의 충동과 굳건하고 끊임없는 예술에 대한 추구를 읽어낼 수 있다.

    4. 다시, 정통 회화로
    거듭되는 이데올로기의 변화와 대중문화의 유행, 급속한 세계화와 이미지 시대의 강림, 특히 위챗(WeChat), 웨이보(Weibo), 인공지능 등이 가져온 생활 양식의 변화 및 사회, 정치, 문화, 경제 구조의 거대한 변화는 마류밍의 생활 양식과 표현 방식에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었다. ‘자본의 신전(神殿)’의 비상, 상업화의 침범 및 베이징 이스트 빌리지의 붕괴는 한때 서로 끌어안고 온기를 나누기 위해 모였던 작가들이 흩어져 각자의 길을 걷도록 했다. 작가 인생의 위기, 연령의 상승, 신체의 변화와 신체기관의 쇠퇴를 겪으며 신체적 젊음은 과거의 좋은 추억으로만 남게 되었다. 생명의 원시적, 본질적인 모습에 대한 여운도 일시적인 것일 뿐이다. 사춘기의 충동은 되돌아오기 어렵고 퍼포먼스를 위한 열정과 순발력도 영원히 사라져버렸다. 삶은 흘러가고 시간은 인생을 소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과 예술은 계속되어야만 한다. 정통 회화로의 회귀는 작가가 선택한 일종의 선택이었다. 마류밍의 최근 유화 작품들은 관객에게 다시 한번 정통 회화의 매력을 보여준다.
    이번 연작은 나이프로 인한 자국과 균열로 표현한 회화다. 기존 누화법의 연장선이다. 이미지는 전 층의 색이 새어 나오면서 나타나는데, 고대 벽화나 금광석이 뒤섞여 얼룩덜룩하게 나타나는 효과를 선사한다. 이는 단순하지만 직설적이고 힘차다. 최소한의 색을 사용하여 단순하면서도 생기가 넘친다. 이미지 속에는 마류밍의 다양한 인생 시기들이 감춰져 있다. 회화의 소재인 과거 퍼포먼스 장면과 아이, 나무, 개, 불 등에는 마류밍의 예술적 경험과 미술사적 서사, 이성과 질서가 내포되어 있다. 화면의 파손, 찢김 및 갈라짐의 흔적들은 일종의 고통 또한 품고 있다. 개인의 시각적 경험과 미술사적 기억의 뒤섞임, 퍼포먼스의 고전적 표상의 참조와 이용은 작가로 하여금 예술을 성찰하고 새롭게 사고할 수 있게 했다. 그것은 삶에 대한 재경험과도 같았다. 마류밍은 분열된 기억을 통해 최근의 기억을 재현하고, 기존 삶의 방식을 복원해낸다. 부유하는 듯한, 섬세하고, 걱정스럽고, 고독하고, 기이한 이 모든 순간들은 다 불분명하고 모호하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마류밍이 의도적으로 역사적 기억을 복원한 것이 아니라 역사의 한 시대를 다시 체험하고 재발견했다는 점이다. 이로부터 얻어낸 것이 바로 평면 화면의 재현이다. 이러한 재현은 현재의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경제적, 개인적 및 집단적 경험들과 엮여있는 다문화적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심오한 삶의 경험을 보여주는 동시에 중국의 사회적, 문화적 현실을 드러내며, 격변하는 시대와 사회에 대응한다. 내면의 직관을 따르고자 하는 작가의 태도는 스스로를 격렬하게 변화하는 사회적 동향에 늘 노출될 수 있게끔 한다.
    자신의 삶의 경험을 강조하는 것에 집중하면서도 마류밍은 항상 개인의 삶에 대한 존중을 견지해왔다. 이는 그가 시대의 변화에 민감해지도록 만들었다. 자본과 문화의 세계적 통합을 바탕으로 한 새 시대와 요소들의 배경 아래, 작가는 단편화된 서사, 부서진 시각적 묘사 그리고 역사적 기억의 파편들로 구상과 추상, 그리고 표현의 재현을 넘나들며, 사람들이 물질적 풍요로움을 즐기지만 외롭고 공허하고 정신적으로 지루함을 느끼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작가의 자기서사를 주제로 하여 사회의 낭만적, 환상적, 망상적 태도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의 진실한 정서는 감성적인 것들, 즉 서정적인 조각들과 단편화된 기억들로도 대체된다. 그가 표현하는 것은 구체적인 사건이 아니라 수많은 삶의 경험들과 예술적 경험들의 중첩이다. 마류밍의 표현 의도는 구체적인 사람이나 사물을 표현하는 것에 한정되지 않고 환상, 허구, 은폐 등과 같이 계속해서 변화하는 사회의 현실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모든 것은 허황되고 불확실하다……. 그의 작업은 스스로가 겪은 생존 경험에서 시작하여 늘 자신의 예술사적 서사의 단서와 삶의 고통을 향해 나아간다. 새로운 동양적 정신을 바탕으로 한 전통과 전통회화로의 회귀를 추구하는 창작의 방향은 마류밍이 가진 민족적,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인식을 명확히 보여준다.
    확실한 것은 믹스매치와 다원화된 문화의 시대에서, 마류밍이 자신만의 활기와 충동, 열정과 이성, 그리고 삶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동시대 미술을 다양한 표현의 길로 인도한다는 점이다. 그는 자신을 계속해서 개선한다. 동시에, 시대를 초월한 미적 아름다움을 동시대 미술사에 남긴다.

    2018년 6월 13일, 오후 11시 15분, 동후 산구안디안(东湖三官殿)에서

    전시제목마류밍 개인전 《행위의 축적》

    전시기간2018.08.17(금) - 2018.09.16(일)

    참여작가 마류밍

    관람시간10:00am - 06:00pm

    휴관일매주 월요일 휴무

    장르회화

    관람료무료

    장소갤러리 학고재 Gallery Hakgojae (서울 종로구 삼청로 48-4 (소격동, 학고재) )

    연락처02.720.1524-6

  • Artists in This Show

갤러리 학고재(Gallery Hakgojae) Shows on Mu:umView All

  • 작품 썸네일

    윤석구ᆞ윤석남 2인전: 뉴 라이프

    갤러리 학고재

    2024.04.26 ~ 2024.05.25

  • 작품 썸네일

    함(咸): Sentient Beings

    갤러리 학고재

    2024.03.13 ~ 2024.04.20

  • 작품 썸네일

    장재민: 라인 앤 스모크

    갤러리 학고재

    2024.01.31 ~ 2024.03.02

  • 작품 썸네일

    김영헌: 프리퀀시 Frequency

    갤러리 학고재

    2023.12.20 ~ 2024.01.20

Current Shows

  • 작품 썸네일

    박미나: 검은

    페리지갤러리

    2024.03.08 ~ 2024.04.27

  • 작품 썸네일

    (no-reply) 회신을 원하지 않음

    아트센터 예술의 시간

    2024.03.16 ~ 2024.04.27

  • 작품 썸네일

    봄 • 봄 ( Spring • See )

    갤러리 나우

    2024.04.16 ~ 2024.04.27

  • 작품 썸네일

    윤정미: 사진으로 읽는 인천 근현대 소설전

    한국근대문학관

    2023.11.24 ~ 2024.04.28

  • 작품 썸네일

    지역 근현대 미술전 : 바다는 잘 있습니다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2023.12.12 ~ 2024.04.28

  • 작품 썸네일

    «가장 깊은 것은 피부다», «4도씨»

    세화미술관

    2024.01.30 ~ 2024.04.28

  • 작품 썸네일

    박지수: 빛 나는 그늘 Shining Shade

    갤러리 도올

    2024.04.12 ~ 2024.04.28

  • 작품 썸네일

    김윤신 《Kim Yun Shin》

    국제갤러리

    2024.03.19 ~ 2024.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