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아스 에릭슨: 해안선

2022.02.16 ▶ 2022.03.20

갤러리 학고재

서울 종로구 삼청로 50 (소격동, 학고재) 학고재 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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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드레아스 에릭슨(Andreas Eriksson)

    해안선 #1 Shoreline #1 2021, 캔버스에 템페라, 아크릴릭, 유채 Egg-oil tempera, acrylic and oil on canvas, 280x30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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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드레아스 에릭슨(Andreas Eriksson)

    해안선 #2 Shoreline #2 2021, 캔버스에 템페라, 아크릴릭, 유채 Egg-oil tempera, acrylic and oil on canvas, 280x30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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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드레아스 에릭슨(Andreas Eriksson)

    해안선 #3 Shoreline #3 2021, 나무에 템페라, 아크릴릭, 유채 Egg-oil tempera, acrylic and oil on wood, 30x24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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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드레아스 에릭슨(Andreas Eriksson)

    해안선 #5 Shoreline #5 2021, 나무에 아크릴릭, 유채 Acrylic and oil on wood, 24x29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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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드레아스 에릭슨(Andreas Eriksson)

    해안선 #6 Shoreline #6 2021, MDF에 템페라, 아크릴릭 Egg-oil tempera and acrylic on MDF, 37.5x32.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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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드레아스 에릭슨(Andreas Eriksson)

    해안선 #8 Shoreline #8 2021, 캔버스에 템페라, 아크릴릭, 유채 Egg-oil tempera, acrylic and oil on canvas, 34.5x27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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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드레아스 에릭슨(Andreas Eriksson)

    해안선 #9 Shoreline #9 2021, 나무에 템페라, 아크릴릭, 유채 Egg-oil tempera, acrylic and oil on wood, 50x4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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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드레아스 에릭슨(Andreas Eriksson)

    해안선 #11 Shoreline #11 2021, 나무에 아크릴릭 Acrylic on wood, 40x4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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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드레아스 에릭슨(Andreas Eriksson)

    해안선 #13 Shoreline #13 2021, 캔버스에 아크릴릭, 템페라 Acrylic and egg-oil tempera on canvas, 200x12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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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드레아스 에릭슨(Andreas Eriksson)

    해안선 #14 Shoreline #14 2021, MDF에 아크릴릭, 유채 Acrylic and oil on MDF, 32.5x37.5cm

  • Press Release

    1. 전시 개요
    학고재는 2022년 2월 16일(수)부터 3월 20일(일)까지 안드레아스 에릭슨(b. 1975, 스웨덴 비외르세터) 개인전 《해안선 Shoreline》을 연다. 지난 2019년 학고재와 학고재청담에서 선보인 아시아 첫 개인전 이후 3년 만이다. 비무장지대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동해의 해안선을 주제로 한 전시를 구상했다. 전시명인 ‘해안선’은 두 세계 간 경계를 상징한다. 서로 다른 세상을 구분하는 동시에 연결 짓는 매개로서의 장소다. 지난 전시가 회화, 판화, 조각, 태피스트리를 폭넓게 소개했다면, 이번 전시는 작품세계의 중심 매체인 회화를 집중 조명한다. 캔버스 14점과 종이 작업 44점을 다채롭게 만나볼 수 있다. 전시 도록에는 작가의 글과 사라 워커의 에세이,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와의 인터뷰 발췌문이 수록된다.


    2. 작가 소개
    안드레아스 에릭슨은 1975년 스웨덴 비외르세터에서 태어났다. 1998년에 스웨덴 왕립예술원 스톡홀름 미술대학교(Royal College of Arts, Stockholm)를 졸업한 후 베를린에 건너갔다. 다양한 작가들과 교류하며 작업에 몰두했으나, 2000년경 전자기과민성증후군을 얻어 귀향했다. 이후 스웨덴 메델플라나 인근의 시네쿨레 산속에 살며 작업하고 있다. 2011년 제54회 베니스비엔날레 북유럽관 대표 작가로 선정되어 주목받았다. 지난 2019년 학고재와 학고재청담에서 아시아 첫 개인전을 동시 개최하여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2001년 스톡홀름에서의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보니어스 콘스트할(스톡홀름), 레이캬비크 아트 뮤지엄(레이캬비크), 루드비히 재단 현대미술관(mumok)(빈), 트론헤임 쿤스트뮤지엄(트론헤임, 노르웨이), 스케치 미술관(룬드, 스웨덴), 드 11 리넨(아우덴뷔르흐, 벨기에) 등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파리 시립 근대 미술관(파리), 스톡홀름 현대미술관(스톡홀름), 오슬로 국립미술관(오슬로), 예테보리 미술관(예테보리, 스웨덴), 리드쇠핑 콘스트할(리드쇠핑, 스웨덴) 등 다수의 기관에서 열린 단체전에 참여하기도 했다. 2007년 아트 바젤 발로아즈 예술상(바젤, 스위스), 2012년 카네기 미술상(스톡홀름), 2015년 스텐 에이 올슨 재단상(예테보리, 스웨덴)을 수상했다. 퐁피두 센터(파리), 루드비히 재단 현대미술관(mumok)(빈), 예테보리 미술관(예테보리, 스웨덴) 등에서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3. 전시 주제
    안드레아스 에릭슨의 회화 – 자연의 색채와 질감으로 직조한 화면

    2000년 이후 안드레아스 에릭슨은 스웨덴 메델플라나 인근 시네쿨레 산속 집에 머무르며 작업해 왔다. 바네른 호수를 근처에 둔 숲 한가운데서다. 일상에 만연한 자연으로부터 발견한 요소를 작업 안에 풀어낸다. 화면은 낮과 밤의 순환,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풍경의 색조에 크게 영향받는다. 에릭슨은 초록으로 가득한 여름보다 봄과 가을의 풍성한 색채를 선호한다. 심리적으로 고독한 겨울 또한 회화의 색조로 삼기에 좋은 계절이다.
    에릭슨의 작품세계는 감각주의와 개념주의를 동시에 드러낸다. 풍부한 시각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개념적인 작품을 이끌어낸다. 회화, 판화, 조각, 태피스트리 등 다양한 형식을 아우르는 한편 내용적으로 긴밀한 연관성을 띤다. 중심 매체는 회화다. 지도 위 등고선을 연상시키는 회화의 구조가 다른 작업의 밑그림을 이루는 식이다. 때로 캔버스 위에 수직 수평의 물감 획을 중첩하며 태피스트리의 씨실과 날실을 떠올린다. 자연의 색채와 질감으로 회화의 화면을 직조해 내는 일이다.

    《해안선》 – 서로 다른 두 세계가 만나는 중립지대
    전시 구상의 출발점은 한국의 비무장지대(DMZ)였다. 남북으로 갈린 나라의 경계를 이루는 지대이자 자연 본연의 모습을 간직한 특별한 땅이다. 장소의 이념적 성격을 배제하고 환경적 특성에 주목하고자 했다. 에릭슨에게 비무장지대는 회화의 메타포다. 문명으로부터 벗어나 자생하는 자연의 영토를 회화의 화면에 빗댄 것이다. 2020년, 팬데믹 상황을 마주하며 환경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졌다. 작가의 시선은 지도 위 가로 놓인 경계선을 따라 동해안 인근으로 향했다. 이번 전시의 주제이자 신작 회화의 작품명인 ‘해안선’은 서로 다른 두 세계를 구분하는 동시에 연결 짓는 매개다. 남북의 영토, 땅과 바다, 자연과 문명이 만나는 중립지대를 상징한다.


    4. 작가의 글
    해안선


    학고재에서 연 첫 개인전은 산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풍경의 층이 겹겹이 쌓인 화면으로서의 산이다.
    이번 전시는 한국에서의 두 번째 개인전이다. 시작점은 DMZ였다. 이는 예술과 회화에 대한 일종의 메타포다. 소유권이 없으며, 스스로 자라나는 영토로서다. 얼마 후 DMZ가 내게는 너무나 정치적인 매개임을 깨달았다. 회화가 주제에 가려질까 염려스러웠던 것이다. 여러 검색 끝에 내 생각은 한국 해안에 가 닿았다. 특히 동해에 말이다.

    나에게 있어 회화란 물질성에 관한 것이다. 전제 조건은 두 가지 물질의 만남이다. 예를 들면 물과 돌, 모래와 나무, 이끼와 하늘 등이다. 〈해안선〉 연작에서 나는 새로운 시각과 관점으로 그 만남의 지점에 도달한다. 전시에 선보이는 다수의 드로잉을 격리 중에 제작했다. 이들 없이는 새로운 회화 또한 시작되지 않았을 터다.

    2022년 1월 18일, 안드레아스 에릭슨


    5. 전시 서문
    흩어진 기억들


    코시모는 편히 머무를 곳을 찾아 커다란 가지의 끝자락까지 타고 올랐다. 이내 다리를 가벼이 흔들며, 팔꿈치 아래 손이 놓이게 팔짱을 끼고, 머리를 어깨 사이에 묻고, 삼각 모자를 이마 위로 갸웃이 올린 채 가지 위에 앉았다.

    이따금 큰 나무 위에 여전히 앉아 있는 안드레아스 에릭슨을 상상한다. 그는 잎새에 스민 빛으로 세상을 보며, 빛과 어둠을 번갈아 재현해낸다. 존 밀턴이 「실낙원」(1667)에 쓴 표현처럼 “빛이 없고, 가까스로 보일 정도의 암광(暗光)” 속에서. 모든 것이 에릭슨의 손 닿는 데 있다. 시선은 발밑을 살피다가도 먼 풍경을 내다본다. 사방을 자유로이 조망하거나, 나무껍질과 잎맥을 관찰하기도 한다. 그의 작업 과정은 기억과 밀접하게 관계 맺는다.

    에릭슨의 정원에서 보낸 어느 여름 저녁을 떠올려 본다. 우리 몇몇은 집과 차고 사이에 놓인 테이블에 앉았다. 곁에는 거대한 나무가 서 있었고, 어두웠다. 스웨덴 음악가 존 홀름(John Holm)의 노래를 듣고 있었다. 홀름의 음성은 유령처럼 쓸쓸했으며 견딜 수 없이 진솔했다. 음악은 들판을 멀리 가로질러 바네른 호수에까지 닿았을 터다. 때로 에릭슨의 회화를 보며 홀름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날의 장소에 정원이라는 이름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칠흑 같은 하늘 속 나뭇가지만 어렴풋이 보일 만큼 어두웠기에 특히 그렇다. 들판과 풀이 맞닿은 저 아래, 오래된 집들의 폐허가 놓여 있었다.

    여름이 죽어 간다
    그래서 우울한 오늘 밤
    여름이 죽어 간다
    그래서 우울한 오늘 밤
    밤의 곁을 겪어내며, 황혼 속 가을을 느끼며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세잔 등의 화가는 돌과 풀의 모습을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았다. 돌과 풀, 나무와 그림자, 잎사귀와 구름의 관계를 그린 것이다. 무엇보다, 그들의 작품은 관객을 화면 속으로 초대했다. 회화와 드로잉을 마주하는 우리 또한 그리기의 일부가 된다. 우리는 회화의 선로와 주제의 여정을 따라 완성된 화면으로 나아가는 길을 본다. 이전의 예술은 주제의 명료함과 작품의 완결성을 추구했다. 작품은 저자와 비교되거나, 동일시될 수 있을까? 에릭슨은 자신의 회화가 문학이나 시처럼 읽히기를 바란다. 그래야만 거의 행해지지 않는 회화에 대한 논의를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회화는 표현의 방식이다. 설명문일 수도 있지만, 분방한 산문일 수도 있다. 책의 내용을 말할 수 있다면 회화의 내용을 이야기할 수도 있어야 한다. 그것이 어휘 없는 언어일지라도 말이다. 우리가 끊임없이 이해하고, 읽어내려 시도하는 감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에릭슨의 회화는 시작점이나 종착점을 갖지 않는다. 다만 화면 전반을 잠식하며 나아간다. 붓의 율동은 때로 불현듯 멈춘다. 가끔은 화면에 정맥처럼 흘러든 기초 색이 고개를 든다. 덧입혀 칠해지고, 새롭게 거듭나기 위해서다. 자연에 빗대자면 물길을 따라 땅 아래 스민 퇴적층 같다. 그의 회화는 대부분 숨은 표피를 내재하고 있다. 눈에 띄는 것들만큼이나 중요한 층이다. 에릭슨은 작업 과정에서 언제나 새로운 경로를 택한다. 많은 경우, 첫눈에 보이는 것보다 친밀하고 개인적인 길이다.


    2012년, 에릭슨이 내게 보내는 이메일에 썼다.
    “작업실에서 그림을 좀 그리며 제레인트 왓킨스(Geraint Watkins)의 음악을 듣고 있습니다.
    오랜만이지만, 그려야만 했습니다.
    온종일 저와 집에 있던 아이들은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나를 세상 가장 이상한 일들로 이끌어 갔습니다. 창문 밖 젖은 조약돌을 엿보는 것처럼요. 비 그친 길 위에는 꽤 많은 자갈이 있었어요.”

    2007년에는 다음처럼 썼다.
    “에버트 룬드퀴스트(Evert Lundquist)와 자코메티를 대조한 글을 읽고 싶습니다. 한 쪽은 회화를 통해 조각가로서의 꿈을 꾸고 또 다른 하나는 흙을 덜어내면서 회화의 꿈을 꿉니다. 양측 모두 자기비판에 크게 영향받고요.”

    에릭슨의 작업은 늘 감각주의와 개념주의를 동시에 드러낸다. 두 가지 다른 종류의 바라봄이다. 젖은 조약돌을 염탐하는 놀이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주위 환경, 특별한 빛에 대한 기억, 다른 작가의 회화 안에서 발견한 색채의 일부를 그리고, 촬영하고, 직조하거나 조각한다. 그들 사이의 공간, 보이지 않는 것들이 그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작품 인생 전반에 걸쳐 에릭슨은 예상된 것들로부터 탈피해 왔다. 강한 시각적 감수성을 녹여 낸 개념적 작업을 통해서다. 그는 회화의 초기 과정에서 실패로 여겨지는 요소들이 결과적으로 가치 있게 거듭나는 일에 대하여 자주 이야기한다. 실수는 때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위한 전환점을 마련한다. 실패는 해방의 가능성을 지닌다.

    회화는 하얀 표면에서 시작되어 그곳에서 끝난다. 에릭슨은 늘 그림을 그려왔다. 회화에 대해 모순된 적 없었으며, 단 한 번도 냉담하게 거리 두지 않았다. 그는 캔버스와 종이 위에 물감을 칠해야만 했다. 결코 완성되지 않는 원고를 써 나가는 일이다. 태피스트리를 직조할 때에는 작품의 뒤편으로부터 회화를 구성한다. 감추어진 것을 내보이는 것이다.

    일부 개념주의적 작품들은 에릭슨이 경험한 심리치료 및 정신분석 세션의 결과물이다. 잠재의식에 대한 열린 시각을 드러내는 화면이다. 사소한 사건에 관한 정서 및 감각이 개인적으로, 나아가 예술적으로 매우 큰 의미를 지닐 수 있음에 대한 헌사적 표현이기도 하다. 여러 밤에 걸쳐 한 나뭇가지가 에릭슨의 침실 창문에 부딪히며 소리를 냈다. 나뭇가지가 만들어낸 소음은 이윽고 꿈속 문을 두드렸다. 반쯤 깨어 있는 상태에서 인상은 규명할 수 없는 의식의 일부로서 분류된다. 얼마 후 에릭슨은 성가신 가지를 톱으로 잘라냈다. 곧 주형을 만들고, 여러 차례 청동으로 주조했다. 이후 그것들을 결합하여 하나의 덤불과 같은 덩어리를 만들었다. 에릭슨의 지극히 개인적인 서사 중 일부는 엄격한 개념주의적 형식 뒤에 감추어져 있다.

    작가가 설계한 공간 속에 들어서고 싶으나, 그 공간이 너무나 유동적이다. 가끔은 눈앞에 놓인 작품의 규모마저 가늠할 수 없다. 가장 작은 회화가 매우 큰 공간을 시사하기도 한다. 때로 회화는 거대한 암석이나 나무의 몸통뿐만 아니라 어두운 동굴을 품고 있다. 분명 배경과 전경 없이, 각 층위 사이의 관계만이 존재한다. 후자는 조망을 요구한다. 스웨덴 화가 아케 고란손(Ake Goransson)은 평면 구조를 조직하는 데 몰두했다. 하나님의 일처럼 들리는 작업이다.

    어디에서 읽었는지, 누구의 인용인지 떠올릴 수 없지만 이 말을 쓰고 싶다. “회화는 주체적 공간을 가져야만 작업실을 떠날 수 있다.” 작품은 그것이 태어난 곳 외의 다른 장소에서 살아남을 수 있어야 한다. 세상 속에서 자유롭고도 안전해야 한다. 진공에서는 무엇도 존재할 수 없기에, 예술 작품들은 새로운 벽, 또 다른 이미지, 낯선 시선을 마주하는 매 순간 다시 태어난다.

    논의를 확장해 보자. 우리와 회화(들) 사이 공간이란 무엇일까?

    1999년, 에릭슨이 스톡홀름의 갤러리 플라흐(Galleri Flach)에서 전시를 열었다. 그에게 있어 회화는 처음부터 공간에 관한 문제였다. 이 초기 전시에서 캔버스들은 서로 가장자리를 맞대어 벽과 같은 모습으로 설치되었다. 물감을 칠하기보다 긁어내어 추상화한 화면과 벽돌을 양식화한 단순한 회화들이 선보였다. 2000년 노르딕 아트 리뷰(Nordic Art Review)의 창간호에서 톰 샌드크비스트(Tom Sandqvist)가 다음처럼 썼다. “에릭슨은 캔버스들 중 하나에 의도적으로 마스킹 테이프를 남겨 두었다. 순수한 수작업이 그렇듯, 과정이 여전히 진행 중임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작품의 진리와 개념에 대한 모더니즘의 유토피아적 추구로부터의 탈피다.”

    회화는 일종의 공예다. 에릭슨은 자신의 조각 작품보다 회화를 보는 일이 더 어렵다고 느낀다. 거울에 비친 스스로의 모습을 바라보는 일, 보통 달갑지 않은 기분에 빗대어서다. 새로운 회화를 제작할 때마다, 에릭슨은 자신의 기법에 의문 가진다. 그리기를 언젠가 배울 수는 있을지 자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해야만 하는 일이다. 1944년에 스텔란 모르너(Stellan Morner)가 잡지 콘스트레비(Konstrevy)에 쓰기를 시리 데르케르트(Siri Derkert)가 “회화를 영영 배신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에릭슨 역시 그렇다.

    어린 시절, 에릭슨은 이미 작가가 되었는지 모른다. 눈 더미 위에 앉아 빛과 어둠, 흰 눈과 공간 사이 경이로운 전환을 바라보면서다. 가까운 것과 먼 것을 구분할 수 없는 설맹(雪盲)의 경험 속에서 말이다. 시각적으로 변화하는 풍경에 대한 응시와 인식 곁에 혼자 머무르는 일이다. 실존적 소외에 대한 감각은 늘 그의 곁에 있었다. 그러한 기억을 재현해 내기까지 다분히 긴 시간이 소요됐다. 주위에 만연한 상반된 물질들, 공간적 구조들, 가깝고 먼 것들, 어둠과 빛의 현상들이 회화, 조각, 사진, 태피스트리로 재구성된다.

    예술 작업은 끊임없는 위험을 수반한다. 2006년 오슬로의 갤러리 리스(Galleri Riis)에서 연 개인전의 초대장에 윈드서핑보드 위에 선 노르웨이 전(前) 총리 그로 할렘 브룬틀란(Gro Harlem Brundtland)의 사진이 있었다. 인물 뒤에는 절벽과 해안선이 있다. 이미지는 해안선을 경계 삼아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작은 초록 덤불이 절벽 위 척박한 지형 위에 매달려 있다. 마치 적막 속 색채를 발라 둔 것처럼 말이다. 할렘 브룬틀란은 긴장을 숨긴 중립적 표정으로 바람에 맞서는 모습이다. 여기에는 에릭슨의 작품세계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주는 무언가가 있다. 나는 지질학이나 식물의 구조, 안료로서 재구성되는 분위기 등을 떠올린다. 다만 좀 더 일반적으로 해당 이미지는 우리가 이 세상에, 행성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믿을 수 없이 기이한 일인지를 보여준다. 절벽과 초목, 대양에 둘러 싸인 우리의 작고 겸허한 삶이 찬란한 서핑보드처럼 빛난다. 찰나에 불과한 통제의 감각을 잠시나마 유지하려는 노력이다. 그러자 바람이 방향을 바꾼다.

    ■ 사라 워커 | 스웨덴 미술협회 매니저

    전시제목안드레아스 에릭슨: 해안선

    전시기간2022.02.16(수) - 2022.03.20(일)

    참여작가 안드레아스 에릭슨(Andreas Eriksson)

    관람시간10:00am - 06:00pm

    휴관일매주 월요일

    장르회화

    관람료무료

    장소갤러리 학고재 Gallery Hakgojae (서울 종로구 삼청로 50 (소격동, 학고재) 학고재 본관)

    연락처02-720-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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