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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욱진(Jang Wook-jin)

출생/작고
1917년 11월 26일 / 1990년 12월 27일
대표분야
회화와 조각
학력
1943년 데코쿠미술학교 미술전공 학사 (일본)
양정고등학교 졸업 (한국)
경력
1958년 국전 심사위원
1954년~1960년 서울대학교 미술대 교수
1949년 숭문중학교 교사
1945년~1947년 국립박물관 학예과 근무
수상경력
1937년 전조선 학생미술전람회 최우수상 수상
1986년 제12회 중앙문화대상 예술대상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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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전

단체전

추가정보

시대별 작품경향

초기(1937-1962)
1940년대까지의 작품에서는 전체적인 조형적 특징으로 형태와 색채에서 소박함과 향토성이 짙게 느껴졌던 반면, 1950년대부터 복잡한 구도를 점차 단순화해 기하학적으로 정돈한 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경쾌한 느낌의 색채가 사용되었다.

덕소시대(1963-1975): 정체성의 모색기
1962년에서 1964년의 기간은 장욱진의 작품세계에 있어 가장 독특한 시기로서 순수추상을 실험하던 시기였으며, 이 시기의 작품에는 강한 붓질의 흔적이 두드러지고 형태는 순수한 기하도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독자적 스타일을 구축한 시기였지만 다양한 시도를 통해 슬럼프를 겪기도 했던 화가의 작업은 1972년부터 본격화 되었고 이후 흔들림 없이 나아갔다.

명륜동시대(1975-1979): 전통회화로의 경향성
화면 효과와 대상 표현에서 시작된 동양화적 경향은 1975년경부터 <초당>(1975)을 비롯한 일련의 작품들에 정자, 연못, 낚시, 도인, 차 달이는 동자 등의 도가적 소재가 등장하면서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더욱 전통적인 경향성을 띠어간다. 이 시기는 화가가 자신의 그림을 전통회화와의 연관 속에서 점차 단순하게 변모시키는 시기라 할 수 있으며, 그 맥락을 전통 수묵화 기법과 도가적 소재, 그리고 민화에
서 찾고 있다.

수안보시대(1980-1985): 수묵화적 경향의 절정기
이 시기의 작품은 화가가 70년대부터 시작한 수목화적 유화에서 최고의 기량을 보이며 절정에 달한 시기로 평가할 수 있다. 이 시기부터는 화가의 집을 중심으로 주변의 빼어난 경관을 묘사하는 실경 위주의 산수화가 제작되기 시작했고, 197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수묵화적 경향은 재료 사용 측면에서 이전 시기와 구분되나 화면 구성은 여전히 관념적으로 구성된 공간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구성(신갈)시대(1986-1990): 종합화의 시기
수안보 시기의 그림이 먹그림과의 유사성으로 인해 가장 일관된 스타일을 보였다면 구성(신갈) 시기의 그림은 먹그림 같은 성격을 포함하여 다양한 경향이 공존하는 종합적 성격을 띤다. 다양한 스타일이 공존하며 파격적인 구도와 자유로운 표현이 최고조에 달하고, 특히 1990년도에는 늘 이야기하던 ‘삶이란 소모하는 것, 나는 내게 주어진 것을 다 쓰고 가야겠다’는 화두에 걸맞게 초탈한 경지의 작품을 남기고 간다.

작가노트

나는 내 몸과 마음을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려, 다 써버릴 작정이다.
옛말이지만 ‘고생을 사서한다’는 모던한 말이 있다. 이 말이 꼭 들어맞는다.
그림과 술로 고생하는 나나 그런 나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내 처나 모두 고생을 사서하는 것이리라.
그래도 좋은 데 어떡하나. 난 절대로 몸에 좋다는 일은 안 한다. 평생 자기 몸 돌보다간 아무 일도 못한다.
– 작가의 글「그림과 술과 나」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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