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
2023.09.14 ▶ 2024.02.12
2023.09.14 ▶ 2024.02.12
전시 포스터
장욱진
자화상 1951, 종이에 유화물감, 14.8×10.8cm, 개인소장
장욱진
공기놀이 1938, 캔버스에 유화 물감, 65 × 80.5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장욱진
월목/반월·목 1963, 캔버스에 유화 물감, 53.3 × 38.4cm, 개인소장
장욱진
부엌과 방 1973, 캔버스에 유화 물감, 22 × 27.5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장욱진
자화상 1973, 캔버스에 유화 물감, 27.5 × 22cm, 개인소장
장욱진
까치 1958, 캔버스에 유화 물감, 40×31cm, 국립현대미술관
장욱진
새와 나무 1961, 캔버스에 유화 물감, 41×32cm, 개인소장
장욱진
수하(樹下) 1954, 캔버스에 유화 물감, 33×24.7cm, 개인소장
장욱진
마을 1984, 캔버스에 유화 물감, 35.3×27.2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장욱진
언덕 위의 가족 1988, 캔버스에 유화 물감, 33×24cm, 개인소장
장욱진
진진묘(眞眞妙) 1970, 캔버스에 유화 물감, 33 × 24cm, 개인소장
장욱진
여인상 1979, 캔버스에 유화 물감, 15 × 10cm, 개인소장
장욱진
가족 1976, 캔버스에 유화 물감, 13 × 16.5cm,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장욱진
심우도 1979, 종이에 먹, 66.5 × 43.4cm, 개인소장
장욱진
무제 1979, 종이에 먹, 63.2 × 32.8cm, 개인소장
장욱진
나무와 산 1983, 캔버스에 유화물감, 29.7 × 29.5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장욱진
밤과 노인 1990, 캔버스에 유화 물감, 41 × 31cm, 개인소장
장욱진
닭과 아이 1990, 캔버스에 유화 물감, 43×31cm,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장욱진
나무와 가족 1982, 캔버스에 유화 물감, 28×19.8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장욱진
수안보 풍경 1986, 캔버스에 유화 물감, 35 × 27.6cm, 개인소장
장욱진
시골 풍경 1986, 캔버스에 유화 물감, 37.6 × 22.2cm, 개인소장
장욱진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
장욱진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
장욱진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
장욱진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
장욱진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
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직무대리 박종달)은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관장 이계영)과 공동주최로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을 9월 14일(목)부터 내년 2월 12일(월)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그간 축적된 장욱진(1917-1990) 연구와 전시들을 되짚어 보며, 1920년대 학창 시절부터 1990년 작고할 때까지 약 60년간 꾸준하게 펼쳐 온 장욱진의 미술 활동을 총망라하여 유화, 먹그림, 매직펜 그림, 판화, 표지화와 삽화, 도자기 그림 등 270여 점을 한 자리에서 조망한다. 이번 전시는 장욱진의 시기별 대표작을 엄선해 선보임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화가 장욱진이 진정으로 추구한 예술의 본질과 한국적 조형미의 구축이 한국미술사 안에서 차지하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종합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전시 제목‘가장 진지한 고백’은 "그림처럼 정확한 내가 없다”고 말한 장욱진의 언급에서 착안했다. 장욱진은 그의 화문집(畵文集) 『강가의 아틀리에』 서문에서 밝혔듯이 참된 것을 위해 뼈를 깎는 소모까지 마다하지 않는 진솔한 자기 고백으로 창작에 전념했고, 그림 그리는 시간의 대부분을 방바닥에 쪼그려 앉아 수공업 장인처럼 그렸다. 이렇듯 지속적이고 일관된 그의 창작 태도는 작품에서도 드러나는데, 장욱진은 60여 년 화업 인생 동안 제한된 몇 가지 소재들을 반복해서 그렸다. 그러면서도 재료를 가리지 않는 자유로움과 하나의 고정된 틀에 얽매이지 않는 창작 태도로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했다. 장욱진은 서양화를 기반으로 동양적 정신과 형태를 가미해 한국적 모더니즘을 창출하고 한국미술사의 새로운 장을 연 화가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장욱진의 작품 세계를 청년기(10~20대), 중장년기(30~50대), 노년기(60~70대)로 재구성하여, 궁극적으로 그가 추구하던 ‘주제 의식’과 ‘조형 의식’이 어떻게 형성되어 변모해 나갔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장욱진 예술의 실체에 접근하고자 하였다. 특히 장욱진 관련 아카이브를 통해 일제강점기와 한국 전쟁 이후 미술단체와 전람회 활동을 포함하여 새롭게 밝혀진 장욱진의 초기 행적 및 기존에 알려진 작품명과 연보의 오류를 바로잡은 연구 성과를 공개한다. 장욱진의 조형 언어와 행적을 미술사적으로 규명함으로써, ‘동심 가득하고, 작고, 예쁜 그림’이라는 단편적인 평가를 넘은 장욱진 예술의 진면목을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전시는 크게 4부로 나뉘는데, 전시실 1층 1부와 4부에서는 초년기부터 노년기까지 연대별로 작품 세계를 볼 수 있게 구성하였다. 2층 2부에서는 장욱진 그림에서 반복되는 소재들을 ‘내용’과 ‘형식’으로 접근하여 장욱진 그림을 보다 쉽고 깊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2층 3부에서는 장욱진의 불교적 세계관과 철학적 사유에 대해 면밀히 다룬다. 관람객은 전시장의 도입부 <자화상>(1951)에서부터 마지막 장욱진이 타계 두 달 전 그린 <밤과 노인>(1990)에 이르기까지 장욱진의 예술세계를 동행하듯 관람할 수 있을 것이다.
1부, 첫 번째 고백 <내 자신의 저항 속에 살며>는 그의 학창 시절부터 중장년기까지의 작품을 살펴본다. 학생작품전에서 상을 탄 <공기놀이>(1938)와 문자를 추상화 시킨 과정을 보여주는 <반월·목半月·木>(1963), 뼈대나 윤곽만으로 대상을 조형화시키며 기호화된 형태를 그린 <자화상>(1973) 등을 통해 초기 화풍의 형성과정을 볼 수 있다. 완숙한 장욱진 작품의 전형(典型)이 완성되기까지 “내 자신의 저항 속에 살며”장욱진만의 독창적인 한국적 모더니즘이 창출되는 여정을 따라갈 수 있다. 또한 장욱진 관련 아카이브들을 통해‘신사실파’이외의 알려지지 않았던 미술단체들의 활동 이력과 전람회 출품 등 새롭게 밝혀진 장욱진의 초기 행적과 기존에 알려진 작품명의 오류를 바로잡은 연구 성과도 확인할 수 있다.
2부, 두 번째 고백 <발상과 방법: 하나 속에 전체가 있다>에서는 장욱진 회화의 대표적 모티프 가운데‘까치’,‘나무’,‘해와 달’을 선정해 각각의 소재들이 지니는 상징성과 의미, 도상적 특징의 변모 과정을 살펴본다. <까치>(1958), <새와 나무>(1961) 등에서 그의 분신 같은 존재인‘까치’, 그의 온 세상을 품는 우주인 ‘나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영원성의 매개체를 상징하는‘해와 달’등 장욱진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소재들의 의미와 이들이 작품 속에서 어떻게 구성되는지 그의 ‘발상과 방법’을 살펴볼 수 있다. 한편 장욱진의 생전 마지막 작품인 <까치와 마을>(1990)이 최초로 전시되며, 그가 처음 그린 표지화 초안과 더불어 한국 전쟁 후 가족의 생계를 위해 그렸던 『국제신보』「새울림」 (글 염상섭, 삽화 장욱진) 삽화 56점 전체가 최초로 공개된다.
3부, 세 번째 고백 <진眞.진眞.묘妙>에서는 장욱진이 남긴 불교적 주제의 회화들과 먹그림, 목판화 선집 등을 통해 장욱진의 불교적 세계관과 철학적 사유를 들여다본다. 장욱진과 불교와의 인연은 청년기부터 여러 일화가 언급되지만 실제로 불교 주제의 작품이 등장한 것은 1970년대부터이다. 장욱진은 경전의 종교적 도상을 그대로 차용하지 않고, 자기성찰을 통해 본인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내용과 요소들을 강조하고 변용했다. 장욱진이 최초의 불교 주제 회화로 아내의 초상을 그렸다는 점에서 장욱진에게 ‘가족’이란 불교적 세계관이 투영된 존재임을 알 수 있다. 전시에서 <진진묘>(1970)를 시작으로 해학성이 돋보이는 <심우도>(1979), <무제>(1979) 등을 선보인다. 특히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발굴된 장욱진 최초의 가족 그림인 1955년작 <가족>을 최초 공개한다. 또한 1975년 김철순과 장욱진이 협업했으나 생전에 출판되지 못한 목판화집 Zen: Wisdom of Asia를 별도 제작한 단행본 『선(禪) 아님이 있는가』가 공개된다.
4부, 네 번째 고백 <내 마음으로 그리는 그림>은 1970년대 이후 그의 노년기를 살펴본다. 동양의 정신과 형태를 일체화시켜 한국적 모더니즘을 창출했다고 평가받는 수묵채색화 같은 유화 및 특유의 비현실적 화면 구성 등이 정점을 이룬 작품들을 볼 수 있다. 1973년 전후로 그의 작품에서는 1960년대까지 주를 이루던 강한 마티에르 대신 얇아진 색층이 등장하면서, 조형성이 강했던 졸박한 반추상에서 표현성을 가미한 담채풍의 담졸(淡拙)한 양식으로 변화가 본격화된다. <나무와 가족>(1982), <닭과 아이>(1990) 등 먹으로 그린 동양화를 캔버스에 옮긴 듯 한 말년 작품을 선보인다.
한편, 전시와 연계한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이 마련된다. 디지털 기반 참여형 워크숍 <나의 진지한 고백>은 장욱진 작품에 등장하는 주요 도상, 이미지를 관찰하고 관람객이 자신의 삶을 도상으로 표현하는 워크숍이다.(현장 및 온라인, 상시 참여) 또한 장욱진의 글을 읽고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그림과 글로 표현해보는 워크숍 <내 마음으로서 그리는 그림>이 2전시실 앞에서 진행된다. 더불어 성인을 위한 작품 감상프로그램이 매일 3회차(12시, 14시, 16시) 진행된다. 이외에 장욱진 작품을 보고 만지며 소통할 수 있는 교육자료로 개발된 <촉각 그림책>이 전시실 내에 비치되며,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음성해설 및 수어해설, 점자책과 큰 글자 감상 자료가 제공되어 관람객의 감상과 해석을 확장하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 근현대 화단을 대표하는 화가 장욱진에 대한 종합적인 고찰뿐만 아니라 그간 축적된 장욱진에 대한 학술적 연구를 보완하여 장욱진 예술세계를 보다 온전하게 평가하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다.
전시 구성 및 주요 작품 소개
1. 내 자신의 저항 속에 살며
첫 번째 고백:
“누구나 그러하듯이 사람은 언제나 어디서나 저항 속에 사는 것 같다.……누구를 막론하고 직업인은 모두가 자기 직책을 빌려 스스로의 생명에 대한 순수성을 지키려 하고 안간힘을 쓰며, 이 순수성에 대한 타인의 침해를 막으려 드는 것이 상례이다. …… 나의 경우도 어김없이 저항의 연속이다. 행위[제작 과정]에 있어서 유쾌할 수만도 없고, 소재를 다룰 때 기교에 있어 재미있게 나왔다 해도 결과[表現]가 비참할 때가 많다. 이렇다 보니 나의 일에 있어서는 저항의 연속이 아닐 수 없다. ……일상(日常) 나는 내 자신의 저항 속에 살며, 이 저항이야말로 자기의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다.”
장욱진, 「저항」, 『동아일보』, 1969.6.7.
장욱진의 첫 번째 고백, 여기서는 그의 학창 시절부터 중장년기까지의 작품들을 살펴본다. 그의 10~20대 청년기 작품들은 고전색과 향토색이 짙게 느껴지는 조선적 모티프들이 주를 이룬다. 이 시기 그의 작품들은 흑백과 갈색의 모노톤으로 토속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장욱진은 30~40대 장년기를 거치며 명도와 채도의 대비를 통해 시각적인 주목도를 높이고, 형태를 더욱 평면화, 도안화시키는 과도기적 양상을 보여준다. 아동화적 도상을 분할 구성하여 표현해낸 시도나, 서양 동화 같은 정경에 동심이 천진하게 깃든 정감 어린 풍경 등이 그러하다. 이후 40~50대 중년기에 이르면 실존의 절대적인 형상으로서 뼈대나 윤곽만으로 대상을 조형화시키며 기호화된 형태들을 그린다. 그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물감층을 쌓아 만든 까칠한 질감의 마티에르가 점점 원근법적 공간을 지우며, 그림 표층의 질감을 긁어내는 방식으로 화면을 더욱 다양하게 조성하고 심미화시키는 모습을 보여준다. 한때는 구상과 추상을 혼성한 반추상의 상태에서 더 나아간 순수추상화도 2년 정도 그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 뒤에는 더 이상 이러한 사조를 추구하지 않았으며, 1960년대 중반 즈음 되면 장욱진 그림에 다시 형상성(形像性)이 회복되며 졸박(拙朴)한 양식이 이어진다.
이처럼 첫 번째 전시실에서는 완숙한 장욱진 작품의 전형(典型)이 완성되기까지 “내 자신의 저항 속에 살며” 장욱진만의 독창적인 한국적 모더니즘이 창출되는 여정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전시된 그의 작품들 뿐 아니라 전시장에 함께 진열된 장욱진 관련 아카이브들을 통해서도 유기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2. 발상과 방법: 하나 속에 전체가 있다
두 번째 고백:
“사람마다 내 그림을 보고는 그림의 설명을 요구해 온다. 그림을 그리는 누구도 그렇겠지만, 나는 항상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있다. 그 생각이란 게 그림의 발상(發想)으로 되는 것은 물론이다. 이 생각이 좋고 나쁜 것으로 그림의 됨됨이 또한 결정되기도 한다.
나의 생각이란 것은 무어 특이한 것은 아니다. 외부에서 오는 여러 가지 포름(forme)을 재구성하는 일이다. 즉 산만한 외부 형태들을 나의 힘으로 통일시키는 일이다. … 한 작가의 개성적인 발상과 방법만이 그림의 기준이 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있었던 질서의 파괴는 단지 파괴로서 결말을 지어서는 안 된다. 개성적인 동시에 그것은 또한 보편성을 가진 것이 아니어서는 안 된다. 그러니까 항상 자기의 언어를 가지는 동시에 동시대인의 공동한 언어임을 또한 망각해서는 아니 된다. 이런 점이 오늘날 작가들의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장욱진, 「발상과 방법」, 『문학예술』, 1955.6.
장욱진의 두 번째 고백, 여기서는 그가 그림에 반복적으로 등장시키는 소재들을 자세히 분석함으로써 화가로서 어떠한 ‘발상’을 했고, 이를 어떠한 ‘방법’으로 구성했는지 살펴본다.
‘보고 싶은 대로 그냥 보고 있는 것’과 ‘지식을 가지고 관찰해서 보는 것’은 크게 다르다. 무엇보다 그가 그림 한 점을 그릴 때마다 점 하나, 선 하나에도 지나칠 만큼 엄격하다는 사실을 안다면 장욱진의 작품을 감상하는 태도가 조금은 더 진지해져도 되지 않을까?
두 번째 전시실에서는 장욱진 회화의 대표적 모티프 가운데 ‘까치’, ‘나무’, ‘해와 달’을 선정해 각각의 소재들이 지니는 상징성과 의미가 무엇인지, 도상적 특징은 어떻게 변모되어 전개되었는지를 살펴본다. 전시장에 가득한 ‘까치’는 그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였고, ‘나무’는 그의 온 세상을 품는 우주였으며, ‘해와 달’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영원성의 매개체로서 결국 모든 것이 하나임을 보여주려 한 장욱진의 의지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그림의 구성과 의미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소재를 통해 그림의 의미를 분석해 보았다면, 각각의 소재들을 활용한 구성 방식 또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다양한 상징성을 지닌 각각의 소재들은 10호(약 53×45cm)도 안 되는 작은 그림들 속에서 자유롭게 변주되어 조형적 완결성을 매듭짓는 요소로 작용한다. 이들 소재들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어떻게 단 한 점도 똑같은 그림이 전해지지 않을 수 있는지, ‘콤포지션’이란 코너를 따로 마련하여 그가 고민했던 작품의 발상과 방법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도록 했다.
화면을 가득 채운 둥근 형상의 나무 속에 정적인 자세로 서 있는 까치, 나무 끝에 걸려 있는 초승달을 단순화하여 그린 작품이다. 모든 대상은 원근법과 비례를 무시하고 평면적으로 그려졌으며, 화면을 지배하는 푸른 색조로 인해 설화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나무, 까치, 달 등은 장욱진의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소재로서 작은 화면에 단순하게 그려진 탓에 마치 아동화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지만, 간결한 형태와 세련된 색채에서 치밀한 구성력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캔버스에 물감을 바르고 다시 긁어내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만들어진 화면의 마티에르를 통해 자연스러운 밀도감을 느낄 수 있다. 긴 밤이 끝나게 지저귀며 새해를 알리는 까치 소리를 날카로운 필촉으로 화면의 물감층을 무수히 긁어내어 청각적 요소까지 시각화한 수작이다.
장욱진, <까치,>, 1958,, 캔버스에 유화 물감, 40x31cm, 국립현대미술관
경성제2고등보통학교(현 경복고등학교) 출신 화가들이 개최한 《2·9 동인전》(1961)에 출품한 작품이다. 국립중앙박물관 근무 시절 직장 동료이기도 한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김원룡 교수가 전시회에 찾아와 당시 한 달 월급인 2만 환을 봉투째 놓고 구입해 간 작품이다.
이 작품은 별칭인 <야조도夜鳥圖>로도 유명한데, 이는 그림을 구입한 김원룡 교수가 지은 제목으로 ‘밤에 나는 새’를 의미한다. 김원룡 교수는 이 작품에 대해 “화면의 주조는 표현할 수 없이 밝고 깊은 독특한 푸른색이고, 그것이 새의 흑색과 잘 조화해서 사람을 고요한 환상의 세계로 끌어당기고 있다”라고 평했다.
장욱진, 새와 나무, 1961, 캔버스에 유화 물감, 41x32cm, 개인소장
1955년 11월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린 《제1회 백우회전》에 출품한 작품으로 독지가의 이름을 딴 ‘이범래상’을 받았다. 근경의 커다란 나무 아래에 상반신을 탈의하고 양팔을 베고 누운 인물을 화면 중앙에 배치했는데, 인물은 두 눈을 크게 뜨고 나무나 하늘, 혹은 그 너머를 응시하는 눈빛과 표정이 다소 심각하다.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한 인물은 구
도자의 모습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황톳길을 따라 걷는 검둥개와 나무 속에는 숨어 있는 네 마리의 새들은 마치 1951년도 〈자화상〉의 인물을 따라 이동해 온 것 같다. 작품 상단의 원경에는 마을을 배치했는데, 나무와 건물들이 바닥과 하늘의 구분 없이 비현실적으로 그려졌다. 이렇게 양팔의 베고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는 도상은 이후 변주되어 여러 작품에서 그렸고, 신문, 삽화 등에서도 종종 등장한다.
장욱진, <수하>, 1954, 캔버스에 유화물감, 33x24.7cm, 개인소장
장욱진의 작품 세계를 형성하는 주요 특징 중 하나는 ‘대칭 구도’를 기본으로 하는 조형적 치밀함이다. 세로축을 중심으로 위에서부터 언덕, 집, 소, 개, 사람이 아래로 이어지고, 좌우로 해와 달, 나무와 화분이 쌍으로 배치된다. 이러한 대칭 구도는 안정적 균형미를 주지만 단조로울 수 있다. 화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세로축에 있는 소와 개, 사람의 방향을 교차로 배치했으며, 달의 형태와 색, 나무 위 까치, 화분의 형태와 색을 서로 다르게 표현했다. 화면에 대한 화가의 조형 어법이 얼마나 세련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장욱진, <마을>, 1984, 캔버스에 유화물감, 35.3x27.2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경사진 비탈길 위에 나무 한 그루와 세 가족을 그려 넣은 풍경화이다. 비탈길에 서 있는 가족이 한쪽으로 쏠려 불안한 자세로 서 있지만 우람한 나무가 이들을 든든하게 감싸면서 안정감을 준다. 각도를 달리하며 화면을 가로지르는 비탈길과 나무는 남송대南宋代 산수화에서 사용된 변각邊角 구도를 연상시킨다.
장욱진은 캔버스 천의 직조가 드러나도록 색을 엷게 칠하거나 색상 없이 바탕의 질감을 그대로 노출시켰다. 모든 사물을 윤곽선이 생략된 몰골법으로 처리했으나 사물 내부보다 외곽에 가까울수록 진한 색을 선염했다. 그 결과 각각의 사물은 윤곽 부분이 더욱 선명하게 찍히는 탁본을 보는 듯하다.
장욱진, <언덕 위의 가족>, 1988, 캔버스에 유화물감, 33x24cm, 개인소장
장욱진의 그림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그의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를 살피고, 각각의 역할이 무엇인지 보는 ‘장욱진의 그림 읽기법 혹은 감상법’을 통해 장욱진 그림의 내용을 더 많이 이해하고, 그의 고백을 진지하게 볼 수 있기를 바란다.
3. 진眞.진眞.묘妙
세 번째 고백:
“자기의 생활은 자기만이 하며 자기의 생활을 그 누구의 생활과도 비교하지도 않았으며 때문에 창작 생활 이외에는 쓸데없는 부담밖에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승려가 속세를 버렸다고 해서 생활을 버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처님과 함께하여 그 뜻을 펴고자 하려는 또 하나의 생활이 책임 지워진 것과 같이 예술도 그렇듯 사는 방식임에 지나지 않으리라“
장욱진, 「예술과 생활」, 『신동아』, 1967.6.
장욱진의 세 번째 고백, “참으로 놀라운 아름다움[眞眞妙]”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의 첫 불교 관련 작품인 <진진묘>(1970)로 시작되는 세 번째 전시실에서는 장욱진의 불교적 세계관과 철학, 정신세계를 살펴본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진진묘’는 장욱진의 부인 이순경 여사의 법명(法名)이다. 아내를 보살상으로 표현할 정도로 존중하고 가족을 귀하게 여겼던 장욱진은 하다못해 동물을 그려도 동물 ‘가족’을 그렸다. 가족도, 동물도 모두 소중한 인연(因緣)으로 함부로 대하는 법이 없었던 그의 마음가짐과 태도는 불교적 세계관에 기반한 것이다.
그와 불교와의 인연은 청년기부터 여러 에피소드가 언급될 정도이지만 실제로 불교적 세계관이 반영된 작품이 등장한 것은 1970년대부터이다. 먹그림 역시 이 시기부터 그려지기 시작했다. 전시된 그의 먹그림들은 장욱진의 불교 인식과 태도가 딱히 종교적인 것은 아니었을지라도 적어도 예술이라는 개념에서 ‘깨달음의 과정’이자 ‘깨달음의 표현’이었음을 말해준다. 나아가 그의 간결하고도 응축된 작품들이 서구 모더니즘의 추상에서 영향을 받았다기 보다 오히려 불교적 사상과 개념으로 추구된 ‘절제’와 ‘득도’의 결과로 해석하는 것이 더욱 설득력 있음을 알게 한다. 특히 이 전시실에서는 60년만에 일본에서 돌아온 장욱진의 최초의 가족도가 보존처리를 마친 채 관람객들을 기다리고 있으니 꼭 감상해 보기를 권한다.
4. 내 마음으로서 그리는 그림
네 번째 고백:
“그림은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툭툭 튀어나온다. 마음속으로부터 …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이 밝은 거울이나 맑은 바다처럼 순수하게 비어 있어야 한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잡다한 얼룩과 찌꺼기들이 많다. 기쁨, 슬픔, 욕심, 집념들이 엉겨서 열병(熱病)처럼 끓고 있다. 그것을 하나하나 지워 간다. 다 지워 내고 나면 조그만 마음만 남는다. 어린이의 그것처럼 조그만 … 이런 텅 비워진 마음에는 모든 사물이 순수하게 비친다. 그런 마음이 돼야 붓을 든다.”
「京鄕화랑」, 『주간경향』, 1979.10.7.
장욱진의 네 번째 고백, 여기서는 그의 1970년대 이후, 곧 노년기를 살펴본다. 흔히 이야기하는 수안보 시기부터 용인(신갈) 시기까지의 작품들이다. 장욱진은 평생 730여점의 유화를 남겼다. 그 가운데 80퍼센트에 달하는 580여점이 이 마지막 15년 동안 그려진 것이다. 실제 1973년 전후로 그의 작품에서는 1960년대까지 주를 이루던 강한 마티에르가 더 이상 등장하지 않으며, 그림의 색층은 더욱 얇아지고, 수묵화나 수채화처럼 묽은 물감이 스며드는 듯한 담담한 효과를 유지한다. 마치 먹으로 그린 동양화를 캔버스에 옮겨 놓은 듯한 느낌을 자아내는 것이다. 또 민담이나 고사 같은 한국적인 이야기나 조선시대 문인화에서 보았던 소재들도 새로이 등장한다. 고구려 고분 벽화나 민화를 연상시키는 화법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처럼 동양의 정신과 형태를 일체화시킨 그의 유화는 결국 『금강경』의 핵심 사상인 ‘무상(無相)’으로 집약된다. 하늘로 둥둥 떠다니며 공중 부양하는 사람들, 시공간을 초월한 그의 말년 작들은 모든 사물은 공(空)이라 일정한 형태나 양상이 없다는 ‘응무소주(應無所住)’, 즉 “응당 머무르는 바 없이” 모든 집착을 떠나 초연한 지경, 즉 차별과 대립을 초월하여 무한하고 절대적인 상태인 ‘무상(無相)’을 여실히 드러낸다. 평면성과 압축성을 보이는 그의 초기작들이 서구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아 사물의 속성을 추출하여 본뜬 ‘추상(抽象)’의 작업이었다면, 말년으로 갈수록 깊어진 그의 성찰과 내면세계는 ‘무상(無相)’의 작업으로 이어져 생략과 압축, 시공간의 초월을 통해 진정한 한국적 모더니즘을 창출해냈다고 평가할 수 있다.
■ 전시 연계 교육프로그램
1. 상시 워크숍
1) <나의 진지한 고백>
- 일정/장소: 2023.9.14.(목) ~ 2024.2.12.(월) / 2전시실 앞
- 대 상: 일반 관람객
- 참여방법: QR코드를 통해 온라인 플랫폼에서 참여 및 공유
2) <내 마음으로서 그리는 그림>
- 일정/장소: 2023.9.14.(목) ~ 2024.2.12.(월) / 2전시실 앞
- 대 상: 일반 관람객
- 참여방법: 현장 참여
2. 작품 해설 프로그램
1) 성인을 위한 작품 감상프로그램
- 일정/장소: 2023.9.14.(목) ~ 2024.2.12.(월) 매일 3회(12:00, 14:00, 16:00)/ 전시장 내부
- 대 상: 일반 관람객 (*장애인은 누리집 별도 예약)
- 참여방법: 현장 참여
2) 수어해설 및 음성해설
- 대 상: 시청각장애인
- 참여방법: 전시장 입구 및 작품 옆의 QR코드를 통해 접속
※ 상기 일정은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세부 사항은 국립현대미술관 누리집(www.mmca.go.kr)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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