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노 탄생 120주년 특별전 《이응노, 동쪽에서 부는 바람, 서쪽에서 부는 바람》
2023.11.28 ▶ 2024.03.03
2023.11.28 ▶ 2024.03.03
전시 포스터
이응노
구성 1964, 종이에 수묵, 90×56cm, 일본 개인소장
이응노
구성 1964, 종이에 수묵 채색과 콜라주, 80×40cm, 한국 개인소장
이응노
무제 1970년대, 종이에 과슈, 80×98cm
이응노
군상 1985, 종이에 수묵, 97.1×67.6cm, 체르누스키 미술관, 파리 시립 아시아 미술관(Musee Cernuschi, Asian Arts Museum of Paris) 소장
이응노
파리 사람 1976, 종이에 수묵, 66.2×34.2cm, 체르누스키 미술관, 파리 시립 아시아 미술관(Musee Cernuschi, Asian Arts Museum of Paris) 소장
이응노
인물 스케치 1971, 종이에 먹, 색, 27.4x35.4cm, 유족 소장
이응노
구성 캔버스에 노끈과 종이 콜라주, 1979, 63.8×50.8cm, 체르누스키 미술관, 파리 시립 아시아 미술관(Musee Cernuschi, Asian Arts Museum of Paris) 소장
이응노
대죽 1932, 종이에 수묵, 161.5×68cm, 이응노미술관 소장
이응노
산수 1930년대 후반, 비단에 수묵채색, 30×36cm
이응노
지게꾼들 1940년대 후반, 종이에 수묵담채, 27×33cm, 한국 개인소장
이응노
정원 1956년경, 132 68cm, 종이에 수묵담채
이응노
고추 1979, 종이에 수묵담채, 33×33cm, 이응노미술관
이응노
동양미술학교의 스타쥬(하계연수회)에서 시범을 보이는 이응노
이응노
동양미술학교 수강생 모집 광고 연도미상
■ 전시 기획의도
《이응노, 동쪽에서 부는 바람, 서쪽에서 부는 바람》은 이응노 탄생 120주년을 맞이하여 국립현대미술관과 이응노미술관이 공동 기획·협력하여 마련한 전시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아라리오뮤지엄, 프랑스 국립 퐁피두 센터, 체르누스키 파리 시립 아시아 미술관 등을 비롯한 국내외 유명미술관과 개인 소장가가 소장해온 이응노 작품이 대거 전시된다. 60여 점의 출품작 중에서 그동안 국내에 공개되지 않았던 작품 40여 점이 한꺼번에 새로 선보이며 기존에 알려지지 않았던 이응노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60여 점의 출품작들은 대다수 국내 미공개 작이라는 점 외에도 이응노의 작품 세계 전체를 고르게 보여주도록 선정되었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1958년 유럽 이주를 기점으로 그 이전과 이후의 작품을 함께 전시한 까닭에 각 전시실을 둘러보며 이응노의 한국적 뿌리와 유럽에서 받은 자극이 어떻게 충돌하고 융합하여 독자적인 작품으로 탄생하였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이응노는 스스로 “자신의 작품은 10년마다 변화했다”고 말할 정도로 일생동안 끊임없는 도전과 혁신을 추구했다. 이에 걸맞게 한국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작품을 남긴 작가로 꼽힌다. 또한 유럽과 아시아, 미국 등 전세계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는 국제적인 작가이기도 하다. 폭넓은 활동반경과 오랜 작품활동으로 이응노의 전체 모습을 파악하는 것은 여전히 한국미술계가 안고 있는 숙제이다. 국립현대미술관과 이응노미술관은 이렇듯 변화무쌍한 작품세계를 재조명하기 위해 특히 한국에서는 관람하기 어려운 해외 소재 작품들을 이번 전시에 중점적으로 소개한다.
전시는 세 가지 관점에서 이응노의 예술을 조망하고자 한다. 첫째, 지금까지 잘 드러나지 않았던 이응노 예술의 특징을 미공개 작품을 통해 재조명하고자 한다. 둘째, 이응노 작품을, 관련된 스케치· 아카이브와 함께 살펴보면서 작품에 대한 구체적이고 풍부한 이해를 이끌어내고자 한다. 이응노가 남긴 스케치와 아카이브들은 작품 제작 과정과 주변 상황에 대한 생생한 기록으로 작품에 대한 공감을 높인다. 셋째 프랑스에서 이응노가 40여 년 동안 운영했던 파리동양미술학교를 소개한다. 교육자로서 이응노가 유럽 학생들에게 보여준 자세와 예술철학은 동양화가로서의 소명의식을 보여준다. 그리고 유럽에서의 오랜 활동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동양화가로서의 정체성을 간직했던 그의 내면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또 다른 열쇠가 된다.
특별전과 연계하여 국립현대미술관과 이응노미술관은 12월 11일(월) 국제학술심포지엄을 개최한다. 아라이 케이(도쿄예술대학 대학원 교수), 마엘 벨렉(체르누스키 파리 시립 아시아 미술관 학예사), 김현숙(미술사학자)
이나바 마이(광운대학교 부교수), 정창미(전남대학교 강사) 등 5명의 프랑스·일본·한국의 연구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이응노에 대한 새로운 연구를 발표한다. 전시와 연계된 학술심포지엄 역시 이응노에 대한 기존 연구에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이러한 학술심포지엄 개최는 2020년 신설된 이응노연구소와 학예연구사들이 협업하여 이응노 작품을 연구하는 이응노미술관의 독자적인 성격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 전시장 구성
1전시실_ 충돌과 융합
1전시실은 이응노가 유럽에서 활동을 시작한 1959년 이후 그린 작품들 가운데 걸작들만을 모아서 구성된다. 특히 국내외 미술관과 개인 소장품 중 지금까지 한국에서 공개되지 않았던 작품들이 한꺼번에 전시되어 기존에 알려지지 않았던 이응노의 다채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
해외 미술관 중에서 이응노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기관은 체르누스키 파리 시립 아시아 미술관이다. 작품 소장의 시작은 1971년 이후 체르누스키 파리 시립 아시아 미술관에서 정기적으로 동양화와 서예수업을 열던 이응노가 수업시간에 그렸던 작품을 미술관에 기증하면서부터였다. 이응노의 서거 후 유족들은 2013년부터 지속적으로 작품을 기증했고 체르누스키 파리 시립 아시아 미술관은 2017년 그동안 수집한 소장품들을 토대로 《군중 속의 사람 l'homme des foules》이라는 대규모 회고전을 개최했다. 프랑스 퐁피두 센터 역시 이응노의 부인 박인경 화백이 기증한 작품을 가지고 2017년 《이응노 기증작품전》을 기획전으로 열었다. 이번 120주년 기념 특별전에는 또 1980년대 이응노의 새로운 활동무대였던 일본에 소장된 작품들도 전시된다.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를 지닌 관람객들을 만나며 이응노의 작품은 어떻게 변화했는지, 이응노의 작품 속에서 한국미술과 유럽미술은 어떻게 충돌하고 창조적으로 변화했는지를 추적하고 상상하는 것은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1960년 프랑스에 정착한 이응노는 한국에서와는 완전히 다른 작품, 곧 추상을 실험하였다. 표면이 마모되어 새겨진 글씨를 알아보기 힘든 비석의 표면과도 같은 이 시기 작품들은 ‘사의적(寫意的, 뜻을 그린다는 의미) 추상’이라고 불렸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1964년작 〈구성〉은 이 ‘사의적 추상’이 가장 무르익은 시기의 작품이다. 바탕을 검게 칠하고 글씨의 필획에 해당하는 부분을 희게 남겨서 마치 네거티브 필름같은 느낌을 주며 전통 서예와는 상반되는 구성을 보인다. 뛰어난 서예가이기도 했던 이응노가 한국 서예의 전통을 바탕으로 추구한 새로운 실험작이다. 한자의 획 혹은 고대 중국의 청동기에 새겨진 상형문자같기도 한 하얀 형상들은 빛이 닿지 않는 깊은 바다 속에서 유영하는 생명체처럼 빛난다.
이 작품은 특히 1989년 도쿄와 오사카에서 열린 이응노 추모전에 전시된 작품으로 한국에는 처음 공개된다. 작품의 소장가는 1989년 도쿄에서 열린 이응노 개인전을 기획했던 재일한국인이다. 1985년 일본에서 열린 이응노 전시회를 통해 각별한 인연을 맺은 소장가는 직접 파리의 이응노 아틀리에를 방문하여 함께 이 작품을 포함한 출품작들을 선정하였다. 그러나 1989년 이응노의 잡작스러운 서거로 계획했던 개인전은 추모전으로 성격이 바꿔 열리게 되었다. 1980년대 이응노의 일본 활동에 대한 증거이자 아름다운 인연을 간직한 작품이다.
역시 1964년작인 이 〈구성〉 역시 ‘사의적 추상’의 하나이다. 변형되고 해체된 한자의 획을 이용한 화면은 이 시기 작품들의 공통된 특징이다. 그러나 흰 필획을 따라 구긴 종이를 콜라주하고 그 위에 채색을 한 기법은 콜라주와 서체추상이 결합한, 여지껏 본 적이 없는 조형방식이다. 동일한 시기에 동일한 추상을 그리면서도 계속해서 이제까지와는 다른 것, 색다른 것을 시도하는 이응노의 호기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누구보다도 강한 필력을 지녔으면서도 이에 머무르지 않고 붓 대신 직접 손으로 종이를 구기고 붙여가며 작품을 만드는 혁신이 이응노에게는 일상적이었다는 점이 놀라울 따름이다.
1962년 이응노는 파리의 갤러리 파케티에서 처음 개인전을 가졌다. 갤러리 파케티는 미국의 잭슨 폴록을 처음 프랑스 미술계에 소개한 갤러리로서 앵포르멜 운동의 중심지였다. 이 전시를 통해 이응노는 유럽 미술계의 중심으로 곧장 진입할 수 있었다. 갤러리 파케티에 출품된 작품들은 종이 콜라주가 대부분이었다. 이후 점차 사의적 추상으로 옮겨가면서도 이응노는 이전에 습득했던 방식을 새로운 기법과 결합시켜 신선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곤 했다.
1970년대부터 이응노는 프랑스 국립 태피스트리 제작소, 세브르 국립도자공장 등과 같은 국립기관들과 협력하여 태피스트리, 도자기 등을 제작하였고 이러한 경험은 그가 새로운 회화에 눈을 뜨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에 있을 때도 이응노는 대전, 전주 등에서 ‘개척사’라는 이름의 일종의 인테리어 사업을 했기 때문에 디자인적인 요소가 낯설지는 않았다. 또 아들 이융세의 증언에 따르면 이 무렵 이응노는 멕시코 등 남아메리카 미술에도 관심을 가졌다. 화려한 색채와 기하학적인 형태들이 강렬한 인상을 주는 1970년대 후반의 〈구성〉은 이러한 작가의 변화를 드러낸다. 원색과 평면적인 배경 구성, 굵은 윤곽선으로 둘러싸인 도형들은 수묵화가 이응노의 또 다른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세 명의 사람이 하나의 거대한 날개를 지닌 형상은 이응노의 작품에서 ‘가족’을 의미하기도 한다. 작가 자신과 부인, 그리고 아들이 함께 등장하는 이 도상은 한자 ‘좋을 호(好)’에서 발전하였다. 원색이 주는 밝고 화사한 느낌이 가족의 따뜻함을 훌륭하게 시각화하고 있다.
1980년대 이응노의 그림 속에는 수많은 인간이 무리를 지어 움직이는 모습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뻗친 사람, 온 몸을 힘껏 열어 젖인 사람, 높이 뛰어오는 사람, 그리고 서로 손을 잡고 달려가는 사람들 등이 나타났다. 하나하나가 모여 어느새 화면을 가득 메우는 거대한 무리를 이룬다. 모였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하는 이들 무리는 마치 파도와도 같은 리듬으로 요동치며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군상〉시리즈는 이응노의 마지막 변모이자 백조의 노래처럼 모든 것을 쏟아부은 작품들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작품을 본 사람들이 저마다가 속한 역사적, 사회적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의미를 연상한다는 점이다. 한국사람들은 민주화 운동을 떠올리지만, 유럽사람들은 반핵운동이나 반전(反戰) 시위를 그린 것으로 이해한다. 이제 그의 작품을 보는 사람들은 축제를 연상한다. 사실 이응노가 1980년대 직전까지 그렸던 작품들의 주제가 ‘춤’이었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그의 작품에서 춤추는 사람들을 발견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인다. 어느 쪽이든 이응노의 〈군상〉에는 기쁨의 노래가 담겨 있고 보는 이들에게 웅장함을 선사한다.
2전시실_ 서쪽에서 부는 바람 : 유럽, 1959-1989
2전시실은 1989년 이응노가 서거 직전에 그린 작품 〈군상〉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이응노가 막 유럽에 도착한 1959년 작품에 이르도록 구성되어 있다. 즉 1989년의 〈군상〉에서 출발하여 1959년 독일에서 그린 〈문자도-산(産)〉에서 끝난다. 이응노의 유럽활동시기는 30여 년의 긴 시기이지만 그 시기의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하는 작품은 아이러니하게도 종이와 붓, 먹이라는 동아시아의 전통 재료로 그렸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오랜 유럽활동에도 불구하고 이응노 작품의 바탕은 동아시아 전통이었음을 웅변하고 있다.
2전시실에 전시된 작품들은 이응노가 유럽에서 처음 새로운 서구의 예술 경향을 받아들이며 재료 실험을 하던 콜라주에서부터 사의적 추상, 서예적 추상, 군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여기에 대나무, 난초 등을 먹으로 그린 전통 사군자와 독특한 스타일의 서예 작품도 있다.
또 2전시실에서는 이응노의 스케치 60여 점을 감상할 수 있다. 작품화되기 이전의 스케치들은 생생하고 날 것 그대로의 아이디어를 보여준다.
두꺼운 외투와 모자를 쓴 인물이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모습을 그린 〈파리 사람〉에는 이응노의 유머러스함이 담겨있다. 그의 기억 속 1950년대 한국에서는 낯선 풍경이었을 것이다. 나란히 전시되는 인물 스케치에서도 특이한 복장을 한 남녀를 숙달된 솜씨로 단번에 포착하고 있다. 손에서 붓과 스케치북을 놓은 적이 없다는 이응노는 마치 어린아이와 같은 호기심으로 주변을 응시하고 소재를 발견하곤 했다.
1970년대 이응노는 여러 지역의 고대문자를 이용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이집트 상형문자, 아프리카 원시 문자, 중국의 고대 갑골문자와 한자, 아랍문자 그리고 한글까지 포함된 전세계 다양한 문자들이 그의 작품 속에서 서로 결합하고 해체되며 여러 가지 형상으로 재창조되었다. 화면 속 문자들은 문자-기호의 뜻과는 상관없이 순수한 미적 요소로서 존재한다. 물론 간혹 본래의 의미를 그대로 드러내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응노 스스로는 이렇듯 문자를 이용한 자신의 작품을 ‘서예적 추상’이라고 불렀다.
1970년대 작품들은 또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재료를 많이 사용하여 제작하였다. 솜, 양털, 융, 부직포, 삼베, 모직 등을 사용하여 작품을 제작하였고 이렇게 제작된 작품들은 마치 벽에 거는 양탄자와 같은 인상을 남겼다. 전시된 〈구성〉은 거친 질감의 바탕 천에 같은 색감의 종이를 뜯어 붙인 후 종이를 꼬아 만든 노끈으로 형상을 만들었다. 바탕색과 종이, 노끈의 색이 어우러지면서 은은한 아름다움을 풍긴다.
3전시실 동쪽에서 부는 바람 : 아시아, 1930년대-1959년
3전시실은 이응노가 유럽으로 이주하기 이전의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1930년대 이응노가 즐겨 그렸던 대나무와 난초 그림, 1936년에 일본으로 유학을 간 후에 그린 실경산수화, 해방 이후 1950년대의 대표적인 인물화 등이 골고루 전시되어 있다. 이 시기에 그가 습득했던 동아시아의 미술 전통은 유럽에서 이응노가 활동하는 데 끊임없이 자양분을 제공한다.
‘죽사’라는 호가 알려주듯이 이응노는 1930년대 대나무 작가로 이름을 날렸다. 전시된 〈대죽〉(1932)과 〈분란〉(1933)은 초기 이응노 사군자 그림의 특징을 보여준다. 전통적인 사군자를 즐겨 그리던 이응노였지만 현대미술을 연구하고자 하는 열망도 함께 지니고 있었다. 행동가였던 이응노는 자신의 열망을 주저하지 않고 실천에 옮겼다. 그는 1936년 일본으로 유학을 가 동양화와 서양화를 동시에 공부하면서 사군자 작가에서 산수풍경화가로 변신하였다.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되는 〈폭포〉, 〈산수〉 등은 일본에서 새로운 화풍을 통해 변모를 시도하던 당시의 모습을 보여준다.
해방 후 이응노는 〈민충정공절죽도〉처럼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작품을 그리는가 하면, 풍속화적인 요소가 가미된 인물화도 집중적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굴뚝청소부, 지게꾼, 공사장 인부와 같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들을 소재로 한 그의 작품은 1950년대 한국의 모습을 가감없이 전달한다. 또 이응노는 1950년대 중반부터 ‘반추상’이라는 새로운 회화를 시도하며 세계적인 미술의 흐름에 동참하고자 노력했다.
1932년 〈대죽〉은 조선총독부가 주관한 《조선미술전람회》 제11회 전시회에서 무감사 입선한 작품이다. 무감사 입선은 이전 전람회에서 상을 받은 작가가 다음 해에는 심사받지 않고 전시를 할 수 있게 혜택을 주는 제도이다. 1924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스승인 김규진 스타일의 대나무 그림으로 처음 입선한 이응노는 이후 계속해서 수상을 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1931년의 어느 봄날 몰아치는 비바람에 술렁거리며 이리저리 쓰러지는 대밭의 모습을 보며 강한 충격을 받았다. 자신이 지금까지 스승을 본받아 그리던 천편일률적인 대나무 모습과는 전혀 다른 드라마틱한 움직임을 보며 살아있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느낀 것이다. 이 해에 이응노는 자신만의 색깔을 입힌 대나무 그림 두 점을 출품했고 그 중 〈청죽〉이 특선을 차지했다. 이번 전시회에 출품된 1932년작 〈대죽〉은 이응노의 개성이 드러나는 대나무 그림이다. 화면 한 가운데를 수직으로 뻗은 대죽을 굵은 붓으로 단번에 내리긋고 양 옆에는 가느다란 줄기를 배치하여 서로 대조를 이루게 한다. 시원하게 뻗은 대죽의 호방함이 강직한 느낌을 잘 표현한다. 1930년대 초반 작품이 많이 남아 있지 않는 상황에서 이응노의 초기 대나무 경향을 보여주는 귀한 예이다.
이응노는 1936년 초겨울 무렵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사군자와 서예가 미술이 아니라는 의견이 점차 미술계에 확산되면서 전문적인 화가로서 자신의 앞길을 개척하기 위해서였다. 일본에서 이응노는 일본화뿐만 아니라 도쿄의 혼고(本鄕) 양화연구소에서 서양화도 함께 배웠다. 일본 유학 시절인 1939년 무렵 ‘죽사’라는 호 대신 ‘고암’이라는 새로운 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산수〉는 여전히 ‘죽사’라는 호를 사용한 점에서 일본 유학 초기에 그린 작품으로 추측된다. 일제강점기 한국의 산수화에서는 보기 드문 청록색으로 그려졌는데 청록산수는 중국 전통산수화의 한 종류이다. 전통적인 색채를 사용했지만 마치 인상파의 붓터치처럼 점점이 찍힌 점들이 경쾌하고 세련된 현대회화같은 느낌을 준다.
이응노는 “권력자보다는 약한 사람들, 함께 모여 살아가는 사람들, 움직이는 사람들, 일하는 사람들, 뭔가 말할 수 있는 사람들 쪽에 관심이 갔고 그들 속에 나도 살아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그의 생각은 이미 1950년대 평범한 삶 속에서 노동하는 사람들을 그린 〈영차영차〉, 〈굴뚝청소부〉, 〈지게꾼들〉 같은 작품 속에 뚜렷하게 담겨 있다. 굵고 투박한 선과 대범하게 칠한 배경의 색채가 어우러지면서 마치 스냅사진처럼 일상의 한 장면을 포착한 느낌이다.
〈정원〉은 1958년 서울의 중앙공보관에서 열린 《고암 이응노 도불기념 작품전》 출품작으로 추측한다. 이때 이응노는 출품한 작품들을 판매하지 않고, 1959년 유럽으로 가져가 유럽화단에 선보이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같은 전시에 출품한 〈생맥〉, 〈비원〉 등과 마찬가지로 〈정원〉은 강한 먹과 자유분방한 필치가 강조되어 있다. 거침없이 긋고 찍은 표현이 오히려 꽃의 강인한 생명력을 잘 표현한 아름다운 작품이다.
4전시실 동양미술학교 (1960년대 – 현재)
4전시실은 이응노가 프랑스에서 운영한 동양미술학교와 관련된 작품 및 아카이브로 구성되어 있다. 프랑스에 정착한 이응노는 1962년경부터 자신의 아틀리에에서 동양화와 서예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의 수업 과정은 유럽 최초의 동양화 교육 프로그램이었다. 1965년부터는 체르누스키 미술관에서도 가르치기 시작했고 ‘동양미술학교’라는 명칭을 쓰기 시작했다. 체르누스키 미술관과 자신이 설립한 고려화랑에서 제자들의 작품 전시회도 열었다. 동양미술학교는 최근까지 꾸준하게 진행되면서 3,000명이 넘는 다양한 국적의 제자를 육성하였다.
동양화를 가르치는 교육기관의 설립은 이응노가 해방 직후부터 꿈꾸어 왔던 것이었다. 1945년 서울 남산의 ‘고암화숙’, 1956년 서울 신교동의 ‘고암미술연구소’에서 이미 이응노는 젊은 동양화가들을 키우고 있었다. 직접 『동양화의 감상과 기법』이라는 교재를 출간할 정도로 미술교육에 강한 집념을 지녔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유럽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파리의 동양미술학교에서는 동양의 회화와 서예에 호기심을 가진 일반인들도 있었지만 건축가, 조각가, 도예가 등 이미 자기 분야에서 전문가로 활동하던 예술인들이 고암에게 동양화와 서예의 철학과 기법을 배우기 위해 모여들었다. 제자들을 대하는 교육자로서 그의 태도에는 동양화가로서 소명의식이 깃들어 있었다. 동양화에 대한 이응노의 열정은 제자들에게도 전해졌고 이들은 동서양 미술의 융합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창조하였다. 스승 이응노를 기리는 제자들의 모임은 현재에도 이어지며 이응노가 유럽에 남긴 족적을 기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4전시실에는 이응노가 제자들에게 시범으로 그린 작품들과 다양한 아카이브가 선보이고 있다. 아카이브는 미술학교 수업광경, 프랑스 어를 할 줄 모르는 이응노가 몸짓과 손짓으로 제자들에게 서예를 가르치는 모습 등을 전해주는 사진 아카이브, 동양미술학교를 홍보하는 신문기사, 이응노가 직접 만든 동양미술학교 작품전 초대장 등이 포함되어 있다.
*본 전시에 소개된 다수의 작품은 체르누스키 파리 시립 아시아 미술관의 대여 협조를 받았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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