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한원미술관 하반기 기획전 - 存在의 遊戱
2010.09.04 ▶ 2010.09.30
2010.09.04 ▶ 2010.09.30
김경경
노스텔지어 oil painting on canvas, 130.3×112.0㎝, 2010
이혜리
blue 캔버스 위에 혼합재료, 116x91cm, 2010
양미연
거리두기 oil on canvas, 145.5x60.6cm, 2008
장원영
구름과 함께 우리도 Digital C-print on woodrock layer, 76x180cm, 2009
함명수
찻잔 Oil on canvas, 116.8 x 91cm, 2009
투영: 存在의 遊戱
존재에 관한 7가지 辯
존재(being)는 인간이 인식하는 모든 세계에 관한 사유의 대상이다. 실존적인 인간이 집요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관심사는 바로 존재인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세계는 무엇인가, 신(神)은 존재하는가로 시작되는 물음은 아마도 인류의 존재에 관한 물음의 시작으로써, 세상에 존재하는 철학은 존재에 관한 성찰과 깨달음으로부터 변화하고 발전하였다고 해도 과연은 아닐 것이다. 형상과 질료, 현상계와 이데아와 같은 이분법적인 구조로 세계를 인식하였던 그리스의 철학에서나 불교와 같이 제법무아(諸法無我)에서처럼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존재의 구조를 와해시키는 철학은 모두 존재론에 입각한 사고의 체계들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적 모색들이었다. 인간, 자연, 사물, 관계의 존재와 같이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환경에는 존재론적인 이해가 필요하게 된다. 이는 철학적 사고의 원동력뿐만 아니라 예술적인 감각의 원천이라 하겠다.
미술관이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기획한 투영전은 존재의 이야기들을 거울과 같은 반사광으로 다시 재조명하는 전시로써, 존재와 존재의 관계와 의미체들을 찾아나서는 작가들의 물음의 여정들을 보여주기 위한 장(場)이다. 이것은 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하늘의 이야기를 반영하지만 물의 사고로써 세계를 반영한다는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각기 다른 시선들이 투과한 예술의 세계는 그 시대 사람들의 삶과 생각들을 반영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存在의 遊戱展은 이 시대의 화가들이 나와 세계, 물질과 자연을 읽어내는 과정을 "존재(being)"라는 거울을 통하여, 존재하는 것들이 어떻게 화가의 의식에 유입되어 조형으로 완성하는 지에 관한 이야기이다. 김경경, 양미연, 이혜리, 장원영, 정연연, 스테파노 보나지(Stefano Bonazzi), 함명수 7인의 전시는 각기 자신의 시선에 내적으로 외적으로 들어와 굳게 자리 잡힌 세계의 존재들에 관하여 토해낸 존재의 양상에 관한 7가지 변(辯)이다.
김경경은 골무를 통해 과거의 추억을 끄집어낸다. 이는 단순한 과거로 머물지 않고 인류의 기원과 신화로 거슬러 올라가는 신비하고 화려한 조형으로 완성해 낸다. 화가의 추억 속에 존재하는 골무는 어린 시절 작가와 함께한 어머니의 기억이자 화가의 과거에서 확장된 인류의 과거에 관한 은유(metaphor)이다. 작가는 이 골무를 쓰고 마치 마술 모자를 쓰고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거나 초능력을 갖고 신비한 마술을 부리는 것처럼, 반짝이며 빛나는 신화와 환상이 공존하는 먼 과거로의 여행을 시작한다. 이 세계는 화가의 작은 추억이 자라나 꽃을 피우며, 인류가 꿈꾸고 되돌아가고픈 에덴동산과 같은 원시의 파라다이스로 연출된다. 사실, 그의 화면은 오롯하게 몰입된 무아(無我)의 세계로서, 정신과 자연이 합치(合致)된 형상과 본질의 구별을 뛰어넘어 의미의 대치(代置)와 확장을 선보인다. 그래서 완성된 조형에는 실재와 환상을 넘나드는 자유로운 상상력과 고전과 현대가 교차되는 화려한 색의 변주가 연출된다. 그리고 그 곳에는 어린 시절의 우리가 꿈꾸던 세계에 관한 신비한 상상이 숨쉬고, 잃어버린 우리의 어릴 적 추억과 그 시간을 넘어서는 아득하고 영원한 신화에 대한 그리움과 동경으로 가득 차 있다.
스테파노 보나지(Stefano Bonazzi)는 실재와 환상을 넘나들며 컴퓨터 그래픽이라는 테크놀로지가 이룩한 시각적 변용의 세계를 ‘지구 최후의 날’이라는 특정 시간을 통해 조명한다. 작가의 시선에 포착된 실재의 기물들(의자, tv, 가방)은 인류의 마지막 날에 인간이 떠나야 할 시간과 융합됨에 따라 미묘하게 확장해 가는 상상의 세계의 문을 열어준다. 언제인가는 닥쳐 올 지구의 마지막 시간은 영원한 무한대의 어느 한 지점이며 무한대에 놓여 진 시간과 순간의 존재를 첨단 테크놀로지의 힘을 빌려 그리기의 한계, 상상력의 한계를 메꾸고 그 확장된 가시적인 세계로 도출된다. 그 안에는 눈이 시리도록 멋진 세계가 연출되고 있지만 동시에 최후의 날에 관한 경각심과 우리 모두가 지켜나가야 할 아름다운 지구에 관한 범인류애적인 시선이 내재되어 있다.
이혜리는 자신의 특정한 추억과 순간의 기억에 강하게 포착된 공간을 존재론적으로 조명한다. 화가의 방, 카페, 풍경 이들은 모두 작가의 일상을 간직한 공간들로써 작가의 존재와 공간, 시간과 공간에서의 기억들이 융합되어 나타난다. 이러한 외부존재인 일상의 공간들은 자신의 내적인 휴식을 취하거나 정신적 위안을 형성하게 하는 사적(私的) 공간인데, 점과 점을 잇고 조합하는 과정해서 구조화된 집은 찬란하게 빛나오르거나 스스로 발광하는 검은 빛 내면 속의 밝은 기억들처럼 깊고 아련하다. 이들은 모두 작가가 자신의 내적으로 채우고 비운 제 3의 공간임을 알게 한다. 화가가 그리는 공간은 그 속에서 안락을 꿈꾸는 자신의 내밀한 감성이 자라나는 은밀한 곳임을 알게 되는데, 외부의 공간이 작가의 경험과 융합되었을 때 그것은 화가의 빛나는 영감(靈感)의 공간임을 깨닫게 된다.
양미연은 군중의 존재, 인간의 존재에 관해 인간과 인간사이의 거리를 통해 조명한다. 서늘한 낯선 시간들이 존재하는 그의 군집들에서 무던한 현대인들의 일상의 삶이 묻어난다. 그들은 존재와 존재가 개별적인 삶을 영위하는 독립된 개체임이 뚜렷하게 가시화 되는데, 이는 현대인의 삶의 방식이며 집단화와 공동체적인 삶을 살았던 과거의 인간 존재형태를 완전히 벗어난 모습이기도 하다. 작가의 시선에 포착된 낯선 존재들이 군중의 폭력, 상처에서 일정한 거리두기를 통해 자아의 정체성을 확보해 나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감정의 절제를 통한 ‘세상 바라보기’로 완성되고 있다.
장원영은 북아현동의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사진 꼴라쥬로 표현한다. 작가는 오랜 시간을 외부 현상을 보아오던 특정의 마을이 그의 마음속에 각인되어 들어옴에 따라 그들의 진정한 삶의 풍경들을 쫒기 시작한다. 그렇게 채집된 북아현동의 모습은 이 시대의 삶의 진솔한 모습들이 살아 있는 작품으로 변환된다. 마치 김춘수의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실존적 인식을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의 작품에는 사진이 전하는 다큐멘타리적 보도의 진실성과 낙후된 오랜 마을에 관하여 자신이 체험(體驗)해 보지 못한 외적 시선이 얼마나 의식의 편견을 불러일으키는가에 관하여 설명한다. 내게로 와서 비로소 꽃이 된 북아현동의 풍경 속에 진실하고 따스한 삶의 리얼리티가 숨겨져 있음을 여러장의 이어부친 사진 사이사이로 작가의 시선들이 드러난다.
정연연은 여성이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을 여성 심리학적인 측면을 대입하며 그려낸다. 여성을 소재로만 그려온 작가는 여성이 여성에게 주는 존재의 다양한 스펙트럼에 관하여 설명한다. 다정하고 따스하고 질투하고 고발하고, 이는 모두 여성이 갖는 대립적인 감정이자 인간의 숨길 수 없는 표정이다. 어쩌면 여성을 말하고 있지만 이는 여성이 여성에게, 남성이 남성에게 동성이 전하는 자신들의 적나라한 얼굴이기도 한 것이다. 작가의 작품에는 고전적인 페미니즘의 형상이 숨겨져 있다. 이것은 일종의 작가가 치유 받고자 하는 동성에게서 입은 “트라우마 그리기”라고도 볼 수 있다. 여성이 존재함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여성에 관한 담론, 감정의 궤적이 무한 확장해 나가는 여성에 관한 숨길 수 없는 이야기다.
함명수는 회화가 갖는 그리기의 존재자체에 관하여 물음을 던진다. 그리기란 무엇인가, 형과 색의 본질적인 상태는 무엇인가에 관한 탐구는 작가의 그리기의 열정으로 살아난다. 지극한 세계의 탐구는 반대로 지극한 나(자아)의 탐구와 동일시된다라고 볼 때, 작가는 어쩌면 자신의 존재를 찾아 떠나는 여정처럼 세계의 존재들을 탐색한다. 털실 같은 찻잔, 강철 같은 민들레, 국수 같은 도시 이는 모두 작가가 그리기로 변환한 세계의 모티브들이다. 형상을 그린 후 붓이 지나간 궤적들을 지우는 지난한 과정 속에서 작가의 존재 찾기는 시작된다. 이는 곧 회화는 세계의 재현인가 자아의 재구성인가라는 그림의 본질적인 물음에 관한 작가의 고민인 것이다.
이러한 7가지 존재에 관한 변(辯)들은 회화에서부터 출발한 존재의 물음이 인간, 인간이 살고 있는 공간, 그 속에서의 추억과 상상,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 이들은 생물학적 시각으로 들어온 외부 존재에 관한 회화적 재현과 물질과 정신과 시간이 융합된 내부존재에 있어서 무한대로 확장해 나아가는 의식의 변이들을 가시화 한다. 7인의 작가들을 통하여 지나쳐간 우리들의 추억, 내가 사는 공간, 나의 이웃 그리고 그림에 관한 진지한 존재론적 성찰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박옥생 - 한원미술관 큐레이터, 미술평론(2010.8)
1966년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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