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 포라스-김
전시전경
리움미술관은 미술관 공간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차세대 국내 작가를 조명하는 ‘공간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박보마(b.1988)의 《물질의 의식》을 선보입니다. 박보마는 드로잉과 오브제, 우발적인 행위와 향 등 다양한 매체와 다중적인 정체성을 경유하여 빛이나 공기처럼 가변적인 물질과 여성적 혹은 부차적으로 취급되는 존재를 위한 자리를 만드는 작가입니다. 《물질의 의식》은 휴게 공간인 로비 ROOM을 가상 회사의 리셉션 공간으로 연출하여 미술관의 틈새 공간을 감각적인 무대로 전환하고, 관객의 공감각적 체험을 도모합니다.
통상적인 회사와 달리 박보마의 가상 회사 Sophie Etulips Xylang Co.,는 잠시 존재했다가 사라지는 빛과 인상에 불과합니다. 고층 빌딩에서 볼 수 있는 대형 유리 파사드와 대리석같이 위엄을 드러내는 자재는 이곳에서 한층 가볍고 하찮은 물질로 대체됩니다. 임원진의 초상은 이름도 얼굴도 없는 실루엣에 불과하며, 그 주위 산발적으로 배치된 오브제는 망각의 영역으로 밀려난 존재를 애도합니다. 미세하게 떨리는 벽의 진동, 은은하게 스미는 향과 공중을 누비는 모호한 사운드는 발언권이 없는 가변적인 물질을 주요 등장인물로 내세웁니다. 이처럼 반전된 회사에서 치르는 물질의 의식(ritual of matter)은 시장체제에서 무가치하다고 치부된 물질이 오히려 풍성한 존재감을 드러내도록 합니다.
《물질의 의식》이 영위하는 공간은 저마다의 목적지로 발을 옮기기 전 관객이 잠시 머무는 중간적인 영역입니다. 이곳에 펼쳐진 물질은 영구히 보존될 가치를 증명하지 못하고,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증발하듯 사라질 운명입니다. 하지만 이처럼 덧없는 물질에 헌정된 의식은 ‘진짜’라고 인정받은 것과 인정받지 못한 것을 구별하는 가치 체제에 균열을 내고, 시각중심주의적인 전시 관례에 도전하는 미러링 혹은 반전의 시도입니다. 일시적으로나마 이 공간을 경험하는 일은 쉽게 소비되고 폐기되는 이미지와 순식간에 떠오르고 사라지는 심상에 헌정된 의식에 참여하는 행위가 됩니다.
전시 개막 주간에 진행하는 퍼포먼스 〈오페라: 하늘색 무한 카논〉은 물질의 의식을 미술관 로비 공간으로 확장합니다. 이 공연은 퍼포머가 매개하는 정념, 망각된 물질을 애도하는 소리, 미술관 안팎을 돌보는 직원의 행위로 로비를 재조직하여 견고한 것과 흐르는 것이 구별 없이 서로 공명하는 상태를 연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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