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홍구 개인전 <그 집 - THE HOUSE>
2010.09.01 ▶ 2010.10.03
2010.09.01 ▶ 2010.10.03
강홍구
그집-붉은 담쟁이 pigment print,ink,acrylic, 200x115, 2010
강홍구
그집-붉은지붕 pigment print,ink,acrylic, 200x100, 2010
강홍구
그집-살구 pigment print,ink,acrylic, 127x100, 2010
강홍구
그집-상추 pigment print,ink,acrylic, 155x70, 2010
강홍구
그집-암벽 pigment print,ink,acrylic, 200x105, 2010
강홍구
그집-푸른지붕 pigment print,ink,acrylic, 200x100, 2010
강홍구
그집-황토 pigment print,ink,acrylic, 127x100, 2010
그 집 THE HOUSE
1.가끔 집에 대한 꿈을 꾼다. 세 들어 살 집을 찾거나 세든 집에서 생긴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쓰는 꿈이다. 아니면 그저 집을 돌아보는 꿈도 있다. 빗물에 얼룩진 벽지에 핀 곰팡이, 비틀려 맞지 않는 문, 습기 찬 바닥에 구멍 뚫린 비닐장판이 깔려 있는 집들이다. 일본식과 한식, 양식이 절충된 그 낡은 집의 주인은 아주 늙은 노부부이거나 아예 얼굴을 모른다. 꿈 마다 조금씩 바뀌지만 불편한 집이라는 것, 구조가 기이하다는 점은 같다. 지금 까지 수없이 세 들어 살면서 겪었던 집들이 가진 나쁜 점만을 모아놓은 듯한 집이다.
일종의 악몽이다. 때로는 그런 꿈을 꾸다 깨어 새벽에 멍하니 앉아있기도 한다. 그런 때는 꿈에 나오는 집이 일종의 업(業)이라는 생각, 혹은 꿈 속에 있는 그 집에서 이사가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전시 준비를 하면서도 그런 꿈을 두어 번 꾸었다. 낡은 집, 이제 사라져 없어진 집들에 대한 작업을 하는 것 역시 일종의 업(業)인가. 이제 그 집들과 헤어지고 싶기도 하다.
2.일반적인 의미에서 사진과는 약간 다른, 그러나 꼭 그렇지도 않은 작업을 십여 년 째 해오고 있다. 주로 재개발, 뉴 타운 등등 -이제 모두 사라져버린 집들과, 공간, 나무와 물건들을 찍고 편집하고, 인화하고, 전시했다. 이런 작업을 처음 시작할 때 재개발과 부동산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뭔가 변하리라고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찍어도 찍어도 재개발과 뉴타운은 끝없이 쏟아져 나오고, 원주민들은 집과 삶터를 잃고, 사람들은 죽어가고, 투기와 비리와 부패의 사슬은 멈추지 않는다.앞으로도 나아질 가망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조금 나아졌다는 게 지금 큰 이익이 없으니까 재개발, 뉴타운은 잠시 보류해두자 라는 태도, 아니면 지금 까지 뭘 해왔는지 뒤돌아보는 정도일까.
3.그 집들, 이제는 사라져 없어져 버린 아까운 집들. 북한산 족두리봉 기슭의 불광 재개발 2, 4, 6 지구, 오쇠리, 은평 뉴타운, 세종시 문제로 시끄러운 충남 연기군 종촌리 등에서 찍은 집들. 그 모든 집들이 지금은 흔적도 없다. 누가 기억이나 해줄까?
건축가가 설계한 것도 아니고, 문화재도 아니며, 재산 가치도 적고, 심지어 공식적으로 재개발 지역을 사진 찍고 기록하는 일도 시작 된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으니 사진 찍히지도 않았다. 다시 말하자면 공적인 기억과 기록에서는 사라져 버렸다.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러나 그 집들은 내 눈에는 건축가가 설계한 집이나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건물들 보다 흥미롭다. 특히 북한산 족두리 봉 아래 집들이 그랬다. 산비탈에 세워진 집들은 하나도 같은 게 없었다. 입지 조건에 따라 제각각이었다. 가파른 비탈과 계단을 오르내리며 사는 것은 불편했겠지만 전망은 좋았다. 게다가 모든 공간에는 사람들의 삶의 흔적이 깊이 배어있었다. 아마도 그것은 집을 짓고, 고치는 모든 과정에 사는 사람의 손이 갔기 때문일 것이다.바위투성이의 산언덕에 한 채의 집을 짓는 것은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겠는가. 비탈진 곳을 평평하게 고르고, 무거운 재료들을 운반하고 그것들을 제 위치에 놓고, 시멘트를 발라 계단을 만들고.... 무엇보다 돈을 마련해야 하고, 바위들과 적당히 타협해야하고. 때문에 높은 곳에 있는 집일 수록 바위가 길과 마당에서 불쑥 불쑥 튀어나와 있다. 심지어 어떤 집은 방 한쪽 벽이 바위로 되어있기조차 했다.
그 집들은 사람이 어떻게 공간을 이용하고 적응해서 삶을 꾸리는지를 잘 보여 주었다. 재료들이야 빤하다. 시멘트, 기와, 목재, 플라스틱 등 결국 아파트를 짓는 재료와 똑 같다. 하지만 그 재료들이 가진 놀라운 개별성과 개성이 훨씬 잘 드러난다. 발레리가 그랬던가. 인간이 만든 구조물은 그 재료들 보다 단순하다고.
4.사람이 살지 않게 된 집들은 비자마자 사람들의 공격을 받는다. 계단의 금속제 난간과 방안에 깔린 구리 온돌 파이프를 사정없이 뜯어간다. 알루미늄 창틀이나 철제 대문이 사라진다. 살던 사람들이 버리고 가는 것도 가지가지이다. 누군가는 앨범을 통째로 버리고 간다. 가족 앨범이다. 결혼식부터 아이가 태어나서 자라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긴 앨범들인데 모조리 버렸다. 성혼선언문이나 조상들의 낡은 흑백 사진들도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사라져버린 모든 집들은 건축의 원형에 가깝다. 거기에는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 심미성과 실용성에 관해 이론 따위를 찾아서 적용한 흔적이 없다. 그리고 그럴 여유도 이유 없다. 우리가 건축이라고 말하는 건축 이전의 건축, 더 정확히 말하면 생존의 건축이라고 할 수 있다. 건축이 곧 생존인 집들이기 때문에 당연히 원형적이다. 재료는 비록 현대적이지만 짓는 정신과 태도는 원초적이다. 심지어 공법도 그렇다. 거의 완전 수공에 가까워서 벽은 평면이 아니고 담은 삐뚤고 계단은 불규칙하다. 즉 인간이 손으로 만든 공간이라는 것을 너무도 확실히 느낄 수 있다.
5.이런 집들을 보통 사진으로 프린트해서 전시하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이 없을까 . 사진은 뭔가 뻔뻔하고 공식적인 성격이 강하다. 사진은 사실이 아닌 것도 사실인 듯 보이게 하고 사실로 받아들여지게 만든다. 사라진 집들에 대한 개인적인 기억, 오마쥬 등을 표현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사진에 색칠을 해보기로 한다. 흑백 프린트를 하고 그 위에 색을 칠해 사진과 그림 사이에 있는, 사진도 그림도 아닌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 보는 것. 물론 사진 초창기에 많은 사람들이 했던 채색 사진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없다. 어떤 차이가 있다고 주장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프린터로 사진을 뽑아 색칠을 해본다. 적절한 채색용 물감을 찾는 것도 쉽지는 않다. 유화, 수성 유화, 아크릴, 액상 아크릴 등등의 재료로 실험을 해본다. 한 장, 두 장 실패작들이 쌓인다. 예상 보다 실패율이 높다. 칼라로 보는 사진과 흑백으로 프린트 한 다음 채색한 느낌의 차이가 결정적이다. 색칠을 다하고 나서 그 위에 일종의 표식을 넣는다. 흰색을 약간 흐르도록 바르는 것이다. 추상표현주의, 서예의 일획처럼. 레이어 위의 마지막 레이어 처럼. 물론 농담이다. 사실 이 작품들 자체가 농담이고, 키치이고, 또한 진담이다. 뭐 놀라운 것도 아니다. 미술이란 게 원래 환상에서 시작해서 환멸로 끝나는 것이니까.
6.공식적인 기억에서 사라진 이 집들을 다시 기억하는 혹은 기억하도록 해보려는 이 작업들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일종의 대안기억(counter memory)일까 아닐까? 뭐 의미가 없어도 그만이라는 생각도 든다. 집이 그렇듯이 미술 작품 이라는 것도 의미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이니까. 사실 끔찍한 현실이 심미적으로 보이는 것 보다 잔인한 일은 없다. 빈집과 전쟁터와 폐허가 그러하다. 내가 찍고 색칠한 집들도 원래 흉흉했지만 촬영, 프린트, 색칠 등의 과정을 통해 일종의 심미성이 생겼다. 그리고 현실과 심미성 사이에는 깊은 균열과 파열이 있다. 미술 작품에 의미라는 것이 있다면 아마도 그 갈라진 틈새에서 솟아나는 것일 것이다.
7.고유의 개인적 삶을 포기하는데서 한국의 현대화는 시작된다. 자발적으로 이주하는 것이 아니라 쫓겨난 철거민이거나 강제된 유목민이 되어 도시로 몰려든다. 힘겹게 버티며 살아남아 아파트라도 가져야 약간 불안이 가시고 정체성이 형성된다. 성공한 후발 천민 자본주의가 가지는 뒤틀리고 왜곡된 욕망이 흔적과 과거와 고유성을 지우는데 수십 년을 바쳤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사라져버린 집들이 보여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제 얼굴과 몸을 스스로 지워 기형으로 만들면서 행복해 하는 괴이한 세계를. 얼굴과 집에서 강과 바다에 이르기까지.
- 강홍구
1956년 전라남도 신안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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