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포스터
정현
무제 2003, X-ray 필름에 콜타르, 30x14.3cm (사진_임장활)
정현
무제 2005, 석탄, 39x29x52cm (사진_임장활)
정현
무제 2014, 철판에 녹, 71.3x71.3cm (사진_임장활)
정현
무제 2023, 스티로폼에 채색, 32x45x400cm, 39.2x31x366.8cm, 40x50.5x380cm, 53.5x43.2x392cm, 36.8x38.8x335.7cm (사진_임장활)
정현
《덩어리》 전시전경 사진_임장활
정현
《덩어리》 전시전경 사진_임장활
정현
《덩어리》 전시전경 사진_임장활
정현
《덩어리》 전시전경 사진_임장활
정현
《덩어리》 전시전경 사진_임장활
“소리가 나거나 밖으로 나오는 것이 아닌, 안으로 들어가는 생각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문제가 안에서 응어리졌을 때 예술적으로 표출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덩어리》는 침목, 폐자재, 고철 등 목적을 다하고 버려진 재료들로 인물상, 군상을 제작하면서 재료의 물성과 가능성을 탐구해 온 작가 정현의 개인전입니다. 이번 전시는 199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조형적 흐름과 함께 조각, 판화, 드로잉, 아카이브를 포괄적으로 소개합니다. 전시 제목 ‘덩어리’는 최소한의 개입으로 매체의 물성을 극대화하는 작가의 접근방식, 작품에서 두드러지게 발견되는 조형적 특징과 더불어 정현 작품의 재료가 고유 존재로서 살아내고 견뎌온 ‘덩어리진 시간’을 함의합니다. 이는 하찮거나 쓸모를 다한, 그러나 시간과 경험의 결이 응축된 재료에 주목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비조각적 재료를 조각화하는 정현 특유의 작업세계를 함축적으로 조망하고자 함입니다.
한국 현대 조각사에서 정현은 매우 독자적인 위치를 갖습니다. 추상 표현의 물결이 일던 1980년대 한국 미술의 흐름과는 다소 동떨어진 곳에서 꾸준히 인체조각에 천착해 온 점이나 조각의 범주에서 통용되지 않던 것들을 조각화해 온 움직임이 대표적입니다.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1980년대 후반에는 예술의 가장 근본적 탐구의 대상인 인체를 진지하게 작업하기 위해 해부학을 공부하면서 인간 실존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했고, 이 시기 석고와 마닐라삼을 이용하여 제작한 뼈대 중심의 인체 표현이 주를 이룹니다. 정현은 이후 1990년대와 2000년대를 지내면서 발표하는 대부분의 전시마다 새로운 재료를 탐구하는 계기로 삼았습니다. 특히 침목 작업 <서 있는 사람>으로 잘 알려진 작가 정현은 이외에도 파쇄공, 석유 찌꺼기인 콜타르, 폐철근, 아스콘(콘크리트 아스팔트) 등 용도를 다하고 폐기를 기다리는 재료들에 각자의 역할을 부여해 왔습니다. 흘러내릴 듯이 간신히 서로에게 엉겨 붙어있는 덩어리들. 이렇게 덩어리진 형상은 그 안에 묻힌 존재를 되묻게 합니다.
이번 전시는 주로 ‘인체조각’으로 알려진 작업의 면모에 집중하기보다는 조각의 대상을 택하고 살피는 데에 있어 문법을 달리하는 정현 특유의 정체성과 실험성 탐구에 주력합니다. 정현은 사실주의적 접근이 아닌, 스스로의 개입을 최소화함으로써 재료의 물성과 특성에서 비롯된 서사를 강조해왔습니다. 자기표현을 주장하기보다 재료가 고유 존재로서 내포하고 있는 시간성, 기억, 역사에 주목하기 위함입니다.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의 야외정원에서 시작해 2층 전시실로 이어지는 전시는 90년대 주요작은 물론 드로잉, 아카이브와 신작을 포괄합니다. 특히 이번 개인전에서는 드로잉을 단순히 조각을 위한 에스키스(습작)가 아니라 조각과 동등한 위계의 매체로 설정하는 작가의 태도에 주목하여 조각과 드로잉이 조화롭게 상응하도록 구성하였습니다.
최근작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이번 전시를 앞두고 정현은 가장 먼저 손에 익은 조형적 습관과 기존의 관념을 비워내는 것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육중한 무게를 견디며 세월을 집적해온 침목, 산불에 연소되어 검게 그을린 목재, 그리고 수십 톤에 달하는 파쇄공을 작품으로 들여오는 데에도 정현은 제작자보다 관찰자의 위치에서 수년의 시간을 보내왔습니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잘 헤매기’를 목표하는 그는 여전히 꾸준한 관찰자입니다. ‘하찮은 것들의 하찮지 않음’을 향하는 오랜 관찰자 정현의 그러한 고민이 이번 전시에도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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