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석
실재 악당 2024 Resin 61(h) x 27 x 20 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사진: 안천호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김홍석
하이힐 한 켤레 2012 Bronze, cement 30 x 31 x 17 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사진: 안천호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김홍석
불같은 추상성 (혁명) 2024 Bronze and chrome paint 42(h) x 33 x 38 cm 좌대: 37⌀ x 105(h) 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사진: 안천호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김홍석
Composition I Acrylic and heavy gel on canvas 110 x 100 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사진: 안천호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김홍석
Tension II (Homage to Qi Baishi) 2024 Acrylic and modeling paste on canvas 110 x 100 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사진: 안천호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뒤엉킨 세계는 이원론적 사유에서 벗어나는 중요한 실천의 시작이다.
아마도 현대성은 곧 모든 것의 ‘뒤엉킴’일 것이다.” – 김홍석
국제갤러리는 2024년 갑진년의 첫 전시로 오는 2월 1일부터 3월 3일까지 김홍석 작가의 개인전 《실패를 목적으로 한 정상적 질서》를 서울점(K2, K3)에서 개최한다. 지난 20여 년간 다양한 형식과 매체의 범주를 넘나들며 사회, 문화, 정치, 예술에서 나타나는 서구의 근대성, 그리고 이에 대항하는 비서구권의 독립적 저항 간에 발생하는 애매모호한 인식의 질서를 비판해온 김홍석은 이번 전시를 통해 ‘뒤엉킴(entanglement)’에 대해 이야기한다.
서구 모더니즘을 학습하고 모방할 수밖에 없던 비서구권의 정치, 경제, 그리고 사유체계는 혼돈과 잡종성의 개념을 통해 스스로 주체화 되었다고 선언하는 듯했으나, 결국 경계의 공간에서 다시 길을 잃곤 하였다. 경계의 개념이 현실적 대안이 되지 못했고, 또 다시 모더니즘적 사고에 갇히고 만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발견되는 미술의 방향은 거대함과 사소함, 자본과 아방가르드의 충돌을 향해 있으며, 이러한 대립구조에서 자본이 승리하는 듯하지만 결국 우리는 그것이 해결의 실마리가 아님을 이미 알고 있다. 서구 모더니즘의 승자가 자본과 금융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미술도 이것의 지대한 영향 아래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긴 힘들다. 탈구조주의의 '해체이론'이 결국 현실에 실현되지 못한 것이 그 증거이다. 그러나 이원적 대립이 아닌 현대에서 발견되는 뒤엉킨 감각은 어쩌면 새로운 대안이 될지도 모른다. 기존의 인식, 즉 아름다움, 완전함, 옳음 그리고 인간에 대한 정의가 이런 뒤엉킴을 통해 우리의 인식체계를 바꾸어 다른 세상으로 인도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기대를 거는 것은 어떨까?
K2 1층 공간의 작품들은 대중이 흔히 학습해 온 당연한 정보들이 통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와 같이 익숙한 개념들이 해체되어 엉켜 있는 상태는 관람객에게 친숙하면서도 낯선 광경을 선사한다. 전시장에는 맞는가 싶어 고개를 돌리는 순간 의구심이 싹트고, 이내 찬찬히 들여다보면 어딘가 생소한 형태의 조각들이 자리한다. 조커의 얼굴에 고양이 몸을 한 조각은 조커가 고양이 털옷을 입은 것인지, 고양이가 조커의 탈을 쓴 것인지 분간할 수 없으며, 하이힐 높이로 제작된 슬리퍼는 그 존재의 가치와 목적성에 대한 명쾌한 답을 내놓지 않는다. 한편 픽토그램처럼 단순화된 형태와 색감으로 표현된 불꽃 조각 연작이 2차원과 3차원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돌멩이를 든 손과 바닥에 놓인 카펫 조각은 조각의 물질성을 해체하는 양상을 보여주는데, 이는 돌, 손, 카펫등이 극사실적으로 묘사되었음에도 불구, 그 모습과는 모순되는 성질의 재료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 무거워야 하는 돌멩이는 레진을 사용해 매우 가볍게, 가벼워야 하는 카펫은 브론즈를 활용해 아주 무겁게 제작되었다. 실재-허구, 정상-비정상, 옳고-그름의 대립항들이 뒤엉킨 상태가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바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진정한 현대성, 즉 보편적 개념에 얽매이지 않은 완전한 자유로움이다.
K2 2층에는 사군자 페인팅을 필두로 연꽃, 대나무, 잡목 등을 그린 회화 작품들이 자리한다. 사군자의 묵향 대신 돋보이는 두터운 마티에르(matière)는 동양의 군자(君子) 정신과 태도를 서구 모더니즘의 개념으로 지워버리고, 현대 동양인의 정신분열적 물질성을 보여준다. 동양화에 대한 보편적 인식을 탈피하기 위해 그에 대항하는 개념인 서양화에서 흔히 사용되는 아크릴과 캔버스를 재료로 삼아, 작가는 다시 한번 '고착화된 개념으로부터의 자유'라는 전시 주제를 강조한다. 또한 연꽃, 대나무, 잡목 등을 표현한 회화에서도 각 식물들에 내재된 의미는 없으며, 이는 회화의 화면구성을 위해 채택된 주제들이다. 이렇게 내재성과 함축적 의미를 모두 제거한 작품에는 순수형태 그대로의 본질만이 오롯이 남게 되고, 구체적인 목적 없이 그려진 대상들은 오로지 화면의 구성(비례, 균형, 리듬, 통일, 조화)을 위해 캔버스 위를 자유롭게 유영한다.
전시장 내부에는 공공장소에서 흔히 들리는 음악에서 착안한 배경음악이 흘러나온다. 작가는 어릴 적 백화점에서 들었던 조용하면서도 세련된 음악의 존재를 인식한 후로 줄곧 기차역, 공항, 쇼핑몰과 같은 공적 공간의 음악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대중적인 배경음악은 관람객의 무의식에 도달해 갤러리가 고급스럽고 특수한 곳이 아닌 공공적 공간임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유도한다.
‘사군자’라 명명한 작품은 내 인생의 첫 번째 사군자 회화이다. 총 4개의 캔버스로 이루어져 있지만 전시 배열을 동양적으로 하지 않았다. 더구나 앞서 언급한대로 한지가 아닌 캔버스에 사군자를 그렸다. 나는 곧 60세가 되지만,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동양 미술을 실습할 기회가 없었다.
미술 커리큘럼에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서구의 산업, 사유의 혁명이 일어난 후 서구는 모든 종류의 산업과 사유체계를 정립했다. 독일 유학 시절, 내 눈을 뜨게 한 교수의 질문이 없었다면 나는 아직도 서구 미술에 더 깊숙이 빠져 있었을 것이다. 그가 내게 한 조언은 “너는 한국적 현대미술을 보여주어야 한다.”였다. […] 그러나 나는 한국적 정체성보다는 사회적 문제와 미술의 효용과 역할에 관심을 쏟고 싶었다.
[…] 이번 전시에서는 내 작품이 존재하는 공간이 지하 쇼핑몰 또는 한적한 지하철 역과 별다를바 없기를 바란다. 즉 미술이 특수하거나 특별하다고 느끼는 감상자의 마음에 균열을 내는 경험이 되기를 바란다.
한편 K3에는 보다 유쾌한 광경이 연출된다. 전시장 중앙에는 천장을 뚫고 바닥에 떨어진 듯한 거대한 운석 덩어리가 위치하는데, 부지불식간에 생겨난 이 무명의 덩어리는 중력 가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깨진 모습이다. 갈라진 형태 사이로는 지구인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불문율적으로 합의한 '별'이라는 기호를 띤 두 개의 물체가 관찰된다. 김홍석은 이번 개인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리고 당연하게 여겨지는 정의들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표현해 기존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것이 미술가의 책임이며 ‘미술은 무엇을 하는가?’에 대한 대답이다." 이처럼 작가는 한때는 별이었으나 현재는 하나의 돌에 지나지 않는 본체와, 그 내부에 보이는 별의 표상의 조화를 통해 실재적 존재와 해석적 존재의 개념을 뒤엉키게 만든다.
1964년 서울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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