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포스터
이다슬
12개의 잡초 모종판을 쉽게 나를 수 있는 전용 선반 → 잡초들의 햇빛 나들이를 위한 이동식 선반 → 800개의 구멍이 뚫린 스테인레스 선반 스테인리스 스틸, 100×59×91cm, 2023
이다슬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Ⅰ 싱글 채널 비디오, 09:23, 2023, 1/5
이다슬
잘린 아로니아 나무 밑동과 내가 심지 않은 나무들로 우거진 밭 135x170cm
이다슬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5-2-A-1 하네뮬러 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 미송 액자, 120x152cm(Print image size), 2024, Ed 1/5
이다슬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종이에 경면주사와 기름을 혼합한 글씨, 14.5x16.5cm, 2023
쓸모없는 아름다움을 위하여
제주 태생인 이다슬은 2012년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제주로 돌아온다. 감나무 밭이었던 600평 제주 땅에 참깨 농사를 시작했다. 주변에서 모두 반대했지만 농업에 대한 본인의 확고한 철학대로 유기농 농법을 사용하기로 한다. 참깨 순이 올라오자 잡초가 따라 올라온다. 조금 더 자라면 참깨와 잡초가 구분이 될 테니 그때 잡초만 뽑으면 되겠지 생각했다. 한, 두 달 지나니 참깨가 꽤나 자랐다. 그리고 참깨 주위에 잡초도 함께 자랐다. 참깨와 잡초 모두 엉키고 설켜 구분이 되지 않을 만큼 무성하게 자랐다. 잡초만 뽑아내려고 애를 썼지만 이미 뿌리까지 엉켜 참깨가 같이 뽑히는 참사가 발생했다. 간신히 모은 참깨로 얻은 참기름은 대략 소주 됫병 5개에 담겼다. (통상적인 기준으로 600평에서 재배한 참깨에서는 큰 소주병 50개 양의 참기름을 수확할 수 있다고 한다.)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참깨와 잡초를 함께 기른 결과다.
참깨 농사를 망친 후 아로니아 재배에 도전해 본다. 257그루의 아로니아 나무를 심었다. 재배를 시작할 즈음 전국에 아로니아 열풍이 불어 많은 농업인들이 아로니아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시장 경쟁이 심해지자 장사꾼들은 빠른 판매를 위해 출하 시기를 앞당겼고, 숙성되지 않은 열매는 떫은 채로 판매가 되었다. 소비자들은 맛이 없고 떫은 아로니아를 외면하게 되었고, 효용가치가 없어진 아로니아는 무참히 잘려나갔다. 그렇게 아로니아 열풍은 사라졌고, 이다슬 작가의 아로니아 역시 판매되지 못한 채 잡초에 휘감겨 형체조차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사실 처음부터 잡초와 농작물을 함께 기를 생각은 아니었다. 농사를 시작하기로 결심했을 때 화학비료나 농약은 쓰지 않기로 다짐했고, 때문에 잡초 제거 역시 일일이 손으로 뽑아야 했다. 열심히 뽑아도 또다시 자라는 잡초덕에 무릎의 연골은 닳아 없어지고, 허리는 망가졌다. 어차피 다시 자라는 잡초를 뽑기 위해 왜 몸만 상하는 의미 없는 행위를 반복하고 있을까? 이다슬은 잡초를 키우기로 결심한다.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잡초만을 위한 밭을 만들기로 한다.
땅을 고르게 만들고 잔디와 비슷하게 생긴 풀을 옮겨 심었다. 잔디밭 같은 푸르른 잡초밭을 만들어 그 위에 누워 하늘을 보는 상상을 했다. 혹여 다칠까 잔뿌리까지 조심스레 캤다. 그냥 잡초, 풀인 줄 알았던 녀석들에게도 알고 보니 예쁜 이름이 있었다. ‘새포아풀’, ‘바랭이’, 그리고 ‘왕바랭이’. 사랑으로 돌보니 푸른색으로 잘 자랐고, 하루하루 뿌듯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풀들은 누렇게 변했고, 아무리 물을 주어도 초록색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다. 그렇게 열심히 뽑았을 땐 속도 모르고 무성하게 자라더니, 막상 키우려고 마음먹으니 뜻대로 되지 않았다.
잡초를 ‘잘’ 재배하기 위한 방법을 찾기로 한다. 각종 영양제와 비료, 영양분이 풍부한 흙으로 빚어진 도예가의 화분, 식물 재배등, 온실이 동원됐다. 그리고 매일 대형 카메라로 잡초의 성장을 촬영하고, 관찰하고, 재배 일지를 쓴다. 농부에게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잡초를 위하여.
이다슬은 무의미한 잡초 재배 프로젝트에 <잡초 배양실>이라는 제목을 붙여 전시를 했다. 정성을 다한 의미 없는 행위에 가치를 부여하고 예술이라고 말한다. 작가는 농부가 잡초를 재배하는 모순적인 태도에서 인간의 이기심, 인간 중심으로 바라보는 자연에 대한 태도, 모든 것을 효용가치로만 대하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되짚어보고자 한다. 한 때 인기가 많았으나 시장가치가 사라지자 베어버리는 농사꾼, 본인의 농사를 망쳐버린 잡초를 물리적인 힘으로 더 씩씩하게 키우려는 스스로의 태도에서 인간의 아이러니를 발견한다.
이다슬 개인전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는 제주의 자연을 배경으로 인간의 욕망과 모순을 이야기한다. 전시는 잡초 재배를 시작으로 잡초 때문에 망쳐버린 아로니아 나무를 베어 버리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준다. 밑동만 남은 죽은 아로나무는 어린 시절 작가의 꿈이 담긴 <상상화>와 함께 전시된다. <죽은 개망초와 망초를 위한 1,000개의 식물 영양제 설치>, <잡초로 뒤덮인 아로니아 밭> 등에는 십여 년 동안의 작가의 노동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잡초를 위한 노동, 아로니아를 위한 노동 모두 이다슬에겐 이유가 있는 행위이다. 제주도 사람들은 그를 도라짱이라고 부르지만 의미 없는 행위에 정성을 부여하는 모순적인 자신의 행위에서 또 다른 의미를 찾아가고 있다.
전시 제목인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는 불교 경전인 천수경 첫머리에 나오는 글귀로, 인간의 업을 깨끗이 씻어내기 위한 주문이다. 작가는 애써 키웠던 잡초들과 아로니아 나무를 모조리 잘라버린다. 그 후 <127그루의 아로니아 나무를 자르고 멈춘 전동가위> 기념비를 세운다. 정성껏 키웠던 생명을 죽인 모순적인 행위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나고자 수리수리 마하수리 주문을 외운다. 그리고 그들이 좋은 곳에서 다시 태어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스님에게 부적을 구매한다. 온라인 부적 판매 1위 쇼핑몰에서 구매한 부적을 지갑에 간직하며 아로니아가 극락왕생하길 기도한다. 전시는 모순으로 가득 찬 우리의 이야기이다.
아로니아가 잘려나간 자리에는 심지 않은 벚나무가 자라났다. 벚나무 위엔 새들이 아로니아 가지로 둥지를 지었다. 억새와 이름 모를 잡초들도 함께 자란다. 인간의 눈에는 쓸모없는 것들이 모여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었다. 작가는 이곳에 여러 종류의 나무를 심을 계획이라고 한다. 작가가 그린 상상화처럼 심지 않은 나무와 심은 나무가 공존하는 풍경을 만들 예정이다. 쓸모없는,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쓸모 있는 아름다움을 위하여. 그는 제주에 사는 10년 차 농부이자 예술가이다.
글: 이선미, 대안공간 루프 큐레이터
1980년 출생
불안 해방 일지 Anxieties, when Shared
코리아나미술관 스페이스 C
2024.08.07 ~ 2024.11.23
STRA-OUT 4회: 권혜수, 김지수, 키시앤바질
씨스퀘어
2024.11.04 ~ 2024.11.23
장희춘: Happiness
장은선갤러리
2024.11.13 ~ 2024.11.23
Portrait of a Collection: Selected Works from the Pinault Collection
송은
2024.09.04 ~ 2024.11.23
폴린 부드리/레나테 로렌츠: 초상
리움미술관
2024.07.18 ~ 2024.11.24
예술, 보이지 않는 것들의 관문
서울대학교미술관
2024.09.12 ~ 2024.11.24
Mindscapes
가나아트센터
2024.10.16 ~ 2024.11.24
부산 청년예술가 3인전 《응시: 세 방향의 시선》
신세계갤러리 센텀시티
2024.10.26 ~ 2024.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