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MESIS AP7: broken pieces 파편들
2024.03.20 ▶ 2024.06.02
2024.03.20 ▶ 2024.06.02
전시 포스터
박수형
어두운 숲#3 2016, oil on paper, 120x120cm
서민정
방문 Visit 2015, 장지에 먹, 주묵, 분채, 180x180cm
김선영
선잠과 un-cast 2019, 장지에 아크릴, 과슈, 분채, 145.5x112cm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미메시스 아티스트 프로젝트의 일곱 번째 전시인 「MIMESIS AP 7: broken pieces 파편들」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MIMESIS AP 7에 선정된 박수형, 서민정, 김선영이 자신들의 그림 위에 존재하는 <파편들>에 스스로를 빗대어 표현하는 방식을 살펴본다. 이들은 흩어지고 모이며 각자의 역할을 다하는 세상의 파편적인 것들과 그 파편적인 것들이 완전한 모양을 갖추게 되는 과정에 주목한다. 부분을 상징하는 소재들은 그림으로 표현되면서 분절하거나 분열하고, 또 겹치며 합하여진다. 이 모양새는 세 명의 작가가 구조/부분과 전체의 형태를 감각하는 방법에서 생겨난다.
박수형의 그림 속 식물 파편은 사람이다. 박수형은 잔디와 잡초, 인물 연작을 유화로 그려 왔다. 화면 속 풀과 잔디는 깎이고 방치되고 구분되는 사람들을 말하고, 잔디 속에 섞여 있는 잡초는 사회 기준에서 벗어난 길들지 않은 자연 혹은 본래 모습을 상실한 누군가를 상징한다. 박수형의 전체 작업 속에서 은유적이거나 직접적으로 언급되는 소재의 상관관계들은 작가의 양가감정을 대변한다. 서민정의 작업에서 두드러지는 파편은 부서진 형태를 이루는 붓질이다. 끊기듯 그어진 먹과 주묵의 붓질은 그 자체로 그림 위에서 작가 자신을 담은 형체가 되었으며, 대상을 깨뜨리는 움직임이 되었다. 깨진 것들의 재구축은 결과적으로 새로운 모습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깨진 모양 그대로 그 자리에서 온전해지기도 한다. 김선영의 파편은 원래의 것과 미묘하게 합일되지 않은 형체들이다. 김선영은 콜라주 기법을 통해 장지에 채색으로 완성한 자신의 그림을 다시 해체하였다. 신체 감각이 외부 세계와 함께하지 못하고 단절되었음을, 온전한 형태가 아닌 분절된 모습으로 드러낸다. 분절된 형태는 화면 속에 스며들어 하나가 되기도 하고, 따로 떨어져 나와 겉돌기도 한다. 박수형의 잘린 풀, 서민정의 깨진 형태, 그리고 김선영의 떨어져 나온 형체는 예술가의 감각으로 파편화된 것들을 다시 모아 하나로 구축한다는 면에서 같은 선상에 놓여 있다. 예술가가 인식하는 세상을 이미지화할 때, 소재를 향한 그들의 감각은 파편적으로 흩어져 캔버스 위를 맴돈다. 그들이 세상의 한 구성원으로서, 예술 작품이 세상의 한 구성물로서 파편적인 역할을 다하는 이번 전시가 그동안 일상에서 지나쳐 버렸던, 떨어진 파편들을 하나씩 모아 만든 완성된 세계 속을 거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 정희라,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수석 큐레이터
그러데이션 속 철조망의 영역
사람들은 왜 짧게 잘린 잔디를 선호하는가? 이에 관하여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이유는 당연히 그런 것으로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잔디밭에 들어가지 않도록 설치한 안내 표지판은 너무나 흔히 목격된다. 그 어떤 것도 생산하지 않은 채 권위를 인정받으며 관조의 대상으로 존재하는 잔디에 관하여 우리는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풀밭을 가만히 바라보니, 철조망을 기준으로 < 안 >과 < 밖 >이 설정되어 있다. 누군가의 영토인 < 안 >에는 잘 관리된 잔디가 있고, 외부인 < 밖 >에는 잡초가 무성하다. 잔디밭 안에는 잡초도 섞여 있을 테지만 잡초 역시 잔디 모양으로 관리되어 있다. 잘 관리된 잔디밭은 안정과 규범, 그리고 질서와 표준을 표방한다는 작가의 말에 힘이 실린다. 박수형은 「fence_green」(2018)을 통해 사람과 구분된 구역과 이 구역에 따라 관리된 자연을 말한다. 「brick and grass」(2019) 연작은 사람이 건물을 올리기 위해 만든 최소한의 단위로서의 벽돌과 풀을 함께 그렸다. 벽돌은 만들어진 수직이나 수평과 같은 규격을 이야기하고자 테이핑으로 구역을 만들어 그 안에 물감을 채워 넣는 방식으로 표현되었으며, 벽돌 앞 무성한 풀은 그 자유로움을 표현하기 위하여 손으로 거침없이 그려졌다. 이러한 대조는 2019~2022년 작품인 「infinite fields」 연작에서도 뚜렷하게 보인다. 다양한 색채 실험으로 그려진 배경은 그러데이션으로 변주를 주었음에도 「brick and grass」의 벽돌처럼 평평해 보이는데, 이 평평함이 역설적으로 무한한 공간감을 자아낸다. 무한해 보이는 공간 앞에 놓인 물감의 개별적인 질감이 두드러지는 풀은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살아 있음을 말하는 듯하다. 다른 물성의 배경과 소재는 그 다름으로 인해 서로를 돋보이게 한다. 「snow night」(2014), 「grey forest」(2015), 「grass fields」(2016), 「brick and grass」(2019~2021), 「infinite fields」로 변화한 작업 양상은 「continuous play」(2021~2024)로 이어진다. 마른 붓으로 젖은 유화 화면을 닦아 내는 표현 방식은 물감을 더하고 쌓아 올리는 전통적인 유채 방식에서 벗어난다. 마른 붓질은 붓질 하나하나의 모양을 구체화하며 선명하게 드러낸다. 선이 지나간 자리에는 유화 물감 층이 외곽의 형태를 만들어 내고 그 안에 가장 먼저 칠했던 제소 층이 반투명하게 나타난다. 그리고 그것은 투명해진 물감이 깎이고 잘려 텅 비어 버린 잡초의 자아처럼 비추어진다.
타오르는 불과 붉은 먹
「돌아가는 길」(2020)은 서민정 작가가 제주도의 거문오름에서 마주한 풍경을 담은 작품이다. 올라간 길 그대로 내려오려다 다른 길로 잘못 들어선 곳에 억새밭의 풍광이 펼쳐졌다. 그림의 제목인 돌아가는 길은 문자 그대로 되돌아가는 길을 의미하는 동시에 다른 지점을 통해 빙 둘러 가는 길을 뜻한다. 세 개의 캔버스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마치 성상화의 삼단화처럼 왼쪽, 가운데, 오른쪽의 화폭에 각기 다른 내용이 표현되었다. 오른쪽의 < 쓰러져 있는 억새 >, 가운데의 < 서 있는 억새 >, 왼쪽의 < 길 >을 유심히 보니, 자연스레 보였던 풍경이 새삼 달라 보인다. 작가는 이 그림 속 하늘을 채색하는 것에 공을 들였다. 너무 파랗지도, 너무 밝지도, 너무 어둡지도 않게 그려진 하늘은 낮인지, 밤인지, 아침인지, 새벽인지 명확한 시간대를 알 수 없게 한다. 이는 보는 이에 따라서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는 길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주묵(붉은 먹)을 쓰게 된 계기는 건강의 문제로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시시때때로 떨리게 되었던 그 시기의 감정과 맞닿아 있다. 그전까지 분채를 차분하게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색을 만들던 서민정은 빨간색, 주황색, 형광에 가까운 분홍색을 전면에 사용하며 본인의 상태를 표현하였다. 또한 이 시기의 작업에 새롭게 나타난 것은 표현 기법의 변화이다. 장지의 밝은 색을 그대로 노출하여 색을 올리던 방법은 어두운 색을 먼저 칠하고 밝은 색으로 향하는 방식으로 전환되었고, 완전한 형태를 섬세하게 그렸던 방법은 끊기듯 짧아진 필체로 변화하였다. 달라진 표현 양식들은 작업 세계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완전히 새롭게 하였고, 또 다른 목표로 향하게 하였다. 어두운 색을 먼저 화면 전체에 채색함으로써 그림의 톤은 한 층 깊어졌으며, 분절된 선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독특한 기법으로 완성되어 갔다. 서민정의 작업에 관해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은 「땅과 불꽃」(2023) 이다. 가족의 자연장을 진행하기 위해 화장을 하며 바라보았던 그 장면과 그때의 오동나무 상자에서 느껴지던 뜨끈한 온기는 활활 타오르는 불, 꺼져가는 불,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이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는 부서지고 구축하는 서로 다른 힘에 대한 작가의 관심에서 비롯되며, 힘이 또 다른 속성으로 전환되는 과정에 대한 연구로 이어진다 할 수 있다.
떨어져 나온 감각, 그래서 떨어져 나간 세계의 모양
김선영은 우리 주변부의 버려진 풍경에서 경계의 안과 밖을 포착해 그려낸다. 그 경계선을 희미하게 흐트러뜨리고 대립하는 존재들을 화해시키며 평화를 찾고자 한 작가는 사실은 이 행위가 그저 현실에 안주하는 것은 아닐지 의문을 품는다. 김선영의 2013년에서 2015년 사이의 작업은 개인에서 사회로 본인의 세계가 확장되어 가던 시기의 그림들이다. 작가가 만난 사회는 울타리라기보다 사건 덩어리의 세계였다. 사건의 장소를 뜨지 않고 바라보는 존재들, 가담하지 않고 그 주변부를 떠도는 마음들은 하나하나가 완벽한 세계였다. 버려진 장소와 소재에 스스로를 동일시하여 그려내던 방식은 바라보고 관찰하여 그리는 방식으로 변화하였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 나를 닮은 풍경 >에서 < 내가 바라보는 풍경 >으로 바뀌어 갔다. 2017년 이후 김선영은 실체를 알지 못하고 막연하게 느끼는 어떠한 것들을 더듬어 실체를 찾아가는 것에 매력을 느꼈다. 이는 머릿속에 이미지로 있던 것들이 실제로 존재하며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볼 수 있는 < 진짜 >인 것을 확인하는 과정이 되었다. 자신이 경험하고 체험한 것을 그려낸다는 의미에서 김선영의 작업은 추상적인 작업이 아닌 사실적인 작업이다. 그러나 보는 이들은 그의 작업이 사실적인 접근이라기보다는 은유와 비유가 많은 문학에 가깝게 느끼는데, 그 이유는 작가가 몸으로 느껴 실제로 존재한다고 느끼는 감각이 보는 이들에게는 막연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점 때문에, 작품명에서 유추할 수 있는 단서들과 이미지 속에서 언뜻언뜻 보이는 형상들로 우리는 그림 속에 존재하는 사건들을 상상한다. 김선영의 그림 속에서 완벽한 하나의 형태를 이루지 못하고, 겹치고 배경에서 따로 떨어져 나온 듯한 형체들은 작가 본인의 몸이 감지하는 세계가 우리가 느끼는 세계와 완벽하게 맞아떨어지지 않고, 미묘하게 다름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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