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포스터
전병구
모텔2 2024, oil on canvas, 53x40cm
정재호
타일, 창문 2024, 한지에 아크릴 채색, 82.5x57cm
전병구
약속 2024, oil on canvas, 28x35cm
전병구
먼 곳 2021, oil on canvas, 53x40.9cm
정재호
충정아파트 2024, 한지에 아크릴채색, 113x73.5cm
전병구
무제 2018, oil on canvas, 45x45cm
정재호
붉은 사막 2023, 한지에 유채 153,5x144.5cm
전병구
픽셀 창문 2023, acrylic on canvas, 60.6x60.6cm
정재호
새, 무게, 꽃 2024, 한지에 아크릴 채색, 72x53cm
정재호
무언가 2024, 한지에 아크릴 채색, 71x53cm
정재호
죽음의 형식 2024, 한지에 아크릴 채색, 71.5x53cm
전병구
무제 2021, oil on canvas, 40.9x31.8cm
Evocation 환 기
조정란, nook gallery, Director
전시를 위한 작가들과의 만남에서 나눴던 대화를 정리하면서 전병구, 정재호 두 작가의 그리기에 대한 고민을 공감하고 느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내적인 면에도 기술적인 면에도 많은 변화가 생긴 두 작가는 예전에 자신이 그렸던 그림을 한 점씩(전병구_모텔2, 정재호_타일, 창문) 불러내어 변화된 크기와 기법으로 새롭게 그려 전시에 선보인다. 작가는 변화된 그림에 투영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볼 기회를 갖게 된다.
전병구는 일상에서 마주친 장면에 자신의 감정이나 상태를 간접적으로 드러내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붓질 하나 색 하나 만들어 칠하는 것에도 예민한 작가는 자신의 변화된 순간의 정서를 그림에 담는다. 천천히 하나씩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나감에 있어 서두름이 없으며 시간이 흐른 뒤에 돌아보는 자신의 그림에 애착을 가지고 조심스럽게 다시 그려 보기를 시도하기도 한다. 예전의 표현방식은 물감이 마르기 전에 빠르게 그리는 그림이었다면 최근의 작업들은 기법을 달리해서 레이어를 많이 쌓는 방식으로 그려나간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서정적인 느낌의 건물, 풍경, 손의 표정을 그렸다. 바다로 연상되는 평면적인 색면을 배경으로 펼쳐진 손바닥에 놓인 색색의 돌은 막연히 먼 곳을 바라보는 인물의 시선을 잡아채 올 수 있을 듯 햇빛을 받아 선명하다. 3년의 시간 차이를 가지고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그려진 ‘먼 곳’(2021)과 ‘약속’(2024)은 바다를 배경으로 한 강한 햇빛과 그림자가 시선을 끈다. 사실적으로 묘사된 손의 표정에서 작가의 마음일지 모를 막연한 기다림이 느껴진다. 전시에서는 2018년에 그려진 작품부터 2024년 신작까지의 변화를 차분히 감상할 수 있다.
정재호는 수많은 연습시간을 거쳐 자신의 세계를 이뤄나가는 음악가나 무용수들의 태도, 또는 대가들이 그림 한 점을 위해 스케치를 하고, 그 다음 수채화를 수없이 그리고, 그 다음에야 우리가 알고 있는 한 점의 마스터피스를 그리는 과정과 시간의 노력에 대한 화가로서의 고민을 안고 충실하게 작업에 몰입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건물과 오래된 사물들, 손의 동작을 이전의 방식보다 좀더 사실적으로 그려 보여준다. 그림의 방식이나 모든 견해들을 개입시키지 않고 단지 그리고 싶다는 느낌으로 그림을 그리고, 대상을 그 자체로써 보여주고자 한다. 마치 정직하게 사물을 보여주는 방법으로 어디까지 그릴 수 있나 자신을 실험하는 듯하다. 그는 아파트를 처음 그렸을 때 낡은 건물의 남루함, 재개발이 될 수 있겠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갈필로도 표현을 하고, 거칠게도 그렸었지만 물성 그 자체로 아주 정직하게 그려냈을 때 오히려 섬세한 것들이 드러나면서 더 아름답게 보이는 것 같다고 토로한다.
작가는 자신이 지나온 그림의 흔적을 복기하며 조금씩 변화해 나간다. 이 그림이 좀 더 커지면 어떨까? 혹은 이 그림을 다른 물감으로 그렸을 때 어떻게 나올까? 이 그림이 현재의 기법으로 바뀌면 어떨까? 내면의 갈등과 많은 변화를 겪으며 순수한 욕망을 가진 화가는 어떤 그림은 좀 더 잘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과 더 잘 그리고 싶은 마음을 환기시키며 회화! 그리기의 긴 터널을 지나간다.
전병구 작업노트
이렇다 할 것 없는 일상에서 우연히 마주친 어떤 대상이나 장면은 때때로 내게 그림처럼 느껴진다. 동네의 작은 하천, 친구가 내민 작은 선물, 여행지에서 우연히 마주친 장면 등 그림이 되기에는 다소 평범하고 흔한 것들. 어느 날 이들이 내게 생경하게 느껴진 것은 아마도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나의 상태가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순간에 일으켜진 감각과 정서를 그림 안에 엷게 투영하려 했다. 그래서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대상의 의미를 담기보다 대상을 바라보는 그 순간의 주체, 한 인간으로서 떠올린 내밀한 일렁임을 담으려 했다.
정재호 작업노트
십여 년 전에 구한 오래된 라디오는 지금까지 세 번 그렸고 이번에 두 번 더 그렸다. 두 점의 그림 중 한 점은 라디오의 정면을, 다른 한 점은 뒷면의 덮개를 열어 내부가 보이게 그렸다. 사진을 보지 않고 직접 보고 그릴 때 라디오라는 사물은 눈앞에 현존하는 더욱 확고한 물체가 된다. 그 확고함은 그 사물을 다르게 번안할 수 없게 만들었고 사물을 둘러싼 맥락이나 회화를 둘러싼 맥락이 개입할 여지없이 어떻게 하면 그려낼 수 있을까 라는 단순한 재현의 차원만이 남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수행하는 긴 과정은 그리는 행위를 통해 그 사물을 겪어내는 것에 가깝게 되었다. 이를테면 오래된 부속들 - 나무, 플라스틱, 금속으로 만들어진 표면과 구조를 있는 그대로 그린다는 일은 오래된 라디오라는 물질적 차원 – 오래됨, 낡음, 부식, 탈각 –을 겪는 체험이다.
라디오의 뒷면을 그리는 일은 좀 더 복잡한 표면을 훑어 나가는 일이었다. 라디오의 내부는 전파 수신부와 증폭 부, 스피커유닛으로 이루어진 기본 구조 위에 수많은 부속이 부착되어 있다. 나는 그 부품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그리려고 했고 그림을 완성했을 즈음에는 각 부속들의 위치와 형태를 머릿속으로 그려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라디오에 관한 어떤 것을 알게 되었거나 드러낸 것은 아니다. 단지 사물로서의 라디오가 그림의 라디오가 된 것이다.
사물의 내부는 흥미롭기도 하지만 견디기 힘든 것이기도 하다. 사물이나 생명체의 외관이 아름다움을 지향한다면, 그 내부는 그것을 지탱하기 위한 형식으로서 아름다움과는 무관하며 한편으로 무자비할 정도로 솔직하다. 오래된 라디오의 외형이 과거의 시간, 유형, 낡음, 추억 등을 상기시킨다면, 내부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사물의 죽음의 상태를 보여준다. 그것을 그리는 일은 최대한 건조한 시선으로 그린다 해도 수많은 은유들을 마주칠 수밖에 없는 일이다.
1985년 출생
1971년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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