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민: 선과 선을 잇는 사유의 여백, '존재의 유속'
2024.06.12 ▶ 2024.07.07
초대일시ㅣ 2024년 6월 20일 목요일 15:00pm
2024.06.12 ▶ 2024.07.07
초대일시ㅣ 2024년 6월 20일 목요일 15:00pm
전시 포스터
서정민
선 39 LINES 39 196X196cm, 한지, 2023
서정민
선-F1 LINES-F1 198X198cm, 한지, 2023
서정민
천심-41 Absence of the worldly desire-41 150X150cm, 한지, 2021
서정민
선 52 LINES 52 196X196cm, 한지, 2023
서정민
선-F2 LINES-F2 180X150cm, 한지, 2023
서정민
선 74 LINES 74 90X170cm, 한지, 2024
서정민
선 S-69 LINES S-69 90X140cm, 한지, 2023
서정민
선 68 LINES 68 90X140cm, 한지, 2023
선(線)과 선(禪)을 잇는 사유의 여백, ‘존재의 유속’
홍경한(미술평론가)
“작가 서정민의 작업은 물질세계를 초월한 기하학적 형태와 순수한 예술적 느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근작들은 사각형, 원, 직사각형과 같은 단순한 형태를 내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그것은 대개 동적 구성으로 배열되며, 단순한 색은 순수한 감각에 의존한 결과다. 평면성과 깊이감이 교차하는 그의 작품들은 서양 미술의 환상을 거부하면서 한국적 미학에 관한 우월성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그의 작업을 변별력 있게 하는 요인이며 공명을 불러일으키는 바탕이 된다.” 홍경한(미술평론가)
1.
작가 서정민의 작업은 고된 수행을 통해 완성된다. 수없이 많은 한지를 쌓고 깎는 자발적 노동, 접어 풀을 발라 단단하게 심는 고행의 담금질은 완전히 몰입하는 상태에서 이뤄지는 창작의 일환이지만, 묵묵히 ‘닦고 행함’ 또는 ‘행을 닦음’이란 자기 자신을 수양과 수행을 통해 정신과 육체를 정화하려는 것이랄 수 있다.
예술이란 또 다른 경험의 묘사가 아니라 그 자체의 경험이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본연의 마음을 관찰하고 집중하는 수행은 서정민 작업의 특징이며, 명상 명상은 그 자체로 과거와 현재 간 깊은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이자 마음을 다잡는 행위이다. 명상이라는 정신적 공간에 들어선다는 건 새로운 환경과의 접점을 허용하는 것과 같다. 미처 몰랐던 타자성과 주체성을 확인하게 되며, 시간의 흐름 속 ‘존재의 유속’을 발견하게 된다. 정신과 육체의 굴레에서 비롯되는 미묘함을 알아차리게 되거나, 나 자신 스스로를 되짚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을 통해 보다 구체화 된다. 실제로 작가는 자기 자신을 순화하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구도적인 태도 아래 몸과 마음을 낮춰 경건한 자세로 명상에 임한다. 그렇게 하여 드러난 작업은 곧 형식이 되고 보는 이들에게 고스란히 전이된다. 예술가들의 작업을 통해 우린 그들 내면의 감정적인 풍경에 접근할 수 있고, 보다 심오하고 유가치한 세계로 진입할 수도 있다. 만약 그것이 명상적이라면, 우리에게 예술이란 그 자체로 회복 및 치유와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그의 명상을 우린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조형적으론 ‘여백(餘白)의 미(美)’로 나타난다. 주지하다시피 여백은 동양에서 ‘비움’의 철학이다. 그러나 서정민의 여백은 비움도 채움도 아닌 ‘사유의 여백’이라는 점에서 기존 여백과는 조금 다르다.
사유의 여백은 눈에 보이는 사실에 대한 재현적인 서구식 서술방식을 지양하고, 형태의 생략 및 단순화라는 조형문법을 도입함으로써 빚어진다. 시각 이미지 하부에 침잠되어 있는 문자(글)는 심리적 여백에 기여하면서 전통성을 포박하는 역할을 한다. 이 둘의 조합은 정주(定住) 없이 변화를 추구하면서도 우리 것에 관한 맥락을 도외시 않아온 작가의 실험적 경향이 만든 결과다.
문자는 인간의 언어를 시각적으로 기록하는 기호 체계다. 인류의 역사와 문화를 기술하고 전승하는 중요한 수단이자 인류 문명의 주춧돌이며 인류가 물려받은 기억의 총량이기도 하다. 물론 문자는 소통을 전제하고, 철학적 의미론과 언어학적 의미론을 동시에 간직한다. 당연히 문자는 시간의 기록이라는 점과도 무관하지 않다.
극도로 단순한 일련의 대표작에서 인지할 수 있듯, 시각적이고도 상징성을 가진 문자는 그의 작품에서 역사를 소환한다. 의미와 메시지를 전달하는 강력한 도구다. 특히 그에게 문자는 진솔하고 덤덤하나 무위(無爲)했던 우리네 역사 속 지혜로움과 정서를 오롯이 작품 속으로 끌어다 놓는 지렛대와도 갈음된다.
2.
서정민의 작업에서 필자의 시선을 사로잡는 또 하나는 선(線)이다. 이 선은 외부의 이미지와 내부의 메시지를 포괄하는 선(禪)이라는 점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구명하여 깨달음의 묘경(妙境)을 터득한 후 가능한 선이랄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작가는 “노동으로 서체를 변환시켜 우연하고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선(線)은 불교의 수행적 의미를 가진 선(禪)”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석도(石濤, 1642~1707, 명말 청초시대의 화가)의 일획론(一劃論)을 빌려와 “‘한번 그음’을 의미하는 선(線)”이라고 정의한다.
기학에 기반 한 일획(一畵)의 미학을 제시해 기의 미학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었던 석도는 태고(太古)에 법이 없었다고 말했는데, 거기에 법을 행하는 것이 바로 일획(=한번 그음)이다. 따라서 일획은 모든 존재와 현상의 시작이다. 서정민 작업에서 화면을 가로지르는 선도 매한가지이며, 선을 그음으로써 작가는 비인위성에, 무위자연에 한 발짝 가까이 다가서게 된다.
작가는 붓과 먹으로 정신성을 드러낸 서지(書誌)를 차용한 것에 대해 “과거의 역사적 가치를 소환함으로써, 현대의 시대정신과 교감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는 석도의 정경(情景)과 맞닿는 것으로, 앞서 말한 전통 고유의 투박한 질감과 섬세한 손길로 빚어진 소박함, 작금의 세태에선 쉽게 마주하기 어려운 정서를 문자로 버무려 놓는 것 모두 전통성을 받드는 요소이다.
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본질적으론 옮겨진 객체와 주체적 감성의 교집합을 일컫는다. 그렇게 선의 끝자락엔 우리 민족의 정서와 끈기가 놓인다.
물론 선을 표상 화하는 과정은 녹록치 않다. 일단 그는 일일이 손으로 한지를 최대한 밀도 있게 말아 만든 종이 막대를 일정한 길이로 자르고 도열시켜 직선과 곡선으로 안착시킨다. 이때 전체적인 형상에 의해 길이와 각도는 달라지며, 반대로 형상 및 리듬 역시 막대의 높낮이와 각도에 의해 결정된다.
작품마다 선의 굵기와 형태는 거의 동일하며 선들의 간격도 일정하다. 비교적 단조로운 구성이지만 그 이면에는 시공을 넘나드는 삶과 존재에 관한 관점이 내재되어 있다.(명상적 삶의 지향과 예술에 관한 작가의 생동, 변함없는 존재적 몸짓, 생명력 등은 선의 집합과 그것들의 리듬, 변주에 기인하지만 생각만큼 눈에 확연이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간혹 작품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선들은 오히려 서정민이 의도한 본질적 의미를 더욱 선명하게 하는데, 그 ‘한번 그음’ 자체로 조형적 변화를 창출하지만 한편으론 우주적 존재성과 갈음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먹(흑연이나 여러 수성 컬러를 바탕으로 한 작업도 좋지만 먹이야말로 그의 근작들과 가장 조화롭다.)을 이용해 색을 앉히고 구성을 짠다. 만약 실수라도 하게 되면 그동안의 과정은 수포로 돌아간다. 그야말로 한지를 선택해 압축하고 잘라 색을 소성-산포하며 감각적인 이미지를 도출시키는 것 모두가 수고스러움이다.
선의 집합과 산란의 광경을 통해 완성된 작품은 한지와 먹을 중심으로 전통적인 한국의 미학을 현대미술의 맥락에서 재해석 했다 해도 무리는 없다. 작품에 배어 있는 종교적이거나 재료 특유의 친밀함도 주목의 이유지만, 특유의 여백 속 다채로움은 서정민의 작업을 돋보이게 하는 이유다.
특히 깊은 역사와 민족적 이야기를 담고 있는 문자를 품은 선은 그의 작품에 가장 핵심적인 요소로써, 한지의 선과 겹쳐 내려간 종이 층은 아무리 한지를 소재로 작업한들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특성으로 꼽힌다.
3.
선은 반복으로서의 무한을 나타낸다. 이 무한의 개념에는 형태의 동의어가 아닌 순환하는 역사, 매 순간 유일하고 독립된 연속성의 순리가 담긴다.(사실 그의 원형의 대형 작품들도 같은 원리이다.) 그러므로 그의 선은 가득하고도 비어 있는 모든 것이며, 채워짐으로 덜어내는 존재로서의 공명과 수행의 끊임없는 공전을 유발하는 일체이다.
근래 들어 서정민의 작업은 공명의 수위를 지나 공(空)이란 개념으로 나아가고 있다. 공이란 본래 없음을 뜻한다. 동양철학에선 인식주체로서의 심념(心念)이 거세되고, 인식객체로서의 차별상이 없다는 것을 뜻하지만 본연은 유위(有爲)와 무위(無爲)의 총체로써, 확장의 자리에서 주변을 품는 형국 전체를 말한다. 그리고 그의 근작들은 그 전체를 감싼 채 위치한다. 선 긋기를 통해 본질에 다가서려 노력하고 거추장스러운 형상을 제하며 설명을 명상으로 채우기 시작한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다만 갈수록 각주가 줄고 행간에 의한 해석의 여지가 더욱 커지고 있다는 점은 이전 작업과 큰 차이다. 이는 무(無)의 공간을 메움으로써 본연의 존재성을 옹립시킬 수 있으며, 반대로 채움을 통해 비움으로써 어떤 의미를 생성하고 존재의 본질에 다가설 수 있음과 맥을 같이 한다.
시각 예술가인 작가는 어떤 형태를 만들고 그것에 여러 현실적인, 혹은 시공의 잔상이 남긴 의미들을 덧씌울 수밖에 없지만 그것이 형식을 통해 직관적인 지력위에서 활성화 되어있을 뿐 그 자체가 전부는 아니다. 일례로 밝은 바탕에 검은 원형 하나가 자리 잡은 작품은 가시성과 지각의 경계를 극단으로 밀어붙인 경우다. 여기다 그의 선(線)과 선(禪)을 잇는 사유의 여백과 존재의 유속이 개입됨으로써 그의 작품은 이미지가 아닌 어떤 의미가 된다.
이렇듯 선과 사유의 여백, 모자람 없는 채움의 공은 그의 작업을 특징짓는 단어들이다. 또한 차후 나아갈 방향을 가늠할 수 있도록 하는 조타이다. 조형을 비롯해 씨줄과 날줄처럼 얽히고설킨 여러 내외적 심상들을 포섭하는 중요한 매개다.
그것이 비록 독해의 요령을 체득토록 요구하고, 가끔은 선문답 같기에 답을 찾아야만 하는 타자 입장에선 수고스럽긴 하나, 말없이도 ‘교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작화의 의도는 이미 상호 교환적이다.
필자는 그의 작품을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읽을 수 있는 그림, 영구적 항존성의 재음미라는 하나의 개념적 본류와 그것을 지탱하는 여러 지류의 통섭으로 본다. 그것으로 인해 규정에서 이탈하고 ‘외적인 변주’나 ‘가시적 표출’에 국한되지 않을 수 있음을 목도한다.
한편 필자는 서정민의 근작에서 흥미로운 지점을 발견한다. 그건 예술의 본질과 진리를 드러낼 수 있는 가능성에 관한 것에 관한 탐닉과 더불어, 특정적인 장르의 규칙을 해체하며 긴 시간을 다양한 변화를 시도해 왔다는 것이다. 서양화를 전공했고 동시대미술의 흐름에도 관심을 기울였기에 표현에 있어 쉽고 빠르며 편한 길을 알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작가는 미술의 가치는 엄연히 수공적인 특질에서 비롯됨을 믿기에 손수 공들여 화면을 분할해 채우면서 물질의 실체성은 물론, 그 안에 배어 있는 ‘보이지 않으나 보이는’ 것, ‘들리지 않으나 들을 수 있는 것’에 대해 탐미한다.
작가는 이제 단순히 물질감을 구현하고 형태를 재현하는 등의 거죽만이 아닌, 그 속에 담겨진 의미와 정신에 방점을 둔다. 현재를 살아가는 예술가로써 무엇을 왜 어떻게 해야만 하는지, 어떤 길에 서야 자신만의 정체성과 우리 것만의 미적 가치를 획득할 수 있는지에 시선을 옮긴다. 이번 서호미술관에서의 전시는 그 시선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
“서정민의 작품은 표상 예술로부터의 유의미한 이탈을 나타낸다. 그의 작품은 가시적 만족을 건너 정신적이고 감정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예술 공진의 잠재력을 증명하며, 존재의 본질과 물질세계(현실)를 교차시킴으로써 동시대미술의 한 자리에서 자신만의 길을 보여주고 있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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