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리: 퍼크와 밤의 그림들

2024.07.07 ▶ 2024.08.18

원앤제이 갤러리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60길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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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리

    Kiss 2024. 캔버스에 혼합재료, 195 x 112 cm 이미지 제공: 이안리, 원앤제이 갤러리. 촬영: 아티팩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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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리

    올리브 트립 2024. 캔버스에 혼합재료, 195 x 112 cm 이미지 제공: 이안리, 원앤제이 갤러리. 촬영: 아티팩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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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리

    카니발 색종이 2024. 캔버스에 혼합재료, 112 x 195 cm 이미지 제공: 이안리, 원앤제이 갤러리. 촬영: 아티팩츠

  • Press Release

    원앤제이 갤러리는 오는 7월 7일부터 8월 18일까지 이안리 작가와의 첫 개인전 《퍼크와 밤의 그림들: Puck, Nocturnal Paintings》을 선보인다. 전시명에 언급되는 ‘퍼크(Puck)’는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의 대표적인 희극 “한여름 밤의 꿈"에 등장하는 요정으로, 이번 전시에서 중요한 모티프이다. 퍼크는 한 여름 밤에 숲속에서 잠든 두 남녀의 눈에 몰래 팬지 꽃즙을 떨어뜨려 사랑에 빠지게 하는 장난을 치고, 이에 시작된 연인 간 사랑의 이야기가 극에서 펼쳐진다. 전시 《퍼크와 밤의 그림들》에서 퍼크는 이안리의 또다른 자아로 은유된다. 정원에 있는 식물들을 비롯해 자기 주변의 크고 작은 것들을 자세히 관찰하는 이안리는 인간 관계도 깊이 살핀다. 우리의 일상은 반복되는 듯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많은 인간 관계를 통해 파생되는 상황들과 복잡한 감정들로 가득 차있다. 작가는 자신의 일상에서 겪은 관계에서 비롯한 감정과 경험들을 이번 개인전에 담아냈다. 퍼크가 모르는 연인 관계에 몰래 파고 들어 장난을 치듯이, 이안리는 작품을 통해 퍼크처럼 사랑을 비롯한 복잡 미묘한 인간 관계에 몰래 개입하기도 하고, 새로운 상황이 생겨나길 기대하며 담아낸다. 새로운 관계를 기대하듯 캔버스에 물감을 툭툭 던지기도 하고, 우리 맘대로 할 수 없는 관계처럼 의도했던 것과 어긋나게 즉흥적으로 선을 긋기도 하고, 또는 비밀처럼 작가 자신만 알 수 있게 그림 속에 슬며시 무언가를 그려놓는 등 이안리는 천진한 태도로 신작을 그려낸다.

    신작 회화 〈키스〉(2024), 〈카니발 색종이〉(2024), 〈올리브 트립〉(2024)을 비롯한 그의 회화는 ‘모래'를 주재료로 한다. 모래는 흔히 조각에서 쓰이는 재료인데, 이안리는 조각을 만들어왔던 자신의 경험과 천천히 쌓아나갈 수 있는 모래의 특징을 활용해 회화에 녹여낸다. 모래, 아크릴, 각종 안료들을 섞어서 캔버스 위에 칠하고, 마르면 다시 긁어냈다가, 다시 칠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작가는 이 과정에서 감성과 이성을 오가면서 그려내고, 티끌같은 점처럼 아주 작은 단위로까지 그려졌을 때 그 그림을 완성한다.

    특히 이번 전시는 여름에 선보여지는만큼, 이안리 작가가 전시 곳곳에 뿌려둔 사랑의 묘약과 같은 작품들과 함께 ‘한여름 밤의 꿈’을 감각할 수 있도록 야간 운영도 진행한다. 7월 9일(화)부터 7월 14일(일)까지 일주일간 한여름 밤에 전시를 관람하는 특별한 전시 경험도 즐겨보길 바란다.
    ■ 원앤제이 갤러리


    꽃즙 머금은 살갗_이안리의 예술로 삶되기

    “이것은 커다란 기쁨. 한 송이 꽃 옆에 또 하나의 꽃 한 송이.”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Maria Wisława Anna Szymborska),
    <진부한 운율 속에서> 중에서 발췌,

    1. 통영에서의 발견
    이안리(이후 안리)는 통영 뒴미기 해안에서 선박 표면에서 떨어져나온 페인트칠 껍질을 우연히 발견한다. 선박 도장(painting)이었다. 도장은 회화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선박 도장의 필요성은 알다시피 소금기에 의한 철판 산화를 막기 위함이다. 이 공정이야말로 선박의 수명을 좌우하기에 여러 차례 도장 공정을 거쳐야만 한다. 이와 같은 도장 과정은 단지 선박 외부의 안정성뿐 아니라 해수에 대한 내수성과 공기 변화에도 잘 견디도록 하는 내후성을 유지시켜 선박 내 생활 환경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꽤 흥미로운 사실이다. 왜 안리는 이 낡은 페인트 껍질을 주웠을까. 안리는 고전주의 회화에 큰 영향을 받았고 회화란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시학적 과정이라고 믿는다. 그는 회화가 되어가는 이 시학적 과정을 통해 형상을 재현하기보다 안리의 회화는 겉모습을 재현하지도 않으며 심상을 드러내기보다 어떤 정서를 형성하는 데 집중하는 편이다. 그래서일까. 안리의 회화는 대상의 껍질이나 살갗에 더 집중하는 듯하다. 살갗은 신체의 가장 큰 장기이다. 숨쉬고 내뱉으면서 안과 밖의 상태를 조절하는 것도 도장의 기능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안리가 우연히 발견한 선박의 껍질은 오랜 항해를 버텨내기 위한 화장술이지만 그것이 오로지 겉모양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게 아니듯, 몸에서 박리된 이 껍질은 각질처럼 내부를 보호할 의무를 다하고 탈각된 비체들(abjects)로 볼 수 있다. 과연 이 기능을 위한 회화는 그것-너머의 회화로 나아갈 수 있을까? 안리는 이 비체들을 꼼꼼히 거두어 앞으로 나타날 회화의 가능성을 엿본다. 그가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은 식물과 동거하는 곳이다. 온실의 어원을 살펴보면 보육실의 의미를 포함하기에 ‘치유의 공간(nursery)이라 부를 수 있겠다. 이곳은 살아있는 것과 죽은 것, 생물과 사물이 나름의 질서로 유지되는 자신만의 가치를 인정받는다.

    2. 안리의 여름
    그는 꽤 오랜 기간 동안 다원적인 프로젝트를 통한 실험을 지속해 왔다. 따라서 특정 매체에 집중하기보다 공간, 사물, 사람, 행위를 겹치고 포개어 예측불가능한 상황을 발생시키는 데에 열중했다. 요컨대 이번 전시는 작가의 독서에서 시작된다. 안리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한여름밤의 꿈』을 읽고 우연과 운명이 교차하던 어느 여름 밤과 회화를 연결한다. 통영에서 발견한 껍질과 같은 등장인물을 희곡에서도 발견한다. 바로 퍼크(Puck)이다. 만약 퍼크가 없었다면 한여름 밤의 사랑과 갈등, 이간질과 오해로 비롯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는 건 불가능하다. 퍼크는 요정의 계보를 잇는 존재로 인간사에 개입하여 이런저런 사건을 야기하고 웃음을 유발시키는 존재로 특별히 악의를 가지지는 않는걸로 알려져 있다. 인간도 신도 아닌 퍼크는 우연을 빙자하여 결정적인 순간에 문제를 야기하지만 동시에 사람들 사이에서 포복절도의 웃음을 일으키는 사랑스러운 존재이다. 사실 퍼크의 모습에서 안리가 겹쳐지기도 한다. 심지어 퍼크는 큐피트와 유사하게 사랑의 작대기를 잘못 그어 사랑과 질투로 인해 운명을 엉망친창으로 만들어 놓고 만다. 하지만 등장인물들은 한여름 밤의 너그러움을 이용하여 무너진 질서 속에서 숨겨둔 욕망을 허락한다. 그렇다면 밤의 회화란 욕망할 수 있는 모든 것, 관습의 바깥으로 향하는 모종의 통로가 열리는 시공간이 아닐까? 안리는 밤의 회화 속에 꽃즙에서 기인한 것 같은 얼룩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훔쳐본다. 그렇게 안리는 여름밤의 꿈 속에서 산화하는 불꽃 같은 안트라퀴논 블루로 어둠을 경배한다.

    3. 식물과의 동거
    안리는 긴 시간 이주의 삶을 거친 후 운명적으로 식물을 만나면서 지금 여기, 현실과 삶이 있는 곳에 정박 중이다. 과연 그가 얼마나 정주하는 삶을 지속할지 알 수는 없지만, 지금이야말로 어지간이 굴곡졌던 그간의 기억들이 시차를 두고 그의 회화를 싹틔우는 시기가 아닐까 싶다. 오랫동안 별을 향해 쏘아올린 그의 열정과 야망은 하늘의 성좌에 다가가다가 프로테메우스처럼 대지의 생명을 향해 수직하강한다. 이제 성좌는 대지를 적시고 풍요로운 생명의 세계로 인도한다. 안리는 대지가 품은 무한의 생명력을 식물을 통해 감지한다. 마침 식물은 그에게 이제 정주해야 할 시간이라고 속삭인다. 이후 안리는 자연의 돌봄자가 된다. 안리에게 자연의 범위는 매우 넓다. 가족, 지인, 사물, 기억 등 모든 인간-비인간 존재가 여기에 속하지만, 그중에서도 꽃은 유독 아끼는 존재이다. 여기에서의 꽃이란 상호-돌봄의 대상이다. 안리와 꽃은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를 치유해주는 관계이다. 안리는 유독 꽃의 수술, 꽃밥, 꽃방, 씨방, 암술대 등과 같이 꽃을 구성하는 기관을 주목한다. 기관들은 보이는 것 너머 다른 지각적 세계를 소환하는 과정이다. 꽃가루주머니를 품은 수술, 원형의 암술대의 점액질과 같은 원소적인 상상의 세계야말로 안리가 주목하는 지점이다. 따라서 작가는 아름다움의 전형으로 대상화된 꽃이 아닌 생명으로서의 구조(anatomy)를 상상하자고 제안한다.

    4. 밤의 회화
    안리는 비정형적이면서 퍼포먼스에 가까운 실험을 지속해 왔다. 성북동 살구에서의 실험들은 작가의 삶과 그 주변의 것들이 서로 어우러지면서 일군 결과들이었다. 여기도 저기도 아닌 이상한 세계에서 안리는 보잘 것 없는 것을 귀하게 만드는 연금술사를 자처하였다. 그는 꽤 오랜 시기를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적잖은 방황의 시기를 거쳐왔다. 성공의 문턱에 다다른 적도 있었고 세상의 끝에 남겨진 적도 있었다. 방황의 시간은 어쩌면 찬란한 빛을 한꺼풀씩 걷어내어 현실에 다가가는 과정이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래서 안리는 밤의 회화를 통하여 감췄던 욕망을 스스로 허락하는 여름밤의 유희에 그치지 않고 조금 더 회화적 사유를 펼치고자 한다. 장난에 그치는 우화를 조금 더 연장시키는 듯하다. 화면을 지배하는 검푸른색과 암석을 연상시키는 덩어리들 그 사이에 몽글몽글 피어나는 포말과 입자들은 그저 밤의 사물이 아니다. 특히 이번에는 모래를 주질료로 사용하여 고대적인 시간으로 틈입을 시도하는 듯하다. 마치 뉴멕시코의 나바호(Navajo) 모래 회화를 대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회화는 세계와의 ‘반응’이다. 감각적이고 즉흥적인 상태에서 마주한 것들, 이름이 없거나 그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은 어떤 것들과의 감응에서 비로소 작업이 시작된다. 모래의 결을 고르고 접착제를 이용해 캔버스에 고정시킨 후 사포로 연마되어 촉각적 상태로 진화한다. 어루만지고 주무르고 두드리는 현상학적 과정이 뒤따른다. 이처럼 안리는 몸을 통해 소통한다. 이러한 소통 방식을 두고 뤼스 이리가레는 “타자에게 말하기를 원하는 몸과 살을 육화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랑의 길, 정서영 역, 동문선, 2009, 35쪽). 그(것)들은 밤의 목격자이다. 퍼크와 안리의 장난을 외눈박이로 바라본다. 이 여름밤 축제에 두 점의 전작도 포함되었다. 종이 위에 흑연으로 그린 (2011)와 (2016)은 마치 밤의 그림을 위한 서막처럼 등장한다. 안리의 회화는 이처럼 초현실주의의 무의식적 흔적을 통해 구체화되어 현재에서 과거와 조우하면서 시간의 질서가 해체된다. 이처럼 안리는 정주와 이주를 오가며 식물적 삶의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이 모순적인 순환의 고리는 그의 작업 - 그것이 회화이든, 조각이든, 아니면 사물이나 행위이든 상관없이 - 의 원천일 것이다.

    정현 (미술비평, 인하대)

    전시제목이안리: 퍼크와 밤의 그림들

    전시기간2024.07.07(일) - 2024.08.18(일)

    참여작가 이안리

    관람시간11:00am - 06:00pm

    휴관일월요일 및 공휴일 휴관

    장르회화

    관람료무료

    장소원앤제이 갤러리 ONE AND J. GALLERY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60길 26 )

    연락처02-745-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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