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찬: 경비원, 나팔수, 도깨비 Ranger, Joseph, Goblin
2025.05.10 ▶ 2025.06.14
2025.05.10 ▶ 2025.06.14
전시 포스터
정우찬
《경비원, 나팔수, 도깨비》, 전시전경 아트센터 예술의 시간 4층ⓒ2025. ACAM and Jung Woochan. All rights reserved. 사진제공: 아트센터 예술의 시간
정우찬
《경비원, 나팔수, 도깨비》, 전시전경 아트센터 예술의 시간 4층ⓒ2025. ACAM and Jung Woochan. All rights reserved. 사진제공: 아트센터 예술의 시간
정우찬
LLKR 02 - 03 2025, archival pigment print, aluminum frame, 16x12cmⓒ2025. ACAM and Jung Woochan. All rights reserved. 사진제공: 아트센터 예술의 시간
정우찬
LLKR 04 2025, archival pigment print, aluminum frame, 16x12cmⓒ2025. ACAM and Jung Woochan. All rights reserved. 사진제공: 아트센터 예술의 시간
정우찬
LLKR 05 - 19 2025, archival pigment print, aluminum frame, 16x12cmⓒ2025. ACAM and Jung Woochan. All rights reserved. 사진제공: 아트센터 예술의 시간
정우찬
LLKR 24 - 26 2025, archival pigment print, aluminum frame, 16x12cmⓒ2025. ACAM and Jung Woochan. All rights reserved. 사진제공: 아트센터 예술의 시간
정우찬
경비원, 나팔수, 도깨비 2025, single channel video, color, sound(stereo), 37 minsⓒ2025. ACAM and Jung Woochan. All rights reserved. 사진제공: 아트센터 예술의 시간
그 너머에서, 마주하는 대화적 시선들
지금 내가 보는 송출된 저 세계는 내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저들의 이야기에 내 마음은 얼마나 움직이고 있는가? 정우찬은 카메라를 매개로, 그리고 다큐멘터리 장르를 기반으로 사진과 영상 작업을 진행 중이다. 카메라는 존재의 실재성을 바탕으로 사실성, 진실, 투명성을 은유한다. 그러나 카메라는 자신의 프레임 안으로 들어온 세계와 프레임에서 배제된 세계를 동시에 생성한다. 카메라에서 기대되는 명백한 진실의 폭로는 때로 똑같은 방법으로 교묘한 현실의 왜곡을 자행한다. 이러한 카메라의 양면성은 다큐멘터리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더욱이 다큐멘터리를 포괄하는 상위 개념은 논픽션(non-fiction)이다. 이것은 정교한 각본이나 연출이 없이 일정 시간 동안 실제로 일어난 순간들이며, 주어진 배역이 아닌 본인으로 등장하는 출연자는 자신의 목소리가 내면으로부터 비롯된 발화라 말한다. 그렇기에 다큐멘터리는 우리 삶이 펼쳐지는 세계에 적극적으로 뛰어든다. 때때로 이들은 자신들이 비추는 대상을 왜 지금 보여줘야 하는지에 관한 타당성을 위해 ‘주장’과 같이 존재하며, 동조와 공감을 간구한다. 그렇기에 다큐멘터리는 다른 무엇보다 영상 앞의 관객, 곧 들어주는 자를 요청하며, 이들의 시선은 건네지는 대화처럼 존재한다. 정우찬은 이번 전시에서 서로 다른 시선을 가진 다큐멘터리를 충돌시켜 발생하는 현상을 바라본다. 각각의 프레임이 배제해 온 세계를 드러내고, 충돌이 발생시킨 복합적 목소리를 탐구한다. 그리고 이들이 공존하는 지점에서 어떤 대화가 형성될 수 있는지 주목한다. 작가의 목적지는 카메라가 도달한 결괏값의 화면이 아닌 그것의 너머에서, 카메라가 닿기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던 시선과 목소리를 향해 있다. 그리하여 발화함 그 자체, 시선을 마주하고 목소리를 공유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로 우리를 돌려내며, 입체적 존재자와 다성적 목소리의 공존 가능성을 감각적으로 보여준다.
정우찬의 개인전 《경비원, 나팔수, 도깨비》는 현시점 강원도 춘천의 섬인 ‘중도’에 동시다발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장소인 ‘레고랜드’와 ‘중도유적지’를 배경으로 한다. 영국의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프랜차이즈 테마파크 사업인 레고랜드 코리아 지점과 한반도의 고조선 역사 및 청동기 시대의 유물과 문화를 간직한 중도유적지가 공존할 수 있을지에 관한 의구심은 직관적으로 생성된다. 정우찬은 같은 시공간, 다른 장소성에서 발현되는 주체적 시선들과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담아낸다. 그리고 오랜 시간 좁혀지지 않고 평행선을 유지해 온 입장들을 비규칙적 순간들로 교차시켜낸다. 작가에 의해 모이게 된 다성적 목소리들은 비로소 접촉하며 독특한 모양의 대화를 형성하기 시작한다.
정우찬은 영상 작업 〈경비원, 나팔수, 도깨비〉와 시리즈 사진 작업 〈LLRK〉, 그리고 개인전 《경비원, 나팔수, 도깨비》에서 공통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세 가지 시선에 모두 개입하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해 작가가 전달하는 시선들은 작가가 가진 고유한 삶의 배경으로부터 기인하고 있다. 실제로 일정 기간 레고랜드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작가는 레고랜드를 순찰하는 업무에서 특정 시위대를 마주해야 했다. 이로부터 비롯된 작가 자신, 일터, 동료들의 이야기를 담은 시점은 일인칭의 관점에서 ‘경비원(Ranger)’을 보여준다. 한편으로 작가는 일정 기간 삶의 터전으로의 기억을 강원도에 두고 있으며, 그 땅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익숙하고 친밀했던 장소에 관한 관심은 다큐멘터리 감독의 시선에서 레고랜드에 대항하는 특정 시위대인 ‘나팔수(Joseph)’를 담아낸다. 두 시선 모두 다큐멘터리의 시각적 어법을 성실히 시행하며 저마다의 ‘진실성’을 호소한다. 작가는 극단에서 대치하고 있는 시선을 한데 모아 ‘도깨비(Goblin)’의 자리를 마련한다. 이곳은 레고랜드의 내부와 바깥에서 이중적으로 실존하는 작가 자신의 자리이자, 이곳을 바라보는 관객의 시선과 목소리가 위치할 자리로 남겨진다.
나는 당신에게 ‘나’에 관해 이야기한다.
업무의 특수성으로 장착된 액션캠은 빛을 감지하는 기능과 함께 흑백과 컬러를 오가며 흔들리거나 왜곡된 화면으로 레고랜드의 현장을 생생히 담아낸다. 일인칭 시점의 화면은 마치 같이 있는 듯한 느낌과 함께 그들의 일상으로 우리를 자연스럽게 인도한다. 경비원으로 등장하는 정우찬은 홀로, 때로는 동료와 함께 주어진 업무의 일환으로 레고랜드를 순찰하고 위험이 될 만한 요소를 제거한다. 경비원은 통상 의무적으로 레고랜드의 규칙을 따르며 이들의 세계관을 온전히 보존한다. 그렇지만 그 안에서 존재하는 개인으로서 이들이 각각의 대상과 관계 맺는 시선은 수많은 모양으로 형성되고 있다. 시위대의 돌발 행동은 언제나 불만의 요소이며, 레고랜드의 태만한 응대 방식 또한 지탄의 대상이다. 갑자기 배정된 업무에 당혹감을 느끼기도 하며, 극한의 더위와 추위에서도 지속되어야 하는 야외 업무는 언제나 고되다. 근로계약과 관련된 레고랜드의 태도는 꽤 지독한 자본주의 집단으로 들린다.
경비원이 마주하고 있는 시위대, 레고랜드, 그리고 자신에 관한 이야기는 이곳에서 서슴없이 던져진다. 경비원에게 레고랜드는 어린 시절 추억을 연상시키는 선망의 대상, 또는 그저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일터이자 무미건조하고 폐쇄적인 거대 자본 집단일 뿐이다. 경비원에게 시위대는 위협적이고 동시에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집단이자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일삼는 미지의 존재자들이다. 경비원의 시선은 정제되지 않은 그대로를 보여주며, 이들의 적나라하고 직설적인 목소리는 마치 불편한 자리에 초대된 듯한 느낌과 함께 생생한 발화의 살아있음을 전달한다.
나는 당신에게 ‘그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동그랗게 모여 구호를 외치고, “중도유적 원형보존” 현수막을 차에 걸고 달리는 이들이 있다. 레고랜드를 공유하고 있는 땅에 호랑이가 그려진 천막을 걸고, 삼족오 깃발을 세움으로써 이곳이 다른 영토임을 주장한다. 자신들을 취재하러 온 제작자를 자연스럽게 맞이하고 자신들의 활동을 설명한다. 고조선의 문화유적을 지키려는 자들에게 레고랜드는 자본이라는 하나의 목적만을 추구하는 불쾌한 집단이며 반드시 없어져야 할 세력이다. ‘중도유적 지킴이’를 자청하는 이 특정 시위 단체는 레고랜드를 내쫓고, 중도의 유적지를 복원하려는 목적아래 연합군처럼 행동한다. 이들에게서 잘못된 것에 대한 모든 대항은 충분히 정당해 보인다.
오랜 시간 꿋꿋이 대항하고 있는 특정 시위대에 관한 호기심으로, 이들을 알기 위해 찾아온 다큐멘터리 제작자 정우찬은 어쩌면 단체 내부에는 어떤 구체적인 전략이나 준비하고 있는 법적인 절차 등이 있을 것이라 기대했을지도 모르겠다. 이 제작자는 이들과 함께 섬의 곳곳을 살펴보며 레고랜드의 만행을 찾기도 하지만, 이내 이들이 다소 독특한 방법으로 레고랜드에 대항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들은 높이 솟은 레고타워를 민족의 정기를 끊는 쇠말뚝이라 말한다. 레고타워에 대항하기 위해 그보다 더 높은 지대의 땅에 시위대의 깃발을 꽂는다. 산속 나무 여기저기에 걸린 깃발 조각들이 섬의 성스러움을 보존해 줄 것이라 믿으며, 간절히 염원하는 마음으로 단군의 족자 앞에 제사를 지낸다. 동일한 목적을 지향하는 이들에게서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법한 이들의 행동은 분명 모두가 환영하는 방법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천박한 문화의 혼종’에서 ‘우리의 것’을 되찾기 위한 이들의 시도는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나는 당신과 함께 이곳에서 이야기하길 요청한다.
‘나’와 ‘그들’의 목소리는 서로가 서로를 급습하는 모양새로 뜬금없이 개입하고 갑작스레 사라진다. 이 과정에서 각자가 외면하고 싶은 모습이 상대방에게서 교차 검증되듯 확인된다. 레고랜드 근처에서 울려대는 짐승과 귀신소리는 시위대의 맞불작전이다. 이들은 소를 풀고 도로를 점령하는 등의 기습 시위를 진행한다. 마찬가지로 시위대는 레고랜드가 중도 유적지에 가한 모든 행동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섬 곳곳에 흩어져 있는 만행을 기록한다. 대화하는 이가 말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때로 발화자 자신은 그가 마주한 타인 속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작가는 각 주체자가 자기 자신, 그리고 상대를 바라볼 때 드러낸 시선의 모양들을 국영문의 작품명을 통해 실마리처럼 제시하고 있다. 레고랜드 직원은 스스로를 단순한 경비원이라 생각할지라도, 시위대에게 이들은 Ranger(유격대), 곧 무장한 군인처럼 끊임없이 자신들을 감시하고 있는 존재들이며, 시위대는 다수를 이끄는 나팔수처럼 행동하지만 레고랜드 직원에게는 Joseph(요제프 괴벨스, 1897-1945)와 같이 그릇된 이념을 가진 무분별한 숭배의 집단이자, 제멋대로인 사람들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양극단의 시선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형성되는 ‘도깨비’의 시선은 작가의 초월적 설정에 기반한다. 지금으로부터 8000년전 존재했던 고조선 사회와 2025년 현존하는 레고랜드의 공통적 결말은 아무리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순간을 갖고 있는 문명일지라도 수십만 년 이후에는 지층의 하나에 불과해질 뿐이며, 그때 첨예한 대립 관계나 정의의 개념 또한 어떤 상태가 되어 있을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작가의 환기적 장치로,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는 극단적 허무주의나 누구의 편에 동조할 것을 묻는 정치적 질문이 아닌, 이 모든 것―갈등, 대립, 대화, 입장, 목소리 등―이 발생하고 있는 근원적 현상으로 중심을 옮겨보자는 요청으로 주어진다. 작가의 시도는 극단의 대립 끝에 몰두하고 있던 우리의 시선을 돌려낸다. 선도 악도 아니며, 여러 형상의 경계를 오가며 다양하게 변화하는 도깨비의 습성처럼, 작가의 시도는 일방향의 목소리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그 너머에서 일어나는 실재들과 그들이 연결되어 있는 모양, 그 속에서의 개인과 타자와의 관계성에 관해 묻고 있는 듯 존재한다.
전시장의 사진들은 모두 동일하고 일정한 크기의, 숨 쉴 틈도 없이 연속적이거나 극단적으로 독립된 배열을 이루고 있으며, 영상 작품에서는 여러 시점과 시공간의 화면들이 어지러이 간섭하고 혼재되어 있다. 정우찬은 하나의 터전에서 발생한 이질적 시선과 목소리를 사진과 영상으로 담고 있지만, 이를 뒤섞어버린다. 갑자기 등장하는 타자의 목소리는 일정한 서사성을 깨트리며, 거슬리고, 불편함을 초래한다. 관객은 하나의 목소리에 집중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방해를 받는다. 정우찬의 작품에서 비롯되는 감각적 경험은 실상 우리의 세계가 이러한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었음을 상기시킨다. 세상의 존재 방식이 하나의 목적이나 균일하게 관점으로 통일되어 있지 아니하며, 수없이 다양하고 이질적인, 즉 다성적 목소리들의 혼합체임을 말이다. 그렇게 작가는 혼재된 목소리로 가득한 세계의 실체를 보여준다.
‘독백적 선언은 숭고하나 공허하며, 고립을 자처하기에 생명력을 잃게 된다. 진리는 독백이 아닌 대화적 형태로 구성된다. 살아있다는 것은 대화하는 것과 같다. 긴장감은 생명력을 입증한다.’(Mikhail M. Bakhtin,1895-1975)
정우찬이 제시하는 혼란스러운 대화에서 소통은 없고 입장만이 가득한 현시대를 떠올린다. 사진 작품을 두르고 있는 형형색색의 프레임은 레고랜드의 알록달록한 블록을 떠올리게 하지만 마치 ‘프레임을 씌우듯’ 타자에 색깔을 입혀 바라보는 구분과 배척 행위의 비유이기도 하다. 오늘날 개인은 같은 것을 지향하는, ‘말이 통하는’ 집단에서만 이야기한다. 빅데이터, 알고리즘의 역할은 개인의 선호를 추려내며 점점 더 우리를 편안함으로 고립시켜 간다. 조금의 차이, 불편함이나 긴장감은 극적인 분노와 혐오, 폭력으로 바뀔 잠재력을 키워간다. 현시점 집단만이 가득하고 공동체는 부재하다. 정우찬의 흥미로운 다큐멘터리는 마치 다성문학과 같이, 여러 목소리가 참여하는 가상적 대화처럼 형성된다. 그리고 작가는 자신의 개인전 《경비원, 나팔수, 도깨비》에서 우리의 참여를 적극 권유한다. 나의 시선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대화라는 것은 실제로 이뤄지고 있는 것인가? 소통은 환상일 뿐인가? 대화는 언제나 듣는 이를 상정하고 있다. 그것이 그 누구일지라도. 지금 이곳은 대화를 갈망하는 바람들로 가득하다.
글 | 김민경(아트센터 예술의 시간 큐레이터)
■ 전시연계프로그램
아트센터 예술의 시간의 신진작가 공모 선정자 정우찬의 개인전 《경비원, 나팔수, 도깨비》 연계로 아티스트 토크를 진행합니다. 작가의 작품 설명과 제작 과정의 에피소드를 풀어내고, 관객의 시선과 감정을 공유합니다.
■ 아티스트 토크: 우리의 도깨비적 시선
■ 일정: 6월 14일 토요일 15시
■ 진행: 정우찬 작가
■ 대상: 성인
■ 비용: 무료
■ 장소: 아트센터 예술의시간 4층
■ 문의: 인스타그램 @artmoment.doksan DM, ☎02-6952-0005
전시제목정우찬: 경비원, 나팔수, 도깨비 Ranger, Joseph, Goblin
전시기간2025.05.10(토) - 2025.06.14(토)
참여작가 정우찬
관람시간월-금 10:00~18:00
토 12:00~19:00
휴관일일요일, 공휴일 휴관
장르회화
관람료무료
장소아트센터 예술의 시간 Art Centre Art Moment (서울 금천구 범안로9길 23 (독산동) 2층)
주최아트센터 예술의 시간
후원㈜영일프레시젼
연락처02-6952-0005
55주년: 한국 현대미술의 서사
갤러리현대
2025.04.08 ~ 2025.05.15
섬광 FLICKER
신한갤러리
2025.04.03 ~ 2025.05.16
장승택 | 겹 회화 : 거의 푸르른
갤러리 학고재
2025.04.15 ~ 2025.05.17
권정호: 분지의 아픔
권정호미술관
2025.03.18 ~ 2025.05.18
2024 인천미술 올해의 작가《염지희: 녹투라마: 발렌틴의 도끼》
인천아트플랫폼
2025.03.06 ~ 2025.05.18
미니버스, 오르트 구름, ㄷ떨:안녕인사
아르코미술관
2025.04.10 ~ 2025.05.18
김홍도 <백매>
간송미술관
2025.01.16 ~ 2025.05.25
훈민정음 해례본: 소리로 지은 집
간송미술관
2024.09.03 ~ 2025.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