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정은: 감각의 계절-The Season of Senses

2025.11.13 ▶ 2025.12.06

갤러리 진선

서울 종로구 삼청로 59 (팔판동) 2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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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이정은

    거기, 살아있음에 대하여, 봄, 여름 그리고 가을, 202535, oil on canvas, 112.1x145.5cm,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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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이정은

    거기, 살아있음에 대하여,봄, oil on canvas, 65.1x53cm, 2025_ss2

  • Press Release

    이이정은의 회화

    지금 막 생성되고 있는 것들을 그린,
    그래서 어쩌면 생성형 회화라고 해도 좋을


    고충환 (미술평론가)

    나는 회화가 되기를 바란다. 나에게 회화는 회화가 아니라 무언가 살아있는 존재 같다. 나는 회화에게 묻는다. 너는 나냐? 회화가 나에게 큰 소리로 말한다. 그래, 나는 너다. (작가 노트)


    Brushes in Bloom. 붓질이 지나간 자리에 꽃이 핀다. 버드나무에 꽃이 핀다. 벚꽃이 피고 매화꽃이 핀다. 꽃바람이 분다. 달밤이 열리고 겨울밤이 열린다. 한낮에 찾은 숲속에 무지개가 걸린다. 한밤에 찾은 개울에서는 소금쟁이가 거울 같은 수면을 밀어내며 미끄러진다. 봄이 오고 겨울이 간다. 계절이 바뀌고 시간이 흐른다. 내가 피고 네가 핀다. 존재가 피어오른다. 바이털리즘인가. 약동하는 생명력의 표상인가. 화이트홀 그러므로 존재를 낳는 우주적 자궁인가. 그림을 텍스트로 본다면, 지금 막 생성되고 있는 것들, 그래서 재현 불가능한 것들을 그린(작가의 표현대로라면 지금도 변화하고 있는 자연, 그러므로 항상적으로 이행 중인 존재의 한순간을 그린) 생성형 텍스트인가.

    모두 붓질이 지나가면서 낳은 것들이고, 그 뒤에 남은 것들이다. 그런데 정작 그림 어디에도 꽃은 없다. 달밤도 없고 한밤도 없다. 숲속도 없고 개울도 없다. 소금쟁이도 없다. 계절도 없고 시간도 없다. 그저 우연하고 무분별한 붓질이 있을 뿐. 때로 화사하고 때로 무겁게 가라앉은 색깔이 있을 뿐. 때로 빠르게 더러 머뭇거리면서 지나간 붓질이 남긴 자국이, 흔적이, 비정형의 얼룩이 있을 뿐. 그렇다면 그 자국이 어떤 미술사적인 그리고 존재론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또한 그 흔적이 어떻게 달밤을 연상시키고 여름밤을 열어놓는지 볼 일이다.

    마티스는 회화는 표현이라고 했다. 색채가 회화에서 표현을 결정한다고도 했다. 색채가 회화에서 결정적이라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주지하다시피 마티스는 색채를(그리고 형태도) 자의적으로 사용했는데, 자신의 느낌에 따라서 색채를(그리고 형태를) 사용했다. 객관적인 세계는 없다. 객관적인 형태도 없다. 객관적인 색채도 없다. 오직 세계에 대한 자신의 느낌이 있을 뿐. 그러므로 객관적인 세계를 집어삼켜 자기화하는 것, 객관적인 세계를 삼켜 주관화하는 것, 자기 자신의 프리즘 그러므로 파토스의 프리즘으로 보는 일, 다시 그러므로 자기 자신이 문제다. 세계와 주체 사이에 거리가 사라져 혼연일체가 되었다고 해야 할까. 세계와 자기의 동일시가 실현되었다고 해야 할까. 메를로 퐁티는 세계와 주체 사이에는 우주적 살로 채워져 있어서 세계와 주체를, 자연과 주체를, 객체와 주체를 나눌 수가 없다고 했는데, 이런 현상학적 이해와도 통하는 부분이 있다.

    그렇게 나는 세계라고, 내가 다름 아닌 세계라고 선언하는 회화가 열릴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표현주의가 자기를 증언하기 위해 자의적인 색채와 왜곡된 형태에 의탁했다면, 추상표현주의에서는 표현 그러므로 자기를 증명하기 위한 도구로서 오롯이 추상적인 색채와 감각적인 붓질만 남는다. 그리고 알다시피 추상표현주의는 다르게는 액션페인팅이라고도 하는데, 우리 말로는 몸 그림이 된다. 다만 행위의 흔적을 기록할 뿐인 회화, 다만 행위의 주체를 증언할 뿐인 회화가 된다. 보기에 따라서 이이정은 작가의 회화는 이처럼 추상표현주의 회화의 연장선에 있고, 액션페인팅 그러므로 몸 그림을 통해서 자신을 증명하는 경향성의 회화의 연장선에 있다고 해도 좋다. 그러므로 회화를 다름 아닌 자신을 증명하는 계기(그러므로 존재를 증명하는 회화)로 보고 있다고 해도 좋다.

    하이데거는 존재다움에 대해서 말한다. 모든 존재에는 저마다 자기다움이 있다는 말이다. 이런 존재다움 그러므로 자기다움은 소여 된 조건 그러므로 처음부터 저절로 주어진 자질이라기보다는 모든 존재가 가닿아야 할, 도달해야 할, 성취해야 할 궁극적인 어떤 지점이 된다. 소여 된 조건이 아니라 지향해가는 과정으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실존주의다.

    존재에 존재다움이 있다면, 회화에도 회화다움이 있을 것이다. 회화의 회화다움 그러므로 가장 회화다운 회화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할 수 있지만, 이렇게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점, 선, 면, 색채, 양감, 질감과 같은 회화의 형식 요소들이 어떠한 준칙도 규범도 없이(이를테면 순수 추상회화를 전제로 한 모더니즘 패러다임과 같은) 그 자체만으로 자족적인 존재를 획득하는 회화, 다만 행위를 기록할 뿐인 회화, 오롯이 행위의 주체를 증명할 뿐인 회화 정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는 있을 것이다.

    행위의 주체를 증명하는 회화? 그림을 그릴 때 주체에게 일어난 일, 이를테면 한숨, 번민, 머뭇거림, 설레는 마음, 산만한 정신, 연민, 순간적인 판단정지, 순간적인 판단 불능 상태, 결단, 내지름, 우연성의 기대, 혹 그림을 망칠 수도 있다는 불길한 예감, 불안, 불안정한 호흡, 불처럼 일어났다가 이내 사그라드는 파토스, 환희, 슬픔, 우울한 기분과 감정과 같은 변덕스럽고 종잡을 수 없는 바이오리듬, 생체리듬, 그러므로 어쩌면 우연하고 무분별한 생명력 그대로를 반영하는 회화, 그래서 회화이면서 정작 회화 자체보다는 오히려 회화의 주체를 증명하는 회화, 그래서 종래에는 회화 그대로 주체가 되는 회화를 의미할 것이다.

    이이정은 작가가 지향하는 회화가 그렇다. 회화가 가장 회화다울 때를 지향하고, 회화다움을 실현한 회화를 지향하고, 회화 자체로 존재를 증명하는 회화를 지향한다. 회화다운 회화에 대한 정의가 분분하기도 하거니와, 존재의 존재다움이 그렇듯 이미 실현했다기보다는 현재 열심히 지향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과정 중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그 과정을 통해서 회화다움을 실현한 회화에 대한, 회화다움에 대한 정의를 유추해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유익한, 그리고 여기에 감각적 쾌감마저 부수되는 형식실험의 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루시앙 프로이트는 나(나의 그림)는 살이다, 라고 했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나(나의 그림)는 고기다, 라고 했다. 여기서 살과 고기는 다르다. 살이 이물스러운 비계를 의미한다면, 그래서 권태롭다면, 고기는 죽음과 폭력을 직접적으로 상기시키는 것으로 인해 더 비극적이고 존재론적이다. 어느 쪽이건 자기 세계를 뚜렷하게 반영하고 있는 경우라고 보면 되겠다. 여기에 대해 이이정은 작가는 나는 회화다, 라고 선언한다. 여기서 나를 나의 그림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나의 그림은 그림(회화)이다, 라는 동어반복이 된다. 회화다운 회화를 지향하는 강조 화법이 되겠다. 그리고 내가 이미 그 자체로 회화다, 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나를 증명하는 회화, 그러므로 존재를 증명하는 회화가 된다.

    그렇게 작가의 그림에서 작가가 느껴지는가. 봄을 예비하고 있는 움츠러든 겨울이, 바람에 실려 불어오는 꽃향기가, 흐드러진 꽃들의 환희가(꽃들은 색으로 소리를 낸다), 바람이 흔드는 버드나무 가지가, 가는 겨울이, 오는 봄이, 열리는 계절이, 한밤의 정적을 부드럽게 감싸는 달빛이, 한밤의 정적을 깨지 않으면서 가만히 흔들어놓는 소금쟁이의 움직임이(사실은 작가의 동요가), 한낮에 저 홀로 찾은 숲속에서의 고요가, 거기 살아있는 존재들이, 바로 그 순간에 다름 아닌 바로 거기에 살아있었던 작가가, 거기 살아있는 존재들의 생명에 동참하고 공감했던 작가가 읽히는가.

    회화는 착각(착시)이다. 회화는 연상이다. 회화는 암시다. 우연하고 무분별한 붓질이, 때로 화사하고 때로 무겁게 가라앉은 색깔이, 때로 빠르게 더러 머뭇거리면서 지나간 붓질이 공모해 이런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연상을 불러일으키고, 암시를 불러일으킨다. 지금 막 생성되고 있는 것들, 그래서 재현 불가능한 것들을 일으켜 세운다. 그렇게 작가는 자신의 그림에 핀, 그림으로 핀 꽃밭으로 초대한다. 자기라는 정원(자연)으로 초대한다.

    전시제목이이정은: 감각의 계절-The Season of Senses

    전시기간2025.11.13(목) - 2025.12.06(토)

    참여작가 이이정은

    관람시간12:00pm - 06:00pm

    휴관일월요일

    장르회화

    관람료무료

    장소갤러리 진선 GALLERY JINSUN (서울 종로구 삼청로 59 (팔판동) 2층)

    연락처02-723-3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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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이정은: 감각의 계절-The Season of Sen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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