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실: 일상에서 채굴하는 생의 의미

2026.06.10 ▶ 2026.06.15

갤러리 인사아트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6 (관훈동, 갤러리 인사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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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시 포스터

  • Press Release

    전시평론

    서성록 | 안동대 미술학과 명예교수, 미술평론가

    최은실은 일상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자아를 확립하려는 주체적 의지를 시각화한다. 가사와 육아라는 현실에 부딪히면서도 자신을 관리하고 성장시켜 온 시간들이 작가에게는 귀중한 삶의 부분이자 예술적 밑거름이 된다. 이는 단순한 자기계발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삶의 의무와 자아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노력인 동시에 ‘창조적 경작’(Creative Cultivation)을 향한 작가적 실천이라 할 수 있다.

    작가는 가정과 자녀를 함양하는 부모의 가시화되지 않은 이면의 노력을 ‘생명의 뿌리’라는 은유로 정의한다. 지표면 아래 잠기어 있으나 생명력을 길어 올리는 뿌리의 속성처럼, 일상의 ‘보이지 않는 노력과 수고’가 어떻게 역동적인 생명력을 이끌어내는지를 시각적으로 탐구한다. 대개 우리는 수려하게 뻗은 가지와 잎에 매료되어 그 나무를 지탱하는 심연의 비밀에는 소홀하기 마련이지만, 작가는 그 존재론적 해답을 심토(深土)의 뿌리에서 구한다. 만일 뿌리가 수분을 흡수하여 몸통으로 실어 나르지 않았다면 나무 자체의 존립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러한 ‘이면의 지탱’에 관한 서사는 9.11 테러 당시 뉴욕 맨해튼의 세인트 폴 예배당을 구한 플라타너스 나무의 일화를 상기시킨다. 무역센터 붕괴의 엄청난 충격을 온몸으로 흡수하여 예배당의 파괴를 막아냈던 이 나무는 훗날 ‘기적의 플라타너스’로 불렸으며, 그 뿌리의 형상은 ‘트리니티 루트(Trinity Root)’라는 조형물로 승화되어 헌신과 보호의 상징이 되었다. 가족 구성원이 곤경에 처했을 때 가장 먼저 손을 내미는 존재 역시 가족이라는 점에서, 최은실이 뿌리를 통해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작가는 가시적인 형상 너머에 실존하는 누군가의 숭고한 도움과 희생을 증언하며, 평범한 일상의 이면에 은닉된 가치를 시각적 서사로 복원해낸다.

    최은실의 작품 세계에서 ‘도전과 극복’은 삶을 관통하는 주요 주제이다. 작가는 삶의 고난과 기쁨이 이분법적으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변증법적 관계임을 강조한다. 특히 인생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난제가 역설적으로 ‘생의 기쁨과 풍요를 빚어내는 비옥한 토양’이 될 수 있음을 표현함으로써, 고통을 생동하는 에너지로 전환하는 실존적 긍정을 보여준다.
    그의 화면 구성에서 빈번히 등장하는 ‘신전’의 도상은 가정을 수호하는 모성적 서사의 집약체이다. 여기서 신전을 떠받치는 인물은 어머니의 삶을, 신전은 견고한 가정을, 지붕의 이미지들은 일상의 소소한 에피소드와 가족을 돌보며 향유하는 기쁨을 상징한다. 미대를 졸업한 후 오랜 시간 가사와 자녀 양육에 집중해온 작가는 자신이 경험한 부양의 고단함을 축복과 풍요의 언어로 재해석한다. 어린 딸이 성장하여 손자를 낳고, 그 곁에서 조력하며 겪는 분주한 일상들은 삶을 더욱 단단하게 결속시키는 실존적 마디가 된다. 또한 고통의 터널을 인내와 사랑으로 관통하며 얻은 깨달음은 작금의 시간을 남다른 무게감으로 마주하게 한다.

    나아가 작가는 사적 공간을 넘어 타자와의 동행이 주는 ‘관계적 영성’으로 영역을 확장한다. 그의 작품 대부분이 삶의 일상에서 얻어진 것으로 <숲길에서 마주한 생의 기쁨> 역시 그러한 성격을 지닌다. 이 작품은 가을 산행의 기억을 재구성한 작품으로, 형형색색의 단풍과 알밤이 어우러진 화면을 선보인다. 산길에서 도시락을 나누며 서로의 안부를 묻던 따뜻한 시간은 화면 속에서 붉은 단풍과 노란 알밤의 변주로 나타나며, 이는 마치 생의 한가운데서 선사받은 거대한 꽃다발처럼 관람객을 환대한다. 이 작업이 발산하는 긍정적 에너지는 삶의 기쁨이 타자와의 유대와 연대를 통해 더욱 확장된다는 ‘공동체적 샬롬’의 가치를 환기한다.

    기법적으로 작가는 속도감 있는 크로키와 층층이 쌓아 올리는 실크스크린의 결합을 통해 매체적 긴장감을 유도한다. 크로키의 즉흥적 선은 쉼 없이 움직이는 삶의 활력을 포착하고, 실크스크린의 강렬한 색채 대비는 그 생명력을 시각적으로 증폭시킨다. 인체의 강인한 양감과 대비되는 다채로운 색채의 조화는 ‘삶의 에너지’를 표출하기 위한 최적의 방법론이며, 이는 자연과 인간이 교감하는 아름다운 상호작용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하늘을 향한 소망을 표현한 작품들도 있다. 하늘 위로 뉘엿뉘엿 저무는 노을과 뭉게구름이 교차하는 순간 그 광막한 여백 속에 아주 작은 점 하나가 실존의 기표처럼 떠 있다. 바로 풍선의 이미지다. 흔히 풍선은 손에서 놓쳐 멀리 사라지는 상실감을 표현할 때 사용되지만 최은실의 경우 그것은 삶의 무게를 들어올리는 은유이자 하늘을 향한 소망과 기도의 이미지로 읽힌다. 그것은 하늘로 놓아버린 마음 하나를 나타낸 것처럼 홀가분하고 자유롭다. 혹시 영원의 품에서 누리는 자유의 감정을 나타내지는 않았는지.. 아딘 슈타인잘츠(Adin Steinsaltz)가 말한 것처럼 “하늘이 없는 사람은 땅도 거의 없다.” 이 통찰은 최은실의 화면 위에서 시각적 실재가 된다. 수평선의 완고한 중력에 묶여 살아가던 사람에게, 하늘로 떠오르는 저 작은 풍선은 땅의 집착에 연연하지 않을 때에만 비로소 소유할 수 있는 역설적인 영토를 가리리는 것같다.

    최은실이 직조해낸 화면은 일상의 숲 아래 숨겨진 작은 경이들을 발견하게 하는 통로가 된다. 작가는 개인의 경험을 보편적인 삶의 가치로 확장하며, 우리네 삶이 그 자체로 얼마나 밀도 높은 ‘경작’의 현장인지를 유려하게 증명해 낸다. 파편화된 시간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현대인들에게 그의 작업은 ‘일상은 낭비되는 것이 아니라 고유한 가치를 잉태하는 토양’임을 일깨우는 예술적 위로로 다가간다.

    작가는 사소해 보이는 하루의 노동을 예술적 숭고의 지평으로 격상시킴으로써, 상실의 기억을 딛고 소망의 나라를 향해 비상하는 ‘풍선’의 의지와 삶의 모든 결핍을 따스하게 포용하는 ‘치유의 노을’을 통해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실존적 긍정의 생명력을 전하고 있다.


    작가노트

    저의 작업은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어머니이자, 딸이자, 할머니, 그리고 한 가정의 주부로 살아가는 일상은 때때로 보이지 않는 무게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무게를 버티게 하는 힘은 결국 가족을 향한 사랑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연작은 그렇게 흘러온 시간 속에서 발견한 작은 기쁨과, 그 안에서 피어나는 자유에 대한 마음을 담은 기록입니다.

    첫 번째 작품인 〈 뿌리 〉 는 가정을 일구고 자녀를 성장시키는 부모의 보이지 않는 노력을 생명의 근원으로 형상화했습니다. 땅속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는 역동적인 뿌리의 움직임을 통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수고가 어떻게 강인한 생명력을 길러내는지를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테마는 첫번째 연작인 <나의 신전, 봉사의 기쁨>으로 이어지며 더욱 구체적인 삶의 풍경으로 확장시켰습니다.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집을 떠받치고 있는 인물들을 통해 어머니의 삶을 상징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림 속 인물들은 마치 신전의 기둥처럼 집을 지탱하고 있습니다. 이는 가족을 위해 묵묵히 역할을 해내는 어머니들의 보이지 않는 노동을 떠올리게 합니다. 유모차, 젖병, 청소기 같은 일상의 물건들로 가득한 집은 때로 무겁게 느껴지지만, 그 안에는 가족을 돌보며 느끼는 기쁨도 함께 존재합니다. 딸의 곁에서 손자를 함께 키우며 겪는 작은 해프닝들은 때로 웃음을 주고, 때로는 분주함을 가져오지만, 결국 그 모든 순간들이 삶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연작인 〈숲길에서 마주한 생의 기쁨〉도 실크스크린 작업으로, 가을 산행의 기억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형형색색의 단풍과 알밤이 어우러진 장면은 친구들과 함께 산을 걸었던 어느 가을날의 풍경입니다. 산길을 걷다 잠시 쉬어가며 정성껏 준비해 온 도시락을 나누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웃음을 나누던 따뜻한 시간을 떠올리며 그림을 그렸습니다. 함께 산을 걷는 시간 자체도 좋았지만, 그 경험을 통해 저는 한 가지를 다시 느꼈습니다. 삶의 기쁨은 결국 좋은 사람들과 함께할 때 더 커진다는 사실입니다. 자연 속을 걷는 시간은 복잡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다시 힘을 얻는 시간이었습니다.

    마지막 연작인 〈상실을 넘어 여행하는 풍선〉은 유화 작업으로, 어린 시절의 기억에서 출발했습니다. 캐나다에서 보았던 강렬한 노을과 집 창가에서 바라보던 넓은 하늘은 잊고 있던 오래된 기억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어린 시절 손에서 놓쳐버린 풍선이 터지지 않고 멀리 날아가기를 바라던 그 마음입니다. 그 풍선은 이제 제 자신을 상징하게 되었습니다. 무언가를 떠나보낸 아쉬움은 시간이 지나며 또 다른 의미로 바뀌었고, 지금은 자유롭게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싶은 마음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림 속 풍선은 정해진 길을 벗어나 하늘을 떠다니며 세상 곳곳을 여행합니다. 그것은 스스로의 삶을 선택하고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담은 이미지이기도 합니다.

    저에게 예술은 삶의 고단함을 잠시 내려놓게 하고, 우리가 가진 소중한 가치를 다시 바라보게 하는 창과 같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가족을 위해 애쓰는 평범한 일상도 결코 작거나 사소한 것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그 안에는 사랑과 헌신, 그리고 삶을 지탱하는 힘이 담겨 있습니다.

    이번 작업을 통해 저는 그런 일상의 의미를 다시 바라보고 싶었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누구나 마음속에 하나의 풍선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손에서 놓치기도 하고, 때로는 멀리 날려 보내기도 하지만, 그 풍선은 결국 우리를 더 넓은 세상으로 이끄는 꿈과 자유의 상징일지도 모릅니다.

    이 작품들이 각자의 삶 속에서 지나쳐 왔던 작은 기쁨과 소중한 순간들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풍선처럼 가볍게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함께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전시제목최은실: 일상에서 채굴하는 생의 의미

    전시기간2026.06.10(수) - 2026.06.15(월)

    참여작가 최은실

    관람시간10:00am - 07:00pm

    휴관일매주 화요일

    장르회화

    관람료무료

    장소갤러리 인사아트 GALLERY INSAART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6 (관훈동, 갤러리 인사아트) )

    연락처02-734-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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