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범
팔레스타인 장벽(The Palestine Wall) D-Print,Diasec, 100x150, 2010
하태범
용산참사-2(Tragedy in Yong-San) D-Print,Diasec, 180x120, 2010
하태범
그루지아 레이더기지(a rader base near the capital in Georgia) D-Print,Diasec, 180x120, 2008
하태범
독일 뒤셀도르프 살인사건(Langenfeld by Duesseldorf) D-Print,Diasec, 120x80, 2010
하태범
이태리 아르부초 지진(earthquake in Abruzzen, Italiy) D-Print,Diasec, 180x120, 2010
하태범
파키스탄테러(Terrorist attack International University Islamabad, Pakistan) D-Print,Diasec, 180x120, 2010
하태범
용산참사-1(Traged in Yong-San) D-Print,Diasec, 112x150, 2010
하태범
아이티 지진(earthquake Haiti) D-Print,Diasec, 180x120, 2010
사진에 담긴 윤리적 책임감
박순영(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프로그램 매니저)
언론매체를 통해 어떤 끔찍한 사건을 접할 때, 우리는 동질감에서 비롯되는 연민과 비판의 태도를 취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매체 저편과의 거리에서 발생한 이질감으로 인해 안도감을 갖는다. 물론, 이런 안도감으로 인해 불편함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대체로 그 사건의 가해와 피해가 자신과는 다른 세계 또는 다른 공동체라는 점에서 불편함보다는 안도감에서 애써 곤두선 감각을 접는다. 가령, 뉴스를 통해 파키스탄의 폭탄 테러 잔해를 목격할 때 생기는 우리의 일그러지는 표정의 의미를 생각해보자. 우선, 연상되는 징그러운 것들, 그것들에 대한 연민인데, 이것은 가능성을 지닌 동질감에서 비롯된다. 한편, 폭력에 대한 비난과 거리를 두는 인식인데, 이는 비연관성을 지닌 이질감에서 비롯된다. 누구나 죽음에 대한 근원적인 공포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하나의 사건에 대해 이질감을 갖는다는 것은 모순처럼 들리겠지만, 이러한 태도가 땅에 거주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라는 랑시에르의 말을 빌어, 감정 해소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취하는 본능적인 태도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래서 사건이 끔찍하면 할수록, 죽음을 드러내는 데 적나라하면 할수록 다른 공동체의 구성원은 이질감을 스스로 더욱 강화시킨다. 매체는 이러한 속성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참혹함의 공포에서 비롯된 묘한 쾌감을 절대로 버리지 않는다. 그리고 사회 구성원들은 이러한 불편한 이면을 다시한번 애써 외면하며 무의식적으로 즐긴다. 이렇듯, 그들의 동질감과 거리두기에서 비롯되는 폭력에 대한 비난이 소위 하나의 공동체가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내세우는 도덕의 발로라면, 누군가 그들이 내적으로 획득한 카타르시스에 윤리적인 책임감을 갖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태범은 언론매체가 생산한 이미지를 자신의 양식에 맞춰 입체로 재현하고 다시 사진으로 찍는다. 그는 신문이나 웹상에 실린 그러한 고발성 사진을 보면서 무덤덤한 자신을 발견했다고 한다. 광대가 줄에서 떨어져서 모든 이가 우르르 몰려가도 그는 잠시 고개를 돌렸다 그대로 지나가는 행인처럼 남들과 달리 광분하지도 않았고, 즐기지도 않았다. 그는 단지 그 무덤덤함을 자신의 방식대로 재현하는 것에만 오로지 관심이 있다. 하얗게 구성된 상황, 어느 화가의 말처럼 그에게도 색은 끔찍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감정대로 하나의 사건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색을 제거하였다. 그리고 사진을 통해 기록으로 남겼다. 그것이 하태범 자신이 본 바이다. 이러한 태도를 혹여 방관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가 방관자일까, 끔찍한 상황을 마구잡이로 재현하는 자가 방관자일까. 매체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많은 사건들을 자신의 일인 양 재현한다. 카페에서 떠는 수다에도 그렇듯 재현에는 항상 목적이 있다. 예전에는 재현할 수 있는지, 또는 재현해도 되는지와 같은 도덕적인 기준에서 재현을 문제 삼았다면, 이제는 재현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고, 그 목적을 선택해야 하는 재현 양식이 무엇이냐 하는 윤리적인 기준이 필요한 것 같다. 대체로 자신의 공동체에 속하기 위해 윤리적인 방관자의 태도를 취한다면, 하태범은 자신의 공동체의 도덕에 문제를 던지는 방관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는 폭력의 이데아를 추구하는 매체의 목적과 이를 비난하면서 자유를 획득하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가식적인 태도를 자신의 무덤덤한 태도에 빗대어 재현한다. 그것이 바로 그가 재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신문에 떠들썩하게 담긴 사진을 순백색으로 변환시켜 사진으로 다시 찍는 그의 재현양식의 목적은 공동체가 요구하는 도덕심에 대한 역설적인 고발이고, 이는 그가 사회의 폭력에 광분하는 자들의 목적에 동참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대의 사진은 현실의 세계를 촬영하는데 한정되지 않고, 촬영의 주제를 스스로 창조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러한 구성사진은 주제를 위해 대중적인 이미지를 사용하거나 인용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기억을 더듬고,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상황을 구성하기도 한다. 하태범은 현대 사회가 이미지에 의해 소통한다는 것에 동의하고 이미지 실제화를 구현하는 이미지 생산자이다. 하지만 일종의 구성사진으로서 언론이나 대중매체가 이미지 자체를 통해 어떤 목적을 실현코자 한다면, 그는 구성사진들이 매스이미지를 문제화시키는 방식을 넘어 그 목적에 동조하는 대중의 태도와 그것을 강요하는 사회의 상징적인 구조까지 포함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작가이다. 그래서 그의 사진은 편함과 불편함, 단순함과 복잡한 심경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1974년 서울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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