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자리
2026.09.17 ▶ 2026.10.30
2026.09.17 ▶ 2026.10.30

전시 포스터
성지연
그 남자의 방,
성지연
Five Year Diary,
임수식
책가도 165,
임수식
책가도 154,
소소영
소반의기억,
소소영
소반의기억,
콰야
예전에 적어둔 일기장을 읽다가,
콰야
달과 별이 뜬 새벽,
“당신에게 하나의 세계가 밀려올 것이다. 행복이, 풍요로움이,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광대한 하나의 세계가. 이 책들 안에서 잠시 살아보라.”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당신의 마음속 책의 자리는 어디인가?
《책의 자리》는 이 질문에서 출발해 책을 주제로 한 사진과 회화 작품을 한자리에 모았다. 책을 읽는 이들이 드물어지고 AI의 등장으로 책의 근본마저 흔들리는 지금, 책을 두는 물리적 자리뿐 아니라 마음의 자리마저 줄어들고 있다.
이런 시대에 책과의 조우를 담거나, 읽고 쓰는 이의 심상을 그려내는 작가들의 작품은 책의 의미를 새롭게 탐색케 한다. 성지연, 임수식, 소소영, 콰야는 책과 읽고 쓰는 삶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을 사진과 회화로 풀어낸다.
성지연과 임수식은 사진이라는 매체의 동시대 예술성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밀고 나간다. 성지연은 연극적인 연출과 정밀한 빛의 조정을 통해 작가가 의도한 순간을 시적인 미장센으로 담아내며, 책이라는 낯선 세계와의 만남을 긴장감 있게 풀어낸다. 임수식은 예술가들의 책장을 촬영한 후, 한지에 조각조각 인화해 바느질로 꿰매는 작업을 통해 사진의 매끄러운 이음매에 균열을 낸다. 오랜 시간 손으로 만든 한지 위에 작가들의 지적 여정이 겹쳐지고, 거기에 임수식 자신의 손작업이 마지막으로 포개진다. 이렇게 손의 시간이 켜켜이 쌓인 작업은 그 자체로 유일성을 획득한다. 그것은 오랫동안 책과 함께 자신의 세계를 쌓아온 예술가들에 대한 헌사이자, 그들의 흔적을 남기는 아카이빙이기도 하다.
소소영과 콰야는 회화라는 매체의 가능성을 각자 다른 방식으로 탐색한다. 사진이 눈앞의 실재에서 출발한다면, 회화는 작가의 내면에서 출발해 화폭 위에 새로운 세계를 짓는다. “예술은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라는 화가 파울 클레의 말처럼, 이들의 회화는 책을 둘러싼 내면의 심상을 색과 형태로 눈앞에 불러낸다.
소소영은 전통 책거리의 다시점을 극대화해 사물을 배치하고, 대담한 색감으로 책의 물성을 새롭게 발견한다. 콰야는 보통의 일상을 기록하듯 그리는 작가로, 책을 읽거나 쓰는 이들의 내면 심상을 오일파스텔이나 유화로 투박하면서도 애틋하게 잡아낸다. 그의 작업에서 책은 고독과 맞닿으며, 홀로 있는 시간의 밀도를 높인다.
성지연과 임수식의 작업이 책과 일정한 거리를 둔 채 그 의미에 대해 철학적이고 개념적인 질문을 던진다면, 소소영은 자신의 일상과 욕망을, 콰야는 읽고 쓰는 이의 내면을 비추며 좀 더 주관적이고 밀착된 방식으로 책의 자리를 묻는다.
성지연 — 빛으로 조각한 순간
흔히 사진을 빛으로 그린 그림이라 하지만, 성지연의 작품은 마치 빛으로 조각한 듯 한순간의 공기를 정지시키고, 대상을 날카롭고 정교하게 깎아낸다.
성지연은 이번 전시에서 〈La chambre ordinaire(일상의 방)〉, 〈(un)familiar(친숙하거나 낯설거나)〉, 〈Moment suspendu(유보된 순간)〉 연작을 선보인다. 그의 작품은 보는 이에게 낯선 위화감, 혹은 비일상을 맞닥뜨렸을 때의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게 하는데, 이 긴장감은 새로운 책을 펼쳤을 때 독자가 마주치는 미지의 감각과도 닮았다.
책은 하나의 세계이며, 그 세계는 각자에게 저마다 다른 형상으로 와닿는다. 우리는 책이라는 세계 앞에서 눈을 감은 채 깊이 몰입하거나, 혹은 텅 빈 백지를 응시할 수도 있다. 미술비평가 필립 피게는 성지연의 작품 세계에 대해 “그녀만의 매력적인 애매모호하며 이중적인 코드를 이미지 안에 장치하여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흔든다”고 평했다. 그 말처럼 성지연의 시적이고 모호한 시각적 은유는 책의 자리를 다른 사물에 겹쳐 상상해보게 한다.
작가는 또한 개별 작품마다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모든 장면을 철저히 통제해 연극적인 미장센을 구성한다. 서늘하고 중립적인 색을 배경으로, 이와 대비되는 강한 스포트라이트와 근접 구도로 대상을 부각시켜서, 마치 시간의 한 단면을 베어내 대상을 얼려놓은 듯 표현한다. 이런 강렬하면서도 초연한 표현기법을 통해, 우리는 낯선 세계를 마주할 때의 기이한 감각과, 그 안으로 빠져드는 몰입의 경험을 한 발 물러서 관조할 수 있다.
임수식 — 책장, 손끝으로 짓는 초상
임수식의 책가도는 단순히 예술가들의 책장 기록 사진이 아니다. 그것은 그 예술가들이 치열하게 걸어온 지적 여정의 기록이자, 그들의 초상이다.
조선시대 책가도는 18세기 후반 널리 유행한 회화 형태로, 학문에 힘쓰기를 권장했던 당대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임수식은 이 전통 책가도를 사진으로 다시 그린다. 타인의 책장을 여러 구간으로 나눠 촬영해 한지에 인화한 뒤, 물을 묻혀 찢고 실로 하나하나 꿰맨다. 그렇게 쏟아부은 시간의 에너지가 반드시 작품에 깃든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미사진미술관 손영주 큐레이터는 “임수식의 책가도 작업은 다분히 문화적이다. 각각의 책들이 해체와 재구성을 거쳐 책가도로 완성되는 것처럼, 문화도 각자의 예술과 삶의 형태가 모여 바느질처럼 엮이고 어우러지는 과정을 거쳐 형성되며, 때론 구체적인 책의 모습으로 형상화된다”고 말한다.
임수식의 책가도에서 책장은 저마다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관심사에 따라 실용적으로 정리된 책장이든, 산만한 사물들이 이야기를 건네는 책장이든, 그 안에는 소유자의 개성과 삶의 궤적이 고스란히 담긴다. 이번 전시에서는 한강, 김훈, 황석영, 김홍신, 김용택 등 문인들의 책가도를 만날 수 있는데, 관객은 책장 속 책과 사물을 하나하나 되짚으며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지적 계보를 살펴볼 수 있다.
임수식의 또 다른 시리즈, 〈바벨〉 연작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단편 「바벨의 도서관」에서 영감을 받았다. 소설 속 도서관은 우주 그 자체이며, 문자로 조합 가능한 모든 책을 담고 있는데, 의미 있는 문장부터 헛소리 같은 문자의 단순 조합까지 무한한 책이 존재한다. 사서들은 그 방대한 서가 어딘가에 모든 지식을 설명해줄 ‘근본 서적’이 있으리라 믿고 평생을 순례하지만 끝내 찾지 못한다. 정보는 무한한데 그 가치와 의미는 희박하다는 역설이 소설 전체를 관통한다.
임수식의 〈바벨〉 속 책들도 글자가 지워진 채 흰 오브제로만 남아, 인간의 흔적이 남은 도시와 광활한 바다, 숲과 들판을 떠돈다. 보르헤스는 「바벨의 도서관」을 1941년 썼으며, 임수식은 〈바벨〉 연작을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작업했다. 모두 AI가 등장하기 이전의 작품이지만, AI로 인해 언어가 무한히 생성되고 그 의미는 오히려 희박해지는 지금, 이 오래된 이야기와 사진은 새로운 울림을 얻는다. 때로 예술은 마치 예언자처럼 시대를 앞질러 미래를 향한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관객은 정처 없이 떠도는 책장 앞에서, 책의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곱씹어보게 된다.
소소영 — 사물로 쓰는 일기
소소영은 회화 속 사물의 의미와 관계를 전통 책가도 및 책거리의 형식을 빌려 탐구한다. 책가도가 서가라는 규격화된 틀 안에 책과 사물을 배치한 그림이라면, 책거리는 더 넓은 범위에서 책과 사물을 함께 그린 그림을 말한다. 임수식의 책가도가 소유주의 초상이라면, 소소영의 책거리는 개인의 욕망과 감성에 좀 더 충실한 이미지의 유희에 가깝다. 작가는 전통 책거리가 마치 사물의 이미지로 자신을 드러내는 조선시대판 인스타그램 같다고 해석했다. 책거리 속 사물들은 보여주고 싶은 욕망이면서 동시에 내면의 반영인 것이다.
소소영의 작업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다시점적 구도다. 서양미술사의 전통에서 발전한 원근법은 사물마다 엄격한 질서와 위계를 부여하지만, 소소영의 회화는 이런 위계에서 벗어나 우리 전통회화의 방식을 따른다. 다시점적 구도 속에서 사물들은 모두 평등하게,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은 주인공이 된다. 각각의 사물들은 작가가 마련한 다각형의 화폭 위에서 명랑하게 숨 쉬고 움직이며 상호작용한다.
〈사물놀이〉 시리즈는 사물에 얽힌 기억을 통해 감정을 투영하고, 누군가의 행복을 기원하는 길상(吉祥)의 마음을 담는다. 작품 제목 그대로 사물을 가지고 놀이하듯 화폭 위에 담았다. 〈소반〉 연작은 하루라는 시간을 한 상에 담아내듯, 그날 있었던 일과 기억들을 맛깔나게 차려낸다. 그 상 위에는 책이 빠지지 않는데, 이때 책은 거창하고 무거운 진리나 명제가 아니라, 일상 속 늘 곁에 두는 다정한 벗이자 애착 대상이다.
책이 항상 등장하는 것은 삶이 어려울 때 책에서 방향과 희망을 찾고, 지혜와 안녕을 바랐던 작가의 개인적 경험도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화면 속 사물들을 하나하나 읽어가며 작가의 일상과 마음을 좇게 되고, 책이 소유하고 싶은 욕망의 대상이자 동시에 나를 비추는 사물이라는 이중의 관계임을 실감하게 된다.
콰야 — 쓰는 삶과 읽는 마음
콰야의 그림 속 인물들은 무표정한데 어쩐지 애틋하다. 거친 현실에 적응 못하고 방황하는 순수하고 엉뚱한 소년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정처 없이 흔들리는 청춘의 애잔함이 숨김없이 드러나는 그의 작품은 유독 젊은 컬렉터들이 열광한다. 정밀한 스케치나 채색 계획 없이 즉흥적으로 그날의 감정에 따라 그려지는 그의 그림은 과감한 덧칠과 색감으로 청춘의 정서를 담아내기 때문이다.
작가는 초기 드로잉북 『읽는 사람들』에서부터 책을 읽는 이들의 모습을 꾸준히 그려왔다. 그에게 무언가를 읽고 기록하는 일은 오래된 일상이자 습관이며, 회화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기억을 그림일기처럼 기록한다는 점에서 콰야와 소소영은 비슷하지만, 소소영은 사물을 통해 감정을 이야기하는 반면, 콰야는 인물을 정면으로 드러내고 표정을 절제해 그 내면을 보는 이로 하여금 상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다르다. 거친 질감의 오일파스텔과 유화는 인물이 품은 다양한 갈래의 이야기를 상상하게 하고, 같은 방황의 시간을 지나온 이들의 감성을 자극한다.
그의 많은 작업 중, 이번 전시는 읽고 쓰는 이의 내면 심상을 상상하게 하는 작업들로 구성했다. 읽는 사람은 결국 쓰게 되고, 쓰기 위해서는 또 타인의 글을 읽게 되며 이 순환은 끊이지 않는다. 그들은 모두 길을 탐색하는 방랑자이며, 불안한 흔들림 속에서도 균형을 잡으려 하고, 더 큰 사람이 되고자 꿈꾸는 존재이기도 하다.
콰야는 앞서 책을 읽고 그 감상을 그림으로 그리는 독후화 작업을 해왔는데, “텍스트 속 추상적인 생각을 구체적인 형상으로 끌어내는 그 과정에서 더 깊은 독서 경험을 하게 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업은 특정 텍스트에 대한 독후화는 아니지만, 읽고 쓰는 행위 그 자체의 의미를 되짚어본다는 점에서 결이 같다.
그의 그림 속 책은 때로 탐구의 대상이거나, 버팀목이거나, 고독의 동반자이다. 콰야가 그려낸 내면의 풍경 앞에서 관람객은 각자의 일상 속 책과 마주했던 순간들을 되짚으며, 저마다의 책의 자리를 상상하게 될 것이다.
기획의 글│석현혜
작가소개
성지연 SUNG JIYEON
친숙한 것과 낯선 것 사이의 모호한 경계를 연출 사진으로 담아왔다. 《빈곳》(2023, 소현문) 등 개인전과 성곡미술관 개관 30주년 기념전(2025), 프리즈 서울(2023) 등에 참여했으며, 제14회 다음작가상을 수상했다.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서울시립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임수식 LIM SOOSIK
예술가의 책장을 찍은 대표 연작 《책가도》를 작업해왔다. 《책가도 – 정물과 초상》(2017, 한미사진미술관) 개인전과 《New Horizons: Korean Contemporary Photography》(2025, 그리핀미술관, 미국) 단체전 등에 참여했으며, 2014년 제1회 수림사진문화상을 수상했다.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독일 라이너 쿤체 박물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소소영 SOSOYOUNG
전통 책거리를 재해석한 회화와 조각보 공예를 병행하는 작가다. 《Two Stories》(2025, LCDC 서울) 개인전과 《책거리 Chaekgeori: Our Shelves, Our Selves》(2022~23, 빈 세계박물관, 오스트리아), 《新책가도: 사물의 세계》(2026,청주시립미술관 오창전시관) 등에 참여했다.
콰야 QWAYA
오일파스텔과 유화로 일상을 기록하듯 그리는 작가다. 《보통의 사람들; 일상의 기록》(2025, 강릉시립미술관 교동), 《Last night on earth》(2023, 애프터눈 갤러리, 파리) 등 개인전을 열었으며, 밴드 잔나비 2집 앨범 커버와 윤동주 필사집 삽화 작업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전시제목책의 자리
전시기간2026.09.17(목) - 2026.10.30(금)
참여작가 성지연, 임수식, 소소영, 콰야
관람시간10:00am - 06:00pm
휴관일매주 일, 월요일 및 법정 공휴일(10 .3. / 10. 9.)
* 추석 당일 및 연휴(9. 24.-26.) 정상운영
장르회화, 사진 등
관람료무료
장소의정부문화역 이음 UIJEONGBU CULTURE STATION IEUM (경기 의정부시 평화로 525 (의정부동, 의정부민자역사(경원선, 교외선)) 4층 의정부문화역 이음)
기획서울국제도서전
주최(재)의정부문화관광재단
주관서울국제도서전
연락처031-850-5174
1976년 세종출생
1974년 부산출생
뉴홉 Another New Hope
아트센터예술의시간
2026.07.31 ~ 2026.09.19
권민철: 완벽한 날씨
아트센터예술의시간
2026.07.31 ~ 2026.09.19
아주 얇은 막 A Very Thin Membrane
씨스퀘어
2026.08.27 ~ 2026.09.20
김원숙: 장춘長春 Eternal Spring
예화랑
2026.08.22 ~ 2026.09.23
방혜자: 천지에 마음의 빛 뿌리며 간다
국립현대미술관
2026.04.24 ~ 2026.09.27
로드 무비: 1945년 이후 한·일 미술
국립현대미술관
2026.05.14 ~ 2026.09.27
2026 민주인권평화전 [강요배: 시간을 품다]
광주시립미술관
2026.05.08 ~ 2026.09.27
이응노 · 김창열
이응노미술관
2026.06.23 ~ 2026.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