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창작스튜디오 3기 입주작가展
2010.10.08 ▶ 2010.10.30
초대일시ㅣ 2010-10-13 18pm
2010.10.08 ▶ 2010.10.30
초대일시ㅣ 2010-10-13 18pm
이수진
Blind City-Beyond the Landscape 자동밴드, 가변설치, 2010
이수진
Blind City-Beyond the Landscape 자동밴드, 가변설치, 2010
이수진
Blind City-Beyond the Landscape 자동밴드, 가변설치, 2010
이수진
Blind City-Beyond the Landscape 자동밴드, 가변설치, 2010
잠든 도시에서 펼쳐지는 버려진 사물들의 또 다른 도시 풍경.
글: 신보슬
청계천 주변의 낮은 한마디로 ‘살아있음’이다. 청계천 주변의 작은 샛길들 사이에는 끊임없 사람이 흐르고, 물건이 흐른다. 그래서 그곳에 가면 지루할 틈이 없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고만고만한 가게들, 한번 들어가면 길을 잃고야 말 것 같은 꼬불꼬불한 골목들 사이를 자칫 한 눈 팔고 돌아다니다가는 여기저기 짐을 나르는 오토바이나 자전거들에 포위되기 십상이다. 세운상가, 방산시장, 광장시장에서 동대문 시장까지 이어지는 큰 상가구역과 그 사이사이를 메우고 있는 작은 가게들은 컴퓨터, 종이, 천, 옷, 조명, 아크릴, 유리 등등 안 다루는 재료가 없고, 못 만드는 것이 없을 뿐 아니라, 심지어 물고기와 애완동물들까지 즐비하다.
청계천 주변에서 구할 수 없는 것은 없다할 정도로 세상의 다양함이 집약적으로 모여 있는 곳이 바로 청계천 주변 거리다. 그러다 오후 6시가 되면, 신데렐라의 마법이 풀리듯 청계천 일대의 모습은 달라진다. 하나, 두울 가게 셔터가 닫히고, 불이 꺼지고, 지친 하루를 마감한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간다. 온갖 이질적인 물건들로 가득했던 공간은 일괄적인 셔터에 의해서 정리되고, 낮 동안의 활기참이 무색할 정도로 순간 텅 비어버린 거리는 낯설다 못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이수진의 작업실은 바로 이 청계천 한 가운데에 있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청계천 주변공간이 바로 작가의 작업실이었다. 청계창작스튜디오에 있는 그의 작업실을 들어섰을 때, 작업실에는 이전 작업에서 사용되었던 비누, 청계천 상가 공사현장에서 주워온 합판이나 버려진 강목, 노끈, 종이, 노끈, 유리조각 등 그가 지금까지 사용했고, 앞으로 사용해보려고 하는 다양한 재료들이 가득했다. 이수진은 이러한 재료/사물들을 가지고 도시의 풍경(Urban landscape)을 그려내는 일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물론 그가 그려내고자 하는 도시의 풍경은 시각적인 재현으로서의 도시가 아니라, 풍경은 도시를 채우고 있는 사물들과 재료들이 만들어내는 시각적 형상 혹은 이미지, 느낌에 더욱 가까웠다.
사실, 도시라는 주제는 쉽지 않다. 그가 말하듯, ‘도시 공간은 단순 물리적인 구조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유기적인 관계와 다양한 성질, 기억, 심리적 질감 등의 이미지로 구현된 복합적 풍경’이고, ‘그 같은 심리 공간에 내재하는 규칙, 질서, 흐름, 지속성 등의 다양한 요소들이 도시 풍경을 이루는’ 구조가 되며, 바로 그것이 ‘거대한 감각의 모듈(module)로서 도시 풍경의 틀을 채우고 구조를 지탱시키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도시에는 역사성과 사회적인 맥락이라는 것이 있으며,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유기체처럼 사람들 사이의 관계와 사회적 시스템 안에서 계속적으로 변화한다. 때문에 도시(공간)를 주제에 접근할 때에는 좀 더 신중해야 하고, 도시(공간)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층위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때문에 이수진의 작업 방식이 놓이는 맥락 역시 조심스럽다. 작품의 재료가 특정지역/도시공간에서 가져왔다는 것은 어쩌면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그 재료가 그 지역의 도시 성격을 분명하게 표현하는 경우라면 다르겠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의 관심을 더욱 끄는 것은 작가가 재료들로부터 어떤 풍경들을 끌어낼 것인가 하는 지점이다. 의미 없이 스쳐갔던 풍경의 단편, 혹은 의식하지 못했던 사물의 성질들을 얼마나 새롭게 풀어내고 있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자칫 도시(공간)과 재료의 지나치게 직설적인 연결은 작품을 단조롭고 지루하게만 보일 수도 있다.
다행히 이수진은 이러한 위험성을 잘 인지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도시풍경’이라는 것을 늘 염두하고 있지만, 그가 만들어내는 도시 풍경은 직접적이지 않다. 특정 공간에서 재료를 찾아오긴 하지만, 그 재료들이 특정 도시/공간을 대표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공간에서 소외되거나 버려져 있는 재료들을 끄집어내어 집합적으로 사용하고, 집합적으로 사용하는 가운데에서 새로운 이미지를 찾아낸다. 물론 그 이미지는 작가가 느꼈던 사물들이 만들어내는 도시의 이면이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관객은 작가가 전시장에 가져다 새롭게 배치해 놓은 사물/물성의 특징을 새롭게 직면하게 된다. 작가는 방산시장의 종이 도매상과 인근에 있는 인쇄소에서 절단기로 가늘고 길게 잘린 버려진 종이를 촘촘하게 수평을 쌓아갔다. 그리고 그것을 (paper blind)라고 불렀다. 블라인드가 내려지고 올라가 있는 창가의 풍경은 고층 빌딩, 사무실이 밀집한 곳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것일뿐더러, 필수불가결 한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가늘고 길게 잘려진 종이들을 수평으로 재배열시켜 만든 종이 블라인드가 만들어내는 반복적인 시각적 이미지와 리듬감은 실제 블라인드가 만들어내는 풍경과 닮아있다. 그러나 블라인드는 햇빛을 막거나 공간을 분리하는데 쓰이기에 어느 정도 어느 정도 내구성이 있어야 한다. 물론 종이 블라인드가 어느 정도 햇빛을 가려주거나 공간을 구분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겠지만, 분명 블라인드의 기능을 하기엔 역부족이다. 종이 블라인드는 햇빛에 바래기도 하고, 습기를 먹어 축 쳐지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종이의 물성인 것이다. 그런 종이의 물성에 반하는 기능을 부여함으로써, 종이라는 것의 본래적 특성에 좀 더 집중시킨다.
(Paper Blind)가 종이라는 재질을 내구성을 요하는 블라인드에 연결시켰다면, (Glass Landscape)에서는 견고하고 단단한 유리라는 재질을 활용하였다. (Glass Landscape)은 청계천 주변에 있는 트로피 수공상점이나 유리가게에서 필요한 상품을 제작하고 버린 자투리 유리들을 중첩시켜 만든 설치 작품인데, 유리는 현대도시를 표현하는데 있어 빼놓을 수 없을 만큼 중요한 재료가 되었다. 건물의 외벽을 대신해서 시간이 그대로 투과되는 유리를 사용하는 것이 이제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을 만큼 보편적인 된 것이다. 그래서 유리를 중첩시킨 작업은 영락없이 고층 빌딩숲을 닮아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작업은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는데, 단단하고 뾰족한, 날카로운 자투리 유리판이 유리와는 전혀 다른 물성의 한없이 부드럽고 연약한 잔디밭을 연상하게 한다는 점이다. 이처럼 이수진의 작업은 기존의 물성에 제한되지 않고, 그것을 활용하되 예상하지 못했던 물성과 이미지를 연결시킨다. 특히 이러한 작업방식은 그가 사물/재료를 가져오는 도시(공간)의 성격을 직설적으로 설명하여 ‘도시경관’이라는 주제를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는 눈길이 머무르지 않는 스쳐가는 도시 이미지의 한 컷을 클로즈업하게 하되, 다른 한편으로 재료 자체에도 주목하게 한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또한 그 과정에서 사물/재료가 본래가지고 있던 성질과는 정반대되는 것에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면서, 오히려 역으로 물성 자체를 주목하게 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의 작업을 보고나면, 골목가에 버려진 자투리 나무판자나 버려진 노끈, 잘려나간 유리판 하나도 예사로 보이지 않고, 그 공간에서 가능한 도시 이미지는 어떤 것일지 궁금해진다.
1980년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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