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삼
달빛(Dalbbit-MoonShine) Charcoal on Canvas, 60x160Cm, 2008
이재삼
달빛(Dalbbit-MoonShine) Charcoal on Canvas, 130x388Cm, 2010
이재삼
달빛(Dalbbit-MoonShine) Charcoal on Canvas, 181x454Cm, 2010
긴 밤길에서 조우한 대상과 달빛
이재삼은 우리에게 목탄 회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아니면 대나무를 목탄으로 그리는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목탄이라는 이미지와 관념은 여기서 곧바로 해지되어야 한다. 하이 테크니션으로서의 이재삼보다 더 긴박한 내용이 다수 내포되었기 때문이다. 이재삼의 회화 원칙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정처 없는 방랑 이후 우연히 만나는 자연 대상과의 조우이며, 이 조우에서 작가가 느끼는 첫 대면식이다. 어떤 자연 대상과 마주칠 때 느껴지는 에너지나 동질감, 교감 등 신비한 경험이 없을 때 대면식이라는 용어는 성립되지 않는다. 그 반대로 작가가 말하는 내적 경험(inner experience)이 생생할 때야 비로소 대화를 시도하면서 대면식의 지위를 부여한다. 이재삼은 어떤 경우에만 특별히 이루어진 특정 자연 대상과의 교감을 아주 오래 지속시키며 감상한다. 그리고 밤까지 그 여운을 지속시킨다. 즉 그 대상을 밤이라는 암흑에 가두는 것이다. 특정 대상 이외의 다른 장면은 폐쇄시키고(closing) 오로지 대상만의 전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밤의 시간을 선택하는 것이다. 따라서 목탄이라는 재료와 기법은 이재삼에게 선택 요소 중 하나일 뿐이지 결코 목적 자체가 아니다. 또 하나 달빛이 테마가 되는 이유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 이재삼에게 달빛은 단순한 미적 요소가 아니다. 이재삼에게 그것은 신성(神性)이다. 동서고금으로 태양을 숭배하는 일은 허다하다. 그런데 달빛은 태양신의 대립 개념으로서의 신성이 아니다. 이재삼이 달빛에서 신성을 발견하는 것은 그것이 지니고 있는 시간의 속성 때문이다.
정오의 태양은 눈부셔서 보이지 않는다. 태양은 제왕적 권력이자 유일시되는 맹목이다. 태양은 때론 이성(理性, reason)이다. 그리고 남성성의 상징(muscularity)이다. 그 누구도 한낮의 정오에 소원을 빌고 바람을 기원하지 않는다. 기원은 밤 시간에 진행된다. 달빛은 모성을 무척이나 닮았다. 아니, 달빛은 모성 자체일 수도 있다. 이성이 아닌 어머니의 마음을 닮은 달빛은 직관의 세계이자 직감의 현현이다. 세계와 오히려 적나라하게 감응되는 동화(同化)의 시간이다. 이재삼에게 밤과 달빛과 목탄이라는 필연이 생성된 이유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았다. 재미있는 것은 간혹 세상이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라는 생각이 들며, 작가가 만나서 눈앞에 육화시키는 대상이야말로 애초에 이재삼의 마음을 움직이도록 설계된 필연이 이미 내재되어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또 하나 이재삼의 예술세계는 “태양을 꺼라(turn off the sun)”라는 화두를 상기시킨다. “태양을 꺼라”라는 말은 당연 한국 철학자 다석 류영모 선생의 일대 화두였다. 유불선의 전통 사상의 기반 위에 서구 합리론의 철학과 과학까지 탐구하며 전국을 주유했던, 존엄 있는 인물인데, 그는 서구 합리론의 폐해가 빚어낸 기계론적 자연관, 세계를 천국과 현세로 구분 분열시킨 이원론적 세계관, 분열적 물질주의를 경고했다. 이러한 서구의 피폐된 분석주의는 이성의 도취된 자기기만에서 비롯된 것이다. 태양을 마음으로부터 멸했을 때 오히려 직감과 자연과 신성이 하나된다. 이 태양이 없어진 시간부터 경건한 영험의 체험이 극화된다. 따라서 이재삼의 회화는 물질적 분열 일로에 선 21세기 문명에 대한 반성이다. 그런데 이재삼의 예술세계가 지향하는 바는 결코 과거로 회귀하라는 자연주의가 아니다. 후기 자본주의, 물질 분열기의 물질시대, 글로벌리즘으로 대변되는 현세에 성숙한 자연관을 견지하자는 제스처다. 곧 맹목적 범신론, 기계론적 자연관으로 대변되는 인식발전사에서 더 바람직한 미래상, 그 둘이 조화를 이룬 선경의 깊이를 알자는 제스처이다.
또 하나 목탄을 이용한 이재삼의 회화가 단순히 목탄화의 범주를 초월하는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신문지나 일반 페이퍼를 무수한 반복에 의해 흑연으로 칠하면 일상적 용품으로서의 종이는 종이라는 물질적 카테고리에서 벗어나서 금속도 아니고 광물도 아니며 종이도 아닌 상태로 변한다. 전혀 이질적 속성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이재삼 회화의 특징 역시 무한한 자기 반복과 노동력에 의해 목탄이 캔버스 면천과 만나면서 전혀 새로운 속성의 카테고리를 얻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사용하지 않은 태초의 종이, 그 흰 바탕과도 같은 면천의 텅 빔(emptiness)이 완전히 사라지고 무한 반복의 스트로크에 의해 굳건한 물성을 체현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재삼이 이 무한반복의 노동에 의해 정지시키고 싶었던 것은 세월의 풍파에도 좌초되지 않는 굳건한 이미지의 재건이다. 주지와 같이 이미지는 시대에 갇혀있다. 80년대의 사진과 80년대의 회화는 그 시간에 갇혀 있다. 그런데 이재삼의 회화는 노동의 숭고에 의해 시간에 갇히는 이미지의 속성을 초월하고 있다. 그의 회화는 개인적 발전 양식은 다르지만 작품 전반적으로 어느 시대에 속해졌다는 지시력을 거부하는 힘을 지녔다. 바로 그러한 점이 이재삼 회화가 갖는 승리가 아닐까 싶다.
- 이진명(갤러리 아트사이드 큐레이터)
1960년 강원도 영월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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