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Cube-sewing scape_어떤동네 Digital textile Print, 2010
안희정
Cube-sewing scape_그골목에서 Digital textile Print, 2010
안희정
Cube-sewing scape_돌집 Digital textile Print, 140x110cm, 2010
안희정
Cube-sewing scape Digital textile Print, 2010
큐브의 진화
안희정의 작업에서 큐브는 역설적이고 반어적 의미를 표출하는 하나의 장치로 기능한다. 큐브는 산업화된 도시의 대표적인 표상인 아파트 혹은 우리의 일상에 너무 깊이 침투해있는 컴퓨터의 픽셀과 같은 규격화된 사각형의 형태라는 의미를 은유적으로 담고 있다. 사각형으로 된 단자를 상기하는 큐브는 우리들의 삶을 분리시키고 개인을 고립시키는 기능을 하는 단위이다. 작가는 이런 큐브를 반복적인 구조의 한 요소로 사용한다. 그러나 큐브라는 단어가 주는 딱딱한 인상과는 별도로 말랑말랑한 솜으로 채워진 천으로 된 네모난 상자 형태로 된 안희정의 큐브의 작업은 큐브가 갖는 일상적인 의미를 역전시킨다. 또한 큐브의 면들에 나타난 다양한 형태의 창이나 문을 보여주는 동일한 반복적인 사진 이미지를 통해 작가는 다양한 인간적 자취의 흔적들을 보여준다. 규격화되고 일상화된 삶의 양태 속에서 그 공간을 생동감 있게 변모시키는 것은 거기서 살아있는 인간의 호흡일 것이다. 이처럼 큐브는 그 이면에 관조적 정취가 내포되어 한편으로는 세계에 존재하는 규격화된 양태를 표상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정형화되고 고립된 연약한 인간의 삶으로 인한 현대인들의 고립감을 말랑말랑한 재질의 큐브로 그리고 이것들을 여러 개로 묶어 설치작업으로 보여줌으로써 현대인의 삶에서의 소통의 문제를 작가가 고민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안희정에게 중요한 작업의 화두는 소통이다. 이전의 사각형의 건물을 사진으로 담아내던 작업에 비해 현재의 작업은 사진적 대상을 더욱 간결화하고 사진적 평면이 갖는 한계를 설치를 통해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한편, 천에 인화한 사진 이미지를 입방체인 큐브 형태로 제작하는 작업을 통해 또 하나의 물성을 제공함으로써 관객들이 고정된 시선의 응시에 머물기 보다는 전시 공간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만져보기도 하는 과정을 통해 작업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한다. 안희정의 작품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는 이러한 큐브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공간이다. 메를로 퐁티(Merleau-Ponty)는 몸에 관한 논의에서 인간이 자신의 감각성을 표출할 수 있는 가장 근원적 장치가 몸틀이며 이는 지각의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됨을 지적했는데 몸은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근본적으로 보이는 것이면서 동시에 스스로의 존재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근본 매체인 것이다.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감각성(sensibilité)을 존재론적 조건으로 삼지 않고는 사물로 존재할 수 없다는 의미로, 그는 사물성을 중심으로 감각을 사물화했다.
안희정의 작업은 사물 자체의 독특한 은유를 제거하며 사진도 조각도 아닌 3차원적 물체로, 이 둘을 통합하는 새로운 매체를 창출하며, 관객의 현장성을 통해 작품의 현전성(présence)의 효과를 감지하게 한다. 천으로 된 이 큐브는 아이들이 쌓아올리는 블록 같은 형태와도 유사한 측면이 있으나 일상적인 문맥을 상실하고 추상화되면서 이것은 독특한 오브제가 된다. 그리하여 관객들이 자신의 지각과 감수성에 의해 그녀의 작품을 자유롭게 감상할 수 있게 한다. 사진적 설치라는 형태로 작업을 제시하는 것은 안희정의 방식으로 예술을 논하는 방식이다. 2차원의 평면으로서의 사진과 3차원의 입체로서의 큐브 사이의 하나의 세계는 다소 유동적이고 모호하지만, 현실의 반영 혹은 흔적으로서 사고된 사진은 추상의 다른 영역으로, 다시 말해 도시 공간에 잠재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내밀하고 모호한 영역으로 나아가게 한다. 지표화된 현실과 작가의 독특한 작업을 통해 재창조된 변형된 현실 사이의 간극이 "뀌프로꼬(Quiproquo)"의 공간을 만들어 내며 작가는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과 설치된 큐브 형태 속에서 관객이 바라볼 또 다른 세상 사이의 새로운 지각의 공간을 통해 부유하는 의미를 여러 개를 연결한 큐브 형태를 통해 거대한 소통 속에 융해해 내고자 한다. 안희정은 신세대 작가로, 사물의 일상성을 역전시키는 인식의 통로를 통해 소통의 의미를 상기시키려는 미적 실험 정신에 기초한 그녀의 착상은 기발하고 재밌다.
- 손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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