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B.A
2010.11.26 ▶ 2011.01.23
2010.11.26 ▶ 2011.01.23
박화영
깃발 든 머리없는 태엽 인어인형 울트라소닉 블라인드 안테나, 2010
박화영
울트라소닉 블라인드 안테나 비디오 스틸, 2010
박화영
울트라소닉 블라인드 안테나 비디오 스틸, 2010
박화영
울트라소닉 블라인드 안테나 2010
박화영
울트라소닉 블라인드 안테나 2010
박화영
울트라소닉 블라인드 안테나 마트료시카, 2010
박화영
울트라소닉 블라인드 안테나 2010
가상의 나라 쿠바에 오심을 환영합니다.
1.경제력에 이어 문화력이 국가의 우선 경쟁력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요즘입니다. 다양한 문화예술 가운데 시각예술, 미술의 영향력이 새삼 새롭게 부각되고 있습니다. 특히, 본격적인 영상․이미지시대에 들어, 영상작업은 강력한 수퍼-울트라-메가톤급 판타지를 대중에 선사하며 현대미술의 총아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정성스레 제작한 영화 한편이 자동차 수 만대를 생산한 경제효과를 단시간에 거두기도 합니다. 촌철살인(寸鐵殺人)의 간결한 동영상이 유튜브,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타고 삽시간에 전 세계적인 주목을 끌기도 합니다. 최근 경쟁하듯 출시되고 있는 고성능 다기능의 디지털 카메라가 저렴한 가격에 대중에 보급되고 있는 것도 이를 가능하게 하는 요인 중 하나일 것입니다.
최근에는 아이폰으로 촬영한 영화제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될까하는 생각과 함께 내로라하는 감독들이 참여해서 세간의 화제가 되었습니다. Full HD 영상 촬영과 기기내 간단 편집, 송출이 가능한 휴대기기도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얼리 어댑터(early adaptor)에 이어 헝그리 어댑터(hungry adaptor)라고 하는 신조어까지 등장했습니다. 이들은 새로운 형식과 기능으로 무장한 기기에 적응하기 위해 이런저런 테크노 스트레스(techno-stress)를 기꺼이 지불합니다. 물론 이러한 외적 스트레스로부터 초연하며 자신을 곧추 세우려는 사람도 있고 첨단 퍼스널 미디어로부터 자신을 애써 소외시키거나 저멀리 유배시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렇듯 현대사회는 만물의 영장, 인간의 존엄이 과학기술에 힘없이 끌려 다니는 새로운 미디어 시대로 급속하게 재편되고 있습니다.
당연 미술도 자율보다는 타율에 의해 길들여지고 애써 자기 스스로를 유배시키려는 최근의 인간존재, 사회 분위기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새가 날기 위해서는 공기라는 저항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새에게는 스트레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공기는 자신의 날개를 떠받히는 근거입니다. 문제는 비판정신입니다. 자기비판 말입니다. 비판은 내적으로는 고정됨을 거부하는 용기와 외적으로는 독단적 권력과 제도, 시스템, 압력기제, 억압된 이성에 맞서는 자신에 대한 반성적 되물음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인정할 때,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은 보다 명확해질 것입니다.
2.성곡미술관은 지난 15년 동안 한국현대미술을 폭 넓고 다양하게 소개해 왔습니다. 지난 1998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내일의 작가' 공모․지원프로그램을 통해 신진작가를 발굴, 지원해왔으며 최근에는 시류나 시장의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고 자신의 작업 세계를 묵묵하게 풀어나가고 있는 중견․중진작가들을 예의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현대미술의 전체 지형을 보다 건강하고 튼실하게 만들고자 하는, 특히 중년의 보릿고개에 들어 있는 허리세대를 강화하려는 미술관의 작은 노력중 하나입니다. 이번 <박화영_C.U.B.A.>전은 올해초에 개최한 <김영헌 : Electronic Nostalgia_Broken Dream>전에 이은 중견․중진작가 집중 조망전입니다.
성곡미술관이 선보이는 박화영의 쿠바(Cuba, Ultrasonic Blind Antenna)전은 최첨단 과학의 시대, 물질만능의 무한 경쟁시대, 냉엄한 소비시대 속에서 오랫동안 소외되고 유폐되어온 작은, 보잘 것 없는 존재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어쩌면 작가 박화영이 들려주는 자신에 관한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박화영이 오랜 고통과 외로움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을 일으켜 세우기까지의 과정일 수도 있고 또 그러한 과정의 시각화를 통해 우리에게 힘을 주는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작가는 '쿠바'라고 명명된 보잘 것 없는 여성, 혹은 세상에 수 없이 존재하는 연약한 미물, 독립주체들을 이번 전시에 불러 모았습니다. 마치 한바탕 굿을 펼치듯 말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그것들은 웃음이 나오는 사소한 물건일 수도 있고 상대적으로 더욱 하찮아 보이기도 합니다. 또는 그동안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변혁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었던 듯, 스스로 푸른 피를 흘리거나 몸을 쪼개어 혁명의 기운을 민감한 촉수와 날카로운 예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우리에게 익숙한, 친근한 물건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전시장 어딘가를 부유하며 주위를 맴도는 공기로 떠돌고 있습니다. 박화영이 들려주는 자기로부터의 혁명, 내안으로부터의 변혁의 기운은 주로 영상작업과 일상에서 사용하거나 주어온 사물들, 즉 오브제를 중심으로 한 작업으로 전달되고 있습니다. 또 그림이나 사진, 스스로 차린 '책빵집'에서 갓 구어온 시집 '쿠바'와 화집, 'Cuba, Ultrasonic Blind Antenna'를 통해 차마 못 다한 이야기들을 모둠 형식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불투명하고 불확실한 시계 제로의 미래에 대해, 자신의 가능성에 대해 주체적 의지를 스스로, 독립적으로 확립해 나가는 박화영 특유의 혁명과정은 역시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습니다.
3.이렇듯 이번 전시는 사고의 주체성을 회복해나가는 상처 입은 작은 영혼, '쿠바'의 '자기혁명'에 관한 치열한 외침이자, 고백입니다. 전시는 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는 1층 전시장에서 소개되고 있습니다. 내용은 가상 국가와 개인의 국가로서의 쿠바입니다. 박화영이 제안하는, 개인 마다 품고 있는 자신 만의 나라 쿠바에 방문하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맞이 합니다. 마치 응접실로 손님을 맞이하듯 말입니다. 전시장에는 여성적인 섬세함과 성징(性徵)과 상징, 분위기가 가득합니다. 이는 쿠바라는 캐릭터가 여자이기 때문으로 이해됩니다. 선반의 모양이라든가, 그 위에 놓여 있는 아기자기한 난해한(?) 오브제들, 전시장 안쪽에 가득한 접시가 대표적이라 하겠습니다. 전체적인 분위기와 색상은 차분하되 은밀한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쿠바라는 존재는 마이너리티로서 뭔가 억압에 의한, 나름의 혁명을 꿈꾸는 존재이기 때문에 사실은 아무래도 여성으로서 가지고 있는 현실적 지위나 사회에서의 억눌림 같은 것들이 존재하는 곳입니다.
즉 1층은 전시의 전체적인 컨셉인, 쿠바라는 큰 변혁의 덩어리의 배경이 되는 곳으로 개인의, 가상의 쿠바라는 곳에 관객들이 방문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곳입니다. '쿠바로 오신 것을 환영'하는 전체 전시의 도입부이자 메인입니다. 박화영은 이곳에서 강하게 임팩트를 관객에게 부여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의 백미는 1층에 세로로 프로젝션되고 있는, 28분 동안 상영되고 있는 대형 비디오 영상입니다. 이 영상이 이번 전시를 아우르는 핵심에 다름 아닙니다. 전시 관람을 마치시고 다시 이 영상을 보고 나가실 것을 권합니다. 쿠바라는 존재의 삶과 혁명의 원동력이 다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2층은 1층의 조그만 접시에 들어 있던 쿠바가 다른 쿠바의 접시에 우연히 옮겨졌을 때, 튀었을 때의 상상입니다. 개인으로서의 쿠바, 나 하나만의 쿠바가 아니라 또다른 쿠바, 즉 모든 사람 안에는 쿠바라고 하는 것들이 있다는 가정입니다. 모두 그것을 가지고 있지만, 표출하지 않을 따름이라고 작가는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3․1독립선언문 내용에 따르면, '방촌(方寸)의 인(刃)을 회(懷)'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른바 지배 계급에 의해, 결코 표면 위로 드러내지 못하고 수면 아래에 조용히 있을 따름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세상에 존재하는, 특히 사랑스런 아내들이 작은 쿠바를, 작은 바다를 마음 속 깊이 품고 있다는 것을 박화영은 보여줍니다. 또한 2층은 전화자동응답기에 잘못 전달된 타인의 메시지나 음성을 주된 모티프로 하여 구성한 공간입니다.
과거 자신이 쓰던 자동응답기에 실수로 잘못 남겨진 메시지, 발신 불명의 음성으로만 남은 메시지를 서로 이어 붙였을 때, 박화영이 직접 경험했던 불통의 감정들이 소재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에 착안하여 작가는 응답기의 메시지들을, 의도적인 연출을 통해 모두가 마치 잘못 남겨진 것처럼 만들었습니다. 존재들 간의 어긋난 운명처럼, 비극적인 코미디처럼 뭔가가 엇갈렸을 때 박화영은 비로소 쿠바의 존재들이 인지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정상적인 메시지로 남겨져서 무리 없는 대화로 이어지면, 응답기는 기능적으로 제대로 작용하는 것으로 인지되어 버리는 것이지요. 2층 전시의 컨셉은 '틀린 번호, 잘못 남겨진 메시지'입니다. 마치 푸른빛 혁명의 피, 바닷물이 튀어서 전혀 다른 상황의 빈 접시에 전이된 것처럼, 존재로서의 양극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박화영은 잘못 남겨진 메시지에 열심히 립싱크를 했습니다. 그것을 대형 화면을 통해 직접 듣고 보실 수 있습니다. 이것이 2층 전시의 핵심입니다. 일상적인 이야기입니다만, 박화영은 잘못 전달된 대화를 다른 맥락의 전혀 이상한 대화로 비틀어 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쿠바의 기운이 느껴지십니까? 한편 5대의 모니터를 통해 박화영은 군중 사진들을 보여줍니다. 군중들 사이에서 또다른 쿠바들을 찾아 리서치하고 다니는 것이지요. 다른 존재들, 이 세상에 쿠바는 단 한사람만이 아니라, 저들 안에 또다른 쿠바라고 하는 존재들이, 여기저기에 있음을 암시를 하는 작업입니다. 이 사람이 쿠바일까, 저 사람이 쿠바일까 하는 박화영식 스캐닝들이 출몰합니다. 3층은 '혁명 만세, 바다가 없는 바다의 이야기'를 접하는 곳입니다. 이를 테면 1층에 있는 하나의 작은 그릇 안으로 관객들을 초대하는 개념입니다. 1층이 쿠바에 대한 소개나 전체적인 임팩트를 던지고 있다면, 이곳은 쿠바 체험을 마친 관객들에게 또다른 쿠바, 작은 접시, 작은 바다에 직접 한번 들어와 볼 것을 권하는 공간입니다. 책도 보고 사운드를 듣거나 비디오를 보면서 바다에, 그릇에 잠시 들어와서 머물고 나가는 개념입니다. 그곳에서 무엇을 느끼던 그것은 관객의 자유일 것입니다.
4.이번 전시에 있어 중요한 것은 전시가 중남미 쿠바와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과거 식민지 국가로서의 쿠바를 중층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박화영은 이번 전시를 위해 자신, 혹은 타인의 삶이 애잔하게 묻어 있거나 운명적인 만남이라 생각한 물건들을 선택, 채집했습니다. 모를 일입니다. 전시장 어디에선가 박화영이 이를, 관객을 보고 있을지도. 지금도 어디선가 쿠바를 전파하고 있을 것입니다. 내안에 조용히 잠들어 있는 쿠바를 흔들어 깨워 보십시오. 어쩌면 지금은 잊어버린, 잃고 있었던 쿠바. 여러분은 쿠바 있으십니까? 박화영의 이번 전시, 쿠바는 여러분의 쿠바를 일깨워주는, 잠자는 쿠바를 깨우는 작업입니다. 박화영발(發) 혁명입니다. 작지만 커다란 반향을 몰고 올 혁명입니다. 이 혁명은 실패하거나 성공할 성격의 것은 아닙니다.
그저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진행될 따름입니다. 자기 안의 혁명, 내안의 혁명,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자는 것입니다. 나약한 그러나 강한 인간 존재가 자신을 바로 알고 세우는 과정의 틈새를 박화영은 수 없이 비행합니다. 정신과 물질, 도덕과 과학, 이론과 실천, 지배와 피지배, 자유와 억압 사이에 난 길을 선회할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자기비판, 자기혁명입니다. 이번 박화영의 쿠바전은 오랫동안 소외되고 유폐되어온 작은, 보잘 것 없는 존재들이 주체적 의지를 독립적으로 확립해 나가는 과정과 사고의 주체성을 회복해나가는 '자기혁명'에 관한 치열한 외침이자, 고백입니다. 동참의지를 강조하는 선(善)한 선동입니다. "가장 진정한 문제는 인간의 마음 속에 있다."는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말이 생각납니다. 여러분 모두, 내안의 쿠바를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쿠바에 오시니 반갑습니다...!!!
성곡미술관 학예연구실장 박천남
1968년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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