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앙
Vegetative State Oil on Resin, 136x49x18cm, 2007
최수앙
The Wings Oil on Resin, 172x48x56cm, 2009
최수앙
The Hero Oil on Resin, 34x45x110cm, 2009
최수앙
Voices Anhydrite plaster, Automotive painting on Resin, 각 43x26x128cm(16p), 2011
최수앙
Listener Oil on Resin, 52x40x53cm, 2011
최수앙
Speaker Oil on Resin, 30x38x84cm, 2011
최수앙
Atom Acrylic on Resin, Walnut, 27x27x53cm, 2011
최수앙
Ordinary Laboratory Mixed Media, 2011
2010 성곡미술관 내일의 작가 <최수앙: Xooang CHOI>展
성곡미술관은 <2010 성곡미술관 내일의 작가 최수앙: Xooang CHOI>展을 개최합니다. 지난 1998년에 시작한 <성곡미술관 내일의 작가>展은 미래의 한국미술을 이끌어나갈 역량 있는 국내작가를 발굴하고 이들을 전시를 통해 지원하는 국내 대표적인 지원 프로그램입니다. 올해는 이 프로그램을 운영한 지 14년째가 되는 해로, 선정 작가의 현재적 작업 성과와 미래적 비전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What is Truly Valuable?
최수앙은 인체를 주제로 작업한다. 일견 놀랍도록 사실적인 형상을 통해 강한 인상을 남기지만 이는 모방의 주체가 되는 원본을 가정한 재현개념으로서의 극사실적인 묘사가 아닌, 실재하지 않는 것을 마치 실재하는 것처럼 보여주기 위한 방법으로서 선택된 사실주의라 할 수 있다. 즉 최수앙이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딱히 누구라 꼬집기는 어렵지만 현실세계에서 분명히 존재할 것만 같은 실체를 부여받은 인물들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보통의 사람들, 딱히 유명하지 않거나 주목대상에서 벗어난 범인(凡人)들을 작업의 주소재로 삼는다. 더 자세히 말하면 ‘현대인에게 정신병이란 누구나 하나씩 필수적으로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이라는 말처럼, 최수앙의 인물들은 평범하다기보다는 오히려 무언가 결여되거나 혹은 비정상적으로 발달하여 원활하게 소통할 수 없는 상태로 놓여진다.
작가는 그 동안 몇 회의 개인전을 통해 병리학적 주제와 관련된 용어들을 타이틀로 사용해왔다. 이를테면 ‘가려움증(Pruritus)’, ‘식물인간(Vegetative State)’, ‘아스퍼거의 섬(Islets of Aspergers)’ 등이 그것이다. 외양의 묘사 보다는 외형을 통해 자연스레 포착가능한 인물의 내면, 즉 심리적인 상태에 큰 관심을 보이는 작가에게 이러한 병리학적 주제는 곧 작가자신 혹은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소통의 부재와 연결된다. ‘병리(病理, pathology)’라는 말은 질병 그 자체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징후를 통해 병의 원인 혹은 발생경로를 찾아나가는 과정이다. 이른바 정상의 상태라 할 수 있는 건강한 생체구조인 ‘생리(生理, physiology)’가 아니라 무언가 문제적 상황을 단초로 하여 거꾸로 질병의 본질을 추적해내는 이 일련의 과정은 최수앙의 작품들에서도 여실히 보여진다. 관객들은 놀라우리만큼 사실적으로 느껴지는 인물들이 암시하는 몇몇의 징후를 통해 그 인물이 처한 상황 혹은 문제점들을 역추적해나가는 과정을 거친다.
작가가 ‘식물적 상태’라고 명명한 일련의 작업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무기력한 수동적인 상태를, ‘가려움증’ 작업을 통해서는 수동적인 상황임에는 변함이 없지만 불가피하게 자신이 능동적으로 스스로에게 상처를 가하게되는 역설적인 상황을, 그리고 ‘아스퍼거의 섬' 작업에서는 자폐증의 일환으로 일반적인 대인관계나 사회적인 소통이 어려운 사람들의 특징을 실감나게 제시한다. 이러한 병리학적 징후들에서 진단 가능하듯 그의 작품을 대할 때 느껴지는 정체불명의 불편함은 내면에 잠재해있는 심리적인 답답함, 혼란스러움 혹은 부조리함에서 기인한다. 우리가 일상의 삶속에서 경험하게 되는 외면하고 싶은 감정들, 즉 과잉·결핍·갈등의 세 가지 감정은 그의 작품을 읽어내는데 있어 중요한 접점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과잉 혹은 결핍된 요소를 갖고 있는데, 이를 겉으로 드러내다보면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이 생길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를 감추어야 할 어떤 것, 즉 터부시해야할 대상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바로 여기에서 서로간의 갈등이 발생한다는 것이 작가의 생각이다.
보여지는 인물, 혹은 그것을 둘러싼 상황을 살펴보기에 앞서 작업 전반을 아우르고 있는 작가의 주된 관심은 보다 원론적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그의 작업은 ‘과연 무엇이 진정 가치 있는 것인가?’ 혹은 ‘무엇에 가장 큰 가치를 둘 것인가?’ 라는 근본적이고 원초적인 물음에서 비롯된다. 실제로 작가는 이른바 사회, 체제, 규범 등이 결론지은 ‘정답’이라고 하는 것들에 대한 문제제기로부터 작업을 풀어나간다. 즉 그는 앞선 구분에 따라 ‘생리적인 것’보다는 오히려 ‘병리적인 것’이 더욱 가치 있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것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는 소수의 목소리, 그 안에서 어떻게든 적응하기위해 몸부림치는 개체들의 심리적인 괴리감은 겉으로는 화려해보이지만 각자의 모습으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공감할 수밖에 없는 대상이 된다. 근작 역시 세부적인 묘사를 포기했음에도 실감나게 다가오는 건 머리를 통과하기 이전에 피부로부터 느껴지는 ‘감각’ 때문일 것이다.
파울 클레(Paul Klee)의 ‘현대회화의 본질은 가시적인 것의 재현이 아닌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화 하는 것’이란 정의는 최수앙의 조각 작품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작업을 통해 무언가를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또한 내가 될 수도 있는 우리들에게 막강한 역향력을 행사하는 ‘비가시적인 힘’들을 가시화하기 위해 인체를 사용한다. 고도로 기술화, 물질화, 체제화되어가는 현대사회 안에서 작용하는 다양한 종류의 힘들은 인체위에 고스란히 작용하여 관객들의 감각을 날카롭게 건드린다. 이러한 작가의 관심은 점차 인물 그 자체에서 인물이 놓여지는 상황으로 확대된다. 무엇보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작품으로부터 작품이 놓여지는 공간 자체로 작업을 확장시킨다. 기존작업에서는 관객들이 연극에서 배우라 할 수 있는 ‘인물’을 객관적인 거리를 두고 감상했다면, 이제는 전시실이라는 공간에 들어선 관람객이 작품의 일부가 되어 공감해 볼 수 있는 장치들을 도입했다.
이번 성곡미술관 내일의 작가 수상기념전은 이전 전시들과 달리 별다른 제목 없이 ‘최·수·앙’이라는 작가의 이름자체를 전면에 내걸었다. 그동안 선보였던 작가의 작업세계를 압축해서 제시하는 이번 전시는 특히 그의 근작들 다수와 대표작 중 일부가 선보이며, 편의상 3개의 전시공간으로 나뉘어 구성되는데, 각각의 공간들은 1층 전시실 ‘Vegetative State’, 2층 전시실 ‘The Blind for The Blind’, 3층 전시실 ‘Ordinary Laboratory’라는 소주제로 구분되어 일반에 소개된다.
1층 전시실
1층 전시실 ‘Vegetative State’에서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회’라는 거대한 체제 안에서 적응해야만 하는 인간들의 처지를 가시화한 작품들이 선보인다. 작가는 이처럼 때로는 원인조차 알 수 없는 거대한 힘에 의해 규격화, 체계화되어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할 수없는 무기력한 상황을 ‘식물적 상태, 즉 Vegetative State’라 명명한다. 가장 처음 마주하는 작품은 ‘The Hero’라는 제목의 붙여진 아버지의 형상이다. 이전 전시를 통해 주목받은 바 있는 이 작품은 해병대 출신으로 30여년을 공무원으로 재직한 아버지의 나신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으로, 작가는 과연 그는 영웅인가 혹은 희생양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하며, 이를 경제발전이라는 대의를 달성한 박정희 시대의 전형적인 인물상으로 만들어낸다. 다음으로 보게 되는 ‘식물적 상태, Vegetative State’는 전시실의 주제를 가장 단적으로 제시하는 작품이다. 식물인간 상태의 한 남성이 흙더미 위에 무기력하게 놓여있다. 살짝 떠진 눈과 머리위로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나뭇가지는 분명 그가 죽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는 매일 매일을 살아가지만 이도저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상태이다. 흙으로부터 자라는 것인지 아니면 흙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인지,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여있는 이 남성은 통제된 사회 속에서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우리들의 모습과도 닮아있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작품은 단연 레드카펫이 깔린 단상위에 2명씩 8줄로 서서 합창하고 있는 아이들인, ‘Voices’이다. 이는 최근 작가가 관심을 갖는 일명 ‘focus out’된 형상들의 집합이라 할 수 있다. 분명 제각기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만 서서히 초점이 흐려져 아무런 개성도 특징도 잡아낼 수 없는 아이들은 너나할 것 없이 획일화된 자세와 포즈로 합창하고 있다. 흐릿하게 공간속으로 사라져버릴 듯 혹은 반대로 공간으로부터 천천히 나타나는 것 일수도 있는 두상들은 ‘얼굴’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머리’에 가깝다. 예로부터 ‘영혼의 거울’이라 불리며, 신체에서 특권적 지위를 차지했던 얼굴은 분명 서로 다른 눈, 코, 입이 존재하지만 개체의 특성을 드러내야할 요소들은 모두 흐릿하게 감추어진 채 날것의 덩어리로 제시된다. 가장 에너지가 넘칠 나이에 무엇이 이 아이들을 이토록 규격화시킨 것인지, 가장 모범적인 천사이기를 강요받는 아이들의 ‘얼굴 없는 머리’는 그들이 입고 있는 선명한 컬러와 반짝거리는 의상과 묘하게 대조되며, 보이지 않는 힘을 여실히 드러낸다.
줄맞추어 서있는 아이들 위로는 이전 최수앙의 작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The Wings’가 걸려있다. 멀리서 보면 천천히 날아오르는 듯 천정에 자연스레 매달린 이것은 승리의 여신인 니케(nike)의 상징인 날개와 닮아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부드러운 깃털대신 놀랍도록 사실적으로 묘사된 파편화된 손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보이지 않는 손,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손, 서로가 만지고 만져지며 각자를 부여잡고 있는 손들은 수많은 희생들에 의해 달성한 이상이기에 숭고하면서도 처절하다.
2층 전시실
2층 전시실 ‘The Blind for The Blind’에 들어서면 옥색의 바다 속과 같은 공간을 만나게 된다. 깊은 수면 밑으로 잠긴 듯 한 이곳은 이번 전시를 통해 새롭게 선보이는 시리즈이며, 관객들은 타자를 통해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 전시실의 소주제이기도 한 ‘blind’는 은닉, 장님, 맹목적인, 비논리적인, 눈먼 등등 다의적 해석이 가능한 용어이며, 작가는 이를 'for'로 연결하여 누구를 위한 것인지, 누가 가해자이고 피해자인지, 누가 주체이고 타자인지 등과 같은 세상의 모든 경계에 문제를 제기한다. 소수의 작품들과 집중적으로 대면할 수 있는 이곳에서는 가장먼저 마주보고 있는 파란색과 노란색의 눈동자 ‘The Blind for The Blind’를 볼 수 있다. 작가가 새롭게 시도한 회화작업이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아름답긴 하지만 왠지 인위적인 컬러렌즈를 착용한 것과 같은 시선을 관람객들에게 던진다.
대표적인 평면작업인 회화는 점, 선, 면을 통해 형상을 만들어낸다. 작가는 이러한 유화의 한계를 통해, 거대한 눈동자는 분명 존재하지만 그것은 마치 ‘눈뜬 장님’과도 같이 외부를 향하고 있기에 구조상 스스로의 내면은 돌아볼 수 없는 ‘시선의 일방적인 폭력성’을 지적한다. 회화작품을 거쳐 정면에 놓여있는 ‘The Perspective’는 의족을 찬 여인의 나신인데, 처음 이 작품을 마주하는 관객들은 작품의 제목처럼 시선을 어디에 고정시켜야 할 지 난감하기만 하다. 어떤 이는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을 가장 먼저 바라볼 수도 있고, 다른 이는 희고 매끈한 여인의 몸매에 시선을 빼앗길 수도 있다. 또 다른 이는 한쪽 발을 의족으로 고정한 부분에 관심을 보일수도 있으며, 혹은 도금된 발에 시선을 줄 수도 있다. 작가는 이 모든 것이 나는 어떤 것에 가치를 두는가의 문제, 즉 ‘관점과 시점의 차이’라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분리된 공간에서는 두 명의 남녀가 마주하고 있다. 둘 다 작가가 최근 작품에서 관심을 갖는 초점이 흐려진 모습으로 나타난다. 모든 것이 희미하지만 남자인 ‘Speaker’는 마치 일방적으로 말을 하려는 듯 오로지 ‘입’만이 강조되어 있다. 반면 얕은 좌대위에 힘없이 놓여있는 여자인 ‘Listener’는 오로지 듣기만을 하려는 듯 흐릿해진 신체에서 귀만이 강조된 채 서로를 마주하고 있다. 누가 피해자이고 가해자인가? 여기에서 우리는 어떻게든 대화하려 애쓰지만 정작 원활히 소통하기 힘든 우리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3층 전시실
3층 전시실 ‘Ordinary Laboratory’에서는 말 그대로 일상의 실험실이 공개된다. 어두운 공간에서 스스로 빛을 밝히고 있는 이곳에 처음 들어서면 아기자기하고 안락한 느낌을 받게 된다. 하지만 이 기묘한 실험실에 놓여진 작품들 하나하나를 바라보다보면 이 감정은 곧 놀라움, 불안함, 섬뜩함으로 바뀌게 된다. 이곳에서는 인간의 모습을 한 실험용 쥐 ‘Test Mice’, 각각의 전시장 기둥하단에 설치된 비상구 작업인 ‘Exits’, 일명 고양이 금니라 불리는 ‘Universal Truth’, 주황색으로 분열되고 있는 ‘Atom’, 실제 의족을 이용해 만든 ‘Artificially Acquired Immunity’, 꽃과 같은 얼굴을 한 ‘Wall Flower’, 붉은색 실험관에서 고이 잠들어있는 관상용 아기 ‘Ornamental Baby’, 쓰레기통 안에 버려진 푸른색 사람인 ‘Wasted Blue’, 좌대위에 놓여있는 다리 잘린 말인 ‘Esquisse over the autonomy’ 그리고 전시실의 소주제이기도 한 진열장 안의 파편화된 인체들의 집합인 ‘Ordinary Laboratory’를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작가는 우리가 인간을 위해 실험용 쥐를 사용하고 너무나 쉽게 관상용 동물들을 판매하듯 언젠가는 인간도 쉽게 상품화되고 버려질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는 암시를 하는 듯하다. 절단되고 파편화된 인체 역시 가치 혹은 기능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마치 박물관 속 유물을 들여다보듯 담담하게 놓여있다. 무엇보다 3층 전시실 기둥 하단에 설치된 비상구 사인은 우리가 흔히 보던 것과는 조금 다르다. 위급 시에 탈출가능 한 통로를 알려주는 막중한 임무를 잊은 듯이 한쪽 다리가 잘린 채 비상구의 위치를 표시해주는 인물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 걷다보면 기둥을 따라 무한적으로 돌게 된다. 결국 ‘비상구는 없음’을 깨닫게 되는 것에는 그리 큰 시간이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곳에서 작가는 각각의 작품들을 통해 버려지거나 쓸모없는 것에 대한 가치 혹은 유용성의 문제를 제고한다.
최수앙은 소통 불가능성을 통해 소통의 활로를 모색하는 작가이다. 앞서 밝혔듯 금기 혹은 터부시 되는 것들, 그의 작품에서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는 과잉과 결핍은 인체의 변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갈등의 구조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또한 그의 작품을 마주한 관객들이 의외로 크지 않은 사이즈에 당황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는데, 이는 거대하고 기념비적인 전통적인 조각개념에 대한 반발로 이해할 수 있다. 지금까지 전통조각의 주된 표현소재가 되어왔던 절대군주, 전쟁영웅, 신화 속 주인공 등이 아닌 다리가 절단되어 불구가 된 말, 시대적 희생양으로 이해되어지는 아버지를 포함한 소외되고 무기력한 인물들을 좌대 위로 올리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또한 전통조각의 전유물인 관람객을 단번에 압도하려는 듯한 웅장한 스케일도 찾아볼 수 없다. 보이지 않는 권력구조, 즉 거대한 힘에 지배당하는 무기력한 개체들을 향한 끊임없는 고민과 조형적 실험을 통해 최수앙은 줄곧 과연 무엇이 가치있는 것이며, 우리들 각자는 어디에 가치를 부여할 것인가의 질문을 되풀이한다. 나보다 더 외롭고 힘들어 보이는 인물상들을 통해, 혹여 스스로가 사회 부적응자라고 생각하거나, 사회에서 소외되어 쓸모없는 존재라는 생각에 자책하거나 괴로워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누구나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들이며, 충분히 소중하다’라 말하며 자존감을 갖길 바라는 희망적 에너지를 주고 싶은 지도 모른다. 완벽하리만큼 빈틈없이 만들어진 작품들을 매전시마다 선보이는 그에게 작업은 평생에 걸쳐 만들어질 자신만의 장편소설의 한 단락을 채워나가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이것이 앞으로 작가 최수앙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되는 이유다.
■성곡미술관 큐레이터 김진섭
1975년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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