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덕환
오렌지 고양이 요술 모자 캔버스에 유채, 116.7x90.9cm, 2010
조덕환
로맨틱 요술 모자 캔버스에 유채, 116.7×90.9cm, 2010
조덕환
호수가 있는 요술모자 캔버스에 유채, 116.7x90.9cm, 2009
조덕환
이구아나 요술모자 캔버스에 유채, 116.7x90.9cm, 2009
조덕환
고양이 요술 모자 캔버스에 유채, 116x100cm, 2009
요술모자와 쿠츠 나힌(kutz nahin)에 관하여
아이의 세계로 낯선 시간여행을 떠나다.
화가 조덕환은 어린 아이들을 그린다. 그는 인도여행에서 갑자가 나타났다 사라지는 문명이 시작된 영겁의 시간을 간직한 무리 지어진 큰 눈의 아이들에게 조형의 영감을 획득한 것만은 사실인 듯하다. 그는 놀이하는 귀여운 아이들을 등장시킴으로써 변함없는 어린시절의 나라로 시간을 되돌리고 있다. 사실 작가는 놀이터에서 뛰노는 아이들이나 맑고 티없이 순수한 웃음소리와 분위기를 그려왔었다. 그러던 그가 근자에 보여준 작품들은 작가의 상상력이 결합된 무한가능하게 확장된 환타지가 가미된 세계를 보여준다. 전작들은 놀이하는 아이들의 세계를 관자가 응시하거나 그 공간의 낯선 시간성에 잠입하여 멈춰진 시간 안에 깨어있는 관자의 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라면, 근작들은 요술모자라는 환타직한 매개물을 등장시킴으로써 관자 스스로가 변신을 체험하도록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있다라는 것이다. 이는 어린시절의 상상의 확장과 몸의 변신에 관한 무한한 가능태를 보여주고 있다. 뒷모습의 아이, 빛에 반사된 반짝이는 섬세하며 감각적인 놀라운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아이, 요술 모자를 쓴 아이 등 이 모든 어린이들은 조덕환의 회화세계를 응집시키며 작가의 상상력의 세계를 한층 더 성숙시키고 있다.
우리는 어린시절 보자기를 뒤집어쓰고 공주님, 왕자님처럼 영웅으로의 신화를 꿈꾸었다. 이처럼 작가가 보여주는 왕관, 고양이, 지구본을 뒤집어쓰고 있는 아이들은 머리에 쓴다라는 것을 통해 신화와 마법의 세상이 혼재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시간의 흐름을 멈추어선 어린 시절이란 현실의 그것보다 더 큰 것임에 틀림없다라는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의 말처럼, 작가는 강력하게 고요한 정적이 흐르는 성찰의 화면을 보여줌으로써, 스스로 낯선 시간이라 명명하고 있듯이 어린시절의 우리의 깊은 내면세계를 건드리며 낯선 시간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요술모자와 변신(Transformation)
그가 요술모자 시리즈에서 보여주고 있는 아이들이 뒤집어 쓴 지구본과 고양이, 왕관 등은모두 환상적인 동화의 세계로 끌고 가는 세계와 세계를 이어주는 다리로서 작용하고 있다. 모자는 고귀함과 자유를 뜻한다고 하는데, 도깨비 모자나 안개모자의 뜻도 있듯이, 그 상징성에서 확고한 환타지를 부여받고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술을 부리는 모자를 쓴 아이가 몸이 사라지거나 미래를 읽거나, 현재를 유리한 쪽으로 돌리는 힘을 부여한다는 동화는 어린시절의 우리들을 꿈과 환상의 세상으로 인도하는 잠 못 이루는 설레이는 주제였다. 이러한 모자에 작가가 중요하게 부여하고 있듯이 고양이가 함께 등장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고양이가 미래를 예언하거나 마력과 변신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으로 인식되기도 하였듯이 고양이의 신비한 능력은 알렌 포우의 검은 고양이나 동화 <장화신은 고양이>와 같이 마술을 부리는 조력자와 같이 문학적 상상력의 매재가 되었다. 조덕환의 조형에 고양이가 중요하게 등장하는 것은 그의 화면을 낯선 시간 속으로의 여행에서 한층 더 환상적이며 신비하며 아이의 형상 그 내면 속에 존재하는 무한 확장해 나가는 동심의 상상력을 더해주는 것이다. 이들의 도구를 통해 이루어지는 변신(Transformation)은 인간에서 신으로, 물질에서 정신으로와 같이 존재의 해방 또는 인간 본성의 내적 변화를 드러내고 있다 라는 것이다. 이러한 존재에 관한 성찰은 쿠츠 나힌(kutz nahin, 아무것도) 시리즈에서도 볼 수 있다. 쿠츠 나힌에서 보여주는 찰나(ksana)적 사유는 작가의 몽환적인 환타지 안에 함의된 존재의 생멸 속에 숨겨진 범우주적 시간의 인식을 보여준다 하겠다. 그래서 그의 동심이 존재 자체의 생(生)과 멸(滅)을 전제한 순간의 낯선 시간이며, 이는 창작이라는 몰입의 경지 속에 작가 스스로가 일구어낸 시간과 공간성에 관한 물음과 해답들인 것이다.
절대자유를 향하여
작가 조덕환은 달콤한 추파춥스와 같은 사탕들이 유영하며 귀여운 아이, 머리카락, 피부, 배경속에 시간이 모두 접착되어 고정된 듯 이질적인 화면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가 그려낸 배경은 검은색을 지향하듯 빛이 초점을 잃고 아련하게 스며든 화면인데, 그것을 ‘시적 배경, 신화적 배경’이라 할 수 있다. 밤이여 신과 인간들을 만든 밤이여, 모든 존재의 기원은 밤이니(오르페우스의 찬가)처럼, 그의 배경은 무한하게 함몰되는 기억의 늪과 모든 존재를 탄생시키는 무한 가능의 검은 자궁으로써의 씨앗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그의 화면에서 넓은 비율을 점유하고 있는 검은색처럼 푸른색 또한 검은색과 동일하게 인식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그의 화면에서 우리는 신화적이며 마술적인 세계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에게 멈춰버리거나 환원되었던 시간 속에서 상상속의 요술모자는 사실 마술적인 힘을 불어넣고 있는데, 이것은 작가에게는 일종의 주문과 같은 것이다. 작가는 절대 자유를 갈망하는 영원한 아이의 세계를 지향하고 꿈꾸고 있는데, 이를 위하여 맑고 순수한 영혼의 아이들의 숨결과 웃음소리, 설레이는 무한히 확장하는 상상력을 화면에 녹여내고 있는 것이다. 즉, 정신적 절대자유를 위한 작가의 극대화의 방법론적 모색이 요술을 부리는 모자인 것이다. 예술가는, 그가 사는 것처럼 창조하지 않는다. 창조하는 것처럼 사는 것이다(장 레스퀴르 Jean Lescure)라는 말처럼, 작가가 창조하는 상상력의 궁극성은 현실과 이상, 과거와 미래,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짓지 않은 순진무구한 아이의 자유로움을 향한 갈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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