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진(Kim Bok-Jin)

1901년09월23일 서울 출생 - 1940년08월18일

서울에서 활동

학력

1925년 도쿄미술학교 조각 전공 기타

경력

1936년 조선미술원 설립
1935년 조선중앙일보 학예부 부장
1926년 경성공업학교 도기과 강사
1926년 고려미술회 설립
1925년 배재고보 교사
1925년 YMCA 미술연구소 조각 강사
1925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중앙집행위원회 위원
1923년 토월미술회 설립
1922년 토월회 설립

수상경력

1993년 건국훈장 애국장
1940년 제19회 조선미술전람회 특선
1937년 제16회 조선미술전람회 특선
1926년 제5회 조선미술전람회 특선

추가정보

한국의 근대 조각가. 최초로 서양 조각을 한국화단에 도입하였다.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에 가담한 죄로 투옥되었고, 출옥 후 불상 조각을 하며 학교의 주문으로 초상조각 제작에 특히 정열을 쏟았다.

문인(文人) 팔봉(八峰) 김기진(金基鎭)은 그의 동생이다. 최초로 서양 조각을 한국화단에 도입하였다.

1920년 배재고보를 중퇴하고 도일(渡日), 도쿄미술학교에 입학하였다. 1922년 박승희(朴勝喜) ·이서구(李瑞求) ·김기진 등과 연극단체인 토월회(土月會)를 창립, 방학을 이용하여 고국공연을 하는 등 예술적 ·지적인 내면 세계를 다져나갔다. 1924년 일본의 제국미술원전람회(제전)에서 작품 《나상(裸像)》이 입선하였고, 1925년 조각가가 되어 귀국하여 곳곳의 학교에서 후진양성에 심혈을 기울이는 한편 조선미술전람회(선전)를 통하여 《3년 전》(1925) 《여(女)》(1926) 등을 발표하였다. 1928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에 가담한 죄로 투옥되었고, 옥중에서는 목조불상(木彫佛像) 제작에 전념하던 끝에 불교에 귀의하였다.

출옥 후 제2의 인생을 맞은 그는 ‘선전’에 《목》(1936) 《불상습작(佛像習作)》(1936) 《나부(裸婦)》(1937) 등을 출품하였으며, 학교의 주문으로 초상조각 제작에 특히 정열을 쏟았다.

1939년 사실주의적 기법을 바탕으로 한 그의 《불상습작》을 원형으로 하여 법주사의 대불 제작에 착수하였으나, 이듬해인 1940년 선전 출품작인 《소년》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대불은 미완성인 채 요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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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화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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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들로 흉판

    1938, 64x73cm, 동은의학박물관 소장(등록문화재 제49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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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년

    손기정이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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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주사 미륵불상

    시멘트, 높이 33m. 1940년. 김복진이 조영하다가 세상을 뜬 뒤 그의 제자들이 완성한 당시의 시멘트제 법주사 미륵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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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현대미술관-청주시립미술관 협력기획전 《김복진과 한국 근현대 조각가들》

    청주시립미술관

    2022.11.10 ~ 2023.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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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NA :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 (Dynamic & Alive Korean Art)

    국립현대미술관

    2021.07.08 ~ 2021.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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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장, 중원을 거닐다

    청주시립미술관

    2021.03.11 ~ 2021.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