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용석: Classic
2010.02.04 ▶ 2010.02.28
2010.02.04 ▶ 2010.02.28
오용석
드라마변주(Drama Variation) Single Channel Video, 4min, 2008
오용석
러브레터(Siamesemontage) Two Channel Video_Siamese scope_Divx player, 1min54sec_34x40x25cm, 2008
오용석
소연소희(Duet) Single Channel Video_still and moving image_2 variation, 2010
오용석
Classic No.1915 Single Channel Video_still and moving image, 2010
오용석
Classic No.1978 Single Channel Video, still and moving image, 2009
실험성과 대중성을 모색하는 전시공간 16번지 개관
시간 여행으로의 초대
따뜻한 감성이 살아있는
오용석의 미디어 아트
갤러리현대(대표 도형태)는 2010년 종로구 사간동 16번지에 현대미술의 발전을 이어갈 개성있고 진취적인 국내외 작가들을 위한 프로젝트 전시공간 ‘16번지’를 개관한다. ‘16번지’는 예술의 실험성과 대중성을 함께 모색하는 공간으로서 첫 개관전으로 다양한 시•공간을 오가며 독특한 영상꼴라쥬를 선보이는 오용석 작가의 개인전
오용석 작가는 서로 다른 시간대에 존재하는 동일한 장소와 일상을, 혹은 동일한 시간대에 존재하는 다양한 공간을 사진과 영상을 이용하여 적절히 배합하여 하나의 풍경으로 만들어내는 특유의 영상꼴라쥬를 선보인다. 작품 안에는 스크랩된 사진이나 직접 찍은 사진, 영화 속 장면들, 실제 그 공간을 방문하여 임의적으로 만들어낸 영상 등 다양한 방식으로 모은 이미지가 혼재해있다. 정적인 이미지로 대변되는 사진과, 동적인 이미지로 대변되는 영상이 적절히 배합돼 이루어진 작품은 사진작업을 동적인 작업으로 영상작업을 정적인 작업으로 비춰지게 하는 시각적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오용석의 이번 신작들은,
새롭게 문을 여는 공간, 16번지에서 개관전으로 마련된 이번 오용석 개인전은 그만의 작품세계를 심도 있게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보는 이에게 나름의 기억과 추억을 떠올리며 향수에 젖게 하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 16번지
작품세계
초기 작품 시리즈 ‘Cross’는 과거에 찍은 한 장의 흑백사진을 중심으로 사진 속 배경과 동일한 장소가 현재 만들어내는 일상의 조각들을 조합하여 하나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비슷한 맥락에서 접근한 후속 시리즈 ‘Drama’에서는 흑백 사진 대신 영화의 장면을 삽입하고 그 장면과 유사한 실제 공간의 이미지를 다시점으로 분할한 후 다시 배합하여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작가의 작업은 디지털 시대의 실재와 환영에 대한 기술적 내러티브를 풀어내면서도, 동시에 작가의 과거이자 관람자의 과거이거나 기억이기도 한 흑백사진의 향수나 영상의 감성이 만들어내는 따스한 감성적 내러티브로 작품 전체를 강하게 감싸기도 한다.
오용석 작가의 작품이 관람객의 감성을 자극하는 이유는 교묘하게 어긋나는 시간과 공간, 어슴푸레 느껴지는 과거의 기억, 정지된 화면과 움직이는 화면의 은은한 대조 그리고 다양한 시점에 의해 보여지는 일상의 모습을 통해, 작가가 풀어내는 파편화된 사적인 기억의 조합에 의한 존재의식의 한 방법에 관람객들도 동화되기 때문이다. 과거와 현재, 기억과 추억들을 쫓아가는 작가의 노력은 허구의 공간과 실제 상황의 재배열과 재조합을 통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극적인 효과를 만들어낸다.
합성의 풍경
우리는 닮음이 같음을 보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서로 꼭 닮아 보이는 두 개가 사실은 서로 다르다고 분별하기도 하고, 사실은 서로 다르다고 알고 있는 두 개가 무척이나 닮아 보인다는 데 문득 놀라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단순히 객관적 현실과 주관적 인지의 격차를 증명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어떤 의미에서 닮음은 언제나 놀라움을 수반한다. 닮음은 잠재적인 스캔들이다. 우리는 닮음을 감당하기 위해 원본과 사본의 위계 질서를 들이대고 본질과 외관의 차이를 분연히 강조하지만, 우리의 시선은 여전히 닮음에 이끌린다. 닮음은 유혹한다. 닮음은 같음과 다름을 구별하는 우리의 능력을 시험하고, 우리가 힘껏 쌓아올린 같음과 다름의 객관적 질서를 교란한다.
오용석이 만드는 일련의 사진-영화는 이와 같은 닮음의 작동에 의해 지탱된다. 기본적으로, 그는 여러 개의 사진과 동영상 클립을 서로 맞물리게 이어붙여 마치 하나의 연속체처럼 보이게 만든다. 이때 닮음은 제각기 다른 시공간에서 촬영된 이미지들을 연합시키는 효과적인 접착제로 작용한다. 여기서 작가가 겨냥하는 것은 같음과 다름, 허구와 현실을 엄격하게 구별해서 선명한 진실 또는 완벽한 환영의 쾌감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 작가는 그저 서로 달라붙는 이미지들을 찾아내서 이어맞춰보고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관찰한 후, 그 양상을 참고해 가면서 이미지 덩어리를 계속 증식시킬 뿐이다. 하지만 이 역시 아주 정확한 표현은 아닌데, 왜냐하면 실제로 달라붙는 것 또는 달라붙이는 것은 이미지 그 자체가 아니라 이미지들 간의 연관성을 지각하는 사람의 시선이기 때문이다. 보는 사람의 눈 앞에서, 서로 병치된 이미지들의 특정한 배치는 여러 갈래의 잠재적 질서들을 불러일으킨다. 그것들은 특정한 어느 하나의 틀에 판명하게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진동하며, 따라서 하나의 현실로 귀속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하나의 허구로 안착하기도 거부한다. 그것은 다만 아직도 종결되지 않은, 어쩌면 누구도 종결시킬 수 없는 합성의 풍경으로서 상연된다.
그것은 무엇을 어떻게 보아야 한다고 명령하지 않는 이미지다. 각각의 사진과 동영상 클립들은 전경과 후경의 위계 질서를 형성하지 않은 채 제각기 하나의 완결된 이미지로서 경쟁하듯 관객의 시선을 요구하며, 그 단독성을 포기하지 않은 상태로 하나의 장면을 이루고 더 나아가 하나의 시퀀스를 형성한다. 따라서 오용석의 작업은 사진 또는 영상을 독해하는 관습적 방식을 곧이 곧대로 적용할 수가 없다. 우리는 흔히 사진의 한 프레임에 포함된 것들을 동시적 평면 상에 병치된 것으로, 또한 영상의 한 시퀀스에 포함된 것들을 동일한 시간의 축 상에서 연속되는 것으로 전제한다. 하지만 오용석의 사진-영상을 이루는 이미지들은 분명히 상호 연관성을 식별할 수 있으나 그 연관성의 정체를 결정할 수 없는 상태로 남겨져 있다. 해석의 실마리들은 많지만 어느 하나 확실한 것은 없다. 관객에게 남는 것은 하나의 명쾌한 장면이 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하나의 또렷한 서사가 되지도 못하는 어떤 불확실한 인상뿐이다.
이러한 비(非)결정성은 그 자체로 감정적 또는 지적 파장을 불러일으킨다. 혹자는 이를 통해서 흔히 자명하고 자연스럽게 보이던 사진과 영상의 재현이 실은 얼마나 양식적이고 인공적인 것이었는지—그리고 얼마나 편안했는지—새삼 생각해볼 지도 모른다. 또 어떤 이는 우리가 현실을 바라보고 이해한다는 것이 실상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합성적 작용임을 깨닫고 작은 충격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작가는 그런 심각한 의도 없이 그저 이미지들을 연합하는 사진적 논리와 영상적 논리를 통상적인 시공간 좌표계로 환원하지 않고 어디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지 실험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특히 이런 관점에서 오용석의 이번 개인전은 흥미로운 전환점을 시사한다. 초기작인 ‘크로스’ 연작(2002-3)이나 그에 뒤이은 ‘드라마’ 연작(2003-)에서 영상과 사진은 서로 오염시키고 방해하는 방향으로 작용했다. 영상이 이미지들의 연속을 통해 시간의 지속적 흐름을 형성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면, 사진은 시간의 흐름을 일시 정지시키면서 이미지들이 동시적 공간 상에 펼쳐지도록 유도했다. 개별 작업마다 정도와 성격의 차이는 있겠지만, 전반적인 결과는 사진의 승리처럼 보였다. 사진은 영상에 잡아먹히지 않고 오히려 영상을 흡수하면서 본연의 잠재된 권능을 과시했다. 시간의 지속을 이루지 못하는 시퀀스는 여러 장의 사진 또는 심지어 한 장의 사진이 프레임 바깥으로 계속 연장된 것처럼 보였다. 여기서 사진은 한 순간에 한 시점에서 한 장면만을 포착한다는 본래의 한계를 벗어나 미묘하게 서로 다른 시공간들이 일렁이는 거대한 가상적 평면을 이루었다. 반면 이번 전시는 그렇게 비대해진 사진적 평면들이 파열되면서 영상의 잠재된 권능이 가시화되는 듯한 양상을 보인다.
신작들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영상의 서사성을 재소환한다. 일단, ‘샴 몽타주’ 연작과 <미래의 기억>은 각각 멜로드라마와 SF 영화의 장르적 서사를 상기시키면서 희미하나마 사진의 평면성을 초과하는 이야기의 시간을 불러일으킨다(간단히 말해서,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또는 ‘미지의 존재가 찾아온다’). 또한 ‘클래식’ 연작은 옛날 사진을 프레임 바깥으로 확장하는 제스처를 취한다는 점에서 ‘크로스’ 연작을 연상시키지만, 전작과 달리 사진 속 등장 인물들이 풍경의 일부로 녹아드는 대신 팽팽한 응시의 교환을 통해 최소한의 서사적 긴장감을 확보한다(이를테면, <클래식 No.1978>에서 소년은 담배에 불을 붙이는 어떤 남자—TV 화면과 거울에 그의 일부가 비친다—를 바라보고, <클래식 No.1915>에서 남자는 거울 속의 자기 자신을 바라본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드라마 변주>인데, 이 작업은 작가가 직접 촬영한 이미지, 영화와 드라마의 일부, 그외 발견된 이미지들을 조합한다는 점에서 기존 ‘드라마’ 연작의 연장선상에 있지만 더 이상 익숙한 듯 낯설고 기괴하리만치 거대한 합성적 풍경을 이루는 데 그치지 않는다. 각각의 사진 또는 동영상 클립들은 전작과 달리 눈에 띄게 계속 반복되면서 배치를 바꾸어 나가는데, 이러한 반복은 사진의 동시적 평면성을 훼손하지만 전체 구성을 와해시키지는 않는다. 오히려, 반복적으로 재조합되는 풍경과 행동의 연쇄는 등장 인물들을 배경에서 다소나마 돌출시키면서 그들이 무언가 의지를 가지고 같은 행동을 계속하고 있다는 인상을 자아낸다. 그 결과, <드라마 변주>는 여전히 정합적인 시공간적 질서를 재현하기를 거부하지만 그럼에도 어떤 이야기를 불러일으킨다(이를테면, ‘아이들은 마을을 떠돌지만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여기서 작가는 무언가 영화적인 것을 만드는 상당히 재미있는 방법을 발견한 것으로 보인다. 그가 만드는 합성된 풍경이 우리가 여지껏 보지 못했던 어떤 영화에 도달하는 날이 올까? 아마도 해답을 구하려면 다음 신작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듯하다.
■ 윤원화 (미술•디자인 연구자/번역가)
1976년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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