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욱
무제 한지에 먹, 채색, 130.5x162.5cm, 2012
김정욱
무제 한지에 먹, 채색, 130.5x162.5cm, 2012
김정욱
무제 한지에 먹, 채색, 170c116.5cm, 2012
김정욱
무제 한지에 먹, 27x21.7cm, 2012
김정욱
무제 한지에 먹, 33x24cm, 2012
서로 다른 크기와 색의 동공. 온통 검은 눈. 격렬한 싸움의 결과물과도 같은 긁힌 자국과 상처의 흔적을 그대로 품은 채 고요한 검은 여백 앞에 부유하는 인물들. 긴 머리를 드리우고 두 손 바닥을 펼쳐 우리를 향해 마음을 내 보이는 마리아들. 날개를 펼치고 후광을 쓴 존재들. 그윽한 눈빛들. 이들이 쓰고 있는 저 ‘투명한’ 은유의 막을 뚫을 수만 있다면!
어느 인터뷰에서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것에 대한 답으로 김정욱은 빛나는 것들이라 답했다. 코엘료의 소설 속 인물이 별이 총총하고 바람 이는 사막 언덕에서 조용히 말했을 법한 이 단어는 아마도 한참의 시간이 걸려 평온하고 고요하게 ‘투욱’하고 작가의 입 밖으로 나왔을 것이다.
선문답의 한 대목 같은 이 빛나는 것들은 넓고 무한정한 은유이다. 사전적 의미대로 물리적으로 반짝여 빛나는 것을 지칭할 수도 있고, 스스로 돋보이는 존재를 일컬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떠한 순간을 의미 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어떤 존재와 마음이 통하는 다른 어떤 존재가 만났을 때 일어나는 화학 작용의 에너지가 마음에 빛을 발화하고 그것이 치유이든 위로이든 공감이든 배려이든 다양한 형식의 소통으로 느껴지는 순간. ‘반짝’하고 빛을 내는 순간. 이것은 세상의 모든 것과의 관계 속에서 나올 수 있는 마음이며 여기에서 심리적 연대가 생겨 난다면 그것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고 살 수 있게 하는 커다란 힘이 될 수도 있다.
주위가 짙어 질수록 빛이 밝아지는 이치를 비밀처럼 간직하기라도 한 듯 김정욱의 인물들은 검음 속에서 은은하게 존재한다. 작은 숨소리라도 들리면 곧 떨어져 내릴 듯 눈물을 품은 인물이 있는가 하면 너무나도 순수한 얼굴(그렇지만 모든 것을 초탈한 듯한 깊은 눈빛을 가진)의 아이와 같은 인물도 있다. 날개를 펼치고 보살피듯 기울이고 있거나 눈에 점 하나 빛을 가진 이도 있다. 몇 번이고 겹쳐진 먹의 세월을 입은 이들은 전작에 비해 한층 평온해 졌으되, 애잔하고 애처롭고 숙연하다. 이토록 따뜻한 검은 빛 속 인물들은 깊은 연민과 유대의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이들의 생경한 모양새를 자꾸 되돌아 보게 되는 것은 이들이 우리가 의지 하고픈 대상 일수도 있고 우리 자신의 모습 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개를 기울여 흐르는 눈물을 간직한 눈은 무엇을 아는 듯 애처로운 눈길로 마음을 쓰다듬는다. ‘그래도 괜찮다. 내가 안다.’라는 듯한 무언의 느낌은 보는 이의 마음에 얼마나 크고 부드럽게 다가오는가. 효율이 극대화된 사회, 능력 이상의 것을 해 내는 것이 능력이라는 무언의 압박 속에 살고 있는 마음이 듣고 싶은 말은 ‘할 수 있어!’가 아니라 ‘괜찮아’가 아닐까.
인물이 드러내는 숙연한 상태는 인생을 사는 김정욱의 태도에서 비롯되었다. 작가는 의식의 작용이 일어나는 삶의 매 순간을 머리와 마음으로 기록하고 삶의 모든 형태, 방식에 대해 마음을 열어 둔다. 세상에 대한, 사는 것에 대한, 죽는 것에 대한, 사람에 대한 모든 교감과 그것과 관련한 의식의 기록, 기억, 생각은 오랜 관찰과 사색을 거친 시인이 한 줄로 함축된 시구를 정성 들여 써 내려가듯 반복해서 다듬어진 붓질을 통해 그려진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덮고 또 덮고, 드러내고 또 드러내는 붓질. 짧은 글귀가 모든 감각적 이미지와 형상으로 변하여 머리 속에 떠 오르듯이, 김정욱이 내어 놓는 것은 오감의 형상으로 떠 올라 보는 이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작가는 아름다움과 추함, 선함과 악함, 밝음과 어둠, 행복과 불안, 위안과 상처 등 우리가 대립시키고 정의 내리기 좋아하는 개념들에 호불호의 방식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김정욱은 ‘그러함’을 이해하려 하고 그 순간의 마음을 종이 위에 펼쳐 놓는다. 이렇듯 어느 것에도 한정하지 않은 김정욱의 시선은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방식을 보여주며 우리에게 빛나는 어떤 순간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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