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락
1초 수묵 Ink on polycarbonate, 52.4x52.4cm, 2013
임현락
1초 수묵 Ink on polycarbonate, 52.4x52.4cm, 2013
임현락
1초 수묵 Ink on polycarbonate, 52.4x52.4cm, 2013
임현락
1초 수묵 Ink on polycarbonate, 67x50cm, 2013
나의 작업, 〈1초 수묵〉에 대하여
십여 년 전, 나는 혹독한 병고를 치렀다. 수술 뒤 몇 달간 요양을 하다가 복귀하였는데, 개념미술가 S선생은 나를 보자마자 느닷없이 질문을 던졌다. “임 선생. 인간이 뭐야?” 아마도 생사의 갈림길을 겪은 시점이라 무언가 특별한 대답을 기대하셨으리라. “.... 그냥 세포죠.” 라는 순간적인 나의 응대에 고개를 잠시 끄떡였다. 그 이후 나의 예술적 관점은 자연이라는 구체적 대상에서 모든 자연 현상을 가능하게 하는 생명으로 바뀌었다. 단장(斷腸)의 체험과 극복의 과정은 나에게 세포 하나하나의 신비한 역할을 체득하게 하였고 생명 그 자체를 온전하게 느끼게 해주었다. 지금은 잠시 느슨해졌지만 체화(體化)된 이 영혼의 힘은 실제로 나를 새롭게 만들어 왔다.
나의 그림은 ‘바람’을 담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 생명의 기운은 ‘호흡’을 통해 실현 된다. 나는 대상을 그리기보다 호흡을 그린다. 선 긋기를 통해 나와 대상의 호흡을 일치시키고 그 행위에 하나가 되고자 한다. 이 작업들은 관람객의 참여로 완성된다.〈나무들 서다〉와 〈1초 수묵-들풀〉이라는 명제의 최근 작업에서 나는 반투명 실크와 투명 필름에 필획을 그어 공간에 세웠다. 천정에서 바닥까지 드리워지거나 바닥에서 천정으로 치솟는 필획들은, 마치 숲처럼 무리를 형성하며 서로의 몸을 비추고 감추면서 공간의 깊이를 형성한다. 사람들은 겹겹이 늘어선 획들 사이로 자신의 동선을 따라 움직이며 미세한 바람을 만들어 흔들리는 선들과 교감한다.
일획, 한 호흡, 순간... 그 동안 나의 작업에 있어서 행위에 수반된 개념들이다. 나의 호흡과 신체를 통하여 화면 위에 실현되는 필획들은 느슨하게 혹은 길거나 짧게, 때론 빠르게, 어떤 경우에는 완만하다가 급히 몰아친다. 단 숨, 한 호흡이라는 일획의 행위에 수반된 신체적 시공의 개념을 초(秒) 단위의 시간으로 변환하면 어떤 공간이 펼쳐질까? 1초에 100m 달리기 선수는 10m가 넘는 거리를 질주한다. 1초라는 시간이 공간으로 펼쳐진 길이다. 나는 최근 작업의 제목을 〈1초 수묵〉으로 정하였다. 획이 내포한 순간성에 주목하여 ‘1초’라는 시간적 개념을 행위의 조건으로 설정하였다. 전통적 관점에서 획이 내포한 유연한 행위성에 ‘초’ 단위의 분절된 시간 개념을 개입시켜, 극히 한정된 시공간의 밀도 속에 나를 몰입시키고, 그 속에서 하나가 되고자 하였다. 무아(無我)에 가까운 절박하고 긴박한 상황에서 구현된 필획들을 통해 나는 생명의 ‘호흡’을 심고자 한다.
먹물이 ‘후두둑’ 떨어진다. 바람이 ‘휙-’지나간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순간’이다.
-2013. 8. 복현골에서, 현락
1963년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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