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창
태양을 먹은 새 종이에 수묵담채, 34.5x44.5cm, 1968
김기창
예수의 생애_아기예수의 탄생 비단에 채색, 63x76cm, 1952~1953
김기창
세 악사 비단에 수묵채색, 64x75cm, 1970
김기창
군마도 비단에 수묵채색, 176x340cm, 1969
김기창
강호(江湖) 비단에 수묵채색, 65x128cm, 1984
김기창
문자도 금지에 수묵, 58x99cm, 1986
한국현대회화사에서 독창적인 화풍으로 우뚝 선 운보 김기창. 그는 동양화의 전통을 계승하는 한편 자유로운 조형정신으로 동양화의 혁신을 이룬 우리 미술의 진정한 거장이다.
운보 김기창은 어린 시절 열병으로 인해 청각을 잃었다. 그로 인해 일찍이 세상과 단절되는 아픔을 겪었다. 하지만 장애를 딛고 일어선 그는 우리 전통회화를 현대회화로 승화시키는 큰 업적을 이뤄냈다. 그는 평생 전통적 소재와 기법에 기초한 인물화와 화조도를 비롯해 대상의 해체와 종합을 이룬 현대적 풍속화, 청록산수, 민화의 영향이 보이는 바보산수 및 바보화조 시리즈, 추상적 이미지의 회화 등 다양한 경향의 작품들을 선보였다. 이 작품들을 통해 운보는 무엇보다 고정화된 예술적 범주를 부단히 일탈하는 자유분방한 의식과 탐구욕, 실험정신을 보여주었다.
‘예수와 귀 먹은 양’은 운보 김기창의 탄생 1백주년을 맞아 개최되는 전시로, 그의 최고 걸작 가운데 하나인 <예수의 생애> 시리즈를 중심으로 인물화, 청록산수, 바보산수, 바보화조 등 다양한 경향의 대표작들이 내걸린다. 한국전쟁이라는 어두운 시기에 제작된 <예수의 생애> 연작은 역경을 이겨내고 작품세계를 펼쳐간 운보의 예술혼을 생생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특히 이 연작은 예수의 삶을 전통회화의 형식으로 그렸을 뿐만 아니라, 예수와 성모 마리아에게 한복을 입히는 등 우리 고유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담았기에 세계 기독교 미술사의 시각에서나 한국 회화사의 시각에서 공히 의미 있고 소중한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전시 타이틀을 ‘예수와 귀 먹은 양’으로 한 것은, 실로 오랜만에 대중에게 공개되는 <예수의 생애> 연작의 의미를 되돌아보기 위한 것인 한편, 어떤 장애와 난관에도 불구하고 불세출의 예술혼으로 우뚝 선 운보의 성취를 기리기 위한 것이다. 다종다양한 운보의 작품이 두루 망라된 이번 전시를 통해 운보의 진가가 새롭게 발견되기를 기대한다.
다종다양한 운보의 작품이 두루 망라된 이번 전시는 오랜만에 운보의 진가를 되돌아볼 수 있는 귀한 자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귀 먹은 양
운보가 일곱 살이 되던 해, 심한 열병이 그를 찾아왔고 운보는 이로 인해 청각을 잃는 비극을 맞았다. 급작스럽게 찾아온 불운은 어린 운보와 그 가족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지만, 타고난 예술적 재능은 그런 장애와 불운을 넘어서기에 충분했다. 침묵과 정적의 세계에서 운보가 느껴야 했던 내면적 고뇌는 오히려 그의 예술적 감성을 풍부하게 했다. 소리를 잃은 아들을 성심껏 뒷바라지했던 어머니 한윤명 여사는 그 열정으로 운보를 한국근현대미술사에 있어 빠질 수 없는 대표적 작가로 키워냈다.
장애를 이겨낸 운보의 의지와 기개는 그의 예술세계에 그대로 드러난다. 스승인 이당 김은호의 영향을 받은 세필화에서부터 말년에 보여줬던 추상적 작품들까지 운보는 작가로서 항상 새로워지려고 몸부림쳤다. 이렇게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실험정신과 급진적 성향을 보여주는 작품들은 역경 속에도 좌절하지 않았던 그의 삶과 닮았다. 전통회화의 기법을 바탕으로 과감히 현대미술을 수용하는 한편 이를 재해석해 자유로운 조형 세계를 펼친 운보는 근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 동양화단을 선도해 가며 마침내 한국화의 기수로 자리 잡았다.
예수의 생애
한반도에 6.25전쟁의 암운이 드리우자 운보는 일가족과 함께 아내의 고향 군산으로 피난을 떠났다. 피난 시절에도 그의 예술세계를 대표할 만한 역작들이 계속 제작되었는데, <예수의 생애> 연작 또한 이 시기에 그려진 대표작 가운데 하나다. 예수의 일대기 중 주요 장면들로 구성된 이 연작은 운보와 친분이 두터운 선교사의 권유로 제작되었다. 예수의 고난이 우리 민족의 비극과 유사하다고 생각한 운보는 한국적 성화의 필요성을 느꼈고, 예수의 성체가 꿈에도 보이고 백주에도 보였다고 할 정도로 성화제작에 몰입하여 1년 만에 30점의 작품을 완성하였다.
운보의 붓끝에서 재현된 예수의 삶은 조선시대를 그 배경으로 한다. 갓을 쓰고 흰 두루마기를 입은 예수를 비롯해, 조선시대의 복색을 한 등장인물들과 초가, 기와집 등 우리 전통 가옥이 유연한 세필로 묘사되어 생생한 현장감이 돋보이는 풍속화를 연상시킨다. 세계 어느 나라의 성화에서도 볼 수 없는 독자적인 기법이 돋보이는 <예수의 생애> 연작은 기독교가 토착화되었음을 드러내는 한국적 성화로서도 의미가 크지만, 빠른 운필과 뛰어난 구성력 등 운보의 드높은 회화적 성취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한국 회화사에서 매우 의미 있는 작품이다.
운보걸작선
운보 예술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다른 경향의 작품이 같은 시기에 제작되기도 하고, 과거에 이미 시도하였던 작업경향이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나타나기도 하는 등 변화무쌍한 측면을 보인다는 것이다. 특히 동양화의 전통을 계승한 작품 경향과 현대적 화풍을 보이는 상반된 경향 사이를 넘나드는 등 변화가 풍부한 그의 작업방식은 어느 한곳에 안주하지 않으려는 작업관을 드러낸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작품들은 다양하게 변주되는, 운보의 다채로운 표현영역을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전통적 동양화의 채색화법을 보이는 인물중심의 풍속화, 민화를 새롭게 재해석해 표현한 바보산수와 바보화조, 청록 빛의 강렬한 채색풍경이 돋보이는 청록산수, 운필의 묘가 생생한 문자도 등 운보의 다양한 작품경향을 대표하는 작품들이 망라되어 있다. 운보가 표현하고자 했던 생명의 힘과 순수한 아름다움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
운보의 동반자
삶의 동반자이자 예술적 동지였던 아내 우향 박래현과 사별한 운보는, 1980년 경 어머니의 고향 충청북도 청원에 ‘운보의 집’을 짓고 타계할 때까지 여생을 보냈다. 이곳에서 자연과 벗 삼아 지내며 바보산수, 바보화조 등 기존의 작품경향을 이어갔다. <문자도>, <점과 선 시리즈> 같은 독특한 실험적 특징을 보여주는 자유로운 표현의 작품세계도 펼쳐갔다.
설치된 공간은, ‘운보의 집’이 소장한 운보의 화구들을 선보이는 공간이다. 운보는 이 화구들을 평생의 동반자로 삼아 자신의 기쁨과 슬픔을 표현했다. 화구들 외에 그가 일상에서 쓰던 소품들도 자리를 함께했다. 운보의 필력뿐 아니라 그의 숨결도 느낄 수 있다. 작품들이 예술가의 혼을 보여준다면 소품들은 예술가의 체취를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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