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
2000년 영남대학교 회화 전공 석사
1987년 경북대학교 한국화 전공 학사
레지던시
수성문화재단 지원금 선정, 대구, 2010
개인전
2010, 어이쿠! 봄 간다 - 러브 , 한 갤러리 , 초대전, 헤이리,파주
2010, 악기가 되고 싶은 육체의 고단한 꿈 , 수성 아트 피아, 초대전, 대구
2009, 텍스트로서의 몸과 그림 , 갤러리 M, 초대전, 대구
2009, 색들의 향연 , 갤러리 제이원 초대전, 대구
2008, 어이쿠! 봄간다-러브, 세이카 갤러리 초대전, 도쿄(일본)
2008, 불명료함, 그리고 확정되지 않은 추상 , 고토 갤러리 초대전, 대구
2007, 어이쿠! 봄 간다 - 가창에서 , 동원 화랑 초대전, 대구
2006, 권기철의 드로잉 , 목인 갤러리, 서울
2004, 나의 창작 나의 각성 , 한기숙 갤러리 초대전, 대구
2003, 나의 소리 나의 독백 (마니프 국제 아트 페어), 예술의 전당 , 서울
2003, 시각적 리듬 조형의 순수한 자율성 , 두산 갤러리 초대전, 대구
2001, 현외지음 언외지언(弦外之音 言外之言) ,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00, 소리의 형상적 표현 , 대백프라자 갤러리, 대구
1998, 소리와 형상 , 대구문화예술회관 초대전, 대구
1998, 소리는 둥글다 , 갤러리 신미 초대전, 대구
1998, 소리는 둥글다 (서울아트페어), 예술의 전당, 서울
1997, 1997 소리의 형상언어 , 나 갤러리, 서울
1996, 소리는 둥글다 (서울아트페어), 예술의 전당, 서울
1996, 시대정신과 소리의 형상 , 롯데화랑본점, 서울
1996, 소리를 그리다 , 갤러리 소헌 초대전, 대구
1994, 소리 1994 , 갤러리 누보, 부산
1994, 전통과 현대-재해석을 위한 구상성 , 봉성 갤러리, 대구
1993, 개인의 정체성과 만나는 전통과 현대 , 봉성 갤러리, 대구
단체전
2024 필(筆)+묵(墨) 사유하는 실천, 겸재정선미술관, 서울
2014, Artist, 그 예술적 영혼의 초상 특별展, 금보성아트센타, 서울
2011, 서울 오픈 아트페어, 코엑스, 서울
2011, 아트 대구, 엑스코. 전시컨벤션 센터, 대구
2011, 호텔 아트 페어 인 대구, 노보텔, 대구
2011, 서울 아트 페스티벌, 리츠 칼튼 서울, 서울
2011, KIAF(한국 국제 아트 페어), 코엑스, 서울
2010, 대구 아트 페어, 엑스코, 대구
2010, 호텔 아트 페어, 노보텔, 대구
2010, 아트 로드 77-아트 페어 특별전, 리앤박 갤러리, 헤이리
2010, 상하이국제아트페어, Shanghai Ever bright Convention Center, 중국
2008, 광저우 아트페어, Shamian exhibition center, 중국
2008, 피아 아트페어, 따마나꼬 인터콘티넨탈 컨벤션센터, 베네주엘라
2005, 광화문 국제 아트 페스티발-빛, 사람, 문, 세종문화회관, 서울
2003, 마니프 국제 아트 페어, 예술의전당 미술관, 서울
2003, 대구 아트 엑스포, 대구 전시 컨벤션 센터, 대구
2001, 다양성의 세기관 그 조화와 균형,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01, 대한민국 청년작가 미술축전,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01, Free Art Free 전, 도쿄 Sky door, 일본
2001, 영남호남 그리고 충청전-새로운 세기의 징후, 대전시립미술관, 대전
2001, 2001 권기철. 이정웅 2인초대전, 포스코 갤러리, 서울
2000, 광주비엔날레특별전-인간의숲, 회화의숲, 비엔날레전시관, 광주
2000, 한국화 동질성의 회복 2000전, 광주시립미술관, 광주
1999, Mavericks - 자유정신전, 상해대학, 중국
1999, 한국유명화가 150인 특별전, 롯데화랑, 서울
1999, 새천년을 향한 도전전, 대전시립미술관, 대전
1999, 권기철, 양만기 2인전, 대림화랑, 서울
1998, 서울 아트 페어, 예술의전당 미술관, 서울
1998, 청년 작가 초대전, 문화예술회관기획, 대구
1997, 권기철, 이정웅전, 대구은행 갤러리, 대구
1997, 서울 아트 페어, 예술의전당 미술관, 서울
1996, 대한민국 청년비엔날레, 문화예술회관, 대구
1996, 서울 아트 페어, 예술의전당 미술관, 서울
1995, 95 대구 현대미술 초대전, 문화예술회관, 대구
1995, 서울 아트 페어, 예술의전당 미술관, 서울
1994, 새로운 전망전, 모란 미술관, 남양주
1993, 한국청년미술제-서울에서의 만남전, 공평아트센타, 서울
1993, 현대한국화-서울에서 부산까지, 한국미술관, 서울
1993, 서울현대한국화전,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1993, 자연 그리고 한국화 정신전, 미술회관, 서울
1992, 오늘의 지역작가전, 금호미술관기획, 서울
1991, 문화예술회관개관 기념전, 문화예술회관, 대구
1990, 동아 미술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작품소장
대구시청, 한국외국어 대학교 (서울), 동양 엘리베이터 본사 (서울), 대구은행 연수원 (칠곡 동명), 대구은행 본점 (대구), 현대 중공업 (울산), 포스코 본사 - 포항제철 (포항), 601 비상 (서울), 도서출판 재원 (서울), 대구문화 예술회관 대극장, KBS 대구방송총국 (대구), 대구 문화 예술회관, 경북 대학교 미술관(대구), 대구 백화점, 매일 신문사 (대구), 영남 일보사 (대구), 용산 정형외과 (대구), 늘 편한 정형외과 (단양), 구 병원 (대구), 한국 델파이 주식회사(대구), 대구 검찰청 서부지원
추가정보
텍스트로서의 몸과 그림
이선영(미술평론가)
권기철의 그림은 대상의 명확한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추상이지만, 모더니즘의 전통이 회화의 자기 동일성을 확보하기 위해 배제했던 타자들을 힘껏 끌어안는다. 화려한 색채와 액션, 그리고 글자의 흔적이 남아 있는 그의 회화는 몸, 음악, 문학 등 작가가 그림 이외에 심취하고 있는 다양한 삶의 취향과 지향이 뒤섞이는 장(場)이다. 이러한 뒤섞임은 그의 스튜디오에 있던 많은 문학 서적들이 반영된 문장과 문자의 흔적들, 음악을 틀고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 붓이 시작해서 끝나는 시점의 행위가 분명히 나타나는 즉발성, 감정의 상태들이 드러나는 과정에 직접 반영되어 있다. 물론 그의 회화는 몸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며, 특정한 음악을 해석하는 것도 아니고, 해독할 수 있는 문장들이 나열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을 회화라는 장에서 잘 섞이기 위해 변형된 요소로 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점들이 짐짓 엄밀해 보이는 형식주의 회화가 가지고 있는 단조로움을 파열시키고, 생의 약동과 활기를 불어 넣는 이질적 요소들임은 틀림없다. 화가가 아니면 목수가 되었을 뻔한 그는 이번 전시에서 소나무로 된 입체작품까지 첨가하였다.
캔버스 보다 흡입력이 강한 한지 위에 다양한 재료로 번짐, 흘러내리기, 튀기기 등이 자연발생적으로 또는 인위적으로 조절된 화면들은 몸의 연장으로서의 붓과 물감이라는 그림의 특성을 보여준다. 맨 종이가 드러난 흰 바탕은 단순히 그림의 수동적인 배경이 아니라, 여백으로, 그 위에 스며들거나 얹힌 형상들과 밀고 당기는 적극적인 부분이다. 여백을 제외하고 가장 밝은 색채인 노랑 계열의 색채는 얼룩이나 선, 형태 등으로 존재하면서 화면에 활기를 부여한다. 그것은 분리된 색 면들을 이어주거나 어두운 바탕에서 힘차게 솟아오르는 형상으로 변모하기도 한다. 어릴 적부터 문방사우(文房四友)에 익숙했으며, 지금도 종종 캘리그래피 작업을 하는 권기철의 작품에서 기호의 흔적들이 발견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바탕에 낙서같이 글자를 끄적여 놓은 작품을 비롯하여 문자를 이루는 다양한 요소들이 등장한다. 이러한 문자적 요소들은 ㅅ자의 연속으로 풍경으로 확장되거나, 이니셜을 연상케 하는 기호들은 정체성과 중첩된다. 화살표나 교정부호 같은 도형기호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특히 밝은 분홍으로 그려진 작은 기호들은 화면에 강한 포인트를 주면서, 상징 뿐 아니라 조형적 요소로 빛을 발한다.
권기철의 작품에서 주요한 조형요소는 점 선 면 같은 가장 기본적인 것들이다. 이것들이 다양하게 조합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한다. 이야기는 일상적 시간성을 따르는 소설적 서사 구조라기보다는 시처럼 응축되어 있다. 그의 작품 속 기하학적 요소는 화면의 좌표축을 설정해 주는 먹줄이나 간혹 등장하는 숫자 밖에는 없다. 그 조차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텍스트로서의 성질을 가지는 것이지, ‘회화의 평면성’을 확보하기 위한 형식주의적 요구사항과 관련되는 것은 아니다. 먹줄은 어릴 적에 아버지와 함께 했던 목(木) 작업에서 나온 것으로, 그의 흑백회화에 많이 활용된다. 흑백회화는 먹, 흑연, 기름들, 아크릴 물감 등이 섞여 만들어지며, 서너 번씩 올리면 층이 드러난다. 수직과 수평은 생각이 뻗어나가는 좌표가 되어준다. 흑백 회화 뿐 아니라, 색이 들어간 작품에서 검정은 손 글씨의 흔적을 연상시키는 주요한 요소이다. 검은 선들은 힘찬 액션과 기호의 흔적으로, 서로 용이하게 호환된다. 화려한 색채는 보색대비나 오방색 등 전통적인 배색법과 관련되며, 인도나 중국 등지의 오지 여행에서 발견한 민속의 원색적 색감에서도 연원한다.
색은 다층적으로 배열되며 색감에 따라 산이나 물 같은 자연 풍경이 강하게 연상된다. 지난여름에 했던 전시회의 작품 제목들은 [어이쿠! 봄 간다]였는데, 작가는 대구시 외곽의 작업실로 와서 두 번의 봄을 보내면서, ‘내가 살아 있구나’를 느꼈다고 말한다. 자연은 주요한 요소이지만 통상적인 풍경화 같은 류가 아니다. 그에게 자연은 무엇보다도 몸이기도 하다. 작품에 강하게 내재된 신체적 요소는 입체 작품에서도 발견된다. 소나무로 만든 입체 작품은 의자이면서 테이블, 또는 작업실의 이미지이다. 그것은 몸을 싸안는 가구이자 공간이며, 동시에 자신의 이미지이다. 자동차 앞의 엠블럼 같은 말과 이쑤시개로 만든 몸통 위의 촉수는 앞으로 힘차게 달리면서도 섬세함을 잃지 않으려는 작가의 희망이 투사되어 있다. 쇠 대신에 드럼 스틱으로 빗장질러 연결된 나무 둥치들은 분해해서 재조합할 수 있는 열려 있는 구조를 가진다. 둥근 받침대에 괴어져 있어 시이소처럼 기우뚱한 그것은 작가가 몸과 공간을 가변적인 것, 즉 불안하고 불안정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권기철의 작품에서 몸은 초월적인 것이나 대상적인 것이 아니다.
육체와 정신을 명확히 구분하는 형이상학의 전통에서 몸은 영혼에 비해 무겁고 물질적이며, 이성적인 인식을 방해하는 요소로 등장하곤 한다. 서양 형이상학의 전통에 반기를 들었던 철학자 니이체가 말하듯이 ‘영혼이란 몸속에 있는 그 어떤 것에 붙인 말에 불과하다. 몸은 커다란 이성이며, 하나의 의미를 지닌 다양성이고, 전쟁이자 평화이고 가축 떼이자 목자이다’ 반형이상학의 관점에서 몸은 삶과 예술에 특정한 관점과 지향성을 부여한다. 아멜리아 존스는 [몸]에서 재현의 수수께끼, 불멸과 초월을 성취하고자 하는 항상 실패하는 욕망이 가장 강렬하게 드러나는 것이 몸과 더불어서 라고 말한다. 그림에는 몸을, 그러므로 자아를 완전하고 진실하게 그려내고자 하는 욕망이 점철되어 있다. 그것은 몸과 정신을 나누는 이원론처럼 언어의 바깥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의 실체가 되려한다. 또한 몸은 결코 단순한 기호가 아니다. ‘기호는 그것의 의미를 전달할 뿐만 아니라, 그것으로 가득 차’ 있고, 이러한 몸은 ‘결코 자족적인 것이 될 수 없으며 몸은 타자와 다른 대상에 열려 있는 살’이며, ‘항상 현재형으로 완전히 살아지는 우발적인 것’(메를로 퐁티)이다. 그림은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실체적이며 육체적이다. 그림은 몸과 같이 ‘이 세상의 살’(메를로 퐁티)인 것이다.
주체와 대상을 분리하는 이원론은 원근법적 공간 같은 시각적 공간에 투사되곤 하지만, 양자를 분리하지 않는 사고는 주체가 중심이 되는 시점과 지점이 불분명하다. 권기철의 작품에서 종종 등장하는 먹 선으로 된 좌표계조차도 무정형적인 형상이 그려진 이후에 첨가되는 것이지, 그 전에 설정되는 것이 아니다. 이분법이 해체되면 작품 역시 몸으로 간주하는 비유법이 성립될 수 있는데, 여기에서의 몸은 유기체의 자족성(자기 동일성)을 가지기 보다는 타자를 내부로 받아들이는 표면이 된다. 주체란 항상 그 자체 내에서 완전하다기 보다는 오히려 타자를 조건으로 하는 몸/자아로서의 주체인 것이다. 타자를 받아들이기 위해서 몸은 자신의 우연성과 불완전성을 가정해야 한다. 그것은 ‘작품의 제작과 감상에서 잘 나타나는 자아와 타자의 상호주관적 교환을 조건으로 하는 몸’(아멜리아 존스)이며, ‘불확정적이고 무형적이며 아직 조율되지 않은 잠재력의 덩어리’(엘리자베스 그로츠)로서의 몸이다. 작품에 보다 깊이 개입되는 몸은 추상회화로 정점을 이루는 모더니즘에 대한 재해석과 재평가를 낳았다.
특히 작품의 주제(특히 문학적인)와 재현을 비순수한 요소로 보고, 그림에서 이를 배제하고자 했던 그린버그의 논리가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그린버그는 주제에서 매체로의 전환을 촉구했고, 그 결과 현대회화는 순수성, 조형성, 추상성을 획득했다. 그러나 그것은 대상에 대한 무관심성을 전제하는 칸트주의가 극단화 된 것으로, 몸에 대한 억압을 동반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암암리에 서구의 백인 남성을 중심으로 하는 몸에 대한 정상성의 기준을 내포하고 있다. 그린버그의 논지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그가 ‘매체의 불투명성’을 논하는 부분이다. 이제 그 불투명해진 매체에는 몸을 포함시켜야 한다. 매체로서의 몸은 하얀 종이, 곧 투명하거나 중성적인 것이 아니다. 물질로서의 몸은 불투명하고 취약하며, 가변적이다. 특히 어릴 적 불의의 사고로 오른 손을 크게 다쳐 왼손잡이가 된 작가에게 몸은 결코 초월되는 무엇이 될 수 없는, 매순간 의식되는 실체일 수밖에 없다. 동일시해야할 정상성에 대한 기준이 와해되면, 몸의 불편함은 부정이나 배제 될 필요가 없다. 권기철의 작품에서 몸은 타자로서 호출되며 작품의 시작이자 과정이고 끝이 된다.
작품에 몸을 적극 도입하려는 후기 모더니즘의 추세는 추상표현주의에 있어서 그린버그와 경쟁관계에 있는 비평가 해럴드 로젠버그를 부각시켰다. 아멜리아 존스는 그린버그가 전략적으로 몸을 배제하려고 할 때조차 예술가들은 점점 더 공공연하게 몸을 그들 작품의 부분으로 수행했다고 본다. 이제 몸은 편재하는 현전이라는 사실이 당연시되었고. 근대적 형식주의에도 불구하고 몸은 전적으로 의미와 관계를 맺었다. 권기철의 작품에서 모더니즘의 순수주의가 배제하려 했던 또 하나의 가치는 문학이다. 구체적인 문장 전달과는 무관해서 가독력이 없지만, 기어코 찾아서 읽는 관객도 있다. 작품 안에 글씨가 있는 경우 제목으로 가는 경우가 있다. 그에게 작품은 몸이면서 텍스트이기도 하다. 몸이 바로 텍스트이며, 텍스트가 바로 몸이다. 그것은 순수한 자연의 산물이 아니라, 그자체가 이미 복잡하게 구성되어지고 또 여러 가지 다양한 의미를 띤 장소인 것이다. 피터 부룩스가 [육체와 예술]에서 말하듯이, 육체는 세계 안에서 상징을 통하여 의미를 창조하는 동기가 되면서, 동시에 그 창조 과정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환상은 육체 위에 미래의 성취, 쾌락, 권력 등의 상상적 옷을 입힌다. 기록된 텍스트로서 몸은 세계와 의미를 교환하는 장이 되는 것이다.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