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휘
Do you fill comfortable ! 장지에 아크릴릭, 200x150 cm, 2010
설휘
감성의 내외 - 섬 라이트 박스에 아크릴릭,혼합재료, 120x120x6cm , 2010
설휘
당신의 감정은 안정되었나요 ! 장지에 아크릴릭, 162x97cm, 2010
설휘
Do you fill comfortable ! 장지에 아크릴릭, 106x74cm, 2010
기억에 대한 빛의 향연 - 과정과 시간의 존재론
설휘의 작품은 벽에 납작하게 붙어 있는 평평한, 또는 평평하기를 거부하려 애쓰는 유사 입체적 평면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고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인간의 고정된 인식과 시각의 기준을 형성하는 빛을 결정적 도구 삼아, 인간의 내면과 외면의 차이, 드러내기와 감추기와 같은 흥미로운 반전 요소를 바탕으로 새로운 공간을 탄생시킨다. 언제나 예술적 배경에서, 말 그대로 빛과 같은 존재의 역할을 다해 온, 빛 그 자체가 설휘의 작품에서는 전체와 핵심을 고루 형성하는 결정적 주인공이 된다.
설휘는 과정과 존재라는 형이상학적인 도구에 따라 인간의 시각적 인식 너머에서 비로소 찾을 수 있는 물질의 본질을 탐구한다. 빛을 통해 불투명함과 탁함을 투명하고 선명하게 만들어가는 현실적 과정을 통해 현실적 존재감을 만들어 내며, 시간과 공간이 상실된 평면에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한다. 과정, 시간 그리고 기억이라는 해체 불가능한 반복적 경험의 축에 따라 하나의 현상은 하나의 온전한 유기체적 존재가 되며 실재를 형성한다.
과정 안에서 실재는 시작된다.
설휘는 겉과 속 또는 명과 암의 양면성을 중심으로, 차이와 연기, 즉 차연(差延)을 통해 이미지의 본질을 바라보길 원하며, 다양한 인식 차원을 거치며 완성되는 실재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의 작품에서 이미지는 물질이다. 그리고 물질로서 색과 빛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논의된다.
설휘의 모든 작품은 언제나 기본적으로 두 가지 모습을 지닌다. 각 작품이 빛과 어두움 중 어떤 것에 주관되느냐에 따라 완전히 새로운 모습을 나타내며 보는 이의 감탄과 놀라움을 자아낸다. 이와 같은 명은 암이 되고 겉은 속이 되는 과정 안에서 물질의 실재는 형성되기 시작한다. 그의 이미지, 즉 물질 자체는 온전한 실체로 볼 수 없다. 오히려 현상의 일부에 가깝다. 자아를 실체로 본 데카르트에서 벗어나, 베르그송처럼 감각의 연합을 통한 현상이 그 실체를 설명해 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현실 세계는 과정의 연속이며, 어느 한 순간도 고정된 결과로 남아 있지 않으며, 필연적으로 과정은 시간 안에서 현실적 존재를 생성한다.
시간 안에 기억이 남아있다.
과정의 근본적인 위치에는 시간이라는 단어가 포함된다. 설휘의 작품을 이해하는 과정에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시간 개념이 공존한다. 그 이유는 바로 기억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물질과 기억 사이의 관계를 이미지화 한다. 불을 끄고 켜는 과정, 그리고 그 과정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통해 지나간 과정에 대한 기억과 앞으로 다가올 과정에 대한 기대감이 가득해진다. 시간 안에서 일정한 과정이 지남에 따라, 더 이상 하나의 이미지는 온전한 하나의 이미지로 남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하나의 이미지에 또 다른 시간 속 이미지가 인식적 중첩을 이루면서 비로소 그 물질의 본질이 온전히 형성되어 간다. 이렇듯, 설휘는 과거와 현재, 겉과 속이 공존하는 물질을 통해 시간과 공간이 결여된 본질 안에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한다.
시각을 비롯한 인식 차원에서 수시로 변하며 그 몸체를 만들어가는 실재의 형성 과정에는 위와 같은 과정과 시간의 존재론이 존재한다. 이미지의 배후에는 시간과 이미지 사이의 관계, 즉 지속성이 존재한다. 기억 속 이미지는 환상이 아닌 실재의 일부인 것이며, 이러한 담론은 물질과 기억이라는 요소에 의해 체계적으로 정리된다.
기억은 스스로 실재를 완성한다.
설휘의 이미지 속 기억은 환상이 아니며 실재의 일부로 그 본질을 완성해 가는 주체이다. 살아있는 모든 대상은 기억을 통해 그 존재감을 유지한다. 그리고 그 기억은 시간이라는 필연적인 구성 요소에 따라 스스로 주체를 갖게 된다. 빛을 생성시키고 소멸시키는 변화하는 과정을 통해 형성되는 시간이라는 개념에 따라 비로소 기억의 존재감이 형성된다. 그리고 그 기억은 비로소 물질의 실재를 완성한다.
빛이 없어졌을 때의 이미지는 빛과 함께 생성됐던 이미지에 대한 잔재, 즉 기억으로 재구성된다. 스스로를 조직하는 기억 안에서 물질이 보존되는 것이다. 과정과 시간을 통해 기억이 유지되고, 기억을 통해 생명체의 존재감이 유지되며, 그 존재감에 따라 마침내 이를 보는 나 자신의 존재감까지도 완성된다.
설휘의 작품 속에는 물고기, 산, 바다, 집을 비롯한 여러 구체적 형상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는 기존의 고정 대상에 대한 모방이 아니다. 오히려 빛의 유무에 따른 과정, 그리고 그 과정을 지배하는 시간에 걸쳐 형성되는 본질적인 형태 또는 이미지의 추구라고 볼 수 있다. 존재하는 주체는 그림 그 자체지만, 과정과 그 과정을 구성하는 시간, 그리고 시간으로 비롯된 기억의 본질이 그 이미지의 본질, 즉 실재인 것이다. 이렇듯 설휘의 작품에서는 과정과 시간의 존재론을 바탕으로 한 기억에 대한 빛의 황홀한 향연이 펼쳐진다.
정상희(미술비평)
1969년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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