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라이즈드 Characterized - 박정민 개인전
2014.07.16 ▶ 2014.07.22
초대일시ㅣ 2014-07-16 18pm
2014.07.16 ▶ 2014.07.22
초대일시ㅣ 2014-07-16 18pm
박정민
괴산, 임꺽정 Pigment Print, 88x110cm & 32x110cm, 2011/2013, 개인소장
박정민
구례, 산수유 Pigment Print, 88x110cm & 32x110cm, 2012/2013, 개인소장
박정민
남원, 미꾸라지 Pigment Print, 110x88cm & 30x88cm, 2012/2013, 개인소장
박정민
단양, 온달과 평강 Pigment Print, 110x88cm & 30x88cm, 2012, 개인소장
박정민
사천, 토끼와 거북이 Pigment Print, 88x110cm & 32x110cm, 2012, 개인소장
박정민
속초, 해오미 Pigment Print, 110x88cm & 30x88cm, 2013, 개인소장
박정민
영양, 반딧불이 Pigment Print, 110x88cm & 30x88cm, 2013, 개인소장
박정민
인제, 수달이 Pigment Print, 88x110cm & 32x110cm, 2012/2013, 개인소장
박정민
인천, 월디 Pigment Print, 88x110cm & 32x110cm, 2013, 개인소장
박정민
제천, 박달과 금봉 Pigment Print, 88x110cm & 32x110cm, 2011/2012, 개인소장
박정민
진천, 호돌이 Pigment Print, 88x110cm & 32x110cm, 2014, 개인소장
박정민
충북, 열여섯 쌍의 고드미와 바르미 Pigment Print, 20x20cm x 16개, 2012~2013, 개인소장
박정민
충주, 복숭아 Pigment Print, 88x110cm & 32x110cm, 2012/2013, 개인소장
괴물들이 사는 나라
■ 송수정 _ 독립 전시기획자
지방이라는 말 앞에서는 괜히 목울대가 촉촉해진다. 지방은 서울을 기준으로 한 분류일 터이므로 어쩔 수 없이 중앙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비운의 느낌을 풍기는 탓이다. 그나마 서울이 비대해지기 전까지만 해도 지방은 시골이나 고향과 같은 말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곳은 저문 강물에 얼굴을 씻는 김용택의 섬진강이자 꿈에서도 차마 잊을 수 없는 정지용의 향수 어린 집이었다. 그 시절에는 가난하면 가난한 대로 지방 나름의 특색과 품위가 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지방이 지방색을 잃어버리기 시작한 게. 당연히 그 원조는 지역마다의 촌스러움을 걷어내고 매끈하게 슬래브 지붕을 얹은 새마을운동일 것이다. 더불어 새 마을에 어울리는 신작로가 뚫리고 도시와 지방의 물리적 거리가 좁아졌다. 처음에는 도시의 밥벌이를 찾아 지방을 떠나려는 젊은이들이 그 길에 섰다. 그러나 이제는 자연과 휴식을 노래하는 도시 사람들이 주말 나들이 삼아 지방을 찾는다. 주5일제는 이 화려한 휴가 열풍을 부추기고, 재정 자립에 목이 마른 지방자치단체들은 대도시의 나들이객을 유혹하기 위해 뜨거운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이제 지방은 노골적으로 말해 대도시보다 낙후된 동시에 도시화를 꿈꾸는 곳이다. 그 결과 지방 사람들은 모두 주변화된 도시인으로 살아간다. 그들은 더 이상 시골 사람이 아니면서 그렇다고 도시 사람이 되지도 못한다. 그들이 사는 곳에는 배산임수를 따라 캠핑장과 펜션, 간판 큰 식당이 즐비하다. 그런 지역 주민들의 관광 수입을 지원한다는 명분 속에서 지자체는 영화나 드라마 세트장 혹은 테마파크를 유치하느라 바쁘다.
박정민의 작업은 이렇게 변해 가는 국토 풍경과 궤적을 함께 한다. 처음에는 ‘한강 르네상스’를 통해 더 스펙터클하게 자연 경관을 치장하려는 대도시의 욕망을 기록했다. 그 시선이 자연스럽게 강이 맞닿은 도시와 지방의 경계로 옮겨 가더니 ‘인터스케이프’라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인터스케이프’ 작업에서 개발 흔적이 자연 속에 남겨 놓은 낯설고 이질적인 풍경은 ‘한강 르네상스’보다 담백하고 정제되었지만 그의 질문은 훨씬 깊어졌다. 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 그는 4대강 개발과 마주했고, 전 국토가 테마파크로 변해 가는 현장도 목격했다. 아니 가는 길마다 그의 눈에 들어오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 국토 순례길에 필연으로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지자체의 캐릭터들이다.
캐릭터 사업은 지방이 한때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힘을 쏟은 창조물이다. 지자체가 그들만의 특산물이나 전통을 전국에 널리 알려 더 이상 서울의 변방이 아님을 선언하기 위함이니 이 캐릭터가 가지는 역할은 꽤 묵직하다. 금산에서는 인삼이 안흥에서는 찐빵이 단양에서는 온달과 평강의 캐릭터가 지역을 대표하는 식이다. 캐릭터가 지역의 정체성을 반영한다고 생각하다 보니 역사나 설화에 바탕을 둔 캐릭터의 경우에는 지역끼리 서로가 원조라고 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그런데 박정민이 찍은 이들 캐릭터를 모아 보면 개성보다 닮은 구석이 더 많다. 일단 찐빵이든 인삼이든 하나같이 사람 모양을 하고 있다. 이름도 바르미나 해오미 등 88올림픽의 호돌이 이후 유행한 ‘이’ 자 돌림이 많다. 실제 인물이든 의인화된 사물이든 눈이 커다란 ‘귀요미’로 만들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가분수 꼴을 했다. 만들 때는 하나같이 헬로 키티나 피터 래빗처럼 장수하는 효자 상품을 꿈꾸었을지도 모르는 바르미, 찐빵이, 반딧불이 등의 얼굴은 그야말로 정체불명의 괴물이다.
고심 끝에 발굴한 것처럼 보이는 기발한 캐릭터도 많은데, 괴산의 ‘임꺽정고추’가 대표적이다. 경기도 양주가 고향인 임꺽정은 정작 벽초 홍명희의 고향인 괴산에서 훨씬 인기가 많다. 괴산군은 월북 작가 홍명희는 차마 띄우지 못한 채 그의 소설 <임꺽정>을 내세워 임꺽정 홍보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렇게 해서 괴산이 종묘 회사와 손잡고 개발했다는 고추에 ‘임꺽정고추’라는 이름까지 붙었다. 꺽정이가 큼지막한 고추와 함께 하는 괴산군의 캐릭터는 나름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셈법이었을지 모르겠으나 고추와 의적의 상관관계는 여전히 미지수일 뿐이다.
더 슬픈 건 캐릭터를 놓아 둔 장소와의 부조화다. 박정민은 캐릭터 자체에 주목한 사진 아래에 그 캐릭터를 놓아 둔 장소까지 함께 보여 준다. 호숫가 한가운데 혹은 바다를 배경으로 한 밭고랑 어디쯤에서 이들 캐릭터는 귀엽고 큼지막하게 뜬금없는 존재감을 발한다. 자동차로 국도를 지나가다가도 눈에 띌 만큼 몹시 큰 이들 캐릭터의 부피감은 오히려 이곳이 소외 받은 변방임을 알리는 적나라한 표식 같다.
박정민은 딥틱 형식을 통해 캐릭터와 풍경의 상관관계를 보여 주는데, 사진이라는 미디어의 속성에 대한 작가의 고민과도 연결된다. 일단 그의 캐릭터 사진은 대상 자체의 물성과 시각 정보를 강조한 유형학적 사진처럼 보이기도 하고, 관공서가 홍보 전단지에서 보여 주고 싶은 교과서의 사진처럼 보이기도 한다. 혹은 지자체의 홍보 이미지에 대한 의도적 패러디로 보이기도 한다.
반면, 한 쌍의 사진 중 아래에 놓인 사진은 메시지가 훨씬 명료하다. 캐릭터가 놓여 있는 그로테스크한 풍경들은 촬영 시간대나 대상과의 거리를 치밀하게 계산함으로써 대상이 중립적으로 보이게 하려는 작가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충분히 냉소적이고 주관적으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더불어 풍경은 대상과 공간, 자연과 개발, 사람과 장소 등 관계의 산물임을 천명하는 그의 문제 의식에 다시 한번 가 닿는다. 작가는 성격이 서로 다른 사진 두 장을 한 쌍으로 보여 줌으로써, 이 둘이 일으키는 화학적 의미 작용 내지는 형식의 충돌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진다. <캐릭터라이즈드>는 도시화와 개발을 빗겨 갈 수 없는 환경에 대해, 더 정확하게는 사진으로 그런 환경을 보여 준다는 것에 대해 집요하게 고민해 온 작가의 중간 보고서다. 그가 붙인 제목처럼 이제 풍경조차도 자신의 존재감을 찾지 못한 채 만들어지고 특징지어진 수동의 부산물일 뿐이다. 특히 지방에서는.
작업노트
어느새 경치가 달라졌다. 그것은 주5일제, 지방자치제, 균형발전과 같은 명령어들로 내려앉아 대도시를 제외한 온 나라를 테마파크의 채도로 물들여갔다.
그 전까지 도시인에게 시골은 전원일기와 재래시장을 통해 간접적이되 구체적으로 존재해왔으며 상대편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제 둘 사이의 관계는 시장 좌판에서 정보화마을 홈페이지로, 브라운관 속의 불야성에서 민자도로의 헤드라이트 행렬로, 요컨대 더 직접적이되 오히려 피상적인 뭔가로 대체되었다. 그 결과 우리는 안 내려고 애쓰느라 갓 상경한 티가 더 나는 ‘촌놈’같아진 시골 풍경과 아웃도어 용품으로 돌돌 말고 원정 온 듯 휘젓고 다니는 ‘도시것’스러운 생태공원 사이를 오가게 되었다, 내지는 오도 가도 못하게 되었다.
이번 차례는 시골의 역습이다. 그리고 새로운 세기를 맞아 한껏 고무된 중앙정부가 이를 위해 내어준 책략이 하나 있으니 이름하여 캐릭터 산업 육성책이라 한다. 시군별로 빠짐없이 우직하기도 한 지자체들은 쥐어짜서라도 무엇인가 특화(characterize)해내기를 마다지 않았고, 유달리 충직한 그 일군은 삼면입체로 만들어 세우기까지 했다.
이런 연유로 도심의 판타스마고리아에서 밀려난 듯한 형상들이 전국 각지에서 신판 천하대장군을 자처하기에 이르렀으니, 구관의 역할이 들이지 말 것을 가려내는 데 있었다면 이들은 가리지 말고 들일 것을 오늘날의 미덕으로 삼고 있다. 하나같이 엄지를 치켜세우거나 두 팔을 벌린 동작들은 교육이라도 받고 온 모양새다.
결국 뭔가 특화되긴 했다. 그러나 고장마다의 역사며 특산물 따위 애초 의도했던 소소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도농간 욕망의 접합지점으로서, 오직 더 많은 물질적 풍요라는 한국적 꼭지점을 손 모아 가리킴으로써 이들은 아무런 특징 없는 특화라는 한국적 특색의 특성화에 성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따라서 저 알록달록한 피조물들이 우리 자신의 미메시스 자격으로 서있는 것임을 알아채어가는 곤혹의 관찰기요 자괴의 불망기다. 그리고 이 과정 내내 둘로 나뉘어 티격태격하는 시선의 이중성을 굳이 복개하려 들지 않았다―보여지고자 꾸민 캐릭터 조형물 자체에 대한 꾸며지고자 의도한 모습대로의 관찰이 하나, 그리고 도무지 꾸며질 가망 없이 주변을 나뒹구는 그들의 고향, 이 안쓰러운 거처에 대한 성찰이 다른 하나.
나뉘어진 시선은 이미지화된 욕망이라는 우리의 주인공과 등장배경 사이의 간극을 펼쳐보임과 동시에 포장하기와 파헤치기, 우러르기와 거리 두기, 미화의 유구한 풍습과 그의 집요한 도전자를 대질시킴으로써 사진이라는 미디엄이 구현해온 두 갈래 길 사이의 먼 차별성과 질긴 연관성을 상기하고자 함이다. 보여주고 싶은 것과 보고자 하는 것, 보이기 싫은 것과 볼 마음 없는 것들의 숨바꼭질 흙먼지; 뒤로 우리가 알던 시골은 간데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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