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
Metaphor photo,stone modeling,epoxy, 126.5x104cm, 2007
김영란
Metaphor photo,stone modeling, 145x77cm, 2007
김영란
Metaphor photo,stone modeling,epoxy, 127x57cm, 2007
김영란
Metaphor photo,mixed media,epoxy, 146x77cm, 2007
사진 혹은 회화에 투영된 욕망의 시선과 권력
작가 김영란의 작업은 그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 몇 가지 중요한 회화적 변혁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하게 된다. 첫 번째 형식적인 면에서는 그가 사진과 회화의 경계를 허물어내고 사진적 회화 혹은 회화적 사진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 내용 면에서는 그가 다루는 벗은 몸의 이미지를 보는 시선에 있어서 욕망과 권력의 경계에서의 뒤집기를 시도하고 그러한 시선을 발견하는 구조를 보여주는 것을 통해 새로운 소통체계를 만들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예술의 발전은 매체와 기술의 발달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는 것을 예술의 역사에서 발견된다. 그 중에서도 사진은 예술이라는 긴 역사에 비하면 200년도 안 되는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매체이다. 이렇게 짧은 역사를 가졌음에도 사진은 예술의 지각방식까지 변화를 주게 되었고, 기술복제시대라는 예술에 있어서 혁명적인 변화의 계기를 가져다 주었다. 사실 사진의 원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기록에서 언급될 정도로 오래되었다. 예술가들은 이 원리를 이용하여 ‘카메라 옵스큐라’ 라는 장치를 르네상스시대에 이미 개발하였으며 17~8세기 정교한 정물화가 발전한 것은 이 장치가 소형화 되면서 된 것을 나타난 현상인 것을 보면 사진은 회화의 역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발명이었음을 알게 된다. 현대에 와서는 이 사진과 회화는 서로 영향을 주기도 하고 심지어 이종 교배적인 혼합 장르의 작품들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한 작업을 하는 작가 중의 한 명이 작가 김영란이다.
작가 김영란은 이 사진을 매개로 하여 작업을 한다. 그러나 사진만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사진 위에 거친 제스쳐가 드러나는 드로잉적 선묘가 보이기도 하고 오래된 회화작품이 부식된 듯이 칠해진 페인팅의 흔적이 발견되기도 한다. 그리고 사진적 사실주의 회화기법이 들어가거나 인상주의적인 점묘기법의 물감이 얹혀지기도 한다. 그런데 작업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의 작업과정을 보면 작품 완성 후에 액자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작업과정에 이미 액자 작업을 하고 여기에 작품과 연결하여 그 위에 표면작업을 다시 하는 방식으로 적절한 광택과 깊이를 얻어내는 작업까지를 하고 나서야 완성작품을 얻게 된다. 마치 최근의 사진에서 디아섹(Diasec)이라는 보존처리 기법을 통해 완성된 작품을 보관하듯 그의 작업은 이에 비견되는 과정을 직접 손으로 하여 작품의 표면처리 작업과 보존작업까지를 자신의 작업 영역 안으로 끌어 들인 듯 하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액자와 표면처리 용제가 그리고 다른 측면에서는 사진작업과 회화작업이 하나로 밀착되어 붙어있다. 이러한 작업을 직접 해내는 이유는 독특한 화면 분위기가 감지되는 작업 결과물들이 말해주고 있다.
그의 작업은 일반적 사진이나 회화작품에서 보기 힘든 깊은 시각적 깊이가 느껴진다. 그의 작업 내용이나 모티브에서 오는 느낌도 있지만 오래된 사진이나 유화작품에서 느껴지는 그러한 시간성이 담겨진 듯한 미묘한 광택에서 오는 느낌도 하나의 이유인 것 같다. 요즈음 사진 작업에서 흔히 사용되는 디아섹(Diasec)이 투명도가 높은 재료임에도 아크릴 접합이라는 재료적인 느낌에서 오는 인공적이고 인스턴트적인 가벼움이 느껴지는 것과는 다르게 그의 작업에서 보여주고 있는 분위기는 빛의 투과가 적절히 제한되면서도 맑은 느낌을 주는 표면작업으로 인해 그의 작업이 오랜 기간 숙성된 생각이 담긴, 오랫동안 작업한 결과물인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결국 그의 작업은 사진적 이미지들이 전면적으로 보여짐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분위기는 사진보다는 오일페인팅과 같은 회화와 닮아있다. 물론 그의 작업이 아크릴릭과 같은 회화작업을 같이 병행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작업과정에서 이미지를 사진적 작업으로 끌어들이면서도 회화와 사진을 서로 교차시키고 그 위에 회화적 제스쳐를 추가하는 동시에 마치 오일페인팅 작업의 마무리 과정에서 바니쉬를 칠하여 마무리하듯 표면작업까지를 손으로 직접 완성해 내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오래된 회화작품의 원본을 감상할 때 느껴지는 아우라의 잔영이 느껴진다. 사진과 같은 기술복제시대 이후 이러한 아우라에 대한 의미는 붕괴되고 현대인의 지각방식도 바뀌게 되었다. 그러나 작가 김영란은 현대의 변화된 지각방식과 일회적 원본성이 갖는 아우라 사이의 간극 속에서 현대인의 소통에 적합한 예술적 표현방식을 탐험하고 있다. 기존의 회화가 줄 수 없었던 사진의 강력한 소통력과 표현방식을 취하면서도 동시에 회화만이 가지는 일회적 원본성과 원본이 역사라는 시간 속에서 축적될 수 밖에 없는 회화재료에 남겨진 물리적 궤적을 담아내고자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원본과 복제 그리고 실제와 가상의 경계지점에서 현대회화 혹은 현대사진의 가능성을 실험하면서 이 예술매체의 방법적 실험 속에서 이 시대의 욕망과 권력에 대한 자신의 담론을 적절하게 녹여내고 있는 것 같다.
그가 이러한 표현매체에 대한 실험적 시도를 해나가는 것은 가장 적절한 소통매체를 찾기 위함이며 후기 현대사회의 이종 교배적 시대상황을 드러내기 가장 적합한 표현방식을 찾기 위함이다.
그는 이 시대의 편향된 결정적 구조들, 특별히 젠더(gender)와 같은 문제들이 욕망과 권력의 문제에서 파생된 사회적 선입견들일 수 있다는 생각에서 사람의 육체를 가려왔던 옷이 벗겨진 상태에서 몸을 보는 방식 혹은 보게 하는 방식을 제시함으로써 욕망의 주체와 타자 사이의 경계에서의 미묘한 느낌들을 권력과 힘의 문제로 환원시켜 시각적 긴장감 속에서 변형시켜 표현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이러한 내용을 강화시키는 시각적 장치로 그의 작품에서는 몸에 걸친 액세서리나 침구, 그 밖에 인테리어 소품이나 꽃과 같은 것들을 등장시키고 있으며, 은은한 광택이 있는 화면속에, 검은 배경 가운데 보여지는 마스터피스에서 느껴질 듯한 오래된 느낌의 장중한 화면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결국 작가 김영란은 회화영역으로 사진을 끌고 들어와 현대인의 지각방식을 바꾸고 아우라를 상실시킨 바로 그 지점에서 회화가 가지는 원본성의 권력을 그 위에 올려 놓은 다음 사진이라는 해체적이고 확산적인 매체와의 혼성, 혼합이라는 방식으로 뒤집기를 시도하여 기존의 결정적 구조나 관념들을 전복하려는 새로운 회화양식 만들기를 시도하고 있으며, 여기에 자신이 여성으로서 경험하였던 사회적 문제들과 이에 파생된 감정의 뒤엉킴과 같은 여러 가지 복잡한 내용들을 벗은 몸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를 타자화 시키고 그곳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욕망과 권력을 자각하고 발견하게 만드는 구조 자체를 보여주는 작업을 통해 자신의 담론이 담기기에 효과적이고, 동시에 현대인들과 대화하기에 적합한 독특한 소통의 체계를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예술작품을 통한 진지한 대화를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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