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규백
Origine de l'Histoire 에칭, 39x33cm, 1968
황규백
Évolution 연납, 동판에 새김, 52x41.5cm, 1968
황규백
Origine de l'Histoire-II 에칭, 47.5x39cm, 1969
황규백
White Handkerchief on the Grass 메조틴트, 33.27cm, 1973
황규백
Wood, Paper, and Stone 메조틴트, 30x34cm, 1979
황규백
Roof 메조틴트, 27.5x33.5cm, 1990
황규백
Hat in the Sky 캔버스에 유화, 122x102cm, 2014
<황규백 -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전은 한국 현대미술사를 다층적으로 조망하기 위해 기획된 한국현대미술작가 시리즈 판화부문의 첫 번째 전시이다. 1932년 부산에서 출생한 황규백은 1968년 도불 하였고, 1970년 현대미술의 중심부인 뉴욕에 정착한 이후 동판화 중에서도 특히 메조틴트(mezzotint)를 자신만의 독자적인 기법으로 마스터하였다. 그는 서정적이며 정제된 판화작품들을 통해 전통적인 매체인 메조틴트를 현대적으로 승화시킴으로써 독특한 조형세계를 구축하였다.
일찍이 해외에서 판화가로서 독보적인 위치를 확보한 황규백은 루브리아나 판화 비엔날레(1979, 1981), 브래드포드 판화 비엔날레(1974), 피렌체 판화 비엔날레(1974)등의 국제 판화제에서 수상하였고, 그의 작품들은 뉴욕현대미술관, 파리현대미술관, 대영박물관, 빅토리아&알버트 박물관, 알베르티나 박물관 등지에 소장되었다. 특히 그는 1984년 사라예보 동계올림픽 포스터를 위한 작품을 제작함으로써 국제적인 작가로서의 입지를 더욱 견고히 하였다. 이번 전시는 황규백이 국내 미술관에서 갖는 최초의 개인전이며, 작가의 60년에 걸친 작업여정의 정수를 조망할 수 있는 회고전이다.
이 전시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부분은 황규백이 1968년 도불 후 파리에서 제작한 초기 판화작품과 판화 제작과정을 구현한 공간이다. 두 번째 부분은 작가가 뉴욕에 정착하여 1970년대에서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집중적으로 제작한 메조틴트 작품들이다. 마지막 부분은 2000년 한국으로 영구 귀국 후 최근까지 지속적으로 작업하고 있는 회화작품들로 구성된다.
황규백의 작품에는 최소의 단어와 운율로 쓰여지는 한 편의 시(詩)처럼 일상의 사물들과 풍경이 화면 안에 은유적으로 병치되고, 새롭게 재구성된다. 메조틴트 기법이 지닌 특유의 부드럽고 섬세한 디테일이 집약된 작품 속에 시적인 함의와 내밀한 환상의 세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삶의 주변부에 존재하는 소소한 생물과 무생물의 은밀한 대화, 혹은 무심코 놓아 두었던 기억과 현재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1. 이주(移住)와 조우(遭遇)
황규백은 1954년부터 1967년까지 신조형과 신상회 그룹의 일원으로 활동하였으며, 조선일보사가 주최하는 한국현대작가초대전 등에 출품하며 작품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서양미술에 대한 갈증과 전후 황폐했던 한국에서의 상황을 벗어나 보다 자유로운 창작활동이 가능한 무대를 찾아 1968년 프랑스로 떠났다. 파리에 정착 직후 황규백은 20세기 가장 중요한 판화제작소 중의 하나인 S.W. 헤이터의 아틀리에17에서 수학하면서 숙명처럼 판화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황규백은 이 시기 파리에서의 삶을 통해 예술가로서 살아가는 태도를 배우고,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들과 인적 교류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고 말한다.
1960년대 초반 프랑스에서 판화는 주류미술의 하나로 이에 대한 제작과 전시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황규백이 당시 제작했던 작품들은 한국에서의 회화작업과 연장선상에 있는 추상화 경향의 연작들이다. 그는 에칭과 콜라그래프 등 음각판화(Intaglio)전반에 걸친 다양한 기법을 통해 정형화되지 않은 재료들을 실험하고 판 위에서 이루어지는 우연의 효과와 물성의 표현을 극대화하는 작업들을 제작하였다. 이때 제작된 판화들이
2. 음각판화(Intaglio)의 실험자, 그리고 시인
파리에서 판화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통해 황규백의 작품들이 다양한 전시에서 소개되고, 미술시장에서 호응을 얻기 시작할 즈음인 1970년, 그는 뉴욕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삶에 있어 또 다른 전환점을 맞았다. 새로운 환경 속에서 새 작업에 대한 탐구와 고민의 시기를 거쳤던 황규백은 17세기 유럽에서 시작된 전통 판화의 일종이며, 가장 다루기 힘든 판종의 하나인 메조틴트 기법을 독학으로 습득하였다. 이 무렵 황규백은 뉴욕 근교의 베어 마운틴의 잔디밭을 즐겨 찾아가곤 하였는데, 그곳에서 그는 작품 구상에 대한 몰입의 시간을 보냈다. 그때 우연히 그의 뇌리에 하늘, 잔디 그리고 손수건이라는 강렬한 이미지들을 포착하게 되었고, 그렇게 저장해 두었던 기억 속의 소재들은 판화작품인
황규백의 판화가 특별하고, 주목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전통적인 메조틴트 작품이 화면 전체의 배경색이 검정색인 것에 반하여 황규백은 그것을 깃털과도 같이 밝고 부드러운, 독특한 회색 톤으로 만들어 냄으로써 화면 안에서 보여지는 여백을 시각언어로 전이 시킨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그의 작품이 명료하고 단순하게 보여지는 이미지와는 대조적으로 극도의 정밀함과 간단치 않은 작업과정을 요하는 장인정신으로 완성된다는 것이다. 미국의 브룩클린 미술관 큐레이터 조 밀러(Jo Miller)는 황규백을 “음각판화의 위대한 실험자”라고 평하였으며, “시적인 구도 안에서 인생을 관조한다.”고 언급하였다. 판화가로서 작업의 깊이와 확장을 거듭하였던 황규백은 총 230여점에 달하는 작품들을 이 시기에 제작하였다.
3. 종이에서 캔버스로
2000년에 이르러 황규백은 30년이 넘는 타국에서의 활동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영구 귀국하였다. 육체적인 한계로 인하여 판화작업이 더 이상 허락되지 않았던 작가는 다시 돌아온 그의 터전에서 새로운 작업을 모색하게 되었다. 그의 나이 70세가 넘어 다시 붓을 든 황규백은 기존의 판화작품에서 다루었던 소재들을 회화작업으로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에 대한 탐구와 시도를 거듭했다. 이에 평소 그가 많은 예술적인 영감을 받았고, 동경하던 이탈리아로의 여행을 떠남으로써 회화에 대한 연구와 창작의욕을 고취시켰다.
황규백이 지난 10여년 동안 지속적으로 작업해 온 근작들은 감성적인 직관과 내면적 통찰이 균형을 이루는 작가 자신의 모습과 흡사하다. 뉴욕 소호 작업실에서 차가운 동판 위에 ‘눈으로 보는 한 편의 시’를 새겨 놓았던 그의 정묘함은 무뎌졌으나, 그의 회화작품들은 사그러들지 않는 창작의욕에서 우러나오는 완숙한 붓질로 완성된다. 인간의 존재의식에 대한 관조와 삶의 근원적인 물음에 대한 사유를 바탕으로 하는 황규백의 작품들은 우리에게 잃어가는 서정성의 회복을 이끌어 내고, 내면의 낮고 깊은 대화에 귀 기울이게 한다.
1932년 부산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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