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tu & ex-situ
2010.03.30 ▶ 2010.04.17
초대일시ㅣ 2010-03-30 17pm
2010.03.30 ▶ 2010.04.17
초대일시ㅣ 2010-03-30 17pm
안종연
만화경 Projection, 2010
조용준
Balloon work-red 플라스틱, 아크릴릭, 10x10x10cm, 2010
한송준
Mind Colored on steel, 40x40x60cm, 2009
장소 안의 미술과 장소 밖의 미술
근대 이후 예술의 문제에 있어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예술 생산의 독립성, 또는 예술가 주체의 자율성이다. 그것이야 말로 예술을 예술로 성립시키는 근간이다. 20세기 후반 이후에 등장한 공공미술이 공공성 개념을 강조하면 할수록 자율성의 문제가 더욱 중요한 화두로 떠오른다. 이유는 간단하다. 공공 장소에서 공적 기금으로 공공의 의제를 다루는 미술로서의 공공미술이 전근대적인 주문 생산과는 다른 방식의 예술 생산으로 성립하기 위해서 필수불가결한 것이 예술의 자율성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예술가 주체의 자율성을 지키면서도 공공성을 지지하는 예술 생산으로 성립할 수 있을까? 장소의 문제는 이러한 질문에 중요한 해답을 제공한다. 공공미술에 있어 재원과 의제의 문제와 더불어 가장 핵심적인 사안이 장소의 문제이다.
시간과 공간을 불문하고 고정불변의 절대적 영원성을 발산하는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예술적 가치에 대해서 장소라는 개념은 매우 근본적인 차원에서 시각예술의 논리에 질문을 던진다. 특히 장소특정성(site-specific)이라는 이슈가 예술 생산의 목표와 절차, 방법 등을 변화시키기 시작한 이래 장소의 문제는 공공미술의 근본적인 주제로 부각하고 있다. 특히 공공장소에 설치할 목적으로 제작하는 공공미술 작품은 일반적인 ‘작업실-전시장’ 작업과는 다른 특수한 국면에 놓인다. 장소는 안팎으로 작품의 내용과 형식을 결정한다. 장소 안의 미술과 장소 밖의 미술(in-situ art & ex-situ art)은 공공미술의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비되는 논쟁점을 생성한다. 전자는 장소의 규정 속에 놓이고, 후자는 장소로부터 이탈한 독자적인 논리를 획득하기 때문이다.
공공미술은 공공장소에서의 장소특수성과 조응하는 미술개념이다. 공공장소는 다양한 주체들의 이해와 요구가 집결하는 공간이자 서로 다른 감성과 정서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따라서 공공장소는 특정한 미학적 가치가 지배하는 공간이라기보다는 그 장소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차이를 인정하는 공존의 미학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그런 점에서 공공미술은 배제의 미학이 아니라 공존의 미학을 추구한다. 그런데 공공장소에서의 예술적 소통을 매개하는 공공미술은 전근대와 근대, 그리고 탈근대 시대의 패러다임 변화에 따라 매우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전근대 시대의 공공장소는 특정한 지배자가 독점하는 공간이었지만 근대 시대의 공공장소는 시민 다수가 공유하는 공간으로 변화하였다. 따라서 전근대 시대의 공공미술은 권력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것이었지만, 근대시대의 공공미술은 예술 자체의 미학적 논리에 충실한 자율적 영역의 그것이었다.
모더니즘 미학의 지배적인 논리는 배제이다. 새로움의 이데올로기는 형식적 아방가르드를 양산했다. 그것은 독창적이며 독창적이어야 했다. 따라서 그것은 공존이나 상생의 미학이 아니라 타자와의 차별성만을 강조하는 배제의 미학이었다. 예술가의 독보적인 조형언어를 통해서 그들이 결과론적으로 배제한 것은 다른 예술가의 진부한 언어가 아니라 예술 수용자들이었다. 모더니즘 미학을 일방적으로 관철시켜온 20세기 공공미술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천재적인 가치를 가진 예술가의 언어가 공공장소를 지배하는 독보적인 언어를 구사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전근대 시기의 종교나 정치를 대신하는 광장의 지배자로 등극했다. 전근대 시대의 공공장소의 작품들은 지배자의 언어였다면 근대 시기의 공공미술은 예술가의 언어에 대한 존중으로 가득 차 있는 예술적 소통의 공간이었다.
여기 모인 네 예술가들은 모더니즘 미학의 긴 그림자 끝자락에 서있다. 그들은 각자 나름의 시각언어를 구축하는 데 매진 해온 중진과 신진 작가들이다. 만약 이들의 조형언어가 공공장소와 만난다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까? 박정선은 선재의 부드러운 곡선을 이용해서 공간을 확장하는 설치작업을 선보인다. 그는 판재의 팽창하는 기운을 담고 있는 곡선을 통해서 공간을 유영하는 선과 면과 색의 요소로서 공간의 시각적 흐름을 재구성하고자 한다. 유리캐스팅 오브제에 빛을 투사하고 그 그림자를 포착한 이미지들을 다시 가공하여 동영상으로 재구성한 안종연의 애니메이션은 우주를 집약한 만다라의 판타지로 공공장소의 맥락을 재구성하고자 한다. 조용준은 여러 개의 원들을 다양하게 겹친 드로잉들로부터 입체를 얻어내고 그 입체의 색채를 다양화 한 조용준의 작업은 절재된 언어를 구사하면서도 해석의 여지를 넓히고 있다. 육면체의 입방체를 평명화한 한송준의 기하학적 패널은 면과 면 사이로 드러나는 여백에 마음의 문제를 담고 있다.
이 전시는 그 절차와 방식, 그리고 근본적으로 예술가의 고유한 조형언어와 장소의 만남에 관한 질문이다. 전시의 준비와 진행 과정에서 드러난 네 예술가들의 차별성과 유사성, 개별과 군집, 독보와 협업 등 다양한 가치와 개념들은 예술(가)의 자율성과 공공성에 관한 새로운 체험을 주었다. 이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협업이다. 탈근대시대의 공공미술은 공존과 상생을 최대의 미덕으로 삼는다. 예술가의 지위와 역할을 작품이라는 물질형식의 생산자로서 뿐만 아니라 공공영역의 예술적 커뮤니케이션을 조직하는 매개자로 전환하고 있다. 매개자로서의 예술가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협업이다. 예술가들 사이의 협업뿐만이 아니라 예술가와 타 분야의 전문가들, 그리고 수용자 또는 사용자들과의 관계를 일방적인 메시지 전달과 수용의 관계가 아닌 상호작용의 관계성으로 재구성하는 것이 바로 협업의 힘이다. 그것은 생산을 위한 과정일 뿐만 아니라 예술적 가치의 사용을 창조적인 문화소비로 잇는 확대재생산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김준기(미술평론가)
1979년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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