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중 개인전 <Nature, Dream, Eternity>
2016.01.29 ▶ 2016.07.10
2016.01.29 ▶ 2016.07.10
김세중
영원을 꿈꾸다 Dream the Eternity 캔버스에 유채, 80.7x116cm, 2014-5
김세중
영원을 꿈꾸다 Dream the Eternity 캔버스에 유채, 22x30.3cm, 2015
김세중
영원을 꿈꾸다 Dream the Eternity 캔버스에 유채, 43.1x51cm, 2015-6
김세중
영원을 꿈꾸다 Dream the Eternity 캔버스에 유채, 50.3x72.9cm, 2014
김세중
영원을 꿈꾸다 Dream the Eternity 캔버스에 유채, 27.6x45.4cm, 2015
어디에도 없는 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김세중의 작품에서 하늘과 바다로 확장된 배경에 눈에 띠는 형상은 서양 고대 조각상들이다. 교과서나 미술사 서적을 통해 익히 알고 있는 조상들이 바다 위를 부유하고 하늘을 날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인터넷을 떠도는 수많은 이미지들을 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반드시 자신이 직접 촬영한 사진을 기초로 작업한다. 조각상들이 있는 지역을 여행하면서, 이미지 상으로는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본인이 직접 보고 교감할 수 있는 특별한 각도나 상황을 사진에 담는다. 사진에 담기 전 조각상을 직접 만져보는 가운데 느낄 수 있는 촉감이 영감이 되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 해안가 돌맹이들에서 느낄 수 있었던 매끈하고 몽글몽글한 감촉에서 비롯된 돌의 물성에 대한 관심은 여기서도 지속된다.
만진다는 직접적인 신체적 행위를 통해 느낄 수 있는 촉감의 감각적 수용을 통해 시각에 특권을 부여한 스펙타클에서 다시 한번 벗어난다. 다분히 시각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회화 평면에 촉각적 요소를 끌어들이는 것은 김세중 작품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자그만 화면에 담긴 것이 무엇인지, 왜 이렇게 그렸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몸을 움직여 작품에 다가가게 만들고, 비록 화면을 직접 만질 수는 없지만 작가가 조각상들을 만지면 느꼈을 감각을 비록 눈을 통해서라도 따라가 보면서 만지게 되는 것이다. 다가가는 행위를 통해 작가에게도 보는 이에게도 작품은 대상화에서 벗어난다. 나의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시대와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화면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소외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렇게 직접 체험하기를 초대하는 그의 화면 속 공간과 시간은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의 것과 완전히 다른 양상이다. 고대 서양 어느 먼 나라에서 제작된 작품은 우리에게 영원성을 시사하는 점이 있다. 소재가 주는 견고함과 끊임없이 회자되고 현대 문화 속에서 되풀이되는 등장으로 인해 결코 소멸할 것 같지 않다. 끝없이 펼쳐진 하늘과 바다 또한 그러하다. 그러나 작가는 이러한 영원성을 사진을 통해 찰나의 순간으로 포착하고 캔버스 화면 위에 재구성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여기서 시간은 조각상이 제작되었던 먼 과거, 사진을 촬영한 시점, 그것이 화면에 재구성된 시간, 완성된 화면을 바라보는 지금의 시간, 이 모든 것들을 초월하는 시간 등이 중첩되어 있다. 과거는 현재로 회귀하고 현재는 과거를 참조하며 미래는 영원의 이름으로 지속된다.
공간 또한 이러한 중첩을 심화시킨다. 화면에 펼쳐진 하늘과 바다 또한 작가가 촬영한 사진에 기초한 것으로 그것을 배경으로 하는 조각상들이 놓여 있는 현실의 공간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 그가 살고 있는 서울 하늘, 대한민국 서해 바다 위 또는 전혀 관계없는 공간 위를 조각상이 떠다니고 날아다닌다. 이런 비현실적인 시공간을 제시하는 이유로 그의 작품에 종종 cm_초현실cm_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곤 한다. 그러나 그가 화면을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장소는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Utopia)로 보인다. 변화하는 공간, 직선으로 흘러가버리는 시간, 그 속에서 세상 모든 것의 마모와 소멸, 이 모두가 발생하지 않는 cm_영원cm_이 지속되는 유토피아 말이다. 영원이라는 개념은 시간이 인간에 의해 사회적으로 점유되지 않은 개념이다. 시간표(time table)위에 짜여진 대로 생산, 노동, 휴식 등이 구분되고, 이것의 되풀이되는 순환과는 거리가 멀다. 일종의 유크로니아(Uchronia) 시간성이다. 그러나 말 그대로 유토피아, 유크로니아는 현실 세계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 장소이고 시간성이다. 그런 이유로 유토피아는 황당하거나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는 백일몽과 같은 것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그러나 김세중의 이런 백일몽에서 멈추지 않는다.
유토피아적 장소가 김세중에 의해 화폭 위에 구현될 때 화면은 일종의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 즉 현실화된 유토피아로서의 장소가 된다. 헤테로(Hetero)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헤테로토피아는 cm_다른 장소cm_로서 서로 양립 불가능한, 양립 불가능할 수 밖에 없는 여러 공간이 한 장소에 겹쳐져, 복수의 배치를 하나의 장소에 나란히 구현하는 것이다. 우리가 cm_정상cm_이라고 생각하는 공간과 시간의 배치를 거스르는 장소인 것이다. 인간이 역사를 통해 인공적으로 구획해 놓은 국가별 영토, 영해, 영공을 표시한 지도 속 어느 곳도 아니고, 인간이 부여한 단선적 질서 속에 묶여 있는 시간도 흐르지 않는 전혀 cm_다른 곳cm_. cm_헤테로토피아cm_ 말이다. 이렇게 헤테로토피아에서는 당연히 전통적 시간과 단절된 헤테로크로니아(Heterochronia)가 지배한다. 이 역시 현실에서는 찾을 수 없는 시간성, 즉 유크로니아(Uchronia)가 현실화된 시간성이다. 낯선 것들, 낯선 장소들, 낯선 시간들이 한 곳에 모여 서로 관계하는 헤테로크로니아가 흐르는 헤테로토피아로서의 김세중의 화면은 현실과는 전혀 다른 반(反)공간이다. 이 반공간은 때로는 열려있다가는 닫히고 닫혔다가는 열리는 것으로 작가의 초대에 흔쾌히 응한 자들은 들어갈 수 있지만, 머뭇거리며 거리를 유지하는 사람들에게는 열리지 않는다. ■ 김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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