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진: Cambodia _ 흙,물,바람
2010.04.02 ▶ 2010.04.15
2010.04.02 ▶ 2010.04.15
임종진
열두 살 린은 친구들과 집주변을 맴돌고 마을을 휘돌던 바람은 소녀를 감싸 안았다. 디지털 아카이벌 프린트, 80x120cm, 2009
임종진
어제 한 채가 사라지면 오늘 두 채가 사라지고 그 안에 머물던 사람 디지털 아카이벌 프린트, 80x120cm, 2009
임종진
3백50일을 함께 한 이들은 오늘 마지막 하루를 몸으로 털어낸다 디지털 아카이벌 프린트, 60x80cm, 2008
임종진
스스로 숨을 거둔 외아들이 그립다는 프농족 톨 할아버지 디지털 아카이벌 프린트, 40x60cm, 2009
Curator's Note (최연하_독립큐레이터, 사진학)
선한 검지, 심심(深心)한 사진
좋은 사진이란 무엇일까. 캄보디아를 담아온 임종진의 사진들을 방바닥에 좍 펼치며 생각했다. 사진들 주위를 어슬렁거리다, 한 장 한 장 오래 들여다보고, 쓰다듬으며 본다. 인화된 사진을 만지는 일은 예에 벗어난 일이지만 나는 사진을 보면서 손으로 만지길 좋아한다. 그렇게 보다(만지다)보면 사진 속에 있는 사람의 온기가, 메마른 땅과 거친 바람소리가 들린다. 다시 맘껏 만져본다. 그랬더니 이번엔 캄보디아 아이들의 웃음이 생글거리며 피어나고 그렇게 웃게 한 임종진이 아이들 앞에서 씩 웃는 모습이 보인다. ‘선이골 아이들’, ‘북녘 사람들’에 이어 오랜 기간 캄보디아를 들락거리며 촬영해 온 임종진의 사진들에서 작가는 쉽게 노출된다. 사진보는 일은 작가가 일군 세계와의 만남이자 교감이다. 작가가 많이 보일수록 교감은 더해진다. 그의 사진 속에서 사람과 흙, 물, 바람은 홀딱 발가벗은 결합처럼 꾸밈없고 필연적이다. 물론 작가도 줄곧 그 안에 서 있다.
2004년부터 JSC(Jesuit Service Cambodia)라는 NGO단체와의 인연으로 캄보디아를 다녔던 그가 지난 일 년 동안은 아예 눌러앉아 장애인 학교 학생들의 친구로, 가난한 마을에 사진으로 자원 활동을 했다. 그렇게 만난 사람들의 사연과 곡절은 차고 넘쳐 사진을 선정해야하는 나의 역할이 무색하였다. 그에게 사진은 ‘찍는’것이 아닌 ‘하는’것이다. 단지 손끝 재주가 아닌 선한 검지로 보고 들은 것들을 찍고 쓴다. 그래서 비루하고 궁하게 보이는 삶의 자리 혹은 ‘빛’이라는 밝음 속에 내장되어 있는 그림자와 어둠, 숨은 그늘들을 견결하게 담아낼 수 있는 것일까. 사진의 힘은 곧 선한 검지를 가진 사진가의 자세에서 발원하는지도 모른다. 쓸데없이 어렵고 말 많은 사진이 아닌 삶을 끌어안고 있는 이 사진들의 뜻이 새삼스러운 이유다. 어떤 사진은 따뜻한 안목이 섬뜩하게 빛난다. 예전보다 안정된 시각과 섬세한 감각은 아름답고 애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아리게 날것으로 드러내기까지 한다. 심심(深心)을 다한, 이 심하게 심심한 사진들은 느릿느릿 기어가도 제 본분을 다하는 결국 임종진의 삶 그 자체다.
임종진 작가노트
“봉쁘로 찐! 썩써바이?”
낯을 나눈 어느 누구나 내게 건네던 이 인사말이 오늘 다시 그립습니다.
오래 전부터 이어진 인연으로 짧은 걸음들만 내딛다가 냉큼 맘 한번 먹고 나섰던 캄보디아라는 길 위. 2년 전 가을 어느 하루에 떠나 머물다가 돌아온 지 몇 달째를 맞이한 지금도 그곳에서의 기억들이 선명하기만 합니다. 머묾으로 인해 얻는 기쁨이 무엇인지를 조금은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크메르어로 ‘봉쁘로’는 상대방을 편안하게 부르는 존칭어입니다. 굳이 옮기자면 형 또는 삼촌 정도라고 할 수 있지요. 캄보디아 사람이면 남녀노소 누구나 이 하나의 호칭만으로 상대에 대한 친근함을 드러냅니다. 우리처럼 나이나 지위에 따라 다양하게 바뀌는 호칭에 비하면 한결 단순하지만, 오히려 편안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 호칭 안에 친구에 대한 존중의 의미가 깊숙하게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친구라는 틀 안에서, 있는 그대로의 마음으로 나를 받아준다는 것이지요. 상대적으로 잘 산다고 우쭐댈 만 한 나라에서 간 어느 이방인에 대해, 그들이 건네주는 심성이 결코 위를 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 안에 머물면서 부끄러이 알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섣부르게 가지고 있던 내 안의 허위의 인식을 친구인 그들을 통해 알게 된 것이지요. 누군가 내 어깨를 툭 치며 다정스레 건네던 그 인사말이 여전히 그리운 이유이기도 합니다.
가까운 지인들이 내게 묻습니다.
왜 캄보디아였느냐고. 그 덥고 가난한 나라에 대체 무엇을 하러 갔느냐고 그럽니다.
스스로 내게 묻습니다.
지위나 처한 환경에 따라 어느 타인의 삶을 아래와 위로 구분해 바라보려 하지는 않느냐고. 어설픈 상념을 섞어 함부로 들이대거나 헛스러운 연민으로 어느 그들의 삶을 재단하려 하지는 않느냐고.
둘이 물으니 하나가 답을 내놓아야 하지만 결국 대답할 만 한 명분을 스스로 찾지는 않습니다. ‘몸을 들인다는 것.’ 이것은 사진의 운명임과 동시에 내 몸에 딱 들어맞는 몸짓이기도 합니다. 그리 길지도 짧지도 않은 15개월의 머묾 사이 심하게 몸앓이를 한 적도 있었습니다. 괜스레 마음에 불거진 생채기 때문에 그대로 짐보따리를 싼 적도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어깨를 쓰다듬으며 달래준 이들이 있었습니다. 무언가를 주러 간 것이 아니라 도리어 받기만 한, 그런 시간들이었습니다. 아마도 이 얘기가 둘의 질문에 대한 답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곳에 머물던 어느 하룻밤 술기운에 취해 휘갈긴 낙서 중 몇 줄을 옮깁니다.
“있어야할 자리가 어디인지 오래도록 찾아 헤맨다. 오늘 서 있는 이 자리는 매일 뜨고 저무는 태양처럼 항상 같거나 때론 또 다르다. 여기가 맞는지 아니면 저기가 맞는지. 그렇게 오늘 하루 서 있는 이곳에서 스스로를 돌아본다. 나 여기 서 있는 것이 옳은지 내게 묻는다. 머묾이 있는 길을 찾아 성큼 찾아온 땅. 이 안에서 무수히 만난다. 다를 것 없는 흙과 다를 것 없는 물, 그리고 역시 다를 것 없는 바람. 그 안에 섞여 하루를 채워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 자리에 서 있는 다를 것 없는 나를 벌거숭이처럼 만난다. 내 사방을 둘러 싼 경계와 구분의 벽들. 슬며시 손을 들어 하나하나 벽돌을 걷어보니 금새 낯부끄러워 몸이 뒤틀린다. 몸을 들이기 전과 들인 이후의 나는 온전히 달라진다. 한층 수그러들고 작아진다. 허위의 치장이 걷어지고 날것 그대로의 속내가 봉긋 솟아오를 즈음, 존재하기에 담아낼 수 있는 어느 눈빛인연들에 취해 검지가 춤을 춘다. 고갈된 의식이 확장되고 눈물 시리게 고마워 어깨마저 들썩거린다. …….(휘갈긴 일기 중 몇 줄)
결국 돌아온 이 땅 위에서 하루를 맞는 오늘, 난 다시 그립습니다.
혜화동 달팽이사진골방에서. 20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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