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민영 개인전/ 이동하는 가방 : 토포필리아(TopoPhilia)의 무대

2017.03.31 ▶ 2017.04.29

표갤러리

서울 용산구 소월로 314 (이태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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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80 번지 mixed media installation, 72x40x45 cm, 2017

  • Press Release

    토포필리아TopoPhilia를 위한 헌시獻詩
    - 자각自覺과 지각知覺의 착지점
    *토포필리아TopoPhilia는 인간의 환경에 대한 강한 애착, 일명 ‘장소애場所愛’를 의미한다.



    차민영의 눈은 은폐된 현실의 이면을 향하고 있다. 작가는 잠깐 머물거나 스쳐 지나가는 장소에 애틋한 감정을 드러내지만, 그것을 직조한 시스템에는 차가운 시선을 보낸다. 무장소와 비장소를 긍정하면서도, 그것을 구축한 시스템에는 비판적이다. 이것이 장소에 대한 차민영의 변증법적 사유다. 우리는 이번 전시를 통해 급변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느끼는 장소에 대한 새로운 감정을 자각自覺하고,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은폐된 장소 형성 시스템을 명확히 지각知覺하게 된다.


    시대 변화와 장소 진정성의 알레고리
    장소에 대한 차민영의 사유는 여러 층위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작가의 장소에 대한 알레고리는 단순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장소’는 인간의 삶이 스며들어 있는 공간을 의미하며, ‘장소성’은 장소에 대한 생생한 체험과 기억이 드러나는 공간의 특성을 일컫는다. 후기 자본주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많은 학자가 현대 사회 시스템이 가져온 ‘장소성의 상실’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특성을 보이는 장소를 ‘무장소placeless’(에드워드 렐프Edward Relph) ―장소에 대한 진정성 상실한 장소― 나 ‘비장소non-place’(마르크 오제Marc Augé) ―특정한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나 역사성, 고유한 정체성 등이 부재한 장소― 로 개념화하였다. 그들은 ‘장소=물건’의 도식으로 생산되어 ‘표준화된 장소경험’을 주는 것을 장소성의 상실로 보고 있으며, 찍어낸 듯 똑같은 아파트와 대형 쇼핑몰, 멀티플렉스 영화관, 호텔 등(무장소)이나, 일종의 스치는 구역으로 조직된 환승체계transit인 공항, 기차역, 버스터미널 등(비장소)을 장소성이 상실된 공간으로 규정한다. 하지만 차민영의 시선은 조금 다르다.

    차민영은 현대 학자들이 ‘무장소’나 ‘비장소’라고 규정한 장소에 현대 학자들의 개념을 기계적으로 적용하지 않는다. 작가는 무장소나 비장소가 장소성을 상실한 장소가 아니라, 그저 다른 장소성을 가졌을 뿐이라고 말한다. 똑같이 찍어낸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도 그의 삶은 제각각 다 다르고, 스쳐 지나가는 공항이나 기차역에는 개인의 특별한 사연들로 넘쳐난다. 매일 타는 지하철의 변함없음이 삶의 체험일 수 있으며, 일시적으로 임대한 작업실에서는 기념비적인 작품이 탄생한다. 차민영은 후기 자본주의 사회 시스템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아파트 생활이나 대형 쇼핑몰, 백화점 방문, 호텔 투숙, 공항이나 기차역, 버스터미널 이용 등이 이제는 일상화된 생활의 일부이고, 그래서 삶의 체험과 기억이 그곳에도 스며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현대 학자들이 무장소나 비장소라고 명명한 장소도 현대인에게 ‘장소의 진정성’이 배어있는 장소일 수 있다고 본다. 차민영은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무장소나 비장소를 익명의 공동 공간이라기보다는, 각각의 개인이 스며있는 개별 삶들의 연합체로 인식한다. 그래서 후기 자본주의 사회를 대변하는 장소들을 추하거나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서울과 도쿄, 뉴욕 등의 메가시티 밤 풍경을 조직하여 지역적 차별성 상실(서브토피아subtopia)을 보여주는 <토포필리아의 무대-Subtopia>에서도, 서울 북촌의 풍경을 조합하여 과거가 박제된 현상(박물관화)을 드러내는 <토포필리아의 무대-북촌> 연작에서도 어떠한 을씨년스러움이 존재하지 않는다. 철거 예정인 도곡동 한복판의 구룡마을 구석구석을 조합한 <토포필리아의 무대-구룡마을II>에서는 ‘빈자貧者에게 미는 사치요, 실재만의 중요하다’는 식의 위계적인 사회학적 시선이 존재하지 않는다. 반대로 작가는 판자촌에 사는 사람들이 가진 삶의 풍요와 미를 촘촘히 쌓음으로써 ‘빈자의 삶을 심미화審美化’한다. 그의 작품들은 제재題材와 달리 오히려 화려하고 아름답고 밝다. 죽음으로 가기 전 잠시 머무는 병실이 있는 도, 정해진 노선을 따라 시작도 끝도 없이 계속 도는 지하철을 표상하는 도, 단기 거주할 수밖에 없는 임대 공간인 에서도 거부의 기조는 좀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담담히 그 공간의 의미를 되짚고, ‘장소’로서 그곳들을 끌어안는다. 다만 <토포필리아의 무대-System Space>와 <토포필리아의 무대-I>, <토포필리아의 무대-II>에서만 새로운 세계의 탄생을 암시하듯 심상치 않은 흐린 하늘이 존재할 뿐이다.

    이동하는 가방 : 토포필리아의 무대, 녹아내리거나 절단되거나
    그렇다고 차민영이 현대의 장소에 대한 관념을 모두 긍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삶의 장소로서 현대의 개별 장소는 긍정하지만, 장소를 형성하는 전체 시스템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다. 아마도 작가는 후기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풍경에서 모종의 이상함을 느꼈으리라. 전 세계적으로 동일한 분위기를 지닌 맥도날드나 스타벅스와 같은 프랜차이즈 체인이나, 지역적 관습이나 특색과는 무관하게 유사한 양식으로 지어지는 아파트 단지, 어디나 동일한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미술관과 박물관, 그리고 공항, 터미널, 지하철…… 현대의 장소가 무성無性의 유동적 벡터vector로 전환되어 세계 어디로든 옮겨 다니는 것을 보면서 작가는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작동하는 어떤 장소의 문법, 즉 장소 형성 시스템을 감지했던 것 같다.

    여행 가방이 이번 전시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아마도 이 때문일 것이다. 차민영은 복제의 형태로 장소가 이동하는 현대의 장소 조직 시스템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가방을 들고 나온다. 물건을 담아 이동하는 것을 주요 기능으로 하는 가방. 특별히 작가는 자유와 낭만을 떠올리는 여행 가방을 택했다. 이 여행 가방에 작가는 토포필리아의 무대를 담는다. 그리고 어떤 여행을 준비한다. 하지만 이 여행은 가방처럼 검고 무겁고 견고하고 사무적이다. 자유와 낭만의 상징인 ‘여행’은 ‘검고 무겁고 견고하고 사무적인’ 틀로 둘러싸인다(<토포필리아의 무대-I>, <토포필리아의 무대-II>, <토포필리아의 무대-System Space>). 그리고 그 안에서 강제와 규칙의 장소 조직 시스템이 작동한다. 영상 작업 <토포필리아의 무대-Modern Tetris II>은 이러한 시스템의 작동 방식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가방이 열리고, 열린 가방 안에서 현대의 장소들이 테트리스처럼 쌓이며 하나의 시스템을 구축한다. 이어서 열린 가방은 강력한 외부적 압력으로 닫힌다. 시스템은 강제적으로 압축되어 감춰진다. 그리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 비어있는 가방이 열린다. 다시 구조물이 쌓인다. 다시, 다시…… 가방으로 은유되는 후기 자본주의의 장소 조직 시스템은 끊임없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며 현대 세계 곳곳에 작동 중이다. 차민영은 이 시스템들을 모두 동일한 형태를 지닌 매트릭스matrix로 간주한다. 장소 조직 시스템들이 각각의 방식으로 생성, 소멸하더라도 그 구성틀은 모두 같다고 보는 것이다. 여기서 장소 형성 시스템의 두 층위가 드러난다. 장소를 조직하는 ‘구축 체계’와 이 체계들이 동일한 외양의 매트릭스로 존재하는 ‘구조 체계’. 시스템의 두 층위는 <토포필리아의 무대-System Space>에서 명확한 이미지로 드러난다. 여러 개의 여행 가방은 모두 같다. 그 안의 장소 조직 시스템과 상관없이 이 매트릭스들의 외양은 모두 동일하다. 이 매트릭스들은 그저 <토포필리아의 무대- 구룡마을 I>처럼 각각 다른 장소로 옮겨져서 박힐 뿐이다.

    장소 형성 시스템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가방이 녹아내린 이나 절단된 , 그리고 절단되는 과정을 영상화한 에서 절정에 이른다. 이 작품들은 견고하게 구축된 시스템이 단순히 관념의 허상이 아니라, 만져지는 현실의 실체임을 각성시킨다. 동시에 녹이고 절단함으로써 그 시스템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예술적으로 암시한다. 이러한 날 선 작업은 이 시대에 작동하고 있는 견고한 시스템이 보여준 어떤 불합리성이나 오작동에 대한 일종의 차민영 식의 항거로 읽힌다.

    차민영은 작품을 통해 은폐된 내적 구축 체계와 외적 구조 체계를 드러낸다. 우리는 작가가 보여주는 토포필리아의 세계에서 우리의 삶과 현 세계의 구조를 보게 된다. 장소에 대한 새로운 감정을 느끼고, 이동하거나 녹아내린/절단되는 시스템을 인식하게 된다. 장소는 복제되어 이동하고, 곳곳에서 다시 세워지고 사라진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그곳에서도 계속된다. 이것은 현대인의 삶, 우리의 삶일 것이다. 차민영은 우리를 은폐된 현실의 이면으로 이끌어간다.(끝)


    글. 안진국 (미술비평) / Lev Aan (Art critic)

    전시제목차민영 개인전/ 이동하는 가방 : 토포필리아(TopoPhilia)의 무대

    전시기간2017.03.31(금) - 2017.04.29(토)

    참여작가 차민영

    관람시간월~토요일 10:30am - 06:30pm

    휴관일일요일

    장르조각, 사진, 영상, 설치

    관람료무료

    장소표갤러리 PYO GALLERY (서울 용산구 소월로 314 (이태원동) )

    주최표 갤러리(PYO Gallery)

    후원Samsonite Korea , PYO Gallery

    연락처02)543-7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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