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하
PM-1b 혼합재료, 230x140x200cm, 2010
최종하
AE-2 혼합재료, 28x45x70cm, 2010
최종하
EEF-1 혼합재료, 80x80x200cm, 2010
최종하
FW-2 혼합재료, 100x100x15cm, 2010
테크놀로지의 변주
신승오(덕원갤러리 큐레이터)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교육과 학습을 통해서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법칙과 규약들을 습득하고 체득한다. 이렇게 체득된 것들은 우리의 사회를 이루고 있는 주류의 이론들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주류의 이론들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다양한 이론들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으나 기존의 이론들과 법칙들의 그늘 속에서 가려져 우리는 비주류의 다양한 이론들을 인식하지 못하고 쉽게 발견하지 못한다. 최종하의 작업은 이러한 주류의 것들을 의심하고 이와는 중심에서 밀려난 다른 것들을 인식하고 주류와 동등하게 바라보고자 한다.
작가는 이러한 인식의 변화의 시작점을 우리가 밀접하게 사용하고 있는 테크놀로지에서 찾고 있다. 테크놀로지는 구석기, 신석기 시대에서부터 도구를 사용하게 되면서부터 존재해 왔으며 현대의 컴퓨터나 운송기구, 가전기기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발전해왔다. 이러한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진화는 한가지의 발명이나 발견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마치 생물들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다른 이유에 의해서 더 이상 종을 보존할 수 없이 사라지듯이 다양한 이론들과 기술들이 만들어지고 또 사라졌다.
그리고 유력한 이론과 실용적이며 경제적인 여러 가지의 환경에서 살아남은 테크놀로지가 주도권을 쥐었으며, 우리는 익숙해진 테크놀로지를 그대로 받아들여 적응하고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사라져버린 이론이나 기술들이 지금 우리가 이용하고 있는 것들에 비해 비실용적이거나 비효율적인 것 혹은 황당무계한 것들은 아니었다. 오히려 기존의 이론들을 뛰어넘는 기발하고 참신한 것들도 많이 존재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경제적, 정치적으로 주류의 산업이 되어버린 기존의 테크놀로지에 의해서 경쟁에서 밀려버리면서 매우 실용적이기 못하며,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되어 폐기되어 버린 것이다. 최종하는 이런 테크놀로지를 우선 기존의 제품들을 변형 시키거나 원래의 기능에 전혀 다른 장치를 부착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그 의미를 변화시킨다. 첫 번째는 불필요한 기계나 프로세스를 만들어 내는 작업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법칙이나 규약들을 해학적으로 풀어내는 작업이다.
[PM-1b]는 휴지를 화장실에서 사용할 수 있게 일정하게 잘라주는 기계다. 이 장치의 용도 자체는 매우 편리하고 합리적인 것 같지만 실제로 화장실에 들어갈 수 없을 만큼 거대하고 수동으로 손잡이를 돌려 동작하는 여러 장치들에 의해 나오는 작동 방식은 매우 불필요하고 비효율적이다.
[AE-2]는 낡은 카세트의 버튼을 누르면 조그마한 mp3가 작동되는 작품은 기존의 제품에 내제되어 있는 프로세스로 작동되던 과거와 현재의 제품을 작가가 창조해낸 새로운 프로세스로 연결시켜 또 다른 프로세스로 재탄생한다. 하지만 이러한 것도 그들의 프로세스들이 존재하는 한 불필요한 장치이다. 두 번째로는 기존의 제품의 프로세스를 비틀고 꼬아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작업들이다. [OB-ELEVATOR]는 엘리베이터에 간단한 장치를 설치하여 기존의 버튼의 열림과 닫힘 버튼을 바꾸어버린다.
[EEF-1]의 선풍기는 기존의 선풍기에 팬을 크게 만들어 시원한 바람이 더 많이 나오게 만들었지만 실제로 작동해보면 오히려 시원한 바람은 나오지 못한다. 이렇게 엘리베이터나 선풍기처럼 조금이라도 크기의 변화나 장치가 덧붙여지게 되면 원래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기존의 프로세스의 허점을 보여준다.
[FW-2]의 시계는 우리가 알던 시계의 개념이 아니라 작동하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밤은 길게 가고 낮은 빨리 가는 자기의 시간을 조절 할 수 있는 시계로 탈바꿈하였다. 이를 통해 객관적인 시간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주관적인 시간을 부여한다. 작가는 다양한 방식으로 기존의 것들의 프로세스를 비틀고 변화시켜 우리가 기존의 프로세스나 이론들에 대하여 얼마나 무의식적으로 맹목적으로 따르고 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러한 작품들에서 또 하나 살펴보아야 할 것은 이것들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작가는 얻기 쉽고 쓰기 편한 재료들을 수집해서 용도에 맞게 부품들과 구조들에 맞추어 나가면서 자기 자신만의 프로세스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를 위해 작가는 스스로 기계의 구동원리를 공부하고 실습과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작업을 해나간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작품은 무엇인가를 만들겠다는 동기에서 시작되어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하기 까지 조그마한 물건이나 부품에서 시작하여 그것들에 하나씩 장치들이 덧붙여지는 형태로 시행착오라는 과정의 결과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렇듯 모든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진화는 필요에 의한 순수한 동기에서 시작되어 계속되는 시행착오의 과정을 통해 나오는 결과물들이다. 이는 주류와 비주류 모두에게 있을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과정이다. 작가는 이러한 작업방식을 통해 다만 이들의 차이는 과정이 아니라 결과물에 있을 뿐이며 그것이 얼마나 우리 사회에 통용되고 있는가의 차이일 뿐 동등하다고 말한다.
최종하는 그의 작품들을 통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법칙과 이론들을 그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비주류의 것을 그 자리에 올리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우리들이 이것이 아니면 저것이라는 이분법적인 구분이 아니라 이것뿐만 아니라 저것도 같이 라는 통섭적인 사고를 가지길 바란다. 왜냐하면 새로움이라는 것은 하나의 학문이나 이론을 중심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학문이나 다양한 이론들 간의 교집합이나 서로 다른 것들 사이에 구별이 명확하지 않은 영역에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뇌는 이미 익숙한 것을 토대로 주변 환경을 인식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통섭할 수 있는 인식의 준비가 되어있어야 하며, 비주류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소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주류와 비주류를 동등하게 바라보는 시선과 인식이 체득되어야 한다. 작가는 우리에게 계속해서 이러한 것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제시할 것이고 이를 통해 우리의 인식을 넓혀 줄 것이다. 이는 사회의 반응자로서 그리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구성원 중에 한 사람으로서 이러한 새로운 시선과 방식을 제안함으로써 그가 생각하고 추구하고 있는 예술가의 역할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1983년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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